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 PD의 말투는 굉장히 짧다. 어찌보면 담백하고 어찌보면 냉정하게 들린다. 이유를 묻자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는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기획도 혼자 하고, 섭외도 혼자 하고, 편집도 혼자 한다. 해외 콘텐츠 전문 프로덕션인 ‘김진혁 공작소’의 대표이기도 하다. 자신의 일을 하는 틈틈이 후배들의 작업도 돕는다. 시간이 중요할 만하다. 적은 인원으로 ‘A급’을 만들어내는 김진혁 공작소는 KBS와 SBS 스페셜을 비롯해 EBS의 <세계 테마 기행>과 같은 프로그램의 퀄리티를 보장하는 다큐멘터리 시장의 확고한 브랜드다. 서교동 사무실에서 김진혁 PD를 만났다.
: 지금 작업하고 있는 게 뭔가.
김진혁 PD: <세계 테마 기행>을 하나 작업해서 넘겨야 한다. 그것 말고 당장 준비하고 있는 것도 몇 개 있고.
: EBS에서 방송 중인 <세계 테마 기행>은 세 회사에서 번갈어가면서 작업하던데, 김진혁 공작소에서 맡은 건 지금까지 6편이었다. 앞으로 몇 편까지 제작하나?
김진혁 PD: 프로그램이 2학기에도 방송될 예정이라 열 편 이상 하게 될 거다. 곧 캄차카에 가야하고, 캄보디아도 잡혀 있고 필리핀에는 한 팀이 가 있고. 보통 2주 동안 찍는데 팀을 나눠서 움직인다.
“떠돌아다니는 거 좋아하다보니 해외 전문이 됐다”
김진혁 공작소에서는 EBS <세계 테마 기행>(사진), KBS스페셜 등을 작업하고 있다.
: 지금 김진혁 공작소에는 몇 명이나 일하고 있나.
김진혁 PD: 전부 다 해서 열 명 정도 된다. 우리는 해외 다큐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다. 하지만 취향이나 능력은 가지각색이다. 지금 우리가 주로 보내는 데가 SBS스페셜, KBS스페셜, 수요기획과 아리랑 TV 등이다. 해마다 만드는 편수는 다른데, 다큐는 1년에 네 다섯 편을 하고 <세계 테마 기행>은 3주에 너댓 편씩 작업한다.
: 1998년에 설립된 회사다. 10년 전 처음 해외 전문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뭐였나.
김진혁 PD: 원래는 MBC 드라마 AD였는데 사고 쳐서 잘렸다. 그리고 영화도 하고 이것저것 하고 살다가 SBS에 경력 공채로 들어갔다. 교양에 있다가 좀 놀고 싶다는 마음으로 예능으로 옮겼는데 IMF가 터졌고, 그때 감원 당했다. 마침 딸도 태어났고 먹고 살아야겠다 싶어서 만들었다. 해외 전문으로 한 건 내가 역마살이 껴서 그랬고. 떠돌아다니는 거 좋아해서 그랬다.
: 학부는 토목공학 전공인데 대학원은 사회학과다. 그리고 다큐감독이 되었는데, 특별한 계기 같은 게 있었나.
김진혁 PD: 이과가 아니었는데 아버지가 가라고 해서 갔다. 자격증도 못 따서 도저히 안 되겠다, 문과로 바꿔야겠다 싶어서 사회학과 대학원으로 갔는데, 적성에 안 맞았나보다. 졸업하고 MBC 취직했다가 일 때문에 사무직으로 있으니까 답답해서 사진이나 해야지, 홍대 미대 대학원 야간을 다녔다. <출발 비디오여행>을 하던 프로덕션에 들어갔다가 SBS 경력 공채에 붙으면서 다큐멘터리를 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다큐멘터리를 맡은 건 회사를 차린 다음이다. 여행을 잡았던 이유는 역마살 때문이기도 했고, 내가 <모닝와이드>에 400회 정도 출연했는데, 내 시각으로 본 여행기를, 약간 다른 시선으로 만들어서 틀었다. 그때 재미있었던 이유이기도 했고.
: 그럼 지난 10년은 어떻게 지나온 건가. 그때 혼자 일했던 회사가 이제는 업계 1위가 되지 않았나.
김진혁 PD: 평가, 그런 거 안 한다. 지난 10년보다 앞으로 어떻게 살까가 더 걱정이다. 그때는 나 혼자 있을 수도 있고 회사가 없어질 수도 있다. 우리는 단순하다. 좋은 다큐 만들어서 해외에, 여러 군데 팔아먹자. 그래서 지금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에도 우리 게 나오고. 태국에도 나오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랑도 했고. 그냥 먹고 살려고 했다. 일단은 가족을 부양하고 함께 일하는 PD들도 부양하고. 그 다음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그 속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얹어서 세상에 던지려는 생각을 했다.
“좋은 다큐는 솔직한 커뮤니케이션이다”
: 구조적으로 교양이나 다큐멘터리는 방송사와 외주제작사의 관계가 일방적이다. 그 안에서 지난 10년 간 어떻게든 생존했다면 존재 자체로 모범이 되거나 비전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김진혁 PD: 우리가 얻은 건 이거 하나다. 잘 만들면 아무 소리 못한다. 잘 만들어 던져라. 그게 제일 속 편하다. 그래야 별 거 없는 사람들에게 욕먹지 않는다. 공력에서 비교할 수 없는 사람에게 무시당하지 않는다. 독점적인 구조 안에서는 발전이 없다. 그래서 우리가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방송국은 거대 자본이고 모든 걸 가지고 있으니까 PD들이 덤비지 못한다. 작년에 독립PD협회가 생겼지만, 먹고 살기 바쁘고 작업량이 너무 많아서 전혀 도와드리지 못했다. 이 직업 자체가 노동량이 너무 많다.
: 힘들지 않았나?
김진혁 PD: 지금도 힘들다, 왜 안 힘들겠나.
: 후회는 안 했나.
김진혁 PD: 후회는 안 한다. 재미있다. 그러니까 계속 하지. 역마살도 있고. (웃음)
: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가장 필요한 건 뭔가.
김진혁 PD: 사실 지금 방송 다큐멘터리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고, 양식화되어 있다. 그런 건 곧 무너진다. 다큐는 시간이다. 시간에서 뭔가 나온다. 몇 십 년 동안 하나를 찍으면 그게 뭔가 나온다. 독기가 있어야 한다. 요즘엔 사적인 얘기가 국제적으론 더 잘 팔린다. 나의 이야기. 내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하면 잘 된다. 다큐는 객관적이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다. 하지만 가장 개인적인 게 가장 객관적일 수 있다.
: 그럼 좋은 다큐멘터리는 뭔가?
김진혁 PD: 다큐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상대방과 내가 얘기를 나누는데 그 얘기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 그리고 재미있게 내 얘기를 잘 전달해야 한다. 솔직해야 그런 게 가능하다. 그런 과정을, 관계를 보여주는 게 좋은 다큐라고 생각한다.
: 지금까지 다녔던 곳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어디인가.
김진혁 PD: 남미가 제일 좋았다. 사람들이 머리를 안 쓰고 단순하게 산다. 이번에 EBS에서 안데스에 관한 60분짜리 다큐 6부작을 하기로 했다. 11월에 방영할 거다. 그래서 곧 간다. 지금 한 팀이 가 있고, 8월 초에 떠나 두 달 정도 머무는데 같이 갈 사람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나는 TV다큐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김진혁 PD “다큐 찍으면서 안 가본 데는 거의 없고, 오지는 거의 다 가봤다.”
: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해야 가능한 직업일 것 같다.
김진혁 PD: 사람을 좋아하진 않아도 되는데 관심은 있어야 한다. 사람이 제일 재미있다. 사실 내 경우는 먹고 살려고 하다보니까 해외 프로그램 제작 1위가 되고 뭐 그랬지만, 작품의 깊이와 밀도, 작가정신 같은 거는 SBS <차마고도, 1000일의 기록>을 찍은 박종우 감독 같은 사람을 인터뷰하면 된다. 그런 사람이 진짜다.
: 김진혁 감독의 작품도 좋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다만 자신이 스스로 그렇게 말하는 게 불편한 건 아닌가.
김진혁 PD: 아니다. 나는 너무 다작을 해서 그렇게 말할 만한 게 없다. 우리는 촬영도 하고 글도 쓰고 편집도 다 한다. 이렇게 하다보면 세월이 가는 거고. 그 속에서 무슨 작품을 하겠나.
: 그렇다고 그게 작품이 아닌 건 아니지 않나.
김진혁 PD: 기본적으로 나는 TV다큐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말했지만, 그저 TV는 하루에 힘든 일을 마친 사람들이 재밌게 보는 거면 된다. 재미있으면 좋고, 재미에 메시지까지 있으면 더 좋겠지만 안 그래도 된다. 그렇다고 영화가 작품이란 얘기는 아니다. 그냥 ‘작품’, ‘작품’하지만 막상 실체를 들여다보면 아니란 얘기다. 사실 작품이라고 할 만 한 게 일생에 몇 개나 나올까. 한 사람이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을까. 매너리즘에 빠진 걸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
: 거의 모든 곳에 다 갔는데, 앞으로 더 가고 싶은 곳은 없나. 혹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뭔가.
김진혁 PD: 안 가본 데는 거의 없고, 오지는 거의 다 가봤다. 그냥 5년 째 찍고 있는 흑룡강의 조선족 가족 같은 장기 프로젝트가 몇 개 있다. 그거 말고 내가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사적인 다큐는 언젠가 하고 싶다. 사적이라는 게 꼭 내 가족이나 신변 얘기가 아니라, 내가 나레이터로 나오는 그런 다큐를 하고 싶다. 지금까지 한 거 말고. 당장은 2주 후에 캄차카에 가야한다. 다녀오면 바로 안데스로 떠나서 두 달 있다가 돌아온다.
: 가족들이 뭐라고 안하나.
김진혁 PD: 그냥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1년에 두 번 정도 식구들과 같이 간다. 이혼 안 당하려고. (웃음) 애들이 셋이다. 5학년, 2학년, 여섯 살. 일요일은 웬만하면 애들이랑 논다. 토요일까지 일하고 가급적 일요일은 아이들과 놀면서 보낸다.
“A급 사람들로부터 A급을 만드는 기술을 배울 수 있을 것”
: 원칙이 확고한 사람 같다.
김진혁 PD: 원래는 아니었는데, 많은 경험을 하다보니까 이렇게 되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정주영 회장이다. 그는 다 해봤으니까. 해보면 다르거든. 발로 안 뛰고 머리로만 글 쓰고 말하는 사람들 싫어한다. 말 많은 사람들도 싫고. 많이 겪어본 사람들은 다르다. 그러니까, 난 선수를 좋아하는 거다. 어떤 분야든 자기 일에 열심히, 어느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좋다. 그런 사람들은 자극도 되고. 처세 같은 것보다는 진짜 배려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 이제 정리해보자. 얘기를 들어보면 김진혁 PD는 지난 10년 동안 열심히 떠돌아다녔고, 먹고 살려고 하다보니까 열심히 한 거고, 열심히 하다보니까 잘 찍게 된 건가. 그게 나름의 경쟁력이 된 거다, 맞나.
김진혁 PD: 맞다. 그렇게 된 거다. 여기서는 실력만 있으면 먹고 살 수는 있다. 피곤하고 여러 가지 한계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
: 작업을 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가치가 있나.
김진혁 PD: 나는 아시아에 대한 애정이 많다. 서구식 교육을 받았고 서구 이데올로기에 물들어있지만, 그래서 우리나라 아저씨들이 아시아 사람들한테는 막말하고 백인들에게는 아무 말 못하지만, 나는 아시아 사람들을 사랑하고 존중한다. 그래서 취재하기도 더 편하다. 내가 좋아하니까. 나는 아시아가 많은 면에서 중심이 되거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의 기준도 그렇게 되면 성형도 좀 덜 하지 않겠나. <미인>이라는 다큐에서 그런 얘기도 다 했다. 아, 그리고 이 말은 꼭 해달라.
: 뭔가?
김진혁 PD: AD를 모집한다. 광고 좀 해 주면 좋겠다. 이 일을 좋아하고. 밤을 잘 새고, 외국어까지 잘하면 금상첨화다. 이번 8월에 안데스로 같이 떠날 사람이 필요하다.
: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김진혁 공작소가 줄 수 있는 건 뭔가.
김진혁 PD: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A급 선배들의 조언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니까 이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건, A급 사람들로부터 A급을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 그런 자부심은 가지고 있다. (웃음)
첫댓글 '나는 아시아가 많은 면에서 중심이 되거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저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바 입니다. 자기 좋은 일하면서 인생을 참 잘 사는 사람같아 보입니다. 지켜보는 사람마저 흐믓하지 않을 수가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