서기 475년 백제를 침공한 고구려 장수왕은 100년전인 371년 백제의 공격때
고국원왕이 전사한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한성으로 처들어가 개로왕을 없애고 여세를 몰아 충주까지 점령한 뒤 중원고구려비를 세웠다.
당시 고구려군이 주둔지로 활동한 백제의 북서쪽 대평원은 平原郡이 된다.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의 문무왕은 한반도 중심부에 있는 이 평원을 사통팔달의 군사,
물류의 요충지로서 중시했고, 서라벌 다음 위상의 거점 도시인 5소경 중 하나로 지정해 北原京이라 칭했다.
고려를 세운 왕건은 북원경을 나라의 위세를 좌우할 중요한 기반이라는 의미로 '原州'라는 이름을 붙였다.
원주의 중요성은 사서 곳곳에 나타난다.
고려 고종은 군사요충지인 이곳을 나라의 면모를 새로이 하는 기반이라는 뜻의 一新縣으로,
충성왕은 '나라의 안녕을 결정 짓는 곳'이라는 의미의 成安府라 부르기도 했다.
조선의 이성계가 1395년 원주를 강원도의 首府로 삼은 이래 이곳은 500년간 강원도 도청소재지 역할을 했다.
원주는 삼국이 한 번 씩 지배했고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아우름과 탕평의 고장이다.
올해로 시 승격한지 60년된 이곳에 세종시 만큼이나 많은 공공기관이 모여들고 있다.
10일 한국관광공사가 '원주시대' 개막을 알리는 등 내년까지 12개 기관이 들어선다.
부산 등에 이어 공공기관 이전 4위 도시이다.
푸근한 인심, 사통팔달의 관리할 즐거움 넘치는 주변 인프라 등 원주의 특성을
나라의 얼굴인 관광과 딱 들어 맞는다.
관광고사의 원주시대가 국민행복을 한층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 함영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