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0일 월요일
고통없는 사랑은 없다
김미순
정호승 시인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시인이다.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맑은 시인인 것 같다.어려운 말이 하나도 없는데 전해지는 울림은 공간을 가득 메우는 듯 하다. 세상살이 속에서도 어린아이의 마음을 간직한 시인이 위대해 보인다. 예수님께서 어린이의 마음이 되어야 하늘 나라에 간다고 하셨는데 이 시인은 천국이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 같다.
나는 시를 쓴다고 쓰는데 정호승 시인의 시를 따라 쓰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어림없다. 시어가 관념적이고 어려워진다. 쓰면 쓸수록 길어지고 널부러진 설명이 많아진다. 깊은 사색이 부족하고 빨리 완성하려는 서두름에서 기인한다. 마음에 안들면 마음이 들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아무래도 모든 면에서 부족할 뿐이다.
정호승 시집은 우리집 서가에도 꽤 많이 자리를 차지한다. 내가 대학생 때부터 모아온 시집이어서 그 양이 대단하다. 나도 청소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시를 썼으니 정호승 시인처럼은 아니어도 비슷하게는 써야 하지 않을까?
정호승 시에서 영향을 받아서 나름대로 내 시를 써야지 하는 도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음은 이 산문집에 나와 있는 시 몇편을 옮긴다.
* 굴비에게
정호승
부디 너만이라도 비굴해지지 말기를
강한 바닷바람과 햇볕에 온몸을 맡긴 채
꾸덕꾸덕 말라가는 청춘을 견디기 힘들지라도
오직 너만은 굼실굼실 비굴의 자세를 지니지 않기를
무엇보다 별을 바라보면서
돈과 권력 앞에 비굴해지는 인생은 굴 비가 아니다
내 너를 굳이 천일염에 정성껏 절인 까닭을 알겠느냐
* 감사하다
정호승
태풍이 지나간 이른 아침에
길을 걸었다
아틈들이 프라타너스나 왕벚나무들이
곳곳에 쓰러져 처참했다
그대로 밑동이 부러지거나
뿌리를 하드로 도러내고 몸부림치는
나무들의 몸에서
짐승같은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키 작은 나무들은 쓰러지지 않았다.
* 쥐똥나무는 몇알
정호승
쥐똥만 떨어뜨리고 고요했다
짐지어 길가의 풀잎도
지붕 위의 호박넝쿨도 쓰러지지 않고 햇벝에 젖은 몸을 말리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내가 굳이 풀잎같이
작은 인간으로 만들어진 까닭을 그제야 알고
감사하며 길을 걸었다.
읽기에 오래걸려도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리는데 정말좋은 책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