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에 ‘다닐 하름스 읽기’를 제안한 ‘책임’도 있고 해서 그의 문학세계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말해보기로 한다. 그렇다고 새로 글을 쓸 형편은 아니어서 일단은 오래 전에 써둔 걸 편집/정리하는 수준이 될 것이다. 이미 (43)번째 통신문(<도스토예프스키의 기하학과 부조리극의 기하학>)에서 서론과 결론은 옮겨온바 있는 글인데, 원래는 <러시아 부조리극과 비유클리드 기하학: 다닐 하름스의 경우>란 제목을 갖고 있다. 거기서 이제 본론을 옮겨오고자 하는 것이다.
하름스의 대표적인 드라마 ‘<엘리자베타 밤> 읽기’인데, 이전에 하름스에 대한 글을 옮겨올 때는 아직 <집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청어람미디어)란 작품집이 나오기 이전이어서, 본론의 내용은 생략했었다(너무 자세하게 들어가는 듯해서). 하지만, (국역본 표지에 따르면) “빛나는 러시아 부조리문학의 기수, 다닐 하름스 작품선”도 지난 가을에 나온 김에 조금 자세히 들어가는 것도 하름스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참고는 될 듯하다. 해서 옮겨오는 것이다.
그 글을 쓰던 때쯤부터(6년전 겨울이다) 나는 부조리문학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견지하고 있는데, 그것은 (‘의미의 논리’의 짝패로서) ‘무의미의 논리’라는 것을 구성해보기 위해서이다(사실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바쳐지고 있는,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의 절반은 ‘무의미의 논리’이기도 하다). 이 ‘무의미의 논리’는 정신분석학의 관심대상인 ‘무의식의 논리’와도 친연성을 갖고 있지만, 둘이 동일하지는 않다. ‘무의미의 논리’는 러시아의 자움(zaum)(영어로 옮기면 ‘trans-reason’쯤 된다) 시들에서 보듯이 ‘초강력 의식’의 산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를 ‘초강력 합리주의’(super-rationalism)라고 불렀다).
무의미의 논리, 즉 ‘로직 오브 넌센스(Logic of nonsense)’를 한 단어로 하면 ‘파랄로직(Paralogic)’이 된다. ‘Paralogic’이란 단어는 영어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지만(사전에 등재돼 있는 건 ‘오류’ ‘배리(背理)’란 뜻의 ‘paralogism’이다), 그걸 구성하고 있는 두 단어 ‘Para’와 ‘logic’의 뜻을 통해서 유추해볼 수는 있는 단어이다. 그런 단어를 (러시아문학에서는) ‘자움(zaum)’어라고 하며(흘레브니코프는 ‘새의 언어’라고도 부른다), 그런 자움어들로 이루어진 시를 자움 시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런 자움의 논리를 뜻하는 단어로 내가 또 다른 자움인 ‘파랄로직’을 갖고 오는 것이 억지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파랄로지스트’로서 내가 꿈꾸는 것은 언젠가 <무의미의 논리>란 책을 쓰는 것이다(그때 ‘이상한 나라’ 러시아의 시와 문학은 유익한 자료이자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사실, 영어의 ‘파라(para)’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접두어이다(접두어로서 ‘para’가 갖는 기본적인 의미는 ‘beside’와 ‘against’이다). 6년전 여름에 나는 이렇게 썼었다: “PARA, 내가 좋아하는 접두어. 바로 우리 곁에 있으면서(beside) 우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어깃장을 놓는(against) 우리들의 삶, PARA! 패러프레이즈(paraphrase)로서의 삶은 본때나는,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로서의 삶과 얼마나 다른가! 우리는 우리 가까이 있었고 우리가 잡을 수 있었던 것을 모두 놓쳐 버렸다. 그리고는 뒤늦게 뒤쫓아가는(catch up) 것이다. 오 CATCHUP, 이 죽도 밥도 아닌 삶!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는 언제나 우화(parable)이고 우리의 이즘은 평행주의(parallelism)이며, 우리는 고작 정부(paramour)의 사랑이나 꿈꾸며 편집증(paranoia)을 앓는다. 오 PARA, 이 죽도 밥도 아닌 삶! 그러니 제대로 된 서문(Preface)을 쓴다는 건 말이 안되는 것(paradox)이지.”(이건 그 책의 ‘Paraface’였다.)
부조리문학이 재현/생산해내는 삶은 주로 ‘캐치프레이즈로서의 삶’(=잘나가는 삶)이 아니라 ‘패러프레이즈로서의 삶’(=구겨진 삶)이며(패러프레이즈들로 가득 차 있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려보라), 대개 캐치프레이즈와는 인연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나로선 그런 점에서 부조리문학이 마음에 든다(나의 ‘직업’은 다른 삶/텍스트들을 끊임없이 ‘패러프레이즈’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파랄로지에 대한 책을 쓰겠다는 건 나름대로의 의무이면서 예의인 것이다. 이 파랄로지의 이론적 구상에 있어서 나보다 앞서 가고 있는 이들이 들뢰즈와 크리스테바 등이며(나는 뒤쫓아갈 것이다, 케첩이 될 때까지), 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언어학이 초언어학(paralinguistics)이고, (러시아어에서) ‘파라그람’을 연구하는 ‘빠라그라마찌까(paragrammatika)’이다(‘파라-그라마톨로지’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그러니까 하름스에 대한 나의 관심은 부조리극의 시학, 더 나아가 무의미의 논리를 구성하고자 하는 보다 거시적인 관심에서 비롯된다(나는 어제도 알프레드 자리와 장 주네의 러시아어 작품집을 구입했다). 물론 그런 거시적인 관심 자체는 하름스를 읽으면서(그리고 베케트를 읽으면서) 사후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하름스를 읽지 않았다면, 그런 관심을 갖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관심 때문에 하름스를 다시 읽는다(‘읽기’는 그런 식으로 변증법적이다). 그리고, 내게 하름스는 일차적으로 드라마 <엘리자베타 밤>의 작가이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이 그 작품을 통해서이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도 <엘리자베타 밤>이다(그리고 이어지는 것이 <노파>이다). 이하는 이 작품에 대한 ‘몇 마디’이다.
먼저, 하름스에 대한 몇 마디. 다닐 하름스(1905-1942)는 알렉산드르 베젠스키(1904-1941)와 함께 아동문학가로서만 알려지다가 1960년대 후반에 와서야 재발견/재평가되고 있는,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마지막 작가이다(혹은 러시아의 마지막 아방가르드의 작가이다. ‘아방가르드’란 건 쉽게 말해서, 삶이 예술을 모방해야 한다고 공언하는 패거리이다. 물론 일반적인 예술은 삶을 모방한다). 하름스의 본명은 ‘다닐 이바노비치 유바초프’로, 국역본에는 ‘유바체프’로 돼 있는데, 착오이다. 영어 표기는 ‘Iuvachev’쯤이 될 텐데, 강세가 뒤에 오기 때문에 ‘유바체프’가 아닌 ‘유바초프’로 읽어야 한다(나도 예전엔 ‘유바체프’로 읽었지만). ‘흐루시초프’나 ‘고르바초프’에서처럼. 그의 절친한 동료 베젠스키(A. Vvedensky)의 이름도 국역본의 하름스 연보에는 ‘알렉산더 브베젠스끼’라고 돼 있는데, “러시아 원음 발음에 가깝게 표기”한 것과는 좀 거리가 있다. ‘알렉산더’는 ‘러시아어 표기’가 아니라 ‘영어표기’이기 때문이다.
짐작에 역자는 영역본을 같이 참조한 것으로 보이는데(2-3종의 영역본이 나와 있으며, 단편들뿐만 아니라 드라마 <엘리자베타 밤>도 번역돼 있다), 참조 자체가 문제될 건 전혀 없지만 표기 자체를 영어식으로 대체한 것은 유감스럽다(77쪽에서 “알렉산더 1세, 2세, 3세”도 물론 “알렉산드르 1세, 2세, 3세”로 표기돼야 한다). ‘알렉산드르’를 ‘알렉산더’로 표기하는 식이라면, ‘표트르 대제’는 ‘피터 대제’가, ‘뻬쩨르부르그’는 ‘피터스버그’가 돼야 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역자의 ‘작품해설’에서 거명된 작가 ‘칼슨 맥큘러(Carson McCullers)’의 우리말 표기는 ‘카슨 맥컬러즈’이다(내 기억에 그렇게 소개됐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을 쓴 여성작가가 맞다면.
하름스와 베젠스키 두 사람은 1927년부터 1930년까지 레닌그라드(페테르부르크)에서 활동했던 문학그룹 ‘오베리우’의 리더들로서(화가 말레비치도 그들과 가까웠다), 이들이 활동한 1920년대 후반은 NEP(신경제정책)기를 통해 생산력을 회복한 소련이 스탈린의 주도하에 1928년부터 계획경제안을 수립하여 본격적인 중공업화를 추진하던 시기였다. 일국사회주의를 주창하여 반대파들을 제거하고 본격적으로 국가사회주의 건설에 나선 스탈린은 이 시기를 ‘대전환의 해’(1929년)라고 불렀다. 1917년 사회주의 혁명 이후 이미 10년이 지난 때였고, 혁명의 이상은 차츰 당면한 현실적 요구에 의해 대체되었다. 이에 발맞추어 시인-작가들은 ‘작가동맹’으로 조직화되었고, 이들은 건설적 ‘비판’ 대신에 사회건설에의 적극적 ‘동참’을 요구받았다. 소비에트 문학의 이념적 지도원리와 창작방법론으로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공식 선포되는 것은 1934년의 일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리얼한 예술’ 운운하며 현실과는 또 다른 예술적 ‘현실’을 제시하고자 했던 이 ‘블랙-유머’ 작가들에게 전혀 이롭지 않은 것이었고(국역본의 작품해설에서는 ‘오베리우’를 ‘현실주의 예술의 동맹’이라고 풀어주는데, ‘실재예술연합’ 정도가 어떨지 싶다. 이때 ‘실재(=리얼)’란 말은 라캉적 의미에서의 ‘실재’에 아주 가깝다. 이들의 주장은 예술 그 자체가 현실보다도 더 ‘리얼한 현실’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이들은 1930년대에 계속적으로 공개적인 비판과 정치적인 탄압을 받아오다가 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에 체포되어 숙청되었다. 베젠스키가 41년, 하름스가 42년, 이들이 주로 발표했던 (아동)문학잡지 <취슈(Chish)>와 <요슈(Esh)>의 편집장 N. 올레이니코프(1898-1937)는 37년에 각각 숙청되었다(최근에 작품집들이 나오고 있는 올레이니코프는 ‘소프트 하름스’로 불린다).
이후 문학사에서 지워졌던 이 두 사람의 작품들은 1960년대에 들어서 폴란드, 체코 등지의 문학잡지에 게재되었다. 1967년에는 에스토니아의 타르투대학에서 이들에 대한 발굴/연구가 진행되었고 1971년에는 <러시아의 잃어버린 부조리 문학>(코넬대출판부)란 제명으로 서방에 처음 알려졌다(G. 기비언(Gibian)이 편집했고, 원제는 <Russia's Lost Literature of the Absurd: A Literary Discovery>이다). 그럼에도 오베리우 그룹에 대한 문서들이 발굴되고, 이 두 작가의 작품들이 조국 러시아에서 본격적으로 출판되는 것은 1980년대 이후의 일이다(얼마 전 베젠스키 탄생 100주년 기념 논문집이 출간되기도 했지만, 이 그룹 멤버들 가운에 현재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작가는 단연 하름스이다. 내년은 그의 탄생 100주년이므로, 짐작에 각종 학술/출판행사들이 개최될 듯하다).
오베리우 작가로서 베젠스키와 함께 재발견된 이후 하름스의 문학세계는 몇 갈래의 관점에서 조명되어 왔다(박사학위논문을 포함해, 현재 영어권에서는 4-5종의 단행본 연구서가 출간돼 있으며, 러시아어로도 3-4종의 연구서가 나와 있다. 2001년에는 아내 마리나 두브노보의 <나의 남편, 다닐 하름스>란 회고록도 출간됐으며, 하름스의 삶과 작품세계를 소재로 한 연극 레퍼토리도 두어 종이 공연되고 있다. 그 중 하나를 봤었는데, ‘광대극 + 아동극’ 유형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엘리자베타 밤>은 공연되지 않고 있다).
먼저 첫번째로, 20세기 서구의 부조리문학과 관련하여 이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관점이 있다(신세대 하름스 연구의 선두주자인 토카료프가 하름스와 베케트를 비교하는 단행본 연구서를 갖고 있다). 이에 따르면, 비록 하름스가 처해 있었던 러시아적 맥락은 카프카나 베케트 같은 서구 부조리 작가들의 경우와 분명한 차이를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유럽의 부조리 문학사에 포함된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너무 넓은 시야에서 파악한 것인 만큼 일반론에 머무는 것이어서 하름스 문학의 러시아적인 특징을 제대로 지적해내지 못하는 단점을 갖는다.
두번째로, 러시아 문학의 전통과의 패러디적인 상호텍스트적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하고자 하는 관점이 있다. 이에 따르면, 하름스는 기존의 문학적 정전들에 대한 체계적인 ‘파괴’ ‘다시-쓰기’ 혹은 ‘탈정전화’를 통해 새로운 아방가르드 문학의 바탕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즉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내기 전에 먼저 기존의 것을 파괴해야만 했고, 이를 위해 그들이 사용한 무기가 문학적 패러디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하름스의 보다 많은 관심이 낡은 문학적 전통의 파괴보다는 새로운 ‘문학적 현실’의 제시에 두어졌다는 사실을 놓치게 된다.
세번째로, 하름스의 부조리문학적 성격을 선/악의 본질에 대한 탐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 있다. 말하자면, 종교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경우 하름스에게서 두드러지는 웃음과 공포의 동시적인 제시를 러시아 문학에서 특징적인 도덕적 풍자의 전통(특히, 고골적인 전통) 속에 자리잡게 해주고, 이들의 부조리성이 가지는 본질적으로 윤리적인 관심을 강조함으로써 1930년대 레닌그라드의 정치적, 문학적 현실과 문학텍스트와의 교직 관계를 짚어볼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다.
네번째로, 1930년대 소비에트의 도시적 속물주의 세계관과 삶, 언어에 대한 패러디에 국한되지 않는, 보다 복잡한 예술적 기획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 이에 따르면, 특히 하름스의 블랙-유머는 “모든 것이 허용되는” 도스토예프스키적 세계를 그려보고자 한 것이 된다. 그럴 경우 선과 악, 미와 추, 일상과 기적, 삶과 죽음 사이의 구분이 무화되고, 인과율은 우연으로 대체되며 모든 감정과 의미는 증발해버리는, 말 그대로 부조리한 세계가 연출된다. 그리고 이것은 시대적 문맥에서 볼 때, 새로운 소비에트 현실과 ‘새로운 소비에트 인간’ 창조에 대한 환멸을 표시하는 것이 된다. 여기서도 하름스적인 부조리의 윤리성이 강조된다.
마지막으로는 바흐친의 카니발적 세계관이나 리하초프의 반( 反)세계적(=뒤집힌 세계) 세계관의 표현으로 하름스를 이해해 보고자 하는 관점이 있다. 이에 따르면, 중세 러시아의 바보-성자적 전통과 오베리우 부조리가 공유하고 있는 것은 표면적인 희극성이나 부조리성 밑에 깔려 있는 윤리적 차원이다. 이러한 윤리적 차원을 읽어내지 못할 때 관객이나 독자는 그 표면적 부조리성과 무의미에 그냥 웃고 말겠지만, 만약에 그것을 읽게 되다면 눈물을 지을 것이다(부조리문학은 ‘말장난’의 문학이 아니다. 거기서 윤리적 차원을 놓치게 되면, 부조리문학을 ‘비윤리적으로’ 읽는 것이 된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만 하더라도 데리다가 말하는 ‘종교 없는 종교’ 혹은 ‘종교 없는 메시아주의’의 탁월한 사례를 제시하지 않는가?).
이상에서 요약한 몇 가지 관점은 하름스 문학세계의 부조리적 성격을 공통적으로 지적하면서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맥락으로 각각 서구 부조리 문학, 문학적 패러디, 종교적/윤리적 성격, 소비에트 현실, 카니발적/반-세계적 세계관 등을 내세우고 있다. 이 자리에서 내가 거기에 더 보태고 싶은 것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적인 관점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보여주는 세계상은 우리의 일상적인 유클리드 기하학적 세계상에 비추어볼 때, 그것이 일그러진 거울, 깨진 거울에 반영/굴절된 ‘이상한’ 세계상이다. 그런데 바로 이 ‘이상한’ 세계상이 흔히 넌센스의 세계로 지목되는 하름스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우리의 판단인 것이다.
이 경우 우리가 따르게 될 논리는 타문화 사람들의 풍속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인류학자들의 작업과도 유사해 보인다. 가령 인도의 힌두교 신자들은 송아지를 신성시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미소의 젖이 부족할 경우, 밭을 가는 일이 없기 때문에 수송아지는 굶어 죽게 하는 것으로 통계가 나와 있지만, 정작 자신들은 그러한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다(당사자/내부자 관점만을 고려하는 연구의 한계가 거기에 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당사자의 관점(=emic적 방법)과 관찰자적 관점(=etic적 방법)을 잘 병행하는 것이다. 힌두교의 <성스러운 암소>의 경우는 조작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 4개의 객관적 영역이 있을 수 있다(마빈 해리스의 <문화유물론> 참조).
1. 에믹적/행위적: 굶어 죽는 송아지는 없다
2. 에틱적/행위적: 수송아지는 굶어 죽는다.
3. 에믹적/정신적: 모든 송아지는 살 권리가 있다.
4. 에틱적/정신적: 젖이 부족할 때는 수송아지를 굶어 죽게 한다.
문학텍스트에서 우리에게 보고되거나 드러나는 것은 1과 2뿐이다. 3과 4에 대한 지식과 통찰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굶어 죽는 송아지는 없다”와 “수송아지는 굶어 죽는다”처럼 서로 모순되는 데이터만을 가지고 판단해야 하며 이것은 우리에게 부조리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부조리극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표면적인 불일치와 모순 뒤에 가려진 숨겨진 진실에 접근할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부조리극을 ‘조리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바로 그러한 여건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적 통찰이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게 나의 판단이다.
그럼 이제, 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한 ‘이교적 세계관’으로서의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갖고 있는 몇 가지 특징이 부조리극 일반, 특히 이 러시아 오베리우의 대표주자인 하름스의 작품세계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엘리자베타 밤>을 다시 읽으면서 탐색해 보기로 하자(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전 글 <도스토예프스키의 기하학과 부조리극의 기하학> 참조).
흔히 부조리극의 세계는 넌센스(=비상식)의 세계라고 말해진다. 부조리극을 구성/장식하고 있는 것은 여러 층위에서 넌센스적 불일치이고 부조화이다. 이때 넌센스란 말이 상식적인 의미 이전/이후란 뜻이다. 그것은 상식적인 의미에 못 미치거나 그것을 넘어선다(이것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보다 크거나 작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이해되지 않는다. 아니 이해를 초월한다. “기하학을 초월하는 것은 모두 우리들의 이해를 초월한다”고 파스칼이 말할 때, 그가 생각하는 기하학은 유클리드 기하학이다. 이때의 기하학은 모든 학문의 모델로서의 기하학이다. 하지만 이제 주장하게 될 비유클리드적 공간으로서의 부조리극은 바로 그러한 학문적/개념적 이해-지배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이며 탈주이다. 그것은 데리다의 어법을 빌려 말하자면, ‘불가능성의 경험’(the experience of the impossibility)이 될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의미에 대한 저항이다. 기호나 담론의 의미라는 것은 그것을 구성하는 기표와 기의가 어떤 언어체계나 규칙에 근거하여 등을 맞대고 결합할 때 생성된다. 해서 움베르토 에코는 그래서 기호란 말 보다는 기호-기능이란 말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주장한다(Properly speaking there are not signs, but only ‘sign-functions’). 이때 이들의 결합을 주선하는 언어체계나 규칙이란 것은 자연언어의 그것이면서 동시에 문화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다. 부조리극의 작가는 거기에 대항하여 자신만의 언어체계나 규칙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사람이다(물론 여기에 먼저 전제되는 것은 세계의 부조리에 대한 ‘감수성’이다). 즉 그는 개인적 방언의 창조자이면서 자신의 상상적 세계의 유일한 입법자이다.
그런데, 오베리우 작가인 하름스는 그러한 개인적 창조와 자율적 입법에 대한 권리가, 점차 강화되어 가던 소비에트의 국가사회주의의 단일한 이데올로기(스탈린이즘)에 의해 차단되고 압류되던 불운한 시기에 작품활동을 해야 했다. 기하학적 은유를 끌어오자면, 그것은 “직선 L과 L 위에 있지 않은 점 P에 대해서, P를 지나고 L과 평행한 직선은 단 하나 존재한다.”로 표현될 수 있는 세계이다. 이것은 흔히 상식의 세계라고도 한다. 때문에 상식에 대한, 자연언어와 일상세계에 대한 이들의 저항은 상징적으로 反-이데올로기적인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그들이 소비에트 사회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먼저 그들이 예술적 강령으로 내세운 <오베리우 선언서>(1928)의 한 구절을 읽어보기로 하자.
우리 공연에 오면서, 다른 극장들에서 보고 익숙해진 모든 것들은 잊어버리십시오. 여러분에게는 혹 많은 것들이 어리석은 넌센스로 느껴질지 모릅니다. 우리도 드라마적인 플롯을 가지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처음에 평범하게 진행되다가, 전혀 무관한 듯 보이면서 분명 넌센스적인 계기들에 의해 방해를 받습니다. 여러분은 놀라실 겁니다. 곧 일상적인 삶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논리적 합법칙성을 여러분은 찾고자 할 테지요. 하지만 여기엔 그런 것이 없다구요? 왜입니까? 왜냐하면, 삶에서 일단 무대로 옮겨진 사물(오브제)과 현상(현실)은 자신의 일상적인 ‘삶’의 법칙성을 잃고서 그것과는 전혀 다른 법칙성, 즉 극장(무대)의 법칙성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우리로선 설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런 종류의 무대 공연의 법칙성을 이해하려면, 다른 수가 없습니다, 직접 와서 보아야만 합니다.
이 구절은 연극 공연에 대한 오베리우 선언의 핵심에 속하는데, 여기서 대립되고 있는 것은 일상적 삶의 논리/법칙과 극장의 논리/법칙이다(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새로운 ‘규칙’이고 ‘법’이다. 나는 요즘 데리다의 <법의 힘>을 읽고 있는데, ‘법’에 대한 글은 조만간 따로 쓸 계획이다). 일상생활에서 친숙한 사물이나 현상은 무대로 옮겨지면서 변화되고 새로운 극장적/무대적 질서로 편입된다. 그리하여 새로운 (무)의미를 창출하며, 전혀 다른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오베리우 선언서에서 이에 대한 예시로 들고 있는 것은, 무대에서 배우가 갑자기 네 발로 기면서 늑대처럼 울부짖는다든가, 러시아 농민이 갑자기 라틴어로 일장연설을 한다든가 등이다. 이런 돌발적인 불일치/부조화와 넌센스가 오베리우트들이 보기에 ‘극장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대적 무질서나 혼란이 권장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도 분명 어떤 법칙성과 논리성이 주어진다. 그러나 그것을 (로고스적인) 말로써는 표현할 수 없다. 그렇게 때문에 직접 와서 보아야만 한다. 이것이 오베리우트들의 주장이다. 여기서 일상적 삶의 논리와 극장의 논리 사이의 관계, 상식/비상식의 관계를 유클리드 기하학와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관계로 대치시켜 보면, 이해는 보다 용이해진다. 우리가 일상적인 삶에서 익숙하게 찾을 수 있는 논리적 합법칙성이란 것은 바로 유클리드 기하학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곱슬머리를 다리미로 펴는 것처럼 모든 굴곡을 지우고 평면화하여 사고하는 것인데, 그것이 우리에겐 편리하고 익숙하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어떤 일은 하는가? 사물들의 형태들에서 표면들을 고르면서, 예컨대 선들 가운데 직선을, 그리고 표면들 가운데 평평한 표면을 특별히 우선적으로 취급한다. 반면에 전체적으로 혹은 부분적인 곳에서 굽은 표면들은 여러 가지 실천적 관심에서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평면들을 만들어내고 이 평면들을 완성하는 것, 매끄럽게 마무리짓는 것이 항상 우리의 역할이다(후설, <기하학의 기원> 참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클리드 기하학이 세계를 자신의 대상으로 전유하기 위해서 세계를 평면화, 평탄화하면서 모든 굴곡을 배제한다는 점이다(나는 주름/굴곡에 대한 들뢰즈의 관심이 이런 문제의식에 닿아있는 걸로 이해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에서 유클리드 기하학이 제시하는 세계상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며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다. 그것은 세계를 제작하는 적어도 세 가지의 논리적이고 정합적인 방식 가운데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조리극을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대항/비판으로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것이 대항/비판하는 것은 자신만을 유일한 이성이라고 고집하는 ‘특정한/특이한 이성’이기 때문이다. 부조리극은 자신의 또 다른 논리/이성으로 그러한 대항/비판을 실천한다(무의미는 비논리가 아니라 ‘다른 논리’에 의해서 구축된다).
따라서 자신의 이러한 문화적 성격,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을 숨기고 자신을 자연적인 것으로 내보이면서 유일한 세계-버전으로 주장할 때 그것은 일종의 ‘신화’가 되어버린다(이것이 신화에 대한 바르트의 정의이다). 그것은 “직선 L과 L 위에 있지 않은 점 P에 대해서, P를 지나고 L과 평행한 직선은 단 하나 존재한다.”는 평행공준에 기초한 유일신(일신론)의 신화이며, 이 세계와 작품에 대한 유일하게 올바른 한 가지 해석/이해가 존재한다는 단의성(單義性)의 신화이다(이 단의성의 신화에 대한 비판으로는 페터 지마의 <문학텍스트의 사회학을 위하여> 참조).
우리가 일상적인 생활에서 비록 유클리드 기하학에 많은 것을 의존한다고 해서 오직 그것만을 세계상의 유일한 준거로 믿는다면, 우리는 파시즘으로부터, 스탈린이즘으로부터 그리 먼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물론 지젝은 ‘더 나쁜’ 파시즘과 ‘덜 나쁜’ 스탈린이즘을 구별하는데, 내 생각에 그러한 구별은 ‘윤리적인 판단’이 아닌 ‘정치적 판단’에 근거한다. 이 두 가지 판단에 대해서는 <윤리적 판단과 정치적 판단>이란 통신문 참조). 참고로, 20세기의 대표적인 맑시스트 문예이론가인 루카치는 하우저와의 대담(1969년)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서구에서는 요사이 제 견해로는 공허하기 이를 데 없는 구호인 <다원론주의>라는 것이 대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동일한 문제를 두고 여러 개의 진리가 있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라는 것은 언제나 오로지 단수 속에만 있습니다.” 이것을 유클리드적 이성만을 고집하는 이론가의 아주 ‘정직한’ 고백으로 읽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 하우저는 이렇게 응수했다: “적어도 단일한 이데올로기 내에서는 그렇지요.”(반성완 편역, <변증법적 미학에 이르는 길> 참조)
오베리우 작가들이 그들의 선언서에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구분해내고자 하는 일상의 논리/극장의 논리는 바로 그러한 정치적 입장까지 함축하는 것으로 우리는 읽고 싶다. 부조리 작가는 정치적으로 ‘다원주의자’이다. N. 굿맨은 그 다원주의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다원주의자란 反과학적인 태도와는 거리가 멀며, 과학을 온전하게 수용한다. 그가 반대하는 것은 전횡적인 유물론자 혹은 물리주의자이다. 물리주의자는 한 가지 시스템, 가령 물리학이 가장 탁월하며 모든 걸 포괄하기에 여타의 버전들(=세계제작의 방식들)은 그 물리학으로 환원되거나, 혹은 무의미한/틀린 것으로 거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The pluralist, far from being anti-scientific, accepts the sciences at full value. His typical adversary is the monopolistic materialist or physicalist who maintains that one system, physics, is preeminent and all-inclusive, such that every other version must eventually be reduced to it or rejected as false or meaningless.)(<Ways of Worldmaking> 참조)
오베리우 작가들을 좇아서 분류하자면, 연극에서 우리는 세 종류의 버전을 가질 수 있다. 첫째로 연극이 그리거나 굴절시키고자 하는 바깥 현실세계, 즉 일상적인 세계가 있다. 그것을 Wo라고 하자. 둘째로 연극 공연의 드라마적 플롯의 세계가 있다. 그것을 Wd라고 하자. 마지막으로 오베리우 극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연극의 무대적인 플롯의 세계가 있다. 그것을 Wt라고 하자. 기존 연극에서는 Wt가 Wd에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은 다만 Wo와 Wd의 관계, 즉 현실에 대한 모방(=미메시스)의 관계였다. 그러나 오베리우 부조리극에서 Wd는 Wt의 굴곡 안에 포개넣어져 있다. 즉 그것은 직접적으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선언서의 한 구절을 더 읽어보자.
드라마적 플롯은 무관한 듯 보이는 테마들에 의해 분산됩니다. 이 테마들은 극의 각 대상들을 다른 나머지들로부터 분리시켜서 전혀 동떨어진 어떤 덩어리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래서 드라마적 플롯은 관객의 눈앞에 어떤 명백한 플롯적 형상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다만 행위의 등뒤에 숨어 희미하게 반짝거릴 따름입니다. 그것을 대신하여 등장하는 것이 무대적 플롯인 바, 그것은 우리 공연의 모든 볼거리적 요소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된 관심은 바로 여기에 있지요.
사정이 이렇다면, 오베리우 부조리극에서 Wo와 관계하는 것,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은 Wd가 아니라 Wt이다. Wd는 극장/무대라는 공간에 투사/반영되는 Wo를 말한다. 따라서 그것은 어느 정도 Wo의 논리에 잡아당겨지며 환원된다. 이 둘의 관계가 사실적이냐 상징적이냐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Wt는 다르다. 그것은 현실의 공간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무대적 공간이고 상상적 공간이다. 여기에서는 Wo의 논리가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즉 그것은 비유컨대 자체의 고유한 곡률을 가진 또 다른 세계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Wo의 세계를 뒷받침하는 유클리드 기하학(곡률=0)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이 유클리드적 입장에서 보자면 비유클리드적인 Wt의 세계는 현실을 더 이상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굴절시켜버린 왜곡된 세계이다. 그래서 반-세계이고, 비-세계이다. 그것을 반듯하게 펴놓고자 하는, 평평하게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그 ‘이상한’ 세계의 굴곡과 만나게 되는 경험이 바로 불일치, 부조리의 경험이다.
반면에 Wt의 비유클리드적 입장에서 오히려 더 왜곡돼 보이는 세계는 Wo의 세계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보이던 Wo의 세계가 갑자기 이상해지고 낯설어진다. 대낮에 팬티도 안 걸친 기괴한 세계로 보이는 것이다(하름스의 친구였던 드루스킨에 따르면, 하름스는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 나오는 어린이를 닮았었다). 이러한 사실이 전제된다면, 이제 오베리우트들이 자신들의 선언적 강령을 직접 뒷받침하기 위해 내세웠던 하름스의 <엘리자베타 밤>를 읽어보기로 한다. 이 작품에서 Wo로 쉽게 환원되지 않는 Wt를 따라가면서, 그 속에 포개져 있는 Wd를 어느 정도 재구성해 보기로 하자. 이 ‘고도로 복잡한 텍스트’에 대한 ‘한 가지 읽기’에 동원되는 것은 모든 공간의 곡률=0의 세계로 규정하고 오직 평면만을 따라가는, 일상적인 유클리드적 이성이 아니라, 뒤집어진, 전도된 세계상 속에서 넌센스적인 논리를 찾아내는 비유클리드적인 이성이다. 그것이 은유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04. 12. 13.
P.S.1. 이후로도 거의 20쪽 분량이 더 남아있는바 분량상 여기서 끊는다(문득 이건 너무 ‘장황한’ 소개가 아닌가란 회의도 들고). 다만, 보다 ‘총체적인’ 하름스의 모습을 그려보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그의 대표적인 드라마 <엘리자베타 밤>의 얘기를 꺼낸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얘기는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그 ‘다음’이 언제가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나는 모든 걸 써놓았으며 지금 당장에 그걸 다 옮겨올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제목의 ‘리자, 리자베타, 엘리자베타 밤’은 언젠가 내가 쓰고자 하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하름스’론의 제목이다. ‘리자베타’의 영어식 이름이 ‘엘리자베스’이며, ‘엘리자베스’의 러시아식 이름이 ‘엘리자베타’이다. 해서 리자베타와 엘리자베타는 같은 이름이며, 리자는 리자베타/엘리자베타의 애칭이다. 그리고 이 ‘리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 아주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다. <법의 힘>(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된 ‘벤야민의 이름’이라는 데리다의 글을 패러디하자면, 내가 관심있는 것은 ‘리자베타의 이름’이다. 리자베타는 물론 <죄와 벌>에서 얼떨결에 언니와 함께 라스콜리니코프의 도끼에 맞아 죽는, 전당포 노파의 불쌍한 동생이다. ‘엘리자베타 밤’에서의 밤의 러시아어 표기는 ‘Бам’인데, 이것의 영어표기는 ‘Bam’이고, 이것은 형태적으로 러시아어 ‘Вам’(발음은 ‘Vam’)과 유사하다. 그리고, 이 ‘Вам’은 ‘당신에게’(To you)란 뜻이다. 그렇다면, 제목의 ‘엘리자베타 밤’은 여주인공의 이름이면서 ‘엘리자베타를 당신에게 (넘긴다/바친다)’란 뜻을 갖는다.
이때 ‘당신’은 물론 대타자(the Other)로서의 소비에트 권력이며, 작품에서 그것은 바퀴벌레로 의인화된다. 러시아어로 ‘바퀴벌레’는 ‘따라깐’인데, 작품에서 ‘따라까노비치’로 의인화되는 것. 결말 부분에 가면, 이 “따라깐 따라까노비치가 붉은 깃이 달린 셔츠를 입고 손에는 도끼를 들고 앉아 있네.”라고 언급된다. 그러므로 대타자로서의 따라까노비치(=바퀴벌레)는 ‘죽음’이기도 한 것(오, 무서운 바퀴벌레들이여!).
P.S.2. “언덕 위의 집에는 이미 불이 켜져 있네. 쥐들은 자꾸 수염을 움직거리고 있지. 난로 옆에는 따라깐 따라까노비치가 붉은 깃이 달린 셔츠를 입고 손에는 도끼를 들고 앉아 있네.”라는 게 <엘리자베타 밤>에 나오는 대사의 한 구절인데, 이곳 모스크바대학의 기숙사에서 더 골치를 썩이는 건 바퀴벌레가 아니라 쥐이다(아주 작은 생쥐이다). 간혹 눈에 띄는 바퀴벌레는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않지만, 생쥐일 경우에는 사정이 좀 다르다. 민감해지는 것이다. 룸메이트와 나는 지난 여름 이후에 이제까지 3마리의 쥐를 잡았는데(겁 많은 룸메이트 대신에 주로 내가 잡는다. 그리고는 변기에 버린다. 이 얘기를 들으면 다들 좀 언짢아 하던데, 그럼 그걸 들고 나가서 땅에 묻어줘야 한단 말인가?), 최근에 또 한 마리가 왔다갔다 한다고. 한동안 룸메이트는 쥐가 합판을 갉아대는 소리에 노이로제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다(나도 하룻밤 정도를 설친 적이 있다). 스탈린 시대, ‘따라까노비치’와 함께 했던 시절의 삶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최근에 읽은 한 역사학 논문은 이 시기에 대해서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사실 스탈린의 독재와 테러가 국가와 공산당에 가져다 준 피해는 엄청난 것이었다. 우선 스탈린 시대, 특히 1930년대의 테러는 일반 시민들뿐만 아니라,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수많은 공산당 당원과 국가 관리들에게도 엄청난 타격이었다. 예컨대, 흐루시초프의 연설문에 따르면, ‘17차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당 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 139명 중 98명, 즉 70%가 (주로 1937-38년에) 체포되어 총살당했으며(*니키타 미할코프의 <위선의 태양>(1994)은 이 시기에 대한 영화적 증언이다)… 표결권과 심의권을 지닌 [17차] 전당대회 대의원 1,966명 중 절반이 훨씬 넘는 1,108명이 반혁명 범죄로 고발되어 체포되었다.’ 이런 상황은 하위 기관들이나 지방의 경우에도 비슷하였다. 모스크바 시(市) 당위원회와 모스크바 주(州) 당위원회에서 1935-37년에 근무했던 서기 38명 중 35명, 시 또는 구 당위원회 서기 146명 중 136명, 그리고 수많은 국가기관, 노동조합, 경제계, 과학 및 문화계의 지도적인 인사들이 체포되었다.”(그러니까 하름스의 체포/죽음도 예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스탈린이즘보다도 ‘더 나쁜’ 파시즘이란 대체 얼마나 악독한 체제일까? 파시즘적 자본주의 세계체제?!)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긴 하지만, 대략 스탈린 시대에 처형되거나 감옥에서 죽은 이들의 숫자는 2,000-2,5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체포된 사람은 4,000만 명 가량). 이런 식의 ‘공포정치’로 형성된 ‘스탈린 체제’ 덕분에, 당시 소련이 높은 경제성장률을 계속 유지하면서 “가장 후진적인 문맹자들의 농업국가에서 국민 다수가 문맹에서 벗어난 도시 중심의 산업국가로 완전히 변모”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아직도 일부에서는 스탈린에 대한 ‘향수’를 떠올리기도 한다. 한편으로 우리의 박정희 시대는 소프트 버전의 스탈린 체제였다). 하지만, 이러한 체제의 가장 큰 문제는 “국가와 당의 기간요원들이 느꼈던 신분의 불안정”이었고, “이미 상당한 규모로 팽창되었던 공산당, 행정부, 군부, 경제계 등의 관료계층은 신분 안전과 업무 자율성이 어느 정도 보장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스탈린 사후에 형성된 것이 (안정적인/특권적인) 거대 관료조직이다(이후에 ‘노멘클라투라’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그러니까, “스탈린 시대에서 포스트-스탈린 시대로의 이행”은 (라캉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주인-담론에서 대학-담론으로의 이행”에 대응한다(“라캉의 관심은 현대 사회에서 헤게모니적 담론이 주인-담론에서 대학-담론으로 이행한다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이라크>, 171쪽). 서구의 경우 그러한 이행이 표시되는 지점이 1968년 혁명이었다면, 소련의 경우에는 이보다 앞선 1956년 제20차 공산당 전당대회(2월 14일-25일)에서의 흐루시초프의 反스탈린 비밀연설이었다.
지젝은 <이라크>(도서출판b)에서 이 연설을 ‘본래적인 정치적 행위’의 사례로 들고 있기도 하다(물론 ‘비민주적인 형식’의 것이긴 하지만). “본래적인 정치적 행위는, 그것의 형식과 관련해서, 민주적인 것과 동시에 비민주적인 것일 수 있다… 다른 한편 대중적 의지의 본래적 행위는 폭력적 혁명이나 진보적 군부 독재 등의 형식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스탈린의 범죄를 비난하는 흐루시초프(*국역본에서는 본문과 색인에서 ‘Khrushchev’가 ‘후르시초프’로 표기돼 있는데, 오기이다)의 1956년의 연설은 진정한 정치적 행위였다…”(116-7쪽)
앞에서 언급한 논문에는 <해빙>의 작가 일리야 에렌부르그의 회고가 인용돼 있는데, 그에 따르면 “2월 25일 비공개회의에서 흐루시초프가 보고할 때, 몇몇 대의원들은 실신했다... 그 보고문을 읽으면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정말 이것을 복권된 사람이 친구들 사이에서 말한 것이 아니라, 중앙위원회 제1 서기(=흐루시초프)가 전당대회에서 말했단 말인가. 1956년 2월 25일은 나에게, 그리고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에게 위대한 날이 되었다.” 해서 러시아의 1956년은 프랑스에서의 1968년에 값한다. 물론 이 ‘연설’의 효과가 문학에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것은 몇 년이 지난 후이다. 수용소에서 돌아온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발표되는 것이 1962년이니까(우리의 경우 4.19와 최인훈의 <광장> 간의 관계가 여기에 대응할 것이다. 한편 우리는 ‘1987년 체제’에 대응하는 문학을 갖고 있는가? 혹은 그에 대응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얼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지젝을 조금 더 따라가본다: “이 대담한 조치의 기회주의적 동기들은 뻔한 것이지만(*이 연설을 계기로 흐루시초프는 당권을 장악한다), 여기엔 분명 단순한 계산 이상의 것이 있었으며, 전략적 추론에 의해 설명될 수 없는 일종의 무모한 과잉이 있었다. 이 연설 이후에 사태는 다시는 전과 같지 않았으며, 지도자의 무오류성이라는 근본적 도그마는 침식되었고 따라서 연설에 대한 반응으로서 노멘클라투라 전체가 잠시 마비 상태에 빠진 것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117쪽)
이러한 지젝의 지적/판단은 옳은 것이다. 다만, 그가 사용한 ‘노멜클라투라’란 말에 대해서 나는 유보적이다. 스탈린의 최측근들조차도 그가 신임하는 동안에만 생존할 수 있었던 시대에 (안정적인) ‘사회계급’으로서의 ‘노멘클라투라’라는 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소련에 노멘클라투라가 사회계급으로 부상하는 것은 흐루시초프 이후에 들어선 브레즈네프 시대에 와서이다. 따라서 표면적으론 ‘소프트 스탈린’ 시대처럼 보이지만, 브레즈네프의 시대는 주인-담론의 시대(=스탈린 시대)가 아니라 대학-담론의 시대이다. 이 ‘대학-담론(University Discourse)’을 소련의 상황에 맞는 보다 적절한 용어로 바꾸자면, ‘관료-담론(Bureaucracy Discourse)’이 될 것이다.
이 관료-담론 시대의 (유토피아적)최대치는 79년에 만들어진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에 반영돼 있다(최근 원작 소설이 다시 출간됐다). 소련의 ‘유토피아’는 그 영화 속에 있(었)다(냉전시대였던 1970년대가 소련식 현실사회주의 체제의 ‘유금세월’이자 ‘화양연화’였다. 그 시절의 종말이 다들 브레즈네프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증언하는 ‘아프칸 침공’이다(덕분에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서방측에 보이콧됐다. 그리고 이 전쟁의 와중에 브레즈네프는 사망한다). 그러니, 소련보다 한술 더 떠서 아프칸에 이어 이라크에 침공한 미국의 패권 또한 (징후적으로) 사양길에 들어선 것은 아닐까? 적어도 ‘역사’는 그렇게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진리는 황제보다 강하다”란 푸슈킨의 유언을 비틀어서 말하자면, “역사는 패권보다 강하다.”
흐루시초프의 정치적 제스처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1980년대 중반의 고르바초프이며, 그의 페레스트로이카이다(페레스트로이카의 문학적 상관물이 요즘 TV시리즈로 방영되면서 다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리바코프의 <아르바트의 아이들>이다. 전체 3부작 가운데, 1부가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 아니, 2부도 번역돼 있다). 나중에 고르바초프 자신이 고백한 바이기도 하지만, 브레즈네프 시대의 부정적 유산을 물려받은 그에게 소련의 가장 큰 적은 미국이 아니라 (거대)관료체제였다. 그는 (흐루시초프와 마찬가지로) 직접적으로 인민대중과 상대하면서 관료주의를 타파해나가려고 하지만, 그러한 ‘이상주의’는 흐루시초프 때와 마찬가지로 ‘조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실패와 함께 ‘소련의 역사’는 종말을 맞았고. 고르바초프를 대신하여 들어선 1990년대 옐친 시대를 상징하는 단어는 ‘과두지배’를 뜻하는 ‘올리가르흐’(복수형은 ‘올리가르히’)이다.
현재 러시아를 지배하는 계급은 민영화(자본주의화) 과정에서 막대한 이윤과 부를 챙긴, 과거 노멘클라투라의 새로운 버전으로서의 올리가르흐이다(같은 제목이 영화도 만들어졌었다. 옐친 시대의 최대 갑부였던 ‘베레조프스키’를 모델로 한). 옐친 시대의 부정적 유산을 물려받은 현 푸틴 정부 최대의 정치적 과제는 (테러와의 전쟁이 아니라) 신흥 노멘클라투라로서의 올리가르흐를 개혁하는 것인바(그는 석유재벌이자 러시아 최대 갑부 호도로프스키를 감옥에 집어넣었고, 영국으로 도망간 베레조프스키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최근에 그가 지방 자치주 지사를 직접선거에 의한 선출에서 대통령 임명제로 바꾼 것도 나는 그러한 방향에서 이해한다(이건 물론 ‘민주주의의 후퇴’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민주적 직접선거에 의해서 선출되는 지사들의 대부분은 지역 마피아였다).
요컨대, 푸틴은 일관되게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잡고 있는데(한국사 패러다임으로 얘기하자면, 왕권(王權)이냐 신권(臣權)이냐), 문제는 그 궁극적인 지향점/회귀점이 스탈린이냐, 브레즈네프냐 하는 점이다. 하지만, 나는 임명제 대통령으로서 푸틴이 (‘주인-서기장’이었던 스탈린의 경우에서처럼) ‘주인-대통령’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물론 부정적인 전망만이 있는 건 아니다. 전임자들과는 다르게 푸틴 정부에는 (원유 수출로 챙기고 있는) 막대한 자금력이 있으니까(현재 러시아의 외환 보유액은 1,000억 달러가 넘는다). 과연 ‘좋은 나라’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푸틴에겐 4년 4개월이 남았다.
P.S.3. 정치학이 전공은 아니지만, 내가 이해하는 바대로의 소련정치약사(略史)를 늘어놓았다. 다닐 하름스 읽기는 나에게 그러한 상념들을 불러일으킨다. 그를 읽는 일은 단순하게 ‘한 러시아 작가’, ‘한 부조리 작가’ 읽기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그건 ‘모든 걸’ 읽는 것이다. 때문에, 자신의 ‘생애’를 걸지 않는 읽기를 나는 기본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모든 것은 모든 것으로 읽어야 한다). 나는 ‘재미’를 신뢰하지 않는다. (파스테르나크의 말대로) 삶은 그저 들을 지나는 것이 아니다. 삶은 누워서 떡 먹기가 아니며 식은 죽 먹기가 아니다. 삶은 어렵다. 제대로 살기 어렵거니와 그냥 먹고 살기도 정말 어렵다(하름스는 굶어 죽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눈물 난다. 하지만,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고 하니까 내가 눈물 난다고 해봐야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책이나 읽는다. 혹은 책만 읽는다.
이런 걸 읽는다: “지금 나는 졸리지만 자지 않을 것이다. 나는 종이와 펜을 가지고 이야기를 쓸 것이다. 나는 내 안에서 어머어마한 힘을 느낀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어제 이미 다 생각해놓았다. 이것은 기적을 행하는 자(miracle-maker)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는 우리 시대에 살면서 아무런 기적도 행하지 않는다(*국역본의 문장을 약간 고쳤다). 그는 자신이 기적을 행하는 자이며, 어떤 기적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를 아파트에서 쫓아낸다. 손가락 하나만 흔들면, 그 아파트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대신 아파트에서 고분고분 떠나 교외에 있는 헛간에서 지낸다. 그는 이 낡은 헛간을 아름다운 벽돌집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계속 헛간에서 살다가, 평생 동안 단 한번의 기적도 행하지 않은 채 그렇게 생을 마감한다.”(<집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75쪽)
<노파>의 한 대목인바, 하름스는 이렇듯 ‘모든 것’에 대해서 쓴다. 그러니 우리도 이런 걸 읽을 때는 ‘모든 것’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어떤 기적도 행할 수 있었던 하름스였지만, 그는 그냥 굶어 죽었다. 기적을 행하는 자가 평생 동안 단 한번의 기적도 행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한 것처럼. 우리는 못하는 게 아니다. 다만 하고 싶지 않을 따름이고, 안 할 따름이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며 기적을 베풀어 그들을 구제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하고 싶지만 못하는 게 아니다. 할 수 있지만 안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을 따름이다. 젠장, 그래서 눈물 난다. 세상은 눈물의 바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