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화도 진화다?
[멸종했지만 진화합니다]라는 책에서는 생물다양성과 관련이 있는 진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진화와 관련해서 많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나는 그중에서 퇴화와 진화를 글로 한번 써보겠다.
먼저 퇴화하면 생각나는 동물들이 하나씩 있을 텐데 아마 펭귄이 가장 많이 생각나지 않을까 싶다. 뒤뚱 뒤뚱거리고 있고 자기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있을 때 가장 귀여운 펭귄은 왜 날 수 없을까? 라는 생각은 그래도 한 번씩은 생각해본 질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펭귄은 왜 날 수 없을까?
펭귄이 날 수 없는 이유로는 일단 키위 새처럼 천적이 없어서다. 이때부터 펭귄들의 날개는 퇴화하기 시작했다. 펭귄들의 선조는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바다에 가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펭귄의 날개는 점점 바다에서 헤엄치기 좋은 모양으로 바뀌고 발에는 물갈퀴가 생기는 등 자신의 환경에 맞게 진화했다.
또한 퇴화의 예로는 고래도 있는데, 고래의 조상은 원래 뒷다리가 있었는데 육상에서 생활을 하다가 경쟁에서 밀려 바다로 들어가 지금의 고래로 점점 진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둘의 공통점은 퇴화를 시작으로 점점 자신의 환경에 맞게 진화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럼 한 가지 의문점이 든다. 퇴화는 진화일까?
우리는 고래가 뒷다리가 사라진 것을 퇴화라고 하지 진화라고 하지 않는다. 펭귄도 마찬가지. 그런데 우리 인간이 예전에는 털이 많았다가 지금은 적어진 것과 꼬리가 사라진 것은 왜 진화라고 할까? 아니, 퇴화와 진화의 정확한 개념이 뭘까?
“퇴화란 생물의 몸 중 필요 없는 부분이 진화하면서 작아지거나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 퇴화도 결국에는 진화라는 소리다. 진화라는 큰 틀 안에 퇴화라는 것이 같이 들어있는 것이다. 애초에 퇴화라는 것이 자신에게 필요 없는 부분을 그냥 점점 없애거나 작아진다고 생각하는데, 퇴화라는 것은, 아니 진화라는 것은 꼭 필요하다.
만약 우리 몸 중에 쓰지 않는데 에너지가 많이 든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비효율적이다. 고래도 마찬가지다. 바다에서 생활하는데 뒷다리가 필요하지 않을뿐더러 에너지 소비가 크니 그냥 점차 없애버린 것이다.
나는 이점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와닿았다. 퇴화도 진화라는 말이 가만히 생각해보면 맞는 말인데 나는 딱히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진화와 퇴화를 다른 개념이라고 여태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진화라는 것을 진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라는 것 또한 마음에 와닿았다. 진화도 퇴화처럼 그냥 현재의 환경에 유리한 변이를 가지게 된 개체가 많이 살아남는 것이다. 진화를 그동안 진보라고 여겨왔는데 그렇게 여기지 말라는 것 또한 되게 흥미롭고 새로운 사실이였던 것 같다. [멸종했지만 진화합니다] 이 책에서는 진화에 관련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 진화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