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나’와 만물과 동행하는 자성적 진실 --노신배 시집 『능인의 허튼소리』 김 송 배 (시인. 한국현대시론연구회장) 1. ‘나’에 대한 인식과 존재론적 진실 현대시의 중요한 시점(視點)은 시인이 지향하는 사유의 정점에서 투사(投射)하는 인생론에서 착목(着目)된 대내외적인 심리의 변환이 주제로 형상화하는 시법을 많이 대하게 된다. 이는 그 시인이 영위해온 삶의 형태나 형상이 자신의 궤적(軌跡)에서 창출된 이미지가 재생됨으로써 새로운 시적 세계를 흡인하는 계기가 마련되고 거기에서 집약하는 인간적 혹은 자연관에서 감응하는 시적 진실이 창조되는 것이다. 여기 능인 스님이 상재하는 시집 『능인의 허튼소리』를 일별하면 자신의 사유(또는 정서)가 간장 먼저 머무는 곳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인간 존재의 문제에 깊이 천착하면서 그 해법을 탐구하고 있다. 능인 스님은 속명이 노신배로서 한국불교 금강선원에 출가하여 현재 행복사 주지로 재임하는 승려시인이다. 그의 풍모와 인품이 통상적인 우리 일반 시인과는 차이가 돋보인다. 그는 불가에서 온 천지간의 유상무상(有象無象)에서도 오로지 인본적(人本的)인 추구의 진선미(眞善美)의 구현에 심혈을 쏟는 것은 시에서 탐구하는 주제와 동질적인 정감으로 현현하는 시법을 이해하게 된다. 일찍이 대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외쳤다고 한다. 바로 ‘나’에 대한 인식이다. 자아를 깨우치는 교훈이다. 우선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선각자의 보편적인 메시지이지만 능인 스님은 시를 통한 대각(大覺)의 기반을 구축하고자하는 기원이 흐르는 의식세계를 감지하게 된다. 그는 이미 ‘시인의 말’에서 ‘번뇌 망상으로 어리석어 / 아픈 마음의 선율을 타고 맺는 감성의 열매, / 시는 나에게 화두이며 수행의 한 부분으로서 / 시집 허튼소리가 울림으로 스미되 / 진정 허튼소리가 아니기를 바란다.’는 여망의 일단을 피력한 바와 같이 시와 그가 접맥하는 생(生)의 지향점을 흡인하고 있어서 수행이서 감득한 ‘화두’들이 진정한 음률로 현현되고 있는 것이다. 나라고 하면 내가 아니고 너라고 해도 옳지 않다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닌 형상 없고 이름 없는 한 물건도 아닌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전문 우선 능인 스님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중대한 의문에서 ‘나’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여 그가 평소에 간직한 인생(혹은 삶)의 진실을 탐색하고자 한다. 그는 ‘나도 아니고 / 너도 아닌 // 형상 없고 이름 없는 / 한 물건도 아닌’이라는 어조가 단정적인 결론의 적시는 아직도 자신을 궁극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정황이다. 그는 이러한 의문형 시법은 자아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그의 비범한 사유(思惟)가 창출하는 인간의 진실이라는 대명제의 실현을 위한 시적 원류로 간과(看過)할 수 없는 시법이다. 또한 그는 지나온 궤적에서 감응한 심리적인 반응이 인간 본연의 성정(性情)으로 자아 인식 구도를 설정하고 있으나 아직도 명확한 해법을 적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에게서는 다음과 같이 의문은 증폭되고 있다. 나는 누구인지 어디서 무엇 하러 왔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를 위한 삶인지 남을 위한 삶인지 살기 위해 먹는 건지 먹기 위해 사는 건지 먼 훗날 어떤 모습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전문 여기서도 ‘아무것도 모릅니다’라는 어조로 결론적인 단정으로 작품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어디서 / 무엇 하러 왔는지’ 그리고 ‘먼 훗날 / 어떤 모습으로 / 어디로 갈 것인지’를 우려하면서 내재된 그의 심리적인 반응이 더욱 확대되는 현상이다. 이와 같이 아직도 그는 ‘나’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작품 「잠」 전문에서 ‘달빛 가득한 / 호수 / 하얀 천으로 / 살포시 덮는다 // 마음은 / 밤이슬 적시는 산 능선을 넘고 // 몸은 / 천근 무게로 / 무념의 세계에서 / 나를 잊는다’는 ‘무념’의 세계에서 ‘나’를 응시하고 있어서 그의 의식의 향방이 어렴풋이 현시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작품 「여여하구나」 에서도 ‘형상 없는 내 모습이 / 우뚝하게 드러나서 / 삼천대천세계에 / 여여(如如)하구나’라고 무념의 의식에서 이제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들은 그가 부처님 앞에서 수행 중에 감득한 불교사상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드디어 ‘입술을 열면 / 진리 멀어지고 // 말을 하면 / 진리 / 그 끝을 알 수가 없네 // 생과 사도 요원(遙遠)한 / 호젓한 주막집에 / 무엇하러 왔는가 // 형상 없는 모습에 / 무명업식(無明業識) 배불리고 // 돌고 도는 법륜(法輪) 속에 / 나그네 되어 돌아가네( 「윤회」 전문)’라는 어조처럼 진정한 자아를 통한 자애(自愛)의 존재론적인 인식을 탐색하게 된다. 2. ‘영혼’과의 교감을 통한 생명체 감응 능인 스님의 시적 사유의 지향은 영혼에 초점을 맞추어서 교감하고 있다. 영혼과 육체는 모두 자기의 것으로 알고 그 모순에 허덕인다고 누군가 말했다. 일찍이 괴테도 ‘인간의 영혼은 항상 경작되는 밭과 같은 것이다. 아아, 나의 가슴에는 두 개의 혼이 살고 있다. 서로 갈라지려고 하고 하나는 억센 애욕에 사로잡혀서 현세에 집착한다. 또 하나는 이 현세를 떠나서 높이 영(靈)의 세계를 지향한다’라고 그의 저서 「파우스트」에서 말하고 있다. 우주 삼라(森羅)가 존재하기 전부터 시작된 삶의 터널에서 정신적 물질적 현실적으로 느끼고 접한 생명체 경험과 자성(自性)을 갈무린 영혼의 집성체 --「만물의 영장」 전문 능인 스님은 이 ‘영혼’에 대한 정의를 ‘경험과 자성(自性)을 갈무린 / 영혼의 집성체’라고 결론 내리고 있다. 그는 ‘존재’와 ‘삶‘’등의 ‘우주 삼라가’ 모두 ‘현실적으로 / 느끼고 접하는 생명체’임을 간파(看破)하고 있어서 영혼은 그가 수행하는 스님으로서 인간의 고뇌와 번민 등을 일탈해서 불국정토를 지향하는 신심의 발현이 영혼과 교감에서 수행 정진의 근본 원류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교감은 작품 「영혼 없는 젊음들」에서 ‘만물의 영장을 포기한 / 영혼 없는 젊음이다’라거나 작품 「설목의 사람」 전문에서 ‘긴 밤 / 하얀 털 옷 입고 / 침묵의 강으로 / 고요히 기다린다 // 여명으로 다가오는 손길 / 털옷 벗겨지고 / 회우의 정 뜨겁다 // 전라가 되어도 부끄럽지 않다 / 옷이 없어도 춥지 않다 / 정열적인 사랑 / 영혼마저 삼켜 버렸다’는 어조와 같이 사랑과 영혼이 대칭적으로 이미지를 적시함으로써 영혼은 생과의 상관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긴 세월 사모하는 마음 간절하여 영혼의 향기마저도 당신을 닮으려 했지만 함께할 수 없어 오늘도 향기 없는 그림자로 꿈속에서 당신과 하나가 됩니다 --「조화」 전문 이 작품에서도 만유(萬有) 대자연의 생성과 멸망 등의 이치를 말하는 이 ‘조화’가 ‘영혼의 향기’로 생성하여 ‘긴 세월’과 ‘꿈속에서’ 합일하려는 ‘당신’으로 분화(分化)하고 있다. 능인 스님의 영혼 찬양은 다음과 같이 다채롭게 형상화하고 있다. - 살을 에는 / 새벽 / 영혼 보에 쌓여 / 우주를 보듬어 낳다(「출생」 중에서) - 하늘은 눈물 가려 / 혼탁함으로 지쳐 쓰러진 / 영혼을 달래 안고 // 대지는 / 식지 않은 임의 몸 / 연민의 정으로 품는다(「눈썹달」 중에서) - 영혼 속에 있나 봐 / 말하지 않아도 / 깊은 속 읽고 있는 걸 보면 // 눈부신 당신은 / 나의 분신(「당신은」 중에 서) - 임을 만나 / 영혼마저 녹아내린 정에 / 천근 무게를 함께 한다(「대못 사랑」 중에서) - 쉬어버린 목 / 기다림에 지친 / 영혼 / 눈물도 메말라 / 고요 속에 잠든다 (「테너 색소폰」 중에서) - 기쁘면 웃고 / 슬프면 운다 // 좋으면 좋다 하고 / 싫으면 싫다고 한다 // 스스로 / 만들어 가짐을 모르고 // 끝없 는 / 행복을 찾아 헤매는 // 여물지 못한 영혼 (「중생은」 전문) 이처럼 능인 스님은 중생들의 삶속 애환에서도 애절한 절규로 영혼과 교감한다. 일찍이 하이데거가 말한 바와 같이 시는 명백한 현실에 비해서 무엇인가 비현실적인 꿈같은 느낌을 일으키지만, 그 시인이 말하고 그 시인이 이렇다고 긍정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현실인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 능인 스님과 정적인 담론이 지속된다면 현실적 삶에서 꿈꾸는 이상(理想)의 영혼세계를 실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을 상상화 하는 꿈을 아름다운 옷 입혀 글과 영혼이 하나가 되어 우주를 통째로 삼키되 둘이 아닌 하나가 되어야 소리 없는 소리로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것 -- 「글이란」 중에서 능인 스님은 다시 인생문제 즉 생(혹은 존재)에 대한 문제가 우주와 교감할 수 있다면 바로 ‘글과 영혼이 하나가 되어’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것’의 존재가 명징하게 생성하게 된다. 그는 ‘사실을 상상화 하는 꿈’이 ‘우주를 통째로 삼’킬 수 있는 영혼으로 형상화할 때 비로소 그가 이런 점을 상기하면서 영혼과의 인생론이 글(시)로 승화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일찍이 불란서 시인 볼테르의 말대로 시는 영혼의 음악이며 보다 더욱 위대하고 다감한 영혼들의 음악이라고 한 말과 호라티우스의 시론에서도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모자라며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서 듣는 이의 영혼은 뜻대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언지가 새롭게 들리기도 한다. 3. 궤적을 통한 ‘삶의 꿈’과 ‘삶의 무게’ 현대시 창작의 주안점은 대체로 그 시인이 살아온 삶의 궤적에서 회상되면서 반추하거나 재생하는 이미지가 바로 그 시인의 진실(주제)로 승화한 한 편의 작품으로 창작되는 것을 흔하게 대할 수 있다. 여기에서 괴테는 말한다. 삶의 기쁨은 크다. 지각 있는 삶의 기쁨은 더욱 크다라고. 능인 스님도 예외일 수는 없다. 출가한 승려의 삶에서는 반드시 지각 있는 삶의 기쁨이 있다. 물론 오욕(五慾)칠정(七情)에 따른 다양한 심적 물적 궤적이 있겠으나 그가 일생을 지향하는 불심(佛心)에의 진실이 외적인 삶에서 뿐만 아니라, 내적인 심저(心底)에 깊이 각인(刻印)되어 있는 행적들이 작품으로 현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삶으로 늘어난 / 끈과 매듭 / 끊을 없고 / 풀 수도 없다( 「천륜」 중에서)’는 어조로 현세의 삶에 대한 고뇌가 적나라하게 표현됨으로써 그가 탐구하려는 ‘인생꽃’은 ‘행복한 듯 고뇌에 찬 / 생의 옷자락 / 여명의 꽃으로 핀다( 「인생꽃」 중에서)’는 인생론을 정리하고 있다. 희미한 그림자 밟고 걸어온 길에 한 방울 두 방울 눈물로 쌓인 정 얽히고설킨 사연 곱게 물든 잎새 한 잎 두 잎 쌓인 들녘 돌아보는 뒷모습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삶의 무게에 울고 있다 --「걸어온 길」 전문 보라. 능인 스님은 ‘희미한 그림자 / 밟고 걸어온 길’을 시적 상황으로 설정하고 여기에서 ‘얽히고설킨 사연’을 재생한다. 거기에는 ‘눈물로 쌓인 정’과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공존하면서 ‘삶의 무게’를 무겁게 하고(울고) 있다. 이러한 삶의 연속은 이승을 떠날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능인 스님은 수행이나 참선과 포교 등 불교와 연관된 선시(禪詩) 등으로 우리들의 공감을 유로하는 경향의 작품은 보이지 않고 실생활(real life)에서 탐색하는 인간들의 고뇌나 갈등 같은 문제가 주제로 투영되는 시법으로 그의 시세계를 정립함으로써 그의 숭엄한 인본주의의 실현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의 고뇌는 바로 ‘행하면 / 내가 죽고 / 행하지 않으면 / 중생이 죽을 때 // 수행승아// 그대는 과연 / 어떻게 할 것인가( 「수행승의 고뇌」 전문)’라는 함축된 어조에서 명징하게 그의 주제의식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세월을 등에 업고 외나무다리 건널 때 살을 에는 모진 바람도 손 내밀어 잡는다 발자국마다 고인 눈물은 달빛 타고 내린 지친 낙엽 위로 별빛 쏟아지는 소박한 꿈을 심는다 --「삶의 꿈」 전문 이 작품에서도 우리들이 정감으로 수용할 수 있는 이미지는 ‘세월’과 ‘꿈’이 상호 동행하면서 교감하는 이미지는 우리들의 삶에서 직접 겪을 수 있는 ‘살을 에는 모진 바람’과 ‘발자국마다 / 고인 눈물’ 그리고 ‘달빛 타고 내린 / 지친 낙엽’ 등으로 분화해서 ‘별빛 쏟아지는 / 소박한 꿈을 심는다’는 참으로 소박한 동심적(童心的)인 꿈(기원)을 투영하고 있다. 그는 다시 ‘마음은 / 살아 있음이다 // 사대의 모습으로 / 존재함이다 // 대화가 있다 / 흔적 남긴다 // 뜰 안에 꽃 피어 / 향기 가득 / 봄날에 취한 /삶의 주인공이다 ( 「삶의 주인공」 전문)’라는 삶의 중심축에서 삶을 교감하지만 ‘굴곡의 삶 / 아랫목(「생일」 중에서)’ ‘외진 길 접어드는 / 삶의 그림자(「방랑자」 중에서)’ 그리고 ‘이마를 타고 흐르는 / 삶의 흔적 / 지친 영혼의 아픔(「아버지 어깨에」 중에서)’이지만 ‘삶의 길도 / 함께 간다(「고독은」 중에서)’는 인생행로를 적시하고 있다. 이러한 번민들이 이제 ‘꿈 개척하는 / 삶의 길동무(「친구들」 중에서)’로서 ‘삶의 꽃밭에 씨를 뿌렸다 / 깨알 같은 상념 / 돋는 새싹 // 세파에 여물지 못한 마음 / 밑거름 주었다 / 아름다운 꽃 피울 수 있게 // 모래알 같은 일상 / 실바람 타고 흐른다 / 혼탁한 세상 아름다운 향기 되어 // 잔잔한 미소로 바라본 / 인고의 세월 / 행복의 열매 맺는다(「행복의 열매」 전문)’는 삶의 애환이 ‘행복의 열매’로 귀결하는 시법이 우리들의 공감대를 확산하고 있다. 그래서 에머슨은 삶은 실험이다. 많은 시험을 할수록 좋다고 하지 않았던가. 4. 자연 투사와 서정적 자아 탐구 능인 스님은 자연과 더불어 오랜 수행을 해서인 자연 친화적인 시적 소재에 심취해 있다. 공초 오상순 시인이 자연은 그 자체 속에 본질적으로 예술적인 율동과 운명을 포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라고 한 말을 상기해보면 그의 정서와 사유에서 숙성되어 있는 자연관이 체질화해서 자연과 인간과의 동질성을 탐구하려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봄바람 손잡고 친구들과 오가는 사래길 코훌쩍일 때마다 불던 버들피리 땅거미 지는 동구 노을빛 타고 산 능선을 휘어 넘는 버들피리 그 소리 --「버들피리」 전문 우선 그가 심취하는 형상은 지천으로 널려있는 자연 사물에서 이미지를 창출하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이 ‘피리 소리’에서 재생하는 이미지는 오래된 추억으로 동심의 순정이 현현되고 있다. 이러한 자연과의 교감은 그가 흡인하는 시어에서 ‘봄바람’, ‘사래길’, ‘동구’, ‘노을빛’ 그리고 ‘산 능선’ 등이 안온하고 정감어린 서정적인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시각적인 이미지 외에도 ‘그 소리’라는 청각적 이미지도 어우러지는 복합적인 이미지의 시법이 한 폭의 산수화를 감상하는 듯하다. 이러한 시법이 서정시의 원류로 작용하는 것을 간과하지 못한다. 푸른 하늘 흰 구름 한가롭고 작은 새 지저귐은 평화로움 가득한데 바람은 시샘하듯 나뭇잎을 희롱하고 소나무 가지에 걸린 낮달은 선하품으로 졸고 있네 --「낮달」 전문 능인 스님의 시적 서정성은 계속된다.‘푸른 하늘’, ‘흰 구름’, 평화로운 ‘작은 새 지저귐’ 시샘하는 바람과 나뭇잎의 희롱과 ‘소나무 가지에 걸린 낮달’ 등이 자연 서정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낮달’ 주변에서 동류의 시적 감성으로 화폭에 담듯이 묘사하는 것은 현대시의 주제의식(지적인 요소)보다는 우리 인간들의 오관(五官)에서 창출한 복합적인 이미지들이 명징하게 현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가을 하늘 가슴앓이에 낙엽은 몸져눕고 먹구름 뿌리는 구구스러운 가을비에 고개 숙인 벼 이삭은 시름만 깊어 가는데 농부들 가을걷이에 참새들 생존의 눈물은 한숨 되어 흐른다 --「가을비」 전문 이와 같이 서정의 범주(範疇)에는 시간과 공간 개념에서 이미지가 적절하게 분사(噴射)하고 있다는 시법이 돋보인다. 시법에는 공간과 시간, 사물과 관념 등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서 한 편의 작품을 창작하게 된다. 여기에서도 ‘가을 하늘’, ‘낙엽’, ‘먹구름’, ‘가을비’, ‘고개 숙인 벼 이삭’, ‘참새들’ 등등의 게절의 향훈이 시간성의 시법으로 서정적으로 현현되고 있어서 정감을 고조하고 있다. 이러한 시간성과 자연의 해후(邂逅)는 작품 ‘봄’에 해당하는 소재는 「춘설」 「풀피리」 「꽃구름」 「꽃씨」 「분재」 「세월은」등에서 봄의 이미지를 만끽할 수 있으며 여름에는 「소낙비」 「비가 오면」 「7월은」 가을에는 「단풍」 「갈대」 「황혼」 그리고 겨울에는 「겨울길」 「군고구마」 등에서 진한 서정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작품 「햇빛 한 줄기」에서 ‘눈물겨운 아픔 / 물안개로 피어 오른다’라거나 작품 「물결」에서 ‘생존의 본능 / 사랑을 향한 손짓 / 젖은 몸 감싸 안고 우는 옷자락 / 녹아드는 산들바람’ 그리고 작품 「그 정이 좋다」에서도 ‘맑은 호수보다 / 혼탁한 연못 / 황량한 들판보다 / 무성한 숲 // 작은 마을보다 / 왁자지껄한 저잣거리 / 맑고 청명한 날보다 / 흐리고 눈비 오는 날’이라는 어조로 순정적인 그의 내면을 분사하고 있다. 대체로 서정시에서는 전통적인 자연관에 자연이 그 존재를 인간정신에 두고 있어서 자연은 인간의 정서나 우리 사회에 많은 혜택을 준다. 우리 시인들은 감상적 오류라고 하는 자연의 인격화에 시법을 탐구한다. 모든 자연을 자신 속으로 끌어와서 그것을 내적으로 인격화하는 것(이것은 동화(同化)라고 함)이고 또 하나는 자연 속에 자신을 상상적으로 투여하는 방식(이를 투사(投射)라고 함) 이 두 가지의 새로운 자연 개념으로 창작하는 경우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 이제 능인 스님 시집 『능인의 허튼소리』 읽기를 마무리 한다. 그가 ‘시인의 말’에서 ‘언제부터인가 시를 통하여 / 우주 삼라 유무성의 존재를 / 자성적 감성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 또 다른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다.’는 그의 비장한 심적 정리와 함께 기원의식을 조감하게 한다. 그의 구도적 수행은 작품 전체에서 인간의 존재문제를 구명하면서 진실을 탐색하는 시법을 읽을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시는 보이지 않고 / 마음속에 감춰진 / 소박한 꿈들만 / 나를 보며 / 미소 짓고 있다( 「시의 미소」 중에서)’라는 어조와 같이 능인 스님은 ‘나’를 탐구하면서 자성을 통한 존재의미를 인식하는 일과 영혼을 교감하면서 인간과 만물의 생명체의 존엄을 구가하고 있으며 그의 삶의 궤적이나 현존의식에서 투영하는 삶의 의미 그리고 자연 서정에서 인간의 진실을 탐색하는 시법들이 바로 능인 스님이 잔잔하게 들려주는 불심과 시심이 동류의 지향점인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실현을 위한 설법이 온 천지에 메아리지기를 기원한다.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