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만남. 청미래. 호우
보현산 천문대를 가려면 정각 길 9.3킬로미터 도로를 달려야한다.
정각 길은 천문대가 건설되기 4년 전 1992에 착공하여 96년 4월에 완공되었다.
건설 기간이 다소 길었는데 마지막 남은 공사 구간에 박차를 가하려고 회사가 투입시킨 팀의
일원으로 함바식당의 ‘별꽃 푸드’도 오게 되었다.
여기에서도 왕 별꽃은 음식 솜씨가 뛰어나다는 소문에 은하마을과 천문대 공사 인부들도
알음알음으로 하나 둘씩 내려왔다.
천문대가 완공될 무렵에는 박 한별 초대 천문대장과 전 용철 천문연구원도 근무할 직장을
돌아 볼 겸 왔다가 소문을 듣고 다녀갔다.
“전 연구원님 고사리볶음과 나물이 산에서 나는 쇠고기라는데 쇠고기보다 더 맛있어요.”
“예. 저는 특별 식으로 주는 더덕구이와 두릅에 홀딱 빠져 버렸습니다.”
“별꽃 푸드 트럭 사장님 음식 솜씨가 장난이 아니야.”
현장 소장은 마지막 남은 구간을 개통 날자보다 일찍 끝내려고 바쁘게 몰아쳤다.
개통과 함께 천문대도 개관을 하면 별꽃과 한남의 결혼식은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3일전에 모든 공사를 마치고 현장 소장의 지시아래 장비들을 한쪽에 몰아놓고 마무리
인사와 부탁을 했다.
“여러분, 그동안 수고 하셨습니다. 내일 12시에 별꽃 푸드 여 사장님과 성 한남 씨가 불도저
결혼식을 올립니다.
모두 참여해서 맛있는 식사도 하시고 특별히 두 분을 축하해 주실 분은 저 불도저를 깨끗하게
씻어 주시면 좋겠는데 누가 하시겠습니까.”
“저요. 저요. 접니다. 소장님.”
저마다 자기가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그중에 가장 큰 목소리를 냈던 사람은 한남에게 별꽃의 전 남편 스토리를 들려준 인부였다.
한남이 별꽃의 슬픈 스토리에 관심을 가졌고 그것이 사랑의 자극제가 되었던 것이다.
모두가 돌아간 정각 길. 해가 한팔 쯤 남은 저녁이었다.
현장 소장은 서산으로 향하는 해와 붉은 노을을 보니 문득 공사 현장에서 후진하는 불도저에
치여 죽은 왕 별꽃의 전 남편이 떠올랐다.
그 미안함에 축가를 불러 준다고 대답을 했지만 못하는 노래가 걱정이어서 한참이나 고민 끝에
선곡을 했다.
선곡을 마치고 숙소를 나와 흥얼흥얼 축가를 연습하며 장비를 모아둔 곳으로 향했다.
“어디 가보자. 불도저가 깨끗이 씻겨 졌을까?”
현장 소장은 불도저가 있는 곳으로 갔다가 깜짝 놀랐다.
“여보, 다 됐어요. 한남씨 말대로 꽃 치장을 했더니 그런대로 맘에 들어요. 하하하하.”
“미안해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해야 하는데 여기서 하게 되어서.”
“아냐~ 나는 이게 좋아 도로 사정도 있는데. 내가 완공된 도로에서 하겠다고 한말에 책임을
질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소장님도 무척 고맙지 하하하.”
두 사람은 소장이 뒤로 다가와 듣는 줄도 모르고 소꿉장난을 하듯 불도저에 나뭇가지를 꼽고
있었다.
“야~ 이 사람들은 누구야 신랑신부가 결혼준비로 바쁠 텐데 무얼 하러 오셨나?”
“아. 소장님 오셨어요? 허어~참....”
한남과 별꽃은 도둑질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며 겸연쩍게 웃었다.
“내일 시승할 웨딩 마차에 개나리꽃으로 꽃단장을 하고 계셨네요?”
“예, 한남 씨가 이렇게 해보자고해서 나왔는데 들켰네요. 하하하.”
소장은 한남과 별꽃이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와 들꽃을 꺾어 철모에 위장하듯 해 놓은것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별꽃이 침묵을 깼다.
“소장님. 지금묵념 하세요?”
“아 아뇨 축하묵념이요. 하하하하.”
사실 소장은 나뭇가지를 보면서 별꽃의 전 남편을 떠나보내는 묵념도 섞여 있었다.
물론 참 좋은 만남이라고 축하해주는 묵념이었지만.
둘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고 소장은 핸드폰을 검색했다.
“영천 화원. 영천 꽃집. 젤 가까운 꽃집이....여기 있다.”
“여보세요. 웨딩카를 만들려고 하는데 웨딩 카는 불도저인데 거기에 장식할 만한 꽃으로
골라서 최대한 빨리 가져다주시면 좋겠습니다.
여기는 영천시 화북면 정각리 은하마을 입구 공사 현장입니다.”
“예? 어디라고요? 확실해요 진짜요? 그러시면 불도저와 현장을 찍어서 지금 보내 주시면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불도저는 그렇게 웨딩마차가 되었다.
“신랑 신부 입장~”
“부앙~드르르르....”
보무도 당당한 웨딩불도저 꽃마차가 멀리서 등장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하하하....불도저 웨딩마차 죽인다 하하하하.”
“성 한남 왕 별꽃 성 한남 왕 별꽃.....”
“불 도 저 불 도저 불도저.....”
축가는 1990년 가요 톱 텐 골든 컵 수상 곡이었다. 그들의 '만남'이 숙명 이었기에.
현장 소장은 별꽃이 전 남편을 보낸 것을 운명이고 이제는 새로운 만남이라 여기고
그 영혼을 태워 다시는 돌아보지도 말고 바보같이 눈물을 흘리지도 말고 둘이 서로
사랑하라는 바람을 담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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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축가)
바람의 뜻이 깊은 나머지 바보같이 울컥 눈물이 나와 함바식당 예식장을 숙연하게 했다.
축가가 끝나자 공사장 인부들은 가사에 큰 의미를 아는 터라 더 큰 박수로 축하해 주었다.
별꽃은 임신과 함께 함바식당을 접고 태아는 속도위반으로 태어났다.
산파는 어머니였다.
기쁜 산파의 행복 손놀림에서 태어난 환희는 건강하게 자랐다.
왕 별꽃은 환희를 어머니에게 맡기고 건장한 체력으로 서울에서의 약속을 시작했다.
산을 오르내리며 산나물을 뜯고 설계대로 땅을 조금사서 채소와 약초 재배도 시작했다.
그렇게 계절을 넘기며 꽁꽁 언 겨울도 보내고 또 봄이 왔다.
보현산 아래를 찾아온 봄은 쑥스러운 듯 언제나 겨울 속에 숨어 짧게 선만 보였다.
초여름이 오기도 전에 나무와 약초도 쑥쑥 키웠다.
월요일.
날씨가 아침부터 꾸물꾸물 했다. 환희를 업고 마당을 서성이던 어머니가 말했다.
“비가 오려나~”
“설마요 어머님~”
한남도 어머니와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젯밤 잠자리에 들면서 여왕별꽃이 요청한
산야초 등 여러 가지 나무와 식물 구별법을 알려주려면 따라 가야했다.
“비가 올 것 같은데 다음에 가자~”
“아이구~내가 하나라도 빨리 배워야 약초인지 독초인지 알지요.”
어머니가 거들었다.
“그건 그려~ 배워서 남 주는 거 아닝게 부지런히 따라다님서 갈켜 줘라~
“맞아요 어머니~ 한남씨는 제가 잘 몰라서 독초를 줘도 그것도 맛있다고 먹을까요?”
“아야 그 정도는 아니지~ 즈그 아부지를 따라 다님서 귀동냥으로 듣고 본 것이 있응게.”
“하하하....여왕별꽃마님이 내려주시면 사약이라도 먹겠지만 우리 어머니 때문에 못먹겠다.
그렇죠 어머니?”
“아이구 그렇다고 사약을 받아 먹냐? 독초를 안 먹을 라먼 빨리 가라 하하하...”
한남은 어머니마저 등을 떠밀어 이산 저산을 넘어 다니며 약초 설명을 해주었다.
앞서가던 별꽃이 신기한 것을 발견한 듯 말했다.
“어? 이건 망개떡 나무다. 맞지 한남 씨?”
“응, 맞아 이건 맹감나무라고도 하고 ‘청미래’라고도 부르는데 뿌리는 ‘토 복령’이라고 해.
청미래는 ‘푸른 열매’가 열리는 나무라는 뜻이야. 뿌리는 수은 중독이나 해독에 아주 좋은 거야.”
한남의 진지한 설명에 별꽃은 익살이 쏙 빠졌다.
“한남 씨, 나하고 살면서 지금까지 중에서 젤 멋졌어요. 이렇게 멋진 남자를 낳아주신 어머니한테
하트 이파리를 따다가 망개떡을 해 드려야겠어요.”
(아내와함께 만든 명품 쑥 갠떡)
“응. 어머니가 좋아 하겠다. 그런데 이거 전설은 모르지?”
“전설도 있어요? 이파리가 하트 같은데 뭐 달콤한 전설이 아닐까?”
“과연 그럴까?”
산속 대화는 토 복령의 약발처럼 깊어졌다.
약초꾼 아버지를 따라 다니면서도 약초가 싫다고 했던 귀동냥을 풀어 놓았다.
“옛날에 중국에서 어떤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병에 걸렸는데.”
“무슨 병?”
“있어 바람피우다가 걸리는 병.”
“아~ 그거.”
“그래서 남편이 미워서 산에다 버렸지.”
“잘했다. 그런 거시기라면 나도 확 버리겠다.”
“그런데 남편은 망개나무 뿌리를 먹고 병이 싹 나아버렸데.”
“엥~”
“토 복령이 해독제로 쓰인 거지.”
“불행 중 다행이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아내한테 전보다 백배 천배나 잘했다는데 말이야 남편을 산에서 돌아오게
만들었다고 해서‘산 귀래’라고 불렀다는 전설이올시다.”
별꽃이 왕 별꽃 스타일로 마무리를 했다.
“이상. 남편이‘산귀신’이 되지 않고‘산 귀래’를 했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였습니다. 하하하.”
아침부터 심상치 않았던 날씨가 시커먼 구름이 몰려오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남씨 우리도 빨리‘산 귀래’를 해야겠어요.”
“그래 비가 올 것 같더니만 결국 오네. 내가 끝까지 말리지 못하고 우리 왕 별꽃이 욕심을
낸다고 따라 나선 내가 잘못이지.”
“아니 그럼 꽃이 가는데 벌이 따라오지 않으면 내가 꽃도 아니잖아?”
“그게 그런가? 하하하하.”
터프하게 일침을 가한 여왕별꽃처럼 장대비가 터프하게 쏟아졌다.
보현산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호우였다.
산등성과 위험한 골짜기를 나뭇가지를 잡고 미끄러지면서 한참을 천문대 쪽으로 향했다.
집을 가는데 가장 쉽고 가까운 길이기도 했지만 이런 폭우에 혹시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잘 다져지지 않은 천문대의 토사가 흘러 내려서 집에 피해를 입힐까 확인을 하고 싶어서였다.
“여보. 비가 너무 오는데 일단 대피소로 피해야겠어.”
대피소는 커다란 바위 두 개가 이마를 맞대고 있는 움푹 들어간 작은 굴이다.
한남은 이곳에 라이터와 건초 그리고 잔 나뭇가지를 비닐봉지에 담아 보관해 둔 곳이다.
마을 사람들이 산행을 하다가 쉬어 가거나 비와 추위를 피하는 안전장소였다.
비를 흠뻑 맞아 저 체온 증으로 한기가 엄습했다.
배낭 속에 더덕과 산야초 토 복령이 더 무겁고 몸을 차갑게 만들었다.
“여보....추워....으으으 빨리 가서 불 좀 피워요.”
“여왕별꽃님 조금만 참으세요~여왕님처럼 품위를 지키세요.”
별꽃을 위로하며 사냥꾼을 피해 달아나는 꿩처럼 몸을 급히 숨겼다.
한남은 비닐봉지를 열고 불을 피웠다.
“이정도면 충분히 30분은 버티겠다. 그때까지 비가 그치겠지?”
젖은 몸을 불 가까이 댔다.
“아. 살겠다. 그렇지요 여왕님?”
“응...역시 공병대 전투 근무지원 보직이 폼으로 한 것이 아니었어.”
불을 보자 웃음이 나오고 두 사람은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비는 한 시간이 넘도록 퍼부어 나뭇가지를 다 태우고 불이 꺼졌다.
다시 한기가 엄습했다.
“여보 추워요.”
아내의 말에 한남은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아직 마르지 않은 옷과 몸이 밀착하자 더 몸서리가 쳐졌다.
차라리 혼자 떨어져 있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아 어쩌지? 비가 그칠 기미가 안보여.”
“여보 우리 그냥 빨리 내려가자.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올 수밖에 없었다.
움직이는 것이 훨씬 덜 추웠다.
여왕별은 오면서 걱정이 되어 물었다.
“천문대에서 흘러내린 토사에 우리 집은 안전할까? 어머니와 환희는?”
“괜찮을 거야. 이런 비는 난생처음이라서 잘 모르겠지만.”
“두세 시간에 집이 떠내려가기야 하겠어?”
겨우 천문대까지 왔다.
천문대는 월요일이라 쉬는 날이었다.
빗소리만 요란하고 근무 직원이 없는 천문대는 조용했다.
한남은 걱정으로 여기저기를 살펴보다가 물길을 보았다.
“어? 도로 경계석이 3개나 뽑혀나가서 나무에 걸려 있네?”
“여보 저 아래로 물이 홍수처럼 몰려가는데 우리 집은 괜찮을까?”
“안전하다고 장담은 못하지.”
“어? 물길이 저 아래까지 만들어 졌잖아. 철망 담장 뒤에 흙이 흘러 내려서 뒤로
넘어지려고 그래요.”
“그래~ 저건 안에다 말뚝을 박고 로프로 걸어서 고박을 해야 하는데 이대로 놔두면
담을 밀고 나가서 무너질 텐데?”
“그래요 물길을 저쪽으로 돌려야 하니까 여기다 고박을 해.”
“여왕별님 당신이 공병대 선임이야 고박하라고 지시하게?”
“아 공병은 두었다가 뭐 할 거야 엿 바꿔 먹을 거야?”
“하하하하 당신 조크 중에 최고였어.”
큰 비에도. 걱정에도. 슬픔에도 언제나 유쾌한 아내의 조크가 한남의 마음을 흔들었다.
“별꽃. 내가공병대 실력을 한번 발휘해봐?”
“그래요 우리가 응급복구를 하지 않으면 우리 집도 위험해요.”
죽이 척척 맞는 부부의 생각이었다.
“여보, 담장 곁에 서있지 말고 저리 피해있어 내가가서 장비 좀 싣고 올게.”
“알았어요, 빨리 와. 우비도 가져오고.”
한남은 아내에게 멀리 떨어져 있으라는 손짓을 연거푸 하며 비를 뚫고 내려갔다.
씩씩한 여왕별꽃. 하지만 여왕도 든든한 신하가 없이 혼자 있으니 두려움에 비를 피하려고
변전실 처마 밑으로 갔다.
뒤를 보니 변전실 뒤도 토사가 흘러내리고 나무뿌리가 드러나고 있었다.
여기도 걱정 저기도 걱정 이었다.
흘러내리는 토사와 무너질지도 모르는 철 담장에 눈을 떼지 못했다.
남편이 돌아오는 시간이 길기도 했다.
잠깐 비 오던 날 푸드 트럭에서 한남과 김치찌개에 막걸리를 먹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하여 잠시 추위를 잊었다.
^0^다음편을 기대 하세요^0^
첫댓글 쑥떡 맞있죠~~
학교 파하고 집에 와서 소쿠리에서 꺼내 먹었던 추억의 맛 쑥 개떡!
원래는 '쑥 갠 떡'이 맞는 말입니다.^^
불도저 결혼식도 재밋겠어요.
비로인한 피해가 예상되기도하고 그속에 짜릿한 엪쏘드가 있을듯...
망개떡 쑥개떡, 김치찌개와 막걸리...ㅎㅎ
산귀래도 재밋고요.
잘읽었습니다 ~♡
정독ㅎ정말 독하게 감사합니다 ㅋㅋ
험난한 산속에서의생활을 적나라하게 글로 옴겨논스토리 추억에 망개 숙개떡 아련하게 생각이나네요
지금도 우리마누라가 잘해주는 음식입니다.ㅎ ㅎ
다음편 기다릴께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잘 만들어 주시는 와이프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