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환경운동연합 월간 소식지 『오름과 바당』
기획시리즈 10 [도시농업과 환경]
이번 호부터 연재되는 기획시리즈의 주제는 ‘도시농업’입니다. 지난 번 에너지 연재에 이어, 식량을 중심으로 도시농업에 대해 앞으로 3회에 걸쳐 실리게 됩니다.
김동주(2005.12.19)
1. 도시농업이란 무엇인가
도시농업의 개념과 역사, 그리고 왜 도시농업을 해야하는지 에 대해 알아봅시다.
○ 도시농업의 개념
도시농업을 정의하는 것은 학자에 따라 70 여 가지에 이를 정도로 매우 많습니다. 행정구역상 도시에 포함되어있는 농지에서 짓는 농사까지 포함시키는 사람도 있기도 합니다. 또한 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농촌으로 통근하면서 농사짓는 사람 또는 주말농장까지 포함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도시농업의 여러 가지 이로운 점을 고려해 볼 때, 도시 시가지내에서 옥상, 자투리 땅 등의 유휴공한지를 활용하여, 도시 내의 여러 가지 자원들을 활용한 농업이라고 정의하고자 합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의 정의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보통 도시를 걷다보면 자투리 땅에 채소등을 키우는 조그만 텃밭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단독주택의 옥상을 이용한 텃밭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내린 정의에 따르면 이러한 것들이 대표적인 도시농업의 형태입니다.
○ 도시농업의 역사
도시농업은 문명의 발전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즉, 도시가 형성되면서부터 도시민들의 식량공급을 위해 농업은 도시와 함께 해왔던 것입니다. 이미 마야문명시대의 마야의 시에서는 시역내에서 곡식, 생선, 과일 및 채소가 생산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발생한 도시농업은 중세시대까지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이는 농업생산력의 발달로 인한 잉여생산이 도시의 비농업인구를 먹여 살릴 만큼 충분히 극대화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발달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도시농업은 근대에 이르러 단절의 시기가 찾아옵니다. 기계를 도입한 최근 자본집약적 농업행태로의 전환과 도시의 성장에 의해 도시농업은 사라졌습니다. 근대국가로의 이행과정에서 도시는 부와 번영의 상징으로 변해, 도시 내 농업생산의 필요성은 상실되었고 도시 내의 작물재배는 사라져갔습니다. 또한 공간 확보의 문제와 감독ㆍ오물ㆍ소음 등의 문제로 도시 내의 소규모 축산도 처음의 식량을 얻기 위한 형태에서 애완용 가축 기르기로 현저하게 변화하였다.
사라졌던 도시농업은 화석연료의 한계에 대한 인식과 에너지가격의 상승 등으로, 석유가 생산되지 않는 유럽에서 다시 시작되었는데, 도시농업 재발생의 계기는 제1,2차 대전을 통한 식량난이었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는 스스로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생존자들이 도시의 뒷골목과 거리를 이용해 채소를 기르고 돼지와 염소를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제 1, 2차 대전이 끝난 후, 식량생산을 위한 농업생산력의 발전이 지극히 현저하게 이룩된 현대에 이르러서는 경제적인 측면보다는, 오히려 도시내의 환경과 건강에 대한 관심, 그리고 노년층의 사회참여 및 여가기회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대전후 상당한 유행을 보였던 도시농업이 새롭게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특히, 현대 도시의 고민인 도시내 폐열과 폐기물의 처리대책 효과도 인정되어 도시내에 버려지는 낙엽과 폐기물을 이용한 토양의 비옥화를 이루기 위한 연구가 화학비료의 사용에 기인한 오염방지대책으로 각국에서 연구되고 있습니다. 또한 자연관찰과 학습기회가 결여되기 쉬운 도시의 청소년과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적 효과는 이미 식량생산을 통한 경제적 이점보다 높은 비중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 왜 도시농업인가?
도시농업을 통해 식량을 생산하고 자급률을 높이면 전쟁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분쟁은 예전과는 다른 원인에 기인합니다. 지금 진행중인 미국의 이라크침략 또한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자원전쟁’인 것입니다. 물과 식량도 석유와 더불어 가장 기초적인 자원이며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도시농업은 반전평화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도시농업은 또한 에너지 절약에도 도움이 됩니다. 식료품을 수송하는 데는 에너지가 필요하게 마련인데 전 세계에서 수송에 관련되어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전 배출량의 30퍼센트이상에 이른다고 합니다. 식량을 수입하기위한 엄청난 운송에너지를 고려할 때, 도시농업을 통해 식량생산량을 높이고, 석유에 의존하는 대규모 단작농업에서 벗어나면 덩달아 에너지 또한 절약할 수 있습니다.
도시농업은 자원순환형 사회로 가기 위한 밑거름이 됩니다. 도시농업은 폐열을 이용할 수 있고, 음식물쓰레기를 퇴비로 만들어 쓸 수 있으며, 빗물 또는 하수를 재활용 할 수 있습니다.
도시농업을 통해 농사경험이 전무한 소비자들을 농업생산자로 탈바꿈 시키는 것만큼 혁명적인 것은 없습니다. 일단 농사를 지어보면, 스스로 땅과 흙의 가치에 대해 온 몸으로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흙 한줌 구할 수 없는 도시에서 흙을 구하러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그 흙을 땀흘리며 짊어지고 집 안뜰이나 옥상으로 옮기는 것 부터가 땅으로 돌아가는 행위입니다.
[기획시리즈 10] - 도시농업과 환경2
2. 도시농업 체험기
김동주(제주환경운동연합 대안사회팀 간사)
지난 2년간 도시농업을 알게되고, 직접 실천해왔던 경험을 풀어보고자 한다. 내가 왜 도시농업에 관심을 갖게되었고, 어떠한 계기로 실천하게 되었는지를 여러분께 밝힌다.
1. 도시농업을 알게되다
때는 바야흐로, 새내기의 격동스런 방황의 문턱에서 갓 벗어나온 대학 2학년 가을 어느 날이었다. 도대체 삶의 근본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부여잡고 빌빌거리며 지내던 때, 우리 대학 생활도서관에서 주최한 김종철 선생님(녹색평론 발행인)의 강연에 참석하였다.
그 강연에서 ‘김쌤’께서는 석유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앞으로 5~10년 사이에 석유생산량이 정점에 달할 것이고, 그 이후에는 에너지 위기가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선생님께서는 강연말미에 일본인이 쓴 쿠바의 도시농업에 관한 책을 보여주셨다.
강연을 들으면서, 또한 뒷풀이자리에서도 고민은 이어져갔고, 결국 내가 해야할 것은 도시농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너지 위기가 닥쳐오면 수요의 97%를 수입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경제위기가 또 닥쳐올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먹고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내 고민의 주요지점이었다. 이 시점에서 쿠바의 도시농업은 나를 뒤흔들었다.
2. 도시농업을 시작하다
해가 지나고 도시농업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시작을 한 해 늦출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때부터 도시농업을 위한 준비를 시작해나갔다. 우선, 도시농업을 할 수 있을 만한 공간을 확보하였다. 그때 나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가장 자주 들를 수 있는 학생회관 옥상을 도시농업지로 결정하였다. 학생회관을 관리하고 있던 총동아리연합회에 나의 계획을 설명하여 옥상열쇠를 확보하였고, 흙을 담을 수 있는 스티로폼박스를 구해놓기도 하였다. 또한 늦가을에는 몇 년 후에 퇴비로 쓸 낙엽도 걷어두었다. 그리고 아는 선배에게 부탁해서 텃밭에 심을 씨앗들도 몇 가지 얻어두었다.
드디어 2004년 봄이 되었다. 겨우내 준비했던 도시농업을 실행할 시기가 온 것이다. 그러나 중대한 문제에 부딪혔다. 바로 ‘흙’이었다. 도시에서 흙을 구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사람들은 근처 산에 가서 흙을 퍼오면 된다고 하지만 말보다 쉬운 것은 없다. 교내에 있는 나대지의 흙을 퍼오려고 했지만, 돌투성이 뿐이어서 작물을 가꾸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우리대학 농대 부설 농장에 부탁해서 흙을 얻으려고 공문도 보내봤지만, 대답은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아는 선배에게 부탁해서 촌에 있는 흙을 가지고 올 수 밖에 없었다. 그 선배가 2년간 농사를 지었던 경북 영덕에 가서 19마대의 흙을 퍼왔다. 흙을 가지고 온 날, 후배 한 명과 함께 학생회관 7층 옥상으로 낑낑거리면 흙을 옮겼다. 땀이 비오듯이 쏟아졌고 매우 힘들었지만, 이제는 본격적으로 도시농업을 실천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올랐다.
3. 도시농업을 진행하다
다음날 학교 근처 시장에서 사고온 퇴비와 흙을 섞어 준비해두었던 스티로폼 박스에 담았다. 그리고 일주일 후 상추, 부추, 케일, 애호박, 검은 콩 등의 씨앗을 심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매일 학생회관 옥상에 올라가서 물을 주고, 작물의 성장을 확인했다. 도시농업일지도 작성하면서 기록해뒀다.
비료와 농약은 절대로 주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친환경농업 규칙도 세웠다. 또한 물은 수돗물을 쓰지 않고, 옥탑층에 내리는 빗물을 여러 개의 물통에 받아놓고 사용하였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비옷을 입고 패랭이를 쓴 채 어김없이 옥상에 올라가 가득 찬 물을 다른 물통으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농업용수 확보는 필수라는 것을 몸소 느꼈다.
4월에 심은 씨앗은 보름이 지났건만, 싹이 트지 않았다. 씨앗을 뿌려본 적 없기 때문에, 땅을 파서 묻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씨앗을 뿌리고(!) 결과를 기다렸다. 며칠 후, 조금씩 싹들이 돋아나기 시작하였다. 한 달 후 쯤에는 첫 김매기를 했다. 김매기라고 해봐야 쇠막대기로 긁는 것 밖에는 없지만, 새싹들과 잡초들을 구분하지도 못하던 때였다.
이렇게 6개월동안 지극정성으로 매일매일 옥상에 올라가 텃밭농사를 지었다. 가끔씩 뜯어먹은 부추와 콩잎을 제외하고 결과라고 해봐야 한 줌밖에 안되는 콩이 전부였지만, 스스로 밭을 만들고, 농사를 지었던 경험만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또한, 상추의 경우, 꽃이 피고 진 자리에서 다음해 심을 씨앗을 수확할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결과였다. 특히, 여름 방학기간에 ‘도시농업’에 대한 공부를 했던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 결과는 ‘도시농업조사연구보고서(도시농업리포트)’라는 이름으로 작성하여 인터넷에 올려두었고,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참고를 하고 있다.
4. 도시농업을 확장하다
2004년의 옥상텃밭 경험을 토대로 2005년의 도시농업 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바로 ‘도시농업지원기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흙을 구하는 것도 그렇고, 종자, 퇴비 등도 지원을 할 수 있는 곳이 따로 있으면 더욱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일군의 사람들이 ‘달팽이마을’이라는 이름으로 팔공산 근처에서 텃밭농사를 하고 있었으며, 빌려줄 땅도 얼마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분들과 연락을 취해, 조그만 땅을 구할 수 있었다.
대구지역모임 ‘땅과 자유’ 선배들과 함께 따뜻한 봄날에 팔공산 텃밭을 경작하러 갔다. 삽과 곡괭이를 들고 밭을 일구면서 노동의 즐거움을 나누었다. 새참으로 막걸리를 한 잔 하면서 올해의 농사계획을 세웠다. 며칠 후 우리는 감자와 옥수수, 수수, 그리고 담배잎을 심었다.
2005년에도 학생회관 옥상텃밭 농사는 계속 진행되었다. 작년과 달라진게 있다면, 감자, 수수 등의 식량작물을 재배했다는 것이다. 또한 봄농활 때 얻어온 콩을 많이 심어서, 콩잎을 따먹기도 하였다. 이러한 학생회관 옥상의 도시농업 활동은 동아리 단결의 원동력이 되었다. 옥상텃밭에서 가꾼 작물들을 요리해서 함께 밥을 해 먹으면서 동아리모임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5. 결실을 수확하다
2005년 7월. 여름이 무르익어가던 때 졸업을 한 나는 본 단체에서 활동하기위해 제주도로 내려왔다. 1년 반 동안 진행했던 학생회관 옥상텃밭과 팔공산 텃밭은 뜨거운 여름의 더위에 말라죽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남기고 후배들에게 물려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물통을 몇 개 더 구해다가 옥상에 올려두는 것밖에 없었다. 비가 오면 물을 담고, 메마를 때에 텃밭에 물을 주는 것은 이제 후배들의 몫이었다.
제주에 와서도 후배들과 자주 연락하면서, 옥상텃밭의 생장현황을 수시로 보고받았다. 그리고 10월초, 나는 수확을 하러 다시 대구로 향했다. 팔공산 텃밭은 나의 부재로 인해 잡초가 점령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는 옥수수와 수수를 수확했다. 종자에서 열매로, 다시 종자를 수확한 것이었다.
올해 나는 그 종자를 다시 사무실 옥상에 심을 것이다. 나의 도시농업 실험활동은 계속된다.
# 참고자료
- ‘도시농업과 함께한 1년’, 김동주, 땅과자유 학교 졸업보고서(2004,대구-미간행)
- ‘도시농업조사.연구보고서’, 김동주, 땅과자유 도시농업위원회(2004)
[기획시리즈10] 도시농업과 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