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 [Gypsy, Gipsy]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Prosper
Merimee, 1830-1870)의 대표적인 작품 ‘카르멘’의
주인공은 자유분방하고 정열적인 집시 여자입니다.
이는 헌신적이요 동화되기 쉬운 귀여운 타입의 여자와
함께 다 같이 남성들에게 매력이 있는 형입니다.
그런데 카르멘이 속하고 있는 ‘집시민족’이란 주로
로마니(Romani)족을 일컬으며 유랑민족으로서 인도
북서부가 발상지이며, 15세기 초에 동유럽을 거쳐
유럽 전역에 걸쳐 흩어져 있는 유랑민족이지요,
그들은 인도 계통의 혈통을 이어받았고, 피부의 빛깔이
다소 검고 눈도 머리카락도 검으며 가지런한 하얀 이가
특출하게 아름답습니다.
처음에는 인도에 있다가 점차 서쪽으로 이동을 시작하여
소아시아를 거쳐 발칸 반도를 들어가 유럽 각지로 분산
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로마니’라고 부르지만 고장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명칭이 다릅니다.
‘집시’란 영국에서 붙여진 명칭으로 16세기경에 그들이
처음 영국에 나타났을 때, 이집트 사람(Egyptian)으로
잘못 보았으며 그것의 발음이 달라져 Gypsy 또는 Gipsy가
되었다고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광인과 사랑하는 사람과 시인은 한결같이 상상력으로 머리
가 가득 찼다. 넓은 지옥에도 다 들어가지 못할 만큼의
귀신을 보는 것도, 바로 광인이다. 사랑을 하는 자도 못지
않게 머리가 돌아서, 집시의 얼굴도 헬렌처럼 아름답게 본다.
-제5막 제1장-
마지막 행의 원문은, ‘See Helen's beauty in a brow of
Egypt’로 되어 있으므로 직역을 한다면 ‘이집트의 사람의
얼굴’이 되지만 사실은 집시의 얼굴을 의미합니다.
프랑스에서는 보에므(보헤미아 사람)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아마 집시들이 먼 보헤미아 근처에서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
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예술가적인 분방한 생활을 의미하는
‘보헤미안 라이프’라는 것도 알고 보면 ‘집시와 같은
자유 방랑의 생활’에서 생겨난 말로서 보헤미아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지요,
한편 독일에서는 ‘치고이네르’, 스페인에서는 ‘히타노’
프랑스애서는 ‘보헤미안’이라 부릅니다.
그들 집시는, 여러 가족이 한 떼가 되어 마을로 전전하며
유랑생활을 합니다. 바구니를 짰는가 하면, 말을 매매하고
생활은 주로 천막이나 포장마차를 집으로 삼아 여기저기를
전전하며 음악사, 땜장이, 점술사 등을 하고 지냅니다.
유럽에 사는 집시들의 경우 그들 특유의 전통 수공예품을
만들어 팔거나, 이동 지역 사람들을 위해 점(타로카드점으로
불리는 카드점)을 치고, 곡예와 음악 연주 같은 일에 종사
하면서 생계를 유지합니다.
현재 전 세계 집시 인구는 2000만 명으로 추산되며,
유럽의 집시는 600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20세기 들어 많은 수가 정착하긴 했지만, 여전히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이동하면서 생활하는 집시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가족들끼리 집단을 이루어 이동하는데 몇 가족에서
몇 십 가족, 혹은 100명 정도의 무리가 유랑생활을 합니다.
예전에는 말을 타거나 걸어서 이동했으나 19세기 이후에는
마차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자동차로 이동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도벽이 있다고 하여 의심하는 눈길도 받아
왔지만 한편으로 음악이나 무용에 있어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분야에서 인류의 문화에 적지 않게 기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집시의 음악이라든가 무용은 민족 예술의 형태 그대로 전해
질 뿐 아니라, 재래의 정통적인 예술 속에 받아들여진 것도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바이올린의 명곡 ‘치고이네르바이젠’은 집시 계통의
명연주가 사라사테의 작곡이며 리스트의 ‘헝가리안 광시곡’,
브람스의 ‘헝가리안 무곡’ 등은 집시의 선율을 풍부히 살린
것들입니다.
또한 프랑스의 작곡가 비제의 유명한 가극 ‘카르멘’은
집시의 생활을 무대로 하고 있으며, 따라서 집시의 음악과
무용이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 푸치니의 가극 ‘라보엠’은 자유분방한 자들의 떼라는
뜻입니다.
정치와 권력이라는 기준에 본다면 거의 아무것도 아니
었던 이 소수민족이 예술의 세계에서는 야릇하고 특이한
빛을 가미해 준 것이 사실입니다.
- 2024년 6월 12일(水요일) 金福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