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춘곡」윤대녕
당신과 말문이 트인 것은 그때부터였지요. 당신의 집이 선운사 근처라는 것도 그래서 알았습니다.
“재수할 때 여기저기 떠돌다 선운사 석상암에서 며칠 묵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당신은 또 말을 비틀었지요.
“재수를 한 게 역시 사실이군요. 그것도 하필이면 80년도에 말예요.”
“변명이 되겠지만 고3 때 진로를 바꾸는 바람에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3 때 진로를 바꾸기도 하구요. 왜요, 갑자기 물감이 싫든가요?”
“그땐 세상이 다 흑백으로 보였기 때문에 물감만 보면 헛구역질이 나오더군요.”
“그런 증상도 있군요?”
“자꾸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십시오. 사람에 따라선 분명 그런 증상도 있는 거니까요.”
“그럼 천문학으로 전공을 바꿀 거란 얘기도 사실인가 보네요?”
“모든 일이 그렇게 사실과 비사실로 나누어지는 건 아닙니다. 그 중간이라는 것도 있고 눈으론 당최 안 보이는 부분도 있게 마련이니까요. 요컨대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도 다 그렇게 생겨먹질 않았습니까. 이를테면 지금도 나는 캄캄한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고 있다 이 말입니다.”
“……지금 절 유혹하는 거예요?”
나는 봉숭아 꽃물을 들인 것 같은 당신의 손톱을 내려다보며 되받았지요.
“아까부터 나는 그 반대라고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어 엉터리 같은 자식! 하고 당신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지요.
● 출처 :『20세기 한국소설 43 구효서, 이순원, 윤대녕』, 창비 2006 (257-258쪽)
● 작가 : 윤대녕- 196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1990년 문학사상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소설 『은어낚시통신』『달의 지평선』『사슴벌레여자』『제비를 기르다』 등이 있으며,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함.
● 낭독: 장용철- 배우. 연극 <진짜 신파극> <햄릿> <문득 멈춰서서 이야기하다> 등에 출연. 박현미- 배우.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 <사랑을 주세요> <바다와 양산> 등에 출연.
● 음악 : 이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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