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4년 이맹휴(李孟休) 시(詩)
이맹휴(李孟休) 1713년(숙종 39) ~ 1751년(영조 26)
본관은 여주(驪州). 초명은 이맹명(李孟命). 자는 순수(醇叟). 이지안(李志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헌 이하진(李夏鎭)이다. 아버지는 실학자 이익(李瀷)이다. 광주(廣州)에서 살았다.
1735년(영조 11) 진사가 되고, 1742년(영조 18) 영조가 춘당대(春塘臺)에서 양역(良役)·학교·군제·용인(用人)·전화(錢貨) 등 5조의 책문(策問)으로 정시(庭試)를 실시하였을 때 당시 진사로서 수석으로 합격하자, 영조의 특명으로 한성부주부에 제수되었다.
1743년 이맹휴가 이잠(李潛)의 조카라 하여 사간원의 탄핵이 있었으나 영조의 두둔으로 무사하였다. 1744년에는 예조정랑으로 재임할 때 예조판서 이종성(李宗城)의 천거로 착란(錯亂)이 심한 예조의 등록(謄錄)을 분류, 정리하여 인출(印出)하는 일을 전담하게 되었는데, 이 책이 곧 예조에서 소장한 『춘관지(春官志)』였다. 1745년 만경현령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접왜고(接倭考)』·『예경설경(禮經說經)』이 있다,
장지덕(張趾德) 1680년(숙종 6 경신)~1748년(영조 24 무진)
본관은 인동 자는 여장(汝章) 호는 사이당(四而堂).
5대조는 문강공 여헌 장현광 고조부는 문목공 장응일(張應一). 증조부는 정랑 소매당 장영.
조부는 군수 남강(南岡) 장만기(張萬紀) 아버지는 통덕랑 장대유(張大猷)이다.
외조부는 한음 이덕형의 증손 현감 이윤협이고 처부는 현감 김세평이며 처외조부는 관찰사 반초당 이명익이다.
관직은 장릉참봉, 명릉참봉. 사옹원 직장. 종묘서 직장. 장례원 사평. 세자익위사 익찬. 영조 20년 정읍현감.
“종묘서 직장 장지덕(張趾德)은 바로 장현광(張顯光)의 봉사손(泰祀孫)인데, 사람됨이 순실(純實)하고 근각(謹慤)하며 겸하여 경학에도 밝습니다. 수령의 연한이 다만 1년이 남았는데, 유현의 자손은 전에도 발탁하여 조용(調用)한 일이 많았으니, 곧 6품에 승진시켜 속히 목민(牧民)의 임무를 시험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임금이 윤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