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품 8~10장 공부; 대종경풀이(류성태님) 참고>
8장. 핵심주제: 본말 다스림과 실예(實例)
(관련법문: 정산종사법어 무본편 1장, 대산종사법문3집 제3편 수행 83장)
* 말이 수레를 끌면 말이 끄는 데로 수레는 따라가는 것이다. 수레를 끄는 말이 근본이고 수레는 끝이다....종교나 도덕가에서 사람의 마음을 다스린다. 사람의 행동이 마음에서부터 출발한다. (한종만, 원불교 대종경 해의 중에서)
9장. 핵심주제: 순역에 처한 공부법
(관련법문: 정산종사법어 근실편 27장, 대산종사법문 3집 제 7편 법훈 226장)
* 김기천(金幾千) : 1890~1935 구인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소태산 대종사로부터 교단 최초로 견성 인가를 받았다. 법호 삼산(三山). 전남 영광에서 출생. 김광선(팔산)의 인도로 소태산 대종사의 제자가 되었고, 구인제자와 함께 원불교 창립에 공헌하였다. 출가 후에는 성리연마에 특히 관심이 많아 정진하였다. 부산 지방의 교화 터전을 닦다가 장티푸스에 걸리어 당리교당에서 순직하였다. 〈철자집〉・〈교리송〉・〈사은 찬송가〉・〈심월송〉 등 많은 저술과 감각 감상을 발표하였다.
<관련법문: 인과품 21장, 성리품 22장, 전망품 8장, 대종경선외록 변변대체장 2, 한울안한이치에 법문과 일화 화합교단 81>
* 순리(順理): ⑴ 순조로운 이치. 질서 있게 진행되는 이치. 봄·여름·가을·겨울이 순서 있게 바뀌는 것이라든가, 우주의 성주괴공이나 인생의 생로병사가 순서 있게 진행되는 것 등이 순리이다. ⑵ 도리에 순종하는 것. 세상 모든 일을 물 흐르듯이 도리에 거역하지 않고 순종하는 것. 우주의 성주괴공의 이치에 따라 인생은 생로병사를 겪게 된다. 한 가정의 일이나 세상의 일도 물 흐르고 바람 불듯 질서 있게 진행하는 것이 순리다. 그러므로 순리가 곧 진리요 도리이다.
* 역리(逆理): ⑴ 이치·도리·진리·순리에 어긋나는 것. ⑵ 무슨 일을 순리대로 하지 않고 억지로 하려고 하는 것. 세상을 순리대로 살지 않고 억지로 무리하게 사는 것. (원불교 용어사전에서)
* 일은 순리에 따라서 해야 한다....순과 역을 잘 구분하기 위해서는 일단 正見을 해서 판단해야 한다... 결국 순리에 따르는 것이 곧 일원상의 진리의 깨달음과 다를 것이 없다. (류성태, 대종경풀이 중에서)
* 천지보은의 조목에 순리자연한 도를 체받아서 합리는 취하고 불합리는 버려야 한다고 하였다. 합리는 이치에 맞는 것이고 불합리는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다.(한종만, 원불교 대종경 해의 중에서)
10장. 핵심주제: 순역과 진위
(관련법문: 정산종사법어 응기편 6장, 정산종사법어 세전 제4장 신앙 2. 신앙의 도)
* 원인 결과가 있어가지고 일이 되는 것인데, 원인 없는 果를 구함은 곧 역리이다..... 운만을 바라거나 미신스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은 것이다...(박길진, 대종경강의 중에서)
* 타인의 이로움을 생각할 수 없다 하더라도 타인을 해하지 않고 나의 이로움을 찾아야 한다. ‘동포보은의 강령’의 자리이타의 도는 나도 이롭고 타인도 이로운 것이다.... 오늘날의 사회 현상은 거의 역리로 사는 것이다....(한종만, 원불교 대종경 해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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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종사 말씀하시기를 [무엇이나 근본에 힘써야 끝이 잘 다스려지나니, 육근의 근본은 마음이요 마음의 근본은 성품이며, 처세의 근본은 신용이요 권리 명예 이욕 등은 그 끝이니라.] -정산종사법어 무본편 1장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절에 가보면 대적광전(大寂光殿)이라고 크게 써붙였는데 크게 고요하고 빛나는 집이란 뜻이다 . 바로 부처님을 뜻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사바세계에 살으시되 물들지 않고 살으시므로 한 생각을 내시어 사바세계를 위해 설법하실 때는 설법하시고 거둘 때는 거두시어 칠일입정 칠일설법(七日入定 七日說法)을 하신다. 이와 같이 한 생각 거두어들이면 무무역무무(無無亦無無)요 비비역비비(非非亦非非)한 대적광전에 드시어 크게 비고 고요하고 두렷한 광명을 나토신다. 그 자리가 대열반(大涅槃) 처인 것이다. 우리도 이 자리를 맛봐야 한다. 한 생각 거두면 팔억만년도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견성을 목적하기 때문에 최고의 어른을 불(佛) 즉 각인(覺人)이라 하고 유교에서는 그런 분을 성인(聖人)이라 하여 어진 사람[仁者]을 말하는데 도교에서는 최고의 경지를 단(丹)이라 한다. 이는 영단(靈丹)이 뭉쳤다는 뜻이다. 요가도 선의 일종인데 이것은 외단(外丹)을 뭉치는 것이다. 운동을 할 때 주먹에다 단을 뭉치면 주먹이 단이 되고 머리에 단을 뭉치면 머리가 단이 되는데 외단은 오래 가지 못하고 내단이라야 오래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전에 단을 해야 중도가 된다. 단이 되었는가 안 되었는가를 보려면 호흡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선을 할 때에 앉아서 잘 되는 분은 앉아서 하고 서서 잘 되는 사람은 서서하라. 앉아서는 잘 안되는 사람이 서서하면 잘 되는 사람이 있다. 나도 대종사님 모시고 열여섯 살 때부터 선을 하여 삼십세까지 정진하였는데 밤에 자기 전까지는 죽지 않으면 꼭 해야하겠다 하여 목을 어디에 달고라도 앉아서 하였더니 그것이 잘못되어 병을 얻게 되었다. 마치 마차가 가지 않으니 말을 때리지 않고 수레를 때린 것과 같았다. 그래서 행선(行禪)을 했고 채약선(採藥禪)을 하여 병이 나았다.
그러나 체질이 태음인이나 건장한 사람은 행선보다 좌선이 더 나을 수 있다. 임제선사나 동산 같은 사람은 열흘 안 먹어도 좋고 열흘 앉아있어도 좋다 하여 죽기 아니면 살기로 꽉 들어앉아 힘을 얻기도 하였으나 지금 사람들은 대개 소음과 소양인이 많으므로 행선과 사상선(事上禪)을 많이 시키는 것이 좋겠다. 그러니 자기 체질에 맞게 앉아서 하든지[坐禪] 서서하든지[入禪] 누워서 하든지[臥禪] 다니면서 하든지[行禪]하여 계속적으로 동(動)과 정(靜)이 골라 맞도록 하여야 한다.} (61. 8. 12) -대산종사법문 3집, 제3편 수행 83장
사감(舍監)이 사뢰기를 [학생 한 사람이 아무리 지도하여도 말을 듣지 아니하오니 어찌하오리까.] 말씀하시기를 [사람을 지도하는 이가 자기의 성질대로 사람을 굽히려 하면 되지 않나니, 먼저 그 사람의 근기나 성질을 살피고 소질과 소원을 잘 알아서 서서히 순리로 지도하여야 교화가 잘 되나니라.] -정산종사법어 근실편 27장
말씀하시기를 『누구나 바르고 원만하게 꾸준히 하면 반드시 때가 오는 법인데, 모두 욕속지심(欲速之心)으로 순서없이 하려고 하니 결국 실수하고 만다. 그러니 사시순환과 같이 순리대로 하라.』 -대산종사법문 3집 제7편 법훈 226장
이 중정(李中正)에게 글을 내리시니 [發大願, 營私利己 如露如烟 成佛濟衆 萬願之宗. 立大信, 妙無他妙 寶無他寶 鐵柱中心 石壁外面. 起大忿, 絶利一源 用師百倍 三反晝夜 用師萬倍. 懷大疑, 大信之下 必有大疑 一心所到 金石可透. 行大誠, 眞實無僞 內外不二 始終一貫 天地同功. 運一圓道 濟無量生 脫永劫苦]라, 번역하면 [큰 원을 발하라. 사를 경영하고 저만 이롭게 함은 이슬 같고 연기 같으니, 부처 되어 중생 건지려 함이 모든 원의 머리니라. 큰 믿음을 세우라. 묘함이 다른 묘함이 없고 보배가 다른 보배가 없으며, 철주의 중심이요 석벽의 외면이니라. 큰 분을 일으키라. 이익을 한 근원에 끊으면 그 공이 백배요, 세번 주야를 반복하면 그 공이 만 배라 하였나니라. 큰 의심을 품으라. 큰 믿음 아래 큰 의심이 있나니, 일심 이르는 곳에 금석도 뚫리리라. 큰 정성으로 행하라. 진실되어 거짓 없으면 안과 밖이 둘이 아니요, 시종이 한결 같으면 천지로 공이 같으리라. 일원대도 운전하여 무량 중생 제도하고 영겁 고를 해탈하라] 하심이러라. -정산종사법어 응기편 6장
신앙의 도는 첫째 잘 가려서 믿는 것이니, 신앙의 대상에는 좁은 대상과 원만한 대상이 있고 허망한 대상과 진리에 맞는 대상이 있으며, 신앙하는 방법도 사사한 방법과 정당한 방법이 있고 미신스러운 방법과 사실다운 방법이 있음을 알아서, 그 가장 원만하고 진리에 맞는 대상과 정당하고 사실다운 방법을 가리어 믿을 것이요, 둘째는 타력신과 자력신을 아울러 나아가는 것이니, 신앙의 대상을 우러러 믿고 받들어 나아가는 것과 자기의 성품 가운데 모든 이치가 본래 갖추어져 있음을 발견하여 안으로 믿고 닦는 것을 병진할 것이요, 세째는 연원 계통을 성심으로 공경하고 믿는 것이니, 각자의 신앙의 종지를 밝혀 주신 큰 스승님과 그 법과 그 법의 계통을 성심으로 공경하고 믿는 동시에, 한 걸음 나아가 이 세상 모든 도리가 본래 다 한 이치에 근원하였음을 알아서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성인들을 두루 공경하고 믿을 것이요, 네째는 신성에 일관하는 것이니, 그 믿음이 환경과 시일을 따라 물러나거나 끊어지지 않고 어떠한 어려운 경계를 당할지라도 한결 같은 신성으로 영생을 일관할 것이니라. -정산정사법어 세전 제4장 신앙 2. 신앙의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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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천 金幾千, 1890~1935
[주요약력] 본명은 성구(聖久). 법호는 삼산(三山). 법훈은 종사. 1890년 2월 5일 전남 영광군 백수면 천정리에서 부친 다유(多有)와 모친 김대유(金大有)의 아들로 출생. 소태산대종사의 최초 구인제자 가운데 한 사람.
[생애와 활동] 김기천 15세시에 김순천(金順天)과 결혼했으며, 17세부터 한문 서당 훈장으로 근동 아이들을 가르쳤다. 김광선의 인도로 소태산 문하에 귀의하여 저축조합, 방언공사, 법인기도에 동참했다. 1924년(원기9)부터 4년간 영광지부 서무부장 겸 지부장으로서 살림을 전담했다. 1928년(원기13)에는 익산총부 서무부장에 피임되어 2년간 근무했고, 1930년(원기15)에는 총부 교무부장, 이듬해에는 선원 교무로 해박한 지식과 명철한 지혜로 선원들을 일깨웠다. 김기천은 지혜가 출중하고, 수양력이 풍부하며, 계행이 청정하여 대중들로부터 존모를 받았고, 소태산으로부터도 ‘시비를 초월하고 희로애락에 끌리지 않는 부처’라는 칭찬을 받았다. 외관상으로 훌륭한 용모를 타고 났을 뿐 아니라 내적인 면에서도 인격·지식·덕행을 두루 갖춘 공심가요, 원만한 지도자로서 사표적 인물이었다. 1928년(원기13)은 김기천이 39세 되던 해, 하루는 소태산이 강당에 법좌를 차리라 하고 종을 쳐 대중을 불러 모은 뒤 “수도하는 사람이 견성을 하려는 것은 본래 자리를 알아, 그와 같이 결함 없게 심신을 사용하여 원만한 부처를 이루는 데에 그 목적이 있나니, 이는 목수가 목수노릇을 잘하려면 잣대가 있어야 하고, 용이 승천하려면 여의주(如意珠)를 얻어야 하는 것과 같다. 견성을 하려면 성리공부를 하여야 하나니, 성리는 내가 손을 내놔라 하면 손을 내놔야지 발을 내면 안 되는 것이다. 이제 내가 그대들에게 성리를 물어야겠다”하고 의두 요목을 하나씩 놓고 물었다. 제자들이 차례로 대답은 하나 갈수록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마지막까지 대답한 사람은 김기천뿐이었다. 그가 성리 설하는 것을 듣고 소태산은 흡족한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오늘 내가 비몽사몽간에 여의주를 삼산에게 주었더니 받아먹고 즉시 환골탈태하는 것을 보았는데, 실지로 삼산의 성리 설하는 것을 들으니 정신이 상쾌하다”며 이어 말하기를 “법은 사정(私情)으로 주고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저의 혜안이 열려야 그 법을 받아들이나니, 용은 여의주를 얻어야 조화가 나고 수도인은 성품을 보아 단련할 줄 알아야 능력이 나나니라” 이것이 새 회상이 생긴 이래 공식적으로 소태산이 제자에게 내린 최초의 견성 인가(認可)였다. 대중의 찬탄과 선망을 한 몸에 받으며 김기천은 견성 인가를 받았다. 우뢰와 같은 박수와 아울러 몇몇 여제자들은 벌떡 일어나 “우리 회상에 견성 도인 나셨다”며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 김기천은 주로 해탈 도리를 많이 설법했다. 소박한 화술, 간이 명백한 내용으로 교리 전반에 걸쳐 종횡 무진, 무애 자재, 사통오달로 법을 설했던 김기천은 문필에도 능해 많은 시문을 남겼다. 견성 인가를 받은 이후 후진들의 질의와 요청에 의해 초학자들의 교리에 바탕한 효과적인 한문 공부를 위해 《철자집(綴字集)》을 저술했고, 1933년(원기18)에는 교리 전반에 걸쳐 읊조린 의욕적인 장시(長詩) ‘교리송(敎理頌)’을 발표했고, 이어 ‘사은 찬송가’와 유명한 ‘심월송(心月頌)’을 남겼다. 심월송은 “저 허공에 밝은 달은 다만 한낱 원체로되 일천 강에 비치오면 일천 낱이 나타나고, 나의 성품 밝은 맘도 또한 한낱 원체로되 일만 경계 당하오면 일만 낱이 나타나니, 맘과 달이 둘이 오나 그 이치는 하나일세. 달 사랑하는 벗님네야 강 밑에 잠긴 달은 참 달이 아니오니 부디 그 달 사랑 말고 허공 달을 사랑하소”(《회보》 제24호). 그의 가사는 거의 전부 교리와 의식에 관한 내용을 읊었고, 산문은 자신의 수행과 관조에서 얻은 감각 감상들이다. 김기천이 후천 개벽에 관련된 의문을 소태산에게 질문한 내용이 《대종경》 변의품 32장이다. “김기천이 여쭙기를 선지자들이 말씀하신 후천 개벽의 순서를 날이 새는 것에 비유한다면 수운 선생의 행적은 세상이 깊이 잠든 가운데 첫 새벽의 소식을 먼저 알리신 것이요, 증산 선생의 행적은 그 다음 소식을 알리신 것이요, 대종사께서는 날이 차차 밝으매 그 일을 시작한 것이라 하오면 어떠하오리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럴 듯하니라” 했다. 김기천은 자신도 이미 하늘 이치와 인간 만사의 도리를 깨달았으나 자만함이 없이 대중살이 속에 모나지 않고 수선(修禪)에 힘썼으며 규율을 지키고 대중 앞에서 소태산에게 묻기를 서슴치 않았다. 그것은 자신보다 동지들의 미망을 타파해주고 싶은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대종경》 변의품 34~37장의 다음 내용이 바로 김기천과 소태산이 주고받은 것이다. “견성을 못한 사람으로서 정식 법강항마위에 승급할 수 있나이까” “승급할 수 없나니라.” “보통급에서 항마위에 오르는 공력과 항마위에서 여래위에 오르는 공력이 어느 편이 어렵나이까” “그는 근기에 따라 다르나니 혹 최상 근기는 항마하면서 바로 여래위에 오르는 사람도 있고 항마위에 올라가서 오랜 시일을 지체하는 근기도 있나니라.” “수도인이 공부를 하여 나아가면 시해법(尸解法)을 행하는 경지가 있다 하오니 어느 위에나 승급하여야 그리 되나이까” “여래위에 오른 사람도 그리 안되는 사람이 있고, 설사 견성도 못하고 항마위에 승급도 못한 사람이라도 일방 수양에 전공하여 그와 같이 되는 수가 있으나, 그것으로 원만한 도를 이루었다고는 못하나니라. 그러므로, 돌아오는 시대에는 아무리 위로 천문을 통하고 아래로 지리를 통하여 골육이 분형되고 영통을 했다 할지라도 인간 사리를 잘 알지 못하면 조각 도인이니, 그대들은 삼학의 공부를 병진하여 원만한 인격을 양성하라.” “법강항마위 승급 조항에 생·로·병·사에 해탈을 얻어야 한다고 한 바가 있사오니, 과거 고승들과 같이 좌탈입망(坐脫入亡)의 경지를 두고 이르심이오니까.”, “그는 불생 불멸의 진리를 요달하여 나고 죽는 데에 끌리지 않는다는 말이니라”. 김기천은 43세 되던 1932년(원기17)에 부산 하단지부가 창설되자 교무로 임명되었다. 정법으로 훈련받은 사람이 늘어나면서 교당의 토대가 점점 견고해졌다. 이어 부산 남부민동에도 김기천의 노력으로 수십명이 입교하여 교당을 설치할 수 있게 되었다. 1935년(원기20)에는 그의 교화에 힘입어 정법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초량 등지에도 많은 사람이 입교하여 바야흐로 부산지방에 큰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전망이 보였으나 우연히 장티푸스에 감염되어 부산 하단지부에서 1935년 46세를 일기로 열반했다. 그 당시 소태산은 서울에 머물며 금강산에 가기로 결정했었는데, 김기천이 위독하다는 병보를 듣고 즉시 총부로 돌아가 이재철을 문병차 부산으로 급파하는 한편 대중과 더불어 완쾌를 기원했으나, 열반의 비보를 받고서 “김기천은 나를 만난지 18년에 일호의 사심도 내지 않은 정진불퇴의 전무출신이요, 오직 희유의 공로자라 가는 기천이도 섭섭하려니와 우리의 한 팔을 잃었다”며 말을 마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1939년 8월 9일에 열반했다.
* 삼산종사님께서 견성인가를 받으셨던 일화를 적어봅니다.
원기 13년 어느 청량한 가을날, 대종사님께서는 총부대중들을 한자리(현 구조실)에 모아놓고 말씀하셨다.
"수도하는 사람이 견성을 하려는 것은 성품의 본래자리르 알아서 그와 같이 결함없게 심신을 사용하여 원만한 부처를 이루려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는 목수가 목수노릇을 잘하려면 잣대가 있어야 하고, 용이 하늘로 올라가려면 여의주를 얻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견성을 하기 위해서는 성리공부를 잘 해야 한다. 성리를 깨치면 곧 견성을 하는 것이요, 성리를 깨치지 못하면 견성을 할 수 없다. 오늘은 성리에 대해 물어볼 터이니 그동안 어떠한 깨달음이 있었는지 대답해 보아라."
대종사님께서는 여러 제자들을 둘러보며 문목(의두요목)을 하나씩 물었다. 제자들이 각자의 느낌대로 대답을 올렸으나 마음에 흡족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삼산 김기천에게 물었다.
"일체가 다 마음의 짓는바(一切有心造)라 하였으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마음이 우주 만물의 창조주란 뜻입니다. 인간 세상에 있어서 선악귀천, 염정이추, 시비장단, 청황적백이 모두 마음 때문에 그렇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부처와 중생, 선인과 악인,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충신과 역적, 효자와 열녀도 다 마음이 들어서 그렇게 된다는 뜻입니다."
"중생이 육도 윤회하는 것과 부처님이 생사해탈을 하는 것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중생은 부처가 어두워진 것이요, 부처는 중생이 깨친 것입니다. 중생은 무명번뇌와 삼독오욕 때문에 육도세계에 끌려다니며 온갖 죄업을 짓고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부처는 삼독 오욕심이 텅 비고 지혜 광명이 빛나 천만 경계에도 끌려 다니지 않고 육도세계를 자유자재하기 때문에 일체의 죄업에서 해탈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비몽사몽간에 여의주를 얻어 기천에게 주었더니 받아먹고 환골탈태하는 것을 보았는데, 실지로 기천의 성리 설하는 것을 들으니 정신이 상쾌하다. 법이란 사정(私情)으로 주지 못할 것이요, 오직 스스로의 혜안이 열려 반야지가 솟아나야 받아가는 것이다. 용은 여의주를 얻어야 조화가 나오고, 수도인은 성품을 보아서 단련할 줄 알아야 비로소 만능만덕의 큰 능력이 생겨난다."
이렇게 하여 김기천이 새회상 최초로 견성인가를 받게 되었다.
이때 대종사님의 수제자인 정산 종사는 영산에 있었다. 동산 문정규가 궁금해서 대종사님께 물었다.
"저희들이 일찍부터 송규를 존경하는데 그도 또한 경성을 하였는지요?"
"집을 짓는데 큰집과 작은집을 다 같이 착수는 하였으나, 한 달에 끝날 집도 있고, 혹은 일년이나 여러 해 걸려야만 끝날 집도 있다. 마찬가지로 송규는 시일이 좀 걸릴 것이다."
김기천이 처음으로 견성인가를 받을 때 같이 있던 이청춘 등 몇몇 제자들은 '우리회상에 견성도인이 나시었다.' 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이후로 대종사님 당대에는 좋은 법설을 들으면 춤추고 노래하며 법흥을 돋구었다.
* 삼산님 관련일화 한가지 더^^
어느 때 삼산 김기천님과 몇 사람이 길을 가다가 소낙비를 만났다고 합니다. 같이 가던 사람들이 비를 맞지 않으려고 뛰어가는데 삼산 김기천님은 평소와 같이 태연자약 한결같이 걸으셔서, 같이 가던 한 사람이 삼산님께 "이렇게 소낙비가 오면 빨리 뛰어가야 비를 적게 맞지요. 어째서 그렇게 황소걸음입니까?"하고 말씀하셨대요.
이에 삼산님의 대답은??
"피할 데가 없는 이곳에서 바쁘게 뛰어간다고 해서 비를 맞지 않을 수 있나. 뭣 때문에 뛰어가서 앞에 오는 비까지 먼저 맞을 것인가! 나는 천천히 가겠네. 자네들이나 급히 가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