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 오 씨는 고용노동부 공무원입니다. 그는 얼마 전까지 근로감독관으로 일하면서 월급 안 주는 나쁜 사장들을 상대했습니다. 지금은 00지역 지청에서 예산과 인사 부문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밤 11시에 퇴근합니다. 주말에는 세종시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와서 내리 자다가 한 끼만 폭식합니다. 저는 10년째 그렇게 생활하는 오 씨가 너무 안쓰럽습니다.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너무나 많은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어서 일요일이 되면 또 사무실에 출근하는 삶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 씨에게 밥 한 끼를 또 사주고 싶어서 문자를 보냈습니다.
“밥은 먹었니? 지금 관사야?”
5월 1일에 문자를 보냈는데 어제까지 답문이 없었습니다. 그래, 쉬고 싶겠지. 사람 만나는 것도 일일 거야. 저는 답문이 없이 1만 지워진 카톡을 보다가 그가 푹 자길 바라면서 5일 어린이날 아침, ‘눈으로 만든 사람’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새 카톡이 와 있습니다. 오 씨에게서 온 것입니다. 카톡 울림이 여러 번 울렸습니다.
“신규 (공무원이 죽어서) 발인하고 오는 길이야…”
“너희는 좋은 사람이니까 오늘 가기 전에 (신규 공무원이) 좋은 곳으로 가라고 기도해 줘.”
“너희 기도는 하나님도 들으실 것 같다.”
저는 망연해져서 신나게 깔깔깔 웃는 아이들 뒷모습만 멍하니 보게 됩니다.
오 씨가 4월 29일, 아우어베이커리에서 양파와 베이컨이 가득 올려진 파이를 한 입 물며 화를 냈습니다.
“야, 일 년에 하나 들어올까 말까한 어마어마한 민원이 들어왔어. 그런 게 네 개나 들어와서 나 이번 주 내내 자정에 들어갔잖아, 관사에.”
국민 신문고에 민원이 들어오면 화면 상단에 빨간 불이 켜집니다. 마감 시한이 표시되는 것입니다. 본디 1주일 안에 해결하면 되지만, 보통은 나흘 안에 해결하라고 윗선에서는 민원 담당 공무원들을 닦달합니다. 사람 만나서 하소연할 틈도 없고 그런 성격도 아닌 오 씨가 불쌍해서 되묻습니다.
“뭔데, 또 어떤 인간이야.”
오 씨가 파이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는데 바닥 타일에 금이 갈 듯합니다. 깊고 무겁습니다.
“나한테 들어온 거면 차라리 괜찮아. 나는 괜찮아. 그런데 한 달 된 신규한테 들어온 거야, 이게.”
“신규를 조진 거야? 아, 진짜 야비하다.”
“그러니까! 아니, 얘가 지침에 나와 있는 내용이라고 해야 하는데 공문에 나와 있는 거라고 말을 한 거야. 공문에 대충 그런 내용이 나오니까 틀린 말은 아닌데, 이 새끼가 사실과 다른 내용을 말해서 자기를 헷갈리게 했다는 거야. 그러더니 과장을 바꿔라, 너하고는 얘기 못 하겠다. 그러잖아? 그래서 과장이 말했지. 일단은 죄송하다. 그런데 담당자가 신규라서 잘 몰랐다. 그리고 공문에 아예 없는 내용도 아니지 않냐. 이렇게 말했더니 과장하고 신규 포함해서 국 전체를 다 검찰에 고소했어.”
“신규가 많이 주눅들었겠네.”
“내 말이 그거야. 우리처럼 십 년 넘게 일하면 뭐 그럴 수 있잖아? 잘못 없잖아. 이런 일이 수두룩하고. ‘별 미친 놈 보겠네.’ 이러면서 털 수 있는데. 그게 되냐고, 신규가.”
오 씨도 함께 걸렸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타들어갑니다. 그런 악성 민원, 저도 받아봐서 압니다. 술 파티는 자기 자식이 벌여놓고 그걸로 학교에서 징계 받게 되자 저를 교육청에 고발했던 학부모, 고데기를 가져와서 학교에서 계속 머리를 다듬고 한없이 충전시키길래 불러서 그러지 말라고 했을 뿐인데 1시간 넘게 전화로 내게 쌍욕을 하던 학부모, 무엇보다 발문과 선택지, 보기 전체에 오류가 없는데 자꾸 접속 부사 하나를 걸고 넘어지며 답이 3개나 된다고 우기며 교육청에서 장학사까지 불렀던 학생…그때마다 일을 그만두고 싶었던 게 아니라 목숨을 끊고 싶었습니다. 그게 불과 몇 개월 전입니다. 저는 그 신규가 지금 얼마나 죽고 싶을지를 생각했습니다. 오 씨에게 부탁했습니다.
“너도 그럴 기분 아니겠지만, 꼭 걔한테 밥 사줘.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해 줘.”
“당연하지. 몇 끼라도 살 수 있지. 걔 그만두면 큰일 나.”
다음 날 오 씨는 신규와 밥을 먹었다며 식당 전경과 음식을 찍어 보내주었습니다. 그래도 두 사람은 마음에서 돌덩이를 몰아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상보다 더 신규 공무원은 고통스러웠나봅니다. 자신의 무능함 때문에 여러 사람을 곤란하게 했다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휴일을 앞두고 일을 그만둔 것이 아니라 삶을 그만두었습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교사나 공무원들은 말을 함부로 하면 다 자신에게 더 치명적인 부메랑이 되어 돌아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품위 유지의 의무도 지켜야 합니다. 그런 제약을 잘 아는 민원인들은 “녹봉을 받으면서 최선을 다하지 않고 무능하기까지 한 사람들”이라고 손가락질을 합니다. 손찌검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결재권자들 역시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함께 고발의 대상이 되거나 승진에 누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자기가 안 걸렸으니 알아서 하라는 식인 것 같기도 합니다. 악성 민원인을 만나지 않고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는 것이 시스템으로 보장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개인의 운에 달린 이런 상황이 너무 힘듭니다. 제대로 된 신규 직원 교육 없이 곧바로 현장에 투입된 사람들은 업무와 사무실이 돌아가는 사정을 익히기도 바쁩니다. 민원인들은 자신의 이익에 관한 한 아전인수로 해석하기에 좋은 자료들만 모아 와서 현장을 난장판으로 만들기 일쑤입니다. 한바탕 욕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홀로 떨고 있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말이란 “운이 없다 생각해라.”, “잊어버려라.”라는 말뿐입니다. 이 상황이 마음 깊이 각인된 사람은 트라우마를 안고 매일 납을 손끝에 매단 기분으로 현장으로 출근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눈을 피하고, 민원인을 마주치지 못한 채 신음 소리를 안으로 죽이며 묵묵해 보이려고 애를 씁니다. 다른 직군에 있는 부모, 친구, 형제에게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 좋은 직장에서, 나약하기는. 더 한 일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그런 상황은 생각만 해도 피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언제가 되어야 공감의 부재와 혐오의 표현이 가득한 직장이 사라지게 될까요. 일이 이렇게 될 때까지 당신은 뭐 했냐는 비난은 언제쯤 가야 사람들이 하지 않을까요. 그 신규 공무원이 제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 같이 느껴져 하루종일 공허합니다. 용기를 내어 늦은 숙제를 하기로 결심한 것도 이 청년을 깊이 애도하고 싶어서였습니다.
부탁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고용노동부에서 적응하기 위해 애썼던 그 청년이 부디 저 세상에서 편한 마음으로 웃을 수 있기를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젊은이의 명복을 빕니다. 발인 당사자 와 그 신규는 다른 사람일거라 추측 했었는데... / “그런 좋은 직장에서, 나약하기는. 더한 일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 번듯한 직장에 다녀본 적 없는 저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 글을 읽으며. 김용균, 쿠팡 책을 읽은것 만큼. 비교가 무슨 의미일까 할 만큼 , 마음 아픕니다 / 저는 공무원은 아니지만 .그렇게 많은 민원인을 상대하지 않지만. 업무상 대화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하지만 위 글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 세상에 내가 제일 힘들고 ( 다른 사람 사정은 알수 없으므로 ) 나만 죽겠다고 . 느끼며 살았습니다 / 물러설 곳 없는 사람에게 마구 쏘아 대는 비난. 소송. 갑질. 어떻게 힘겨움을 나누고 힘을 모아야 할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 충격이 심한 글입니다. 댓글 달기도 미안 했습니다. // 무거운 글이지만 사이사이에서 친구 오씨와의 친밀함이 보입니다. 한 참을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왕팬 -
잠깐 낮잠을 자다 주황의 글을 읽고 잠이 번쩍 깼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김용균을 읽고 무거운 마음을 안고 있는데 또 이렇게 젊은이의 죽음을 접하게 되니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저는 이런 직장에 다녀본 적이 없어서 이런 구조를 잘 모르는데 공단에서 일하는 남편에게 주황의 글을 읽어주니 우리 남편 남의 일 같지 않다며 한숨을 쉬고 안절부절 하네요. 우리 남편도 민원 문제로 속 좀 끓였던 경험이 있거든요. 자기는 경력이 돼서 그나마 견딜 만한데 젊은 신규 사원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속상해 합니다. 친구의 일이라 주황은 더 충격이었을 것 같아요. 아, 정말 답답한 현실이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 사원의 가족에게도 위로를 전하고 싶네요.
참 우울한 어린이날입니다.
힘든 글 쓰느라 주황도 고생했어요.
쓰느라 애썼어요. 어느 때보다 글쓴이의 마음이 더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애도할께요.
이러한 일들을 글로 전해주어 고맙습니다.
주황이 조금 더 나은 오늘을 보냈기를 바라고, 삼가 고인을 기억하겠습니다.
+주황의 일이 너무 짧게 나와 조금 슬프네요. 별 일인데, 별일 아닌 듯 넘어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과거의 주황이 겪은 일이 상처에서 딱지가 생겨 회복기가 되고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먹먹합니다. 한 사람의 존재가 이렇게까지 악의와 괴롭힘에 시달려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그분이 얼마나 시달렸을지 가늠이 되지 않아 더 먹먹합니다. 청년 분의 명복을 기원하며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휴일을 앞두고 일을 그만둔 것이 아니라 삶을 그만두었습니다.' 마음이 무거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민원인의 민원이 가장 우선시되는 곳은 학교나 공공기관이 아닐까 생각을 하고 저도 글을 쓰다 멈췄어요. 저도 많이 겪었던 일이었으니까 썼지만 누군가에게 그건 사소한 일이다라고 비칠까 주저했어요. 오늘 주황글을 읽으니 정신이 번쩍 듭니다. 잘못된 민원과 대처는 더이상 개인이 운이 안좋아 겪고 그냥 넘어가는 단순한 문제는 아닌거 같아요.
(더이상 악성민원으로 상처를 받아 힘든 삶을 살거나 삶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 많이 목소리를 내야할 거 같아요. 글을 올리지는 못하겠지만 저도 글을 다시 들여다 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