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삼성당 문고판으로 나온 한국 단편
문학집이 당시 학생들 사이에 잘팔렸던 적이 있다.
나도 그 단편집들을 사서 들고 다니면서 보곤하였다.
손바닥 만한 크기에 값도 저렴하고하여 당시, 문학
이외의 달리 재미를 추구할 것이 없었던 학생들에게
인기였다. 문화적 풍토로 보건데 그 문고판은
당시 학생들에게 밥상 위의 감자정도의 역활을 하는
문화적 양식 이었던 것으로 추억된다.
그 중 재미있게 읽었던 책중에 김동인의 단편집
이었으며 지금도 생각나는 책제목이 감자/배따라기
이다. 감자를 읽다가 보며는 감자라는 것이 김동인이
소설의 배경으로 하고 있는 당시 시절에 얼마나
중요한 먹거리인지가 읽혀진다. 소설속의 감자는 생명
인 것이다.
요새 대학상들은 연탄이 무엇인지? 조개탄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얼추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특히나
감자가 생명일 수 있는 정서에 대하여는 대다수 학생들이
잘 모를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고
거기서 어린시절을 보내다 그 후에도 방학이면 자주 산골
마을에서 보내야 했던 나로서는 감자가 의미하는 바를 안다.
내 어린 시절 강원도 할버지 집 동네는 부자집이 아니면
주로 감자나 강냉이가 주식으로 많이 사용되었었고 내가
태어났던 경북 예천군 백전동은 읍에서 두시간이나 걸어
들어가야 하는 산중턱 마을이였으므로 밥을 하면 밥보다
감자가 더 많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였다.
일명 감자밥이라 하는 것인데, 쌀이나 곡류가 적었던
산골마을이니 만치 보리나, 쌀등을 아끼기 위하여 밥을
할때 감자를 같이 넣어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문제는
감자를 워낙 많이 넣고 쌀을 조금 넣으니 항상 감자에 밥풀이
묻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였는데 특히나 어머님이 밥을
푸실때 아버지에게 주는 밥그릇에는 밥을 많이 넣어서 푸고
유독히 내가 먹는 밥에만 감자만 수두룩히 골라서 주는것 처럼
느껴졌다. 생각해보라.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삼시 세끼를 감자만
그렇게 주야장창으로 먹어야 하는...
그나마 씨감자 외에는 먹을 것이 남지 않은 보리고개 흉년에는
누렇게 떠서 죽어 나가는 사람이 지천이였으니 엄니 입버릇
처럼 하는말인즉 그나마 이렇게 살아 있으니 다행인줄 알라고
말씀하신다. 나도 그 말에는 동감 한다.
장마철 비가 쏟아져 내리는 새벽 시간에 태어난 내가 태어나는
그 날 새벽 하필 산사태가 나고 말았으니 몸푼지 채 한 시간도
안된 산모인 엄니와 눈도 못뜬 핏덩이인 나는 산사태를
피하여 비를 맞으며 옆 집으로 피해가는 사태를 맞이
하였으니 그야말로 태어나자 마자부터 고난의 시작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였는지 어쩐 이유인지 모르지만 이유식이니
분유니 뭐 그런것 하고는 전혀 인연이 없는 20가구 남짓한
산골에서 산모의 젖조차 나오지 않았다. 어쩌것는가?
애새끼 살릴려면 동냥젖이라도 물려야 했으니 나의 운명은
그러니까 나자마자 이집 저집 다니면서 다른 애들이 빨다
남은 이 아즘, 저 아즘의 젖꼭지를 눈치를
보면서 빨아야 했던 팔자였던 것이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야그가 황천포로 빠졌네...
음 그러니까, 지금 밥상 위에 감자 15알 정도를 삶아
놓고 한 알을 까서 맛나게 먹고나니, 감자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불현듯이 떠올라서 쓰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뜨거운 감자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아도 알것지만 어쨌든
감자란 서양에서나 동양에서나 주요 요리 재로로 사용
되고 있고 곡류가 없을땐 주식이 될 수 있는 중요한 먹거리
란 야그다. 나 한테는 이 감자가 중요한 것이지만 작금
천대 받고 있는 감자를 생각할때, 농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왜냐하면 오늘 아침, 홍피망 이키로를 우연찮게 줍게
된 것인데, 그 과정은 그러니까 같이 일하는 사람이
피망 15키로의 배송계획이 있었는데 홍피망 상태가
안좋아서 골라내게 되었다. 골라낸 것이 한 2키로 정도
인데 그것을 반품하고 2키로를 더 받아와야 할것이나
농협 야채담당 부서에 가지고 갔더니 그냥 이키로를 주면서
2키로는 여유분으로 더 가지고 가라고 주더라는 것이다.
하여, 그 양반 그것을 집에 가지고 가 봤자 소용도 없고
버리자니 아깝고 하여 직원중 다른 사람들을 줄려고 하였으나
아무도 가지고 갈려는 사람이 없어 급기야는 그 상태 안좋은
홍피망 2키로가 나의 손에까지 오기에 이른 것이다. 혼자 사는
나도 그 넘의 홍피망 2키로 집에 가지고 가봤자 소용이 없다.
하지만, 요새 홍피망 시새가 좀 비싸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야말로 버리는 것이 아까워 가지게 되었던 것이고
혹, 시장에 가지고 가면 이 물건이 쓰일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귀찮은 마음에도 불구하고 차에 실게 된
것이다.
배송이 끝나고, 학교에서 추가로 사다 달라는 당근 오키로를
잘아는 상회에서 사면서 그 집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홍피망 2키로가 있는데 혹, 필요하지 않냐고?" 그랬더니
그 주인 선선히 가져 오란다. 약간 무른 것도 있고
상태는 안좋지만 같다 주었더니 그 주인이 괜찮단다.
하여 난 그것을 주면서 그 주인에게 감자나 좀 달라고
하였더니 알이 작아서 재고로 안 팔리고 있던 감자 한빡스를
준다. 내가 지나가는듯 무의식중에 그 주인에게 감자를
달라한 까닭은 마침 내가 기거하는 공간에 감자가 떨어졌기도
하지만, 유사시에는 감자가 식량이 될 수 있다는 나름의
산골정서에 기인한듯 하다. 20키로 한 빡스인데 감자 알이
적다고 하지만 깨끗한 상태다. 난 그 한빡스를 내 차에 싣고
집에왔다. 그리고 지금 그 감자를 삶아 먹으며 생각에
잠긴다. 요새 깨끗한 피망 2키로이면 2만원이 넘어간다.
하지만 내가 가져다 준 피망이 좀 상태가 안좋으니 적게치면
한 일만 5천원 정도 할것이다. 그런데 내차에 싣고 가져온
감자 한빡스20키로 그거 시장 시세가 만원이다. 그러니까 그
거래에서 상회 사장이 당연히 이익을 본것이다. 하지만
난 기분이 좋았다. 가령, 새벽에 우리회사 직원이 피망을
골라낼 당시 피망이 아니라 감자 한빡스를 사람들 한테
공짜로 가져 가라고 하면 너도 나도 모두다 서로 가지고
갈려고 눈이 벌겠을 것이다. 하지만 별로 필요가 없는
상태 안좋은 피망이였고 그랬기에 내 손까지 와서 이것이
감자 한빡스로 변한 상황이 마치 거저 돈 벌은 듯한 맘이
들어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하지만 감자 농사 지었던
농민들에게는 진짜 미안하다. 쓰레기 취급받는 홍피망
쪼금보다 대접을 받지 못하는 저 강원도 운두령 감자.
그러기에 지금은 김동인의 "감자" 같은 문학작품은 안나올
것이다. 혹모른다. 감자께임에 관계된 게임 줄거리의 감자
퍽탄부대라는 엽기적인 스토리는 나올지 어떨지......
새벽과 저녁나절, 점점 날이 쌀쌀해져 가고 있다.
"지금 쯤이면 어느집 화롯불에 감자가 익어 가고 있겠지"라고 그것을
추억하던 과거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켄터키 치킨집 닭들이 날아 다니고, 신속배달 피자집이
번개불에 콩 궈먹고 있지만 서두...
장작 숯불에 감자 구어서 호호불면서 입술에 숯검댕이 묻혀가면서
너랑 까먹고 싶다. 정적만의 이 공간에서...
[백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