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지명 표기 변경
드네프르→드니프로, 하리코프→하르키우
우크라이나 지명 표기 변경
국어원 권고 따라 당분간 倂記
김미리 기자 입력 2022.03.03 03:00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은 지난 삼일절 페이스북에 “침략국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도시를 폭격하며 우크라이나의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의 언어, 역사와 문화를 왜곡 비하하면서 우크라이나의 국권을 빼앗으려고 한다”며 “현재 침략국인 러시아 발음으로 표기하고 있는 지명 표기를 우크라이나식 발음으로 표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예컨대, 현재 언론에서 ‘키예프’라고 표기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수도 이름은 러시아식 발음이다. 한국 땅인 독도를 일본식 ‘다케시마’로 표기하는 격인 셈이다.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 대원칙에 따르면, 외국 인명과 지명은 원지음(그 언어가 사용되는 원래의 지역에서 사용되는 발음)이 우선이다. 단 원지음이 아닌 제3국의 발음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은 관용을 따른다고 돼 있다. 우크라이나는 아직 국어원이 지명과 인명 표기 원칙을 정립하지 않은 나라 중 하나다. 하지만 관련 문의가 잇따르자 2일 국립국어원은 우크라이나 일부 지명의 현지 표기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본지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는 ‘키이우’, 서부의 ‘리비프’는 ‘르비우’, 북동부의 ‘체르니고프’ ‘하리코프’는 각각 ‘체르니히우’ ‘하르키우’, 동부의 ‘루간스크’는 ‘루한스크’, ‘드네프르강’은 ‘드니프로강’ 등 우크라이나 발음으로 표기하기로 했다. 다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처음엔 ‘키이우(키예프)’식으로 기존 러시아식 발음 표기를 괄호 안에 병기한다. 이는 국어원의 권고에 따른 것으로, 오는 14일 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에서 지명 표기를 확정·발표하면 이를 반영할 방침이다.
“독도가 다케시마 아니듯, 키예프가 아니라 ‘키이우’가 옳다”
[임지현 교수 특별 기고]
영국 의회·BBC·CNN 등 러시아어 표기 밀어내고 우크라이나 표기법 쓰기로
최신 무기·경제 지원 못지않게 철자법 연대·문화 공감 중요하다
임지현·서강대 사학과 교수 입력 2022.03.03 03:00 조선일보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군사작전을 명령한 중앙 유럽 시간 기준 지난 24일 새벽, 런던의 ‘한사드(Hansard)’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연대(連帶)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한사드는 영국 의회의 공식 토론 기록의 통칭이자 이를 제작하는 기관. 러시아의 침공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한사드 기록관들이 각종 문서에 러시아어 대신 우크라이나어로 표기한 지명(地名)을 쓰기로 했다는 내용의 메일이었다. 예컨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Kiev)도 앞으로는 원래 표기와 발음인 키이우(Kyiv)로 기록하겠다는 것이었다. 마리우폴, 하르키우, 르비우, 드니프로, 크라마토르스크 등 종전 러시아식 표기를 밀어낸 우크라이나 철자 지명들이 낯설게 느껴졌지만, 그 속에 담긴 연대의 우의(友誼)는 무척 따듯했다.
그날 이후 BBC나 CNN의 우크라이나 침공 속보를 좇다 보니, 어느 순간 이 매체들도 러시아어 대신 우크라이나어 표기를 사용하기 시작했음을 알게 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이 뜻대로 되지 않겠지만, 일시적으로 몇몇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한다 한들 전(全) 세계 언론이 우크라이나어 지명을 사용하는 한 그 지역들은 영원히 우크라이나로 남아있을 것이다. 런던의 영국 의회 기록관들이 선언한 철자법을 통한 문화의 연대는 영국 및 미국 정부가 보낸 그 어떤 최신 무기나 경제 원조 못지않게 우크라이나 사람들 마음속에 길이 기억될 것이다.
한국에선 이와는 좀 동떨어진 일들이 벌어졌다. 언론의 심층 보도나 전문가 대담을 보면, 우리의 촉각은 이번 사태가 러시아에 대한 한국의 수출에 어떤 지장을 가져오고, 국제 유가 급등으로 경제의 외부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등에 온통 집중된 듯하다.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들 발언에서도 고통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 대한 연대 메시지는 별로 없었다. 정치에서 자국 중심주의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겠지만, 국경 밖 타자(他者)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나 그들을 향해 뻗친 연대의 손길을 기대하는 것은 요원한 일일까.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한 사회의 문화적 품격은 ‘국력’과 ‘돈’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자존감과 역사 의식, 집단적 기억 같은 것으로 구성된다. 이는 ‘실존적 안보(ontological security)’ 개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중국과 벌이고 있는 고대사 논쟁이나 한복, 김치의 기원을 둘러싼 논쟁 등 집단 기억과 역사의식이야말로 국제적 갈등과 평화, 화해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다. 이것이 실존적 안보의 실체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대해 정치 초보의 업보라는 식으로 발언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나, 강력한 국가만이 안보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의 인식이 마음에 걸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이 집권해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지원을 쏟아붓는다고 해도, 런던의 기록관들이 표시한 문화적 연대만큼이나 우크라이나 사람들 마음을 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화해, 보편적 인권 역시 이웃 나라 지도자의 개인적 자질이나 국가의 힘으로만 환원될 수는 없다. 사람들의 감정 선을 건드리고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폭발하는 기억과 역사에 대한 섬세한 이해와 창의적 혜안만이 평화와 공영을 보장할 것이다.
March 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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