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튤리아 (Petulia)
1968년 미국영화
감독 : 리처드 레스터
촬영 : 니콜라스 뢰그
음악 : 존 배리
출연 : 줄리 크리스티, 조지 C 스코트, 리처드 챔벌레인
셜리 나이트, 조셉 코튼, 아서 힐
피파 스코트, 캐슬린 위도스
아마 줄리 크리스티 주연의 '페튤리아'를 봤거나 관심을 가진 한국 분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줄리 크리스티는 60년대 출연한 '닥터 지바고'로 우리나라에 인지도를 얻었고 굉장히 지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배우긴 하지만 한참 활동하던 시기에 국내에 개봉된 작품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오로지 '닥터 지바고'의 라라 로만 기억이 되고 있지요. 이건 60년대라는 상황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미국 주류 영화 개봉의 암흑기가 60년대 중반 이후 부터 80년대 중반 정도, 약 20여 년의 기간이었습니다. 왜 그랬는가 하면 시대의 상황 때문이었죠. 한국은 반공 국가였고, 관습적, 도덕적으로 보수적인 국가였습니다. 반면 서구는 크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고전적이고 규격적인 영화들 위주였던 40-50년대와 달리 도발적이고 반 사회적이고 새로운 물결의 영화들이 생겨났습니다. 토키영화 초기부터 고전적 영화 시대를 이끌어 온 유성영화 1세대 또는 40-50년대 배우들이 많이 퇴조하거나 사망했고 (60년대에 들어서 게리 쿠퍼, 클라크 게이블, 마릴린 먼로,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거의 유사한 시기에 사망했죠) 스티브 맥퀸 같은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배우가 떴습니다. 고전적 배우, 감독은 구세대가 되었고, 젊고 새로운 영화인들이 등장했습니다. 누벨바그 영화, 아메리칸 뉴시네마, 수정주의 웨스턴, 마카로니 웨스턴 등은 과거의 규격적, 표준적 고전영화의 틀을 깨는 작품들이었죠. 우리나라에도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 작품들보다 무협물, 마카로니 웨스턴, 007 아류 첩보물, B급 오락물 등이 많이 개봉되었습니다. 포크음악과 컨츄리 뮤직, 히피문화, 베트남전 반대 운동 등 반사회적, 자유분방, 저항 등의 분위기가 서구에 흘렀습니다. 이 시대의 스탠리 큐브릭, 우디 알렌, 로버트 알트만, 조셉 로지 등의 60-70년대 영화는 거의 개봉되지 않았습니다.
60년대 여성 싱어 송 라이터 이자 블루스 가수의
상징적 존재 재니스 조플린이 도입부에
출연하여 노래를 부른다(오른쪽)
부부로 출연한 줄리 크리스티와
리처드 챔벌레인
매혹적인 줄리 크리스티
난데없는 미모의 여인 페튤리아의
도발적 유혹을 받은 중년 의사 아치
이 시기에 주로 활동한 줄리 크리스티는 '닥터 지바고' 같은 지적이고 품위 있는 분위기의 영화에 계속 출연한 게 아니라 도발적이고 그 시대의 변화를 타는 듯한 영화에 등장했습니다. '화씨 451' 같은 반사회적 영화도 그랬고, 공포영화인 '쳐다보지 마라'에서의 파격적 노출씬,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의 건조함, '사랑의 메신저' 에서의 계급갈등 등. '닥터 지바고' 에서의 분위기를 기대할 만한 낭만적인 영화들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나마 아카데미 상을 받은 '달링'이 개봉한 게 다행일 정도였습니다.
'페튤리아'는 줄리 크리스티가 연기한 여주인공 이름입니다. 1968년 작품이므로 '닥터 지바고' 이후 3년 뒤 출연한 영화지요. 여전히 20대 시절이었습니다. 매우 아름다운 여성인 페튤리아는 병원 기금 모금을 위해서 그녀의 시아버지 대너 박사(조셉 코튼)가 마련한 행사에 온 중년기에 접어든 의사 아치 볼렌(조지 C 스코트)을 발견하고 접근합니다. 결혼 10년의 유부남이지만 이혼 절차 중인 아치는 의외로 아름답고 매혹적인 페튤리아의 갑작스런 접근에 담담한 반응을 보입니다. 아치는 이 고루한 파티에서 떠나려는 중이었고, 페튤리아는 남편 데이빗(리처드 챔벌레인)이 같이 있었음에도 아치를 따라 나옵니다. 아치에게는 패튤리아가 사실상 초면에 가까웠는데 페튤리아가 어떤 사정으로 자동차에 치인 멕시코 소년을 병원에 데려왔을 때 치료한 담당 의사였을 뿐입니다. 이날 페튤리아와 아치는 무인 모텔에까지 함께 가지만 별일 없이 아치는 떠나 버립니다.
도도하고 쎈 분위기의 배우
조지 C 스코트가 모처럼
멋스러운 로맨스 가이 같은 역할로 등장.
이혼을 진행 중인 부부
금문교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가 배경입니다. 결혼 6개월 된 아름다운 여인이 난데없이 파티장에서 만난 한 의사에게 집요하게 따라붙으며 구애를 한다....이런 내용부터 파격적입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과 절차(?)가 기승전결 식으로 차분히 전개 되는게 아니라 수시로 벌어지는 교차편집과 몽타주식 전개로 끝날 때까지 이어집니다. 일종의 몽타주 남발이랄 수 있습니다. 이건 감독인 리처드 레스터의 영향보다는 촬영을 담당한 니콜라스 뢰그의 영향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는 훗날 '워커바웃' '쳐다보지 마라' '배드 타이임' 같은 독특한 영화들을 연출했지요. 아무튼 그래서 영화가 좀 어수선하면서 갑자기 과거의 장면이 몇 초간 툭 튀어나오고 이야기가 갑자기 과거로 전환되고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도발적이고 어수선한 영화지요.
페튤리아는 젊고 근사한 남편이 비싼 요트를 파는 모습을 보고 반하여 결혼을 했지만 그는 부모에게 사실상 얹혀사는 입장이었고, 페튤리아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페튤리아가 갑자기 데려온 멕시코 소년의 문제로 다투게 되고 소년을 데리고 집을 빠져나온 상황에서 소년이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아치의 병원에 실려간 것입니다. 거기서 보게 된 의사, 그를 파티장에서 다시 만나고 갑자기 집요한 구애를 하게 된 것이지요. 이런 내용의 연결은 영화를 거의 다 봐야 이어집니다. 순차적으로 흐르는 게 아니라서 그렇지요.
그렇다고 이 영화가 페튤리아와 아치의 로맨스, 혹은 '불륜'의 이야기로 단순하게 흐르는 것이 아닙니다. 아치와 그의 부인인 폴로(셜리 나이트) 간의 문제와 상황, 폴로가 재혼 예정인 남자와 양육권을 가졌지만 주말에는 아이들을 만나서 시간을 갖는 아치의 이야기 등이 전개되고 중반부에 아치의 집에서 심하게 구타를 당해서 실신한 페튤리아를 발견한 아치가 그녀를 급하게 병원으로 옮기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파티에서 아치와 페튤리아의 만남, 이후 아치를 향한 페튤리아의 도발, 페튤리아의 실신, 이렇게 전개가 된 이후 관련 이야기들이 현재, 과거를 오가면서 퍼즐이 맞추어지듯 풀리는 방식이지요. 그렇다고 애틋한 로맨스도, 사건을 짜맞추는 추리물도 아닙니다. 그냥 두서 없이 흐르는 내용이지요.
쓰러진 페튤리아를 발견하고 놀란 아치
줄리 크리스티의 시아버지로 출연한 조셉 코튼
60세가 넘었는데 근사한 노신사의 모습이다.
초반부 행사 장면에 등장한 가수가 27세에 요절한 전설의 블루스 가수 재니스 조플린인 것이 특징입니다. 어떻게 보면 60년대 젊은이의 문화, 향락문화, 자유분방 분위기를 대표하는 인물이 재니스 조플린이기도 하지요. 그런 상징적 인물도 등장하고 기존의 관습에서는 이해가 어려운 내용이 전개되고, 편집의 방식도 시간 순차적이 아닙니다. 40-50년대라면 등장하기 어려운 완전히 색다른 영화지요.
줄리 크리스티는 주로 그런 60-70년대의 새로운 경향의 영화들에 많이 출연했는데 공동 주연인 조지 C 스코트 또한 일반적 배우가 아닙니다. 뭔가 까탈스럽고 아카데미상 수상까지 거부할 정도로 독특한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보기 드물게 로맨스 가이 역할을 한 영화가 이 작품입니다. 물론 워렌 비티나 캐리 그랜트 처럼 달달하거나 느끼한 로맨스의 주인공이 아닌 여전히 시니컬하고 딱딱한 분위기는 갖고 있지만 '허슬러'나 '패튼 대전차군단' '제인 에어' 등에서 보여준 완고한 이미지와는 달리 신사의 품격과 중년기에 도래한 남자의 멋스러움을 가진 역할이지요. 그가 출연한 영화 중에서 꽤 호감적인 캐릭터입니다. 5년 뒤에 출연한 '오클라호마의 유전' 에서도 페이 더너웨이와 로맨스를 이루기도 했는데 로맨스 영화에 안 어울릴 듯한 배우지만 간혹 출연은 한 것입니다. '타워링' '쇼군' '스웜' '킹 솔로몬' 그리고 미니시리즈 '가시나무 새'로 알려진 리처드 챔벌레인이 그 영화들보다 훨씬 젊은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비호감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40년대의 명배우 조셉 코튼이 근사하게 나이든 모습으로 비중이 좀 적게 등장하지요. 조지 C 스코트와 이혼 중인 부인 역은 셜리 나이트가 등장하는데 '끝없는 사랑'에서의 브룩 쉴즈의 엄마였지요. '죽음의 연주'에서 사악한 독일 간수이기도 했고, 젊은 시절에는 폴 뉴만과 '애인과 정부' 라는 영화에서 주연급으로 공연하기도 했습니다.
페튤리아와 화해를 시도하는 남편 데이빗
전처, 전처의 애인과 좋은 관계로
지내는 아치
전형적인 어른들의 이야기이고 친절한 영화는 아닙니다. 10년 간의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이혼한 남자가 6개월의 결혼 생활이 불행하여 바람을 피기로 선언한 여자와의 다소 위태로운 만남을 다루고 있지요. 순조롭지 않게 전개되는 두 사람의 로맨스 입니다. 일종의 도피적 일탈 느낌의 로맨스 같기도 하고. 줄리 크리스티나 조지 C 스코트 같은 배우가 출연했기에 찾아낼 수 있었던 60년대 고전입니다.
ps1 : 촬영을 담당한 니콜라스 뢰그는 1973년 연출한 공포물 '쳐다보지 마라'에서 줄리 크리스티를 출연시켰는데 아이를 잃은 부부로 등장하지요. 그 영화에서 줄리 크리스티와 도날드 서덜랜드의 약 5분이 넘는 파격적 섹스씬이 화제가 되었는데 그 영화에서도 교차 편집의 묘미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페튤리아'도 감독보다 니콜라스 뢰그의 영향력이 더 크게 느껴진 작품입니다.
ps2 : 리처드 챔벌레인이 34세에 출연한 영화인데 이 배우는 젊었을 때 보다 중년기에 접어든 시기가 되었을 때가 더 근사한 느낌입니다.
ps3 : 1968년 이면 꽤 과거인데 40-50년대 영화에 비하면 훨씬 발전하고 현대적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무인 호텔도 그렇고, 의상도 그렇고.
[출처] 페튤리아 (Petulia, 68년) 줄리 크리스티 조지 C 스코트 주연|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