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의 결여와 겸손
유학생으로 미국에 갔을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가서 학과장 교수님을 처음 방문하고, 이번에 새로 대학원에 입학하게 된 학생이라고 인사를 드렸다. 그분은 내게 몇 마디를 물어보시고는 "자네가 영어를 잘해서 다행이네.( I am glad that your English is quite good.)"라고 말씀을 해주셨다. 미국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영어에 가뜩이나 주눅이 들어있던 나는 반사적으로 "아닌데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No, I don’t think so.)"라고 대답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바보 같은 반응이었다. 교수님의 칭찬에 대하여,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넘어가면 되는 장면이었는데, 스스로 보기에 영어 실력이 형편없다고 생각해서 속마음을 말해버린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나보다 1년 먼저 입학한 인도인 선배의 발음이 너무 알아듣기 어려워서 그가 수업 조교로 들어가는 수업의 학부 학생들로부터 불평이 심했기에, 학과장님은 내 발음이 그나마 알아들을 수는 있어서 다행이라는 의미로 그런 말을 건넨 것이었다.
그 당시 나의 대답은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의 전형적인 반응이었다. 아무리 내 영어 실력이 형편없음을 인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상대가 긍정적인 말을 해주었을 때, 이를 내가 굳이 부인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누군가가 내 영어 실력의 부족함을 지적해도, 나는 자신에게 "잘할 수 있다."라고 내 편을 들어주고 격려해 주어야 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칭찬에 나 자신이 그럴 리 없다고 스스로 부정해 버린 것이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타인의 칭찬이나 예상외의 좋은 결과에 대해서는 운이 좋았다고 치부하고, 타인의 질책이나 나쁜 결과에는 자신을 탓하는 성향을 보인다. 부정적인 상황에서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고 스스로 위로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를 24시간 쫓아다니며 나를 지적하고 야단친다면, 나는 그 사람을 싫어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내가 나를 그렇게 대하고 있으니, 자신을 원수 같은 존재로 만드는 셈이었다.
우리는 칭찬을 받을 때 흔히 겸손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자신도 인정하는 장점에 대해서 칭찬을 들었을 때 고려해야 하는 점이다. 윤여정 배우가 아카데미상 수상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운이 좋아서 수상하게 되었다."라고 한 겸손의 말은 객석에 있는 사람들이 그녀의 실력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기에 모두에게 위트로 들려서 그 자리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만일 내 실력이 출중하니 수상이 당연한 결과라는 식으로 소감을 말했다면, 사람들에게 교만하다는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면 설령 그 사람의 실력은 인정하더라도 인성까지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내가 학과장님의 칭찬에 대해서 지나치게 과잉 반응하여 교만하게 행동했다면, 이는 더더욱 꼴불견이다. 하지만 내가 부족하다고 느껴서 자신감을 느끼지 못하는 부분에 대하여 긍정적인 언질을 받게 되면, 이를 전환점으로 삼아서 자신을 발전시키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사람의 칭찬까지도 스스로 부정해버리는 것은 그러지 않아도 잃어버린 자신감을 더욱 위축되게 하는 일이다.
우리는 보통 자신감을 회복해야 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재를 뿌리고, 겸손해야 하는 상황에서 교만함을 드러내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언제 내가 내 편이 되어 주어야 하고, 언제 겸손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성숙한 사람의 대열에 오를 확률이 높아짐을 기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