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봄 집사람과 한국을 방문 했을때 친구를 통해서 알게된 국민학교 동창회 ~~
이 동창회가 제가 역이민을 결정하게된 결정적인 동기가 됐습니다.
어느날 연락이와서 만난 소꼽 친구와 소주한잔 하면서 얘기를 나누던중 제가 다니던 국민학교 동창회가 무척 활발 하다고
저보고 한번 연락해 보라고 권하더군요.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별 관심이 없었는데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약간의 호기심이
생기긴 하더라구요. 다음날 전해받은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더니 반갑다고 당장 내일 번개를 하잡니다. 얼떨결에 그러자하고
다음날 어색함을 무릅쓰고 장소에 도착하니 웬걸~ 어색할 틈도없이 웬 아줌마 아저씨들이 야~ 반갑다 하면서 달려 듭니다 ㅋ
십여명이 모였는데 다행히도 6학년때 같은반 친하던 아이들이 6명이나 돼서 정말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렇게 술도 마시고
노래방도 가고 어릴적 애기도 나누고 하니 미국에서 일만하며 살던 나에게는 신세계를 겪는 것만 같더군요.
그렇게 한국에 머무는 동안 수차례의 번개를 하면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다시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와서 생활을 해야 하는데 어라? 뭔가 이상해 졌습니다 제가요~~
갑자기 미국에서의 생활에 회의가 들기 시작 하면서 머리속에는 온통 한국 생각밖에는 안드는 겁니다.
버벅거리는 영어지만 장사하는데는 별 무리가 없었는데 갑자기 그게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장사를 하다보면 별의별 손님이
있는건데 그마저도 새삼 스트레스로 다가 오면서 급기야는 한국으로 가고싶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부터는 온통 머리속에 한국 생각 밖에 안들고 마음이 싱숭생숭 안정이 안됩니다 ㅋ
그러던중 아무 기대없이 집사람에게 넌즈시 한마디 던졌습니다.
유리엄마 우리 이제 한국에 가서 살을까? 그랬더니 집사람 대답이 '허기야 애들 다 컸으니 그래도 괜찮겠지뭐' 하는 겁니다 대박 !!
이때부터 제 머리속은 바빠지기 시작했죠. 제성격이 뭘 결정하면 번갯불에 콩구워 먹듯이 후다닥 해버리는 스타일 인지라
바로 준비 작업에 들어 갔습니다. 그래도 역이민 이라는 것이 그리 간단치는 않은 것이기에 나름 신중하기는 했습니다.
먼저 검색을 통해서 알게된 역이민 카페에 가입(2012년5월)을 해서 역이민을 하려면 얼마 정도의 자금이 필요할까요 라는 글을 통해 어느정도 정보를 얻고 그 다음 문제가 결혼전인 두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였는데 마침 둘째인 아들애가 교회에 장로님 소개로 한국에 언어 자원 봉사를 1~2년 다녀 오겠답니다. 미국 어떤 재단에서 하는 프로그램인데 다녀오면 자기 커리어에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저한테는 얼마나 땡큐 입니까 ㅎ 그럼 다음은 딸아이 인데 마침 딸애 한테는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는 목사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 빨리 결혼을 시키자 마음을 먹고 둘을 불러서 설교 어닌 설교를 했습니다. '너희들 사귄지도 좀 됐는데 연애라는 것이 너무 길어지면 결혼까지 가는게 어려운 법이다. 그리고 어쩌면 엄마,아빠가 한국으로 들어 갈지도 모르니 빨리 결혼을 하는것이
어떻겠니. 잘 생각 해보고 다음주에 다시 얘기 해보자' 참 말도 안돼는 얘기를 했는데 정말로 다음주에 둘이 찾아 와서는
결혼을 하겠답니다 ~ 이것도 대박 !! 뭐가 이렇게 잘 풀리지? 그래서 내친김에 ' 그래 잘생각했다. 그럼 말나온김에 상견례부터하자' 했더니 좋답니다. 바로 사돈될 분들과 통화하고 상견례 날짜잡고 드디어는 버지니아 애난데일 "설악가든"에서 상견례를 했습니다. 목사님이다 보니 가뜩이나 어색한 상견례 자리가 얼마나 조심 스러웠던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ㅎ
아무튼 조심스레 사돈되실 분들에게 제입장(역이민)을 얘기 했더니 흔쾌히 응해 주셔서 2달후 7월에 결혼식을 하는걸로 합의를 했습니다. 결혼 준비를 하기에는 너무 빠듯한 일정이지만 나는 돈만 줄테니 나머지는 너희들이 알아서 준비하라고만 했습니다.
다행히 아이들이 컨츄리 클럽에 예약도 하고 지들 친구들하고 바쁘게 바쁘게 움직이면서 잘 준비를 해서 결혼식을 잘 마쳤습니다.
이제 제 가계와 집사람 미용실을 어떻게 할거냐 인데. 집사람 가계는 아느 지인한테 팔기로 결정을 했는데 제가계가 문제 였습니다.
팔기에는 좀 아까웠습니다. 괜찮게 되는 가계였거든요. 한참을 고민하다 제딸에게 맞기기로 했습니다. 제딸이 대학 졸업후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고 도전 했는데 실패를 하더니 자기는 그쪽이 아닌거 같다며 다른 일을 찾고있던 중 이었고 가끔씩은 제가계를
도와주고 있었기에 가계를 해 나가기엔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죠. 딸아이도 좋답니다. 근데 그냥 넘길수는 없지요 ㅋ
버는것에 40%는 저에게 보내라 했습니다. 이미 다 스탁이 돼있는 쥬얼리샾이고 잘 해오던 가계기에 60%만 딸아이가 가져가도
훌륭하단 계산이 있었죠. 근데 요놈이 40%는 많다고 30%만 보내면 안되냐네요. 벌써 시집간 티를 냅니다 ㅎ 그러라 했습니다.
대신 처분할때는 다시 얘기를 하자 했구요. 집도 우리 가고나면 들어와서 모기지 내면서 살으라 했습니다. 이것도 나중에 팔게되면
다시 얘기하자 했구요. 이렇게되니 얼추 다 정리가 되더군요. 아무것도 없이 몸만 가면 됩니다.
아~~ 이제 날짜잡아 비행기표만 끊으면 됩니다 .
드디어 2012년 9월 11일 드디어 대한항공에 몸을 실었습니다.
우연히 알게된 국민학교 동창 모임이 이렇게 번갯불에 콩볶아 먹듯이
역이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ㅎ
지금도 11년이 넘게 친구들 모임을 잘 해오고 있습니다.
역이민후 한번도 후회없이 즐겁게 잘 살고 있지만
딱하나 아쉬운건 세명의 손주들을 자주 못본다는 겁니다 ~~ㅠㅠ
첫댓글 헐 그럼 역이민 하신지 19년이 넘으셨네요?
사시며 복을 얼마나 지으셨기에 그렇게 번개불에 콩 복듯이 쉽게 역이민 하셨나 생각합니다
아뇨 11년 좀 넘었죠 ~ ㅋ
아니 혼자서 미래에 사시면 어떻해요? 저희도 데려가시죠? ㅋㅋㅋ
@미쉘 아네~ 11년 ㅎㅎ 죄송합니다^^
순풍에 돗을 단듯... 만사일치가 되여~~~
역이민을 하셨네요. ^^
축하 합니다. ^^
운좋게 모든 여건이 딱딱 맞아줘서 생각보다 쉽게 왔습니다 ㅎ
저한테는 역이민은 환상의 단어.
손주 보러 자주 오시나요?
1~2년에 한번씩은 갔었는데 지금은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가 걱정돼서 2년째 못가고 있습니다 ㅠ
다음에는 역이민하신 분들이 손주 패키지를 만들어 같이 방문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겠습니다.
그럴수도 있겠네요 ㅎ
잘하셨습니다. 조용한 밤이면 내가 왜 여기있지 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습니다. 이곳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실행에 옮기신 버지니아2000님이 부럽습니다. 아주 잘하셨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잘한것 같기는 합니다.
아직 까지는 역이민에 만족 하고 있으니까요 ㅎ
버지니아님의 추진력에 감탄합니다.
이렇게 하니, 누이좋고 매부좋다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네요.
따님좋고, 아버지 좋고 입니다 ^^
맞네요~~ㅎ
결과적으로 서로 윈윈 했습니다.
숨도 안쉬고, 아니 못 쉬고 다 읽어 내려갔습니다. 실행력 과 추진력이 엄청 좋으십니다.
글도 술술 잘 쓰시네요.
계속 글 올려주세요
솜씨없는 글을 칭찬해주시니 몸둘바를 ~ ㅎ
그렇지 않아도 송삿갓님 한테 물어보려 했는데요,
글은 그냥 생각 나는 대로 쭉 써내려 가는데,
마무리에서 걸립니다. 글이라는게 마무리가 중요하고 어렵다는 제생각이 맞나요?
@버지니아2000 버지니아 2000님 물론 마무리가 잴 중요하고 어려운 거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뭐 백일장에 나와서 글 쓰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쓰고 싶은대로 쭉 쓰고 나중에 교정을 많이 하시는게 좋습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지는 않았는지, 적당히 호흡을 끊어 줄 때는 끊어줘서 간결하고 깔끔하게 읽히도록 하고요. 지금 쓰신 글 마무리도 잘하셨습니다. 자꾸 써 보는 게 제일 좋습니다. 그리고 글은 제목이 80%라고 합니다.
뭔가 호기심을 느끼게 하는 제목을 달면 독자들이 궁금해서라도 클릭을 할 수밖에 없지요.
이 글 제목도 예를 들면
[내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 또는
[나에게 역이민은 정말 쉬운 일이었다]
뭐 이런식으로 했으면 더 궁금해지지요.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주제넘게 오지랖을
부렸나 봅니다.
@송삿갓 오지랖이라니요 ~ 별말씀을 ~~
이렇게 한수 가르쳐 주시니 제가 감사합니다 ~~^^
어머님, 따님.. 아드님.. 사모님께 모두 좋은 결과를 갖고온 역이민 결정이었네요.
식구들모두 잘 따라와준것 보면 , 가장 역할을 아주 잘하신것 아니겠습니까.. 아뭏든 ,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 글, 사연, 동기 읽을 수 있어 좋습니다.
맞습니다.
가족중 누군가가 브레이크를 걸었으면
무조건 전진 하기가 싶진 않았을 겁니다.
고마운 일이죠~
제가 버지니아2000님을 닮았는지 아니면 님이 저를 닮으셨는지 추진력이나 결단력이 저하고 비슷한면이 번갯불에 깨볶는 실력이십니다. 요즘에는 콩은 너무 알멩이가 커서 콩은 안볶습니다.ㅎㅎㅎ
제가 카윤님을 닮았겠죠 ㅎ
친구들이 제앞에서 쉽게 여행얘기를 못꺼냅니다.
얘기 꺼내면 어떻게던 해야 하니까요~~ ㅋ
버지니아님의 역이민 스토리가
쪽집게 과외 방식으로 가슴에 뇌리에 감동을 주네요^^
기회가 되면 1990년 초에 뉴욕에서 서초동으로 역이민 하신 B 님의 스토리를 소개 하고 싶네요~~~
뉴욕에서 서초동 ~~ ㅎ 궁금합니다
결론은
이민도
역이민도
성공했다
라고 읽었습니다.
역이민을 꿈꾸는 분들에게 어쩌면 용기를 북돋워 주는 글이기도 ~.
성공이라고 봐주시니 감사~~^^
능금꽃님 같으신 분과 이웃도 되었으니 성공 맞습니다 ㅎ
엊 저녁 읽기는 첫빠따로 읽고. 댓글은 꼴찌가 됏군요 ㅎㅎ
제 딸은 제가하던거 안하겠다해서 팔아먹고 왔네요
그나저나 역이민 얘기를 난짝 요거 한장으로 땡치면 어뜩합니까 ?
댓장은 써야지 말입니다 ㅎㅎ
댓장씩 쓰면 역이민 포기하는 사람 늘어날걸요~ㅋㅋ
제가 경주님같은 내공이 없어서 요거 한장도
힘들긴 하는데요, 계속 시도 해보겠습니다 ㅎ
오우~추진력 갑이시네요
축하드려요 여건이 모두 버지니아님께 좋은 쪽으로 흘러가 모두 행복해져서 정말 다행입니다
저는 반대로 2011년에 미국에 왔어요
아이들 손주들과 헤어져 살다 이곳에 오니 어찌나 좋던지
더 바랄 것이 없네요^^
무모한 진행 이었지만 다행히도 착착 맞아 떨어져 줘서 감사했죠~
딱하나 제가 아쉬워하는 부분을 파스텔님은 누리시네요. 손주들 ~~~!
흥미진진,재밌게,감동있게 잘 읽었습니다. 친구따라 한국 강남길 잘 오셨구,머나먼 타향살아의 설움 이제는 고마다 잊으시고 행복한 삶만 가득하길 바래 봅니다^^
고맙습니다 순풍님~~ㅎ
날마다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 단숨에 내려 읽었습니다.
역이민하신 때가 50대초반이실때인데, 그때 은퇴하시진 않으셨겠죠.
그다음엔 어떻게 한국에서 다시 시작하셨나요.
궁금해 집니다. 속편 써 주실거죠..? :)
사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백수입니다 ㅋ
백수로 살기를 작정하고 진행 한거 거든요.
나중에 백수 이야기 한번 올려 보겠습니다 ㅎ
@버지니아2000 그때 이미 은퇴준비가 다 되신 것이었군요. 성공적인 삶이셨네요. 대단하십니다.
결과가 좋으니 성공하신 거 맞습니다, 추진력이 대단하시니 성공은 안봐도 비디오지요
50대 초반에 다들 정리하시고 오실만큼 열심히 살았기에 가능했던 거지요.
저 같은 60까지 죽어라 노가다 일하고 돌아오려고 했는데 브레이크 거는 사람이 있어서 10년 가까이 늦어진 겁니다.
그때 돌아 왔다면 서울 근처에 자리를 잡았을텐데 아쉬움이 있지만 현재는 만족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늦어지신 만큼 더 열심히 다니시며 즐기셔야
되겠습니다 ㅎ 저는 원래 계획은 청주가 아니라
훨씬 더 밑으로 내려 가서 바닷가 근처에 있고 싶었는데 그게 뜻대로 안돼서 아쉽습니다.
모든 일들이 순탄하게 잘 풀리셨네요.
형통의 복을 받으신것 같습니다.
살아가시는 일상 이야기도 재미있을것 같습니다.
풀어 주세요...
올리신 글만 보면 엄청 간다히 역이민 하신것 같은데 사실은 얼마나 복잡햇을까 생각해봅니다.
혼자 온 저두 정리할게 너무 많아 고민을 몇년을 햇드랫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