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7년 여름부터 1723년의 봄까지 바흐는 바이마르에서 100킬로쯤 북쪽에 위치한 도시 쾨텐의 궁정 악장으로 있었다. 쾨텐의 궁정에는 17명으로 편성된 궁정악단이 있어서 그는 이 악단의 지휘를 하거나 또는 영주 사실에서의 실내악에 가담하는 등 다망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이 시절의 작품에서는 교회음악을 거의 찾아 볼 수 없고 세속적인 기악곡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비롯하여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등 바하의 기악곡으로서 중요한 작품의 태반이 이 쾨텐시절에 작곡되었다고 추정된다. 그 원인이 궁정 악단의 지휘와 실내악 활동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며, 특히 이 악단의 멤버에 감바 주자인 크리스티안 페르디난드 아베르나 수석 바이올린 주자인 요제프 시피스 등의 명수들이 재적해 있었다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첼로를 위한 작품에서 성서(보물)라고도 할 수 있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전6곡)은 그의 쾨텐 시절의 작품으로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의 하나다. 이 작품은 1720년 경의 작품이라고 추정된다. 당시 바흐는 쾨텐에서 레오폴트 공작의 궁정 악장직을 맡고 있었는데, 이 시기(1717~1723)는 그의 생애를 크게 넷으로 나누어 볼때 아른슈타트 - 뮐하우젠, 바이마르 - 시대에 이른 제3기에 해당한다. 쾨텐시절의 가장 큰 특징은 바흐의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수많은 기악곡들이 집중적으로 작곡되었다는 것이다. 클라비어를 위한 평균율, 쳄발로를 위한 영국 모음곡, 프랑스 모음곡,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 등 그의 대표적인 기악곡들이 모두 이 시기의 작품들이다. 이른 루터파가 아니었던 그 곳 궁정의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 기악곡에 경도되어 있던 레오폴트 공작의 취향과도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바이마르 시절(1708 ~ 1717 ), 오르가니스트로서 연주와 작곡에 열중하면서 새롭게 접했던 이탈리아 기악곡(특히, 비발디 등의 협주곡)의 양식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괴텐시절의 음악적 환경에서 그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하겠다. 또한 바하은 이시기에 기악곡들 가운데서도 특히 무반주 곡의 작곡에 강한 집념을 보였는데, <첼로 모음곡,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플루트 파르티타> 등, 비록 이곡들이 그의 독창적인 양식은 아니라 할지라도 바하에 의해 비로소 하나의 양식으로 확립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선율악기로 반주악기가 따르지 않으면 그 표현이 단조로울 수 밖에 없는데, 바하는 악기가 가지고 있는 온갖 기능을 샅샅이 끄집어 내어 이러한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그 표현 수단을 극대화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무반주 곡들은 곡 자체의 예술적 가치뿐 아니라, 음악사적으로 뚜렷한 하나의 이정표 구실을 하고 있다. 이 무반주 첼로 조곡보다 30여년 전에 작곡된-여러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최초의 무반주 첼로곡인 가브리엘리(D.Gabrielli)의 리체르카레(Ricercare,1689), 그리고 약 200년 후에 작곡된 레거, 블로흐, 코다이 등의 무반주 곡들이 음악사에 있어서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쉽게 드러난다. 한편, 바하는 이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작곡했던 1700년대 초반은 아직 첼로라는 악기가 선율악기로서의 확고한 대중성을 얻지 못했던 시기였다. 즉, 비올라 다 감바가 선율 악기 역할을 하고 있었고, 첼로는 주로 콘티누오 악기에서 차츰 선율악기로 부상하던 과도기적 시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바이올린과는 달리 무반주 첼로곡에 대한 뚜렷한 모델이 없었다는 점에서도, 바하는 새로운 양식의 창조자라기 보다는 이를 적극 수용하고 종합하여 완성시키는 쪽이었다. 이 곡의 작곡 동기는 모호하다. 다만 쾨텐의 궁정의 감바,첼로 연주자였던 크리스티안 아벨(Christian Abel), 또는 크리스티안 베르나르트 링클리(Christian Bernhard Linglie)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지닐 뿐이다. 바하는 프로베르거(Froberger)가 정립시켰던 바로크 모음곡을 이 첼로 모음곡의 형식상의 기본 모델로 삼았다. 즉, 알르망드(또는 알망드; Allemande), 쿠랑트(Courante), 사라반드(Sarabande)와 지그(Gigue)를 중심으로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갈란테리아(Galanteria; 정형화된 고전적인 춤곡들 사이에 비교적 새로운 춤곡을 끼워 넣어서 한 판의 춤에 흥을 돋구는 구실을 함)로 모음곡 1,2번에는 미뉴에트(Minuett)를, 3,4번에는 부레(Bourree)를, 5,6번에는 가보트(Gavotte)를 각각 선하였다. 이 춤곡들은 전,후반으로 나뉘어서 전부 반복된다. 그리고 템포가 느린 사라반드, 갈란테리아 중 미뉴에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여린 박으로 시작하여 춤곡으로서의 여유를 준다. 이러한 일련의 춤곡들 앞에는 자유스럽고 즉흥성이 강한 프렐류드(Prelude)를 두어 각 모음곡의 성격을 분명하게 예시해 준다
이 모음곡에는 제1현을 A음에 조현한 것과 G에 조현한 것의 두 가지 원고가 있다. 거기에 따라서 일부의 음이나 운지법에 차이가 나타나지만 작품의 본질에 관한 문제는 아니다. 제 1곡의 전주곡은 느긋하고 무게 있는 기분의 4분의 4박자의 서주와 8분의 3박자의 활발한 부분으로 구성된 이른바 프랑스풍 서곡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어지는 춤곡 부분은 제5곡이 가보트(제1, 제2, 제1로 연주된다)인 것 외에는 다른 다섯 곡과 같은 배열이다. c단조 조성이 주는 심각하고 준엄한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2번 곡과는 대조적으로 외형적인 일면도 보여 주고 있다. 일종의 투쟁적인 성격이랄까?... 아니면 고고한 인품을 갖춘이의 열열함 이랄까?... 우선 전주곡(프랑스풍의 서곡의 형태를 취하고 있음)의 위용이 가져다 주는 중후함이 탁월하다. 이런 중후함과 신중한 정서는 각곡의 대비감과 맞물려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전주곡의 특징은 첼로 모음곡중 유일하게 푸가를 원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비탄적인 뉘앙스를 풍기며, 중반부 부터는 약간 활기를 찾은 느낌을 준다. 알레망드도 전주곡의 연장선에서 애절한 뉘앙스을 지속시켜주는 느낌이다. 쿠랑트는 무곡적인 활발함을 간직한 곡으로 도전적인 느낌을 준다. 사라방드는 비애의 정서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다소 염세적인 느낌도 전한다. 가보트와 지그는 곡 전체의 분위기치고는 활발한 편이다.
Bach Suites for Cello Solo No.5 in C minor, BWV1011
Yo-Yo Ma
1. Prelude,
이미 르네상스 시대부터 있었던 양식으로 주로 건반악기나 플류트를 위한 곡들이 많다. 16세기에는 <프렐류드와 푸가>처럼 다른 곡과 함께 연결되어 쓰이기도 했다. 춤곡들이 정형화 된 반면, 프렐류드는 자유스럽고 즉흥적이며 토카타풍, 카덴차풍의 요소도 가미되어 전체 모음곡의 성격 을 제시하고 있다. 그럼 파블로 카잘스가 파악한 전6곡의 전주곡의 특성을 보면 제1번은 낙관적(Optimis tic), 제2번은 비극적(Tragic), 제3번은 영웅적(Heroic), 제4번은 장중함(Grandiose), 제5번은 격정적( Tempestuos), 제6번은 목가적(Bucolic)이라 했는데 이러한 전주곡의 성격이 각 모음곡의 전체 분위기와 성격을 나타내고 이끌어가고 있다고 하겠다.
2. Allemande,
15세기 초, 독일 쪽에서 발생한 춤곡으로 그 역사가 길다. 대개 4/4, 또는 2/4박자이고 속도는 일반적으로 적당한 빠르기인 알레그로와 모데라토 사이다. 대략 1620년 경부터 모음곡의 제일 앞에 놓이게 되었고, 점차 춤곡으로서의 특성이 희미해졌다.
3. Courante,
달리는', '빠른'이라는 뜻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두 가지 스타일이 있는데, 이탈리아 식은 코렌테(Corrente)라고 부르며 이미 16세기 프리츠 윌리엄(Fritz William)의 버지널 북(virginal book; 건반악기집)에도 실려 있다. 3박자의 빠른 패시지가 특징이다. 프랑스식 쿠랑트 프랑스의 옛 춤곡 형식이다. 힘차고 생동감있는 주제를 바탕으로 전개되며, 전후반이 같은 리듬 패턴을 취하고 있다. 약간 느리며 3/2, 6/4박자로 폴리포니한 경향이 있다.
4. Sarabande,
가장 장중하고 위엄있는 곡이며 느린 3박자로 대개 둘째 박자에 무게가 실린다. 원래 안달루시아 지방의 민속무곡인 이 춤곡은 1650년경 까지만 해도 매우 속되고 외설스러운 빠른 춤곡으로서 한때 금지 당했던 시기도 있었다. 17세기 경부터 다소 느려지면서 품위있는 춤이 되었다.
5. Gavotte,
프랑스 지방의 산사람들을 지칭하는 가보츠(Gavots)에서 변형된 말이다. 대개 2/2박자 인데, 17세기초 궁중무로 수용되었고, 룰리(Lully)에 의해 베르사이유궁 발레의 핵심 부분으로 받아들여졌 다. 통사 가보트 1,2 즉 전,후반으로 짝을 짓는 데 후반부에는 가끔 뮈제트(Musette; 같은 음의 저음이 계속 울리는 것)가 나타난다.
6 Gigue
16세기 경부터 영국에서 유행했던 빠른 춤곡이다. 아일랜드에서 영국을 거쳐, 1635년 당시 영국 궁정의 류트 연주자였던 프랑스인 고티에(Gautier)에 의해 프랑스로 전파되었다. 프랑스에서는 부점 리듬, 넓은 음정 도약, 푸가적인 요소를 띠면서 발전하였고, 이탈리아에서는 빠른 경과구, 화성적인 구조를 바탕으로 발전하였다.
Gavotte I & II
Sydney ZumMallen- baroque cello
가보트 [gavotte]무용 17, 18세기 프랑스와 영국의 궁정에서 유행했던 농부들의 활기찬 키스 춤.프랑스 남동부 도피네 지방 토착민을 가리키는 '가보트'(Gavots)란 말에서 유래한 듯하다. 궁중 무도회에서 이 춤을 출 때는 브랑르(branle) 춤에서 따온 스킵 스텝으로 원을 그리면서 즉흥적으로 쌍쌍이 춤을 추다가 파트너에게 키스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뒤 더욱 격식을 갖추게 되면서 키스 대신 꽃을 교환했다. 18세기 프랑스 궁정에서는 정중한 스타일로 추었으나 나중에는 화려하게 바뀌었고 느릿느릿한 4/4박자 워킹 스텝의 3번째와 4번째 박자에는 윗박[上拍]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