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소망을 쌓는 삶 잠23:15-21, 딤전6:17-21
103kg에서 51kg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한 어느 아가씨가 방송에서
“숨이 막혀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숨쉬기가 불편할 정도로 뚱뚱한 어떤 사람이 병원에 찾아와서 자신의 고민을 말했습니다.
“선생님! 살이 많이 쪄서 숨쉬기가 곤란합니다.
살을 빼고 싶은데 좋은 방법이 어떤 방법이 있습니까?”
그래서 의사 선생님께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식이요법을 하는 겁니다.
한 끼에 빵 한 조각과 요구르트 한 병 그리고 버터와 쨈은 먹지 말고 마가린만 드십시오.”
이에 뚱뚱한 사람은 수첩에 의사 선생님이 처방해 준 내용을 모두 적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뚱뚱한 사람이 하시는 말씀,
“선생님! 이것 식전에 먹나요. 식후에 먹나요?”
역시 뚱뚱한 사람은 뚱뚱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답니다.
우리들은 육신이 뚱뚱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사모하는 영적으로 뚱뚱한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도 때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듣고, 외우고, 지켜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신령한 것들로
가득 채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해지고 뚱뚱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하나님의 백성, 국민, 자녀가 된 사람은
이에 합당하게 살아야 할 마땅한 의무와 권리가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된 사람은 국민으로서 마땅하게 살아야 할
4대 의무와 5대 권리가 있습니다.
외국에서 태어나서 자랐거나 한국에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외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나서 외국인의 신분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귀화,
또는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서 대한민국의 국적을 취득하고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있다.
대한민국의 국법, 곧 헌법과 그에 따르는 모든 국법을 준수하며 지켜야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가의 유익과 안위를 위해서 살아야 하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해를 끼쳐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지켜야 할 4대 의무,
교육의 의무, 납세의 의무, 국방의 의무, 근로의 의무를 잘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국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이것을 5대 권리라고 합니다.
5대 원리는 평등권, 자유권, 청구권, 참정권, 사회권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인간다운 삶, 행복한 삶을 살 권리가 있습니다.
이런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가 있고, 누릴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들은 말씀을 잘 지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와 도리,
권한에 대하여 말씀하기 위하여 축복과 저주라는 두 개념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저주를 받지 않고 축복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되겠죠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은총입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소망으로 미래를 열어간다는 것을 의미 이기도합니다.
신앙이란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절망의 현실에서 소망의 미래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참 신앙의 사람은 도우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깜깜한 밤 같은 어두움의 현실 가운데서도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처럼
소망을 바라보며 절망을 넘어 소망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유대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Victor E. Frankl)이 쓴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은 그가
독일 나치의 감옥에 끌려가 수년 동안 고통을 당했을 때의 경험한 내용을 담은 책입니다.
그 책의 내용 중에 1944년 성탄 전후, 그리고 1945년 신년 연휴 전 후 불과 2주 사이에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었던 유대인들 중에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당시 그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이번 크리스마스 쯤 되면 석방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가 크리스마스 추리를 켜놓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겠지.' 이렇게
기대를 하고 있다가 성탄절이 지났어도 전혀 석방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절망하여 마음이 병들기 시작했습니다.
절망 속에 지낸 수많은 사람들이 2주 사이에 죽고 말았습니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과도 같습니다.
절망스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축복을 받으면서 소망 중에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1.마음을 높이지 않고 겸손히 사는 삶입니다.
본문 17절에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定)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여기의 '마음을 높이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의
의미는 '자랑하다‘, ’교만하다'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마음을 높여 교만하게 되면 주님을 높이고 자랑하는 대신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자랑하는 자가 됩니다.
교만한 마음을 품고 사는 이 세대의 부한 자들은 하나님 없이도 성공할 수 있고,
잘 살 수 있고, 하나님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며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갑니다.
세상의 부(富)란 뜬구름과 같은 것으로 오늘 없다가도 내일 있을 수 있고,
오늘 있다가도 내일 연기처럼 날아가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하다고 해서 비관할 필요도 없고, 부자라 해서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미워하시고 심판하십니다.
그러기에 잠언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사랑으로 섬기는 자로 사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겸손」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겸손’이란 X인들이 갖추어야 할
여러 가지 덕목 중의 하나라기보다는, 기독교가 가르치는 핵심적인 교훈이라고 말하며,
사랑까지도 겸손의 뿌리에서 피어나는 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겸손의 뿌리가 마르면 사랑의 꽃조차도 시들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자기 PR 시대요,
극도의 경쟁 사회인데, 과연 X인들이 - 1 -
겸손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겸손이라는 덕은 이미 지나간 시대에나 해당되는 것일 뿐
현대에는 없어도 되는 것 안일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빌립보서 2장은 이런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해답을 줍니다.
바울은 겸손을 예수님의 구속과 결부시켜 설명함으로써 겸손의 미덕이 지니는 시간과
세대를 초월한 초시간적인 가치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원래부터 완전한 신성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따라서 응당 하나님으로서 소유할 수 있는 권리와 영광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특권들을 포기하시고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들의 종이
되셨으며, 게다가 사람들의 모든 죄를 그 어깨에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낮아지심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도 없고,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구속 사업도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이로 보건대, 예수님의 구속 사업이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처럼,
겸손도 영원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좋은 성도는 은혜 체험이 많을수록, 성경을 많이 읽고 성경 지식이 많을수록,
신앙연조가 오래되고 중직을 맡은 자일수록 더욱 겸손해지고,
순결한 마음을 지니게 됩니다.
주님은 이런 자들에게 은혜를 더하여 주시고, 사랑 하십니다.
의료선교사 리빙스턴(D. Livingstone)의 일기에 나오는 내용인데요.
“아프리카 토인들은 참을성이 많다고 합니다.
그들은 어른이 되면 어떤 경우에도 울지 않는다고 합니다.
2.5센티미터 되는 종기를 마취도 안하고 칼로 찢어 수술할 때에도 태연하다고 합니다.
큰 수술을 할 때에도 아파하지 않고 옆에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합니다.
그들은 어린이가 아닌 어른들은 절대 울어서는 안 된다고 배워 왔습니다.
아픔을 참지 못하는 것은 잘 먹고 잘 입는 사람에게 더 심한 것 같아요
그 정도로 아프리카 토인들은 참을성이 많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들인데
그는 참으로 신기한 일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내가 예수의 피의 복음을 전했을 때 그들은 엉엉 소리 내어 울면서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 겸손하고 순수한 토인의 눈에서 나오는 눈물을 보시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어떠한 경우에도 마음을 높이지 않고 주님을 본받아 겸손한 자로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2.주님께 소망을 두고 위엣 것을 생각하며 사는 삶입니다.
하늘 소망을 쌓는 삶이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구약 본문 16- 17절을 보면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절망의 순간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로 다가옴을 깨닫게 됩니다.
찬송가 369장 ‘죄 짐 맡은 우리 구주’에 대한 얽힌 일화가 있는데요,
죠셉 스크리븐(J. Scriven)은 영국의 대학을 졸업한 후 케나다에서 교사가 되었고,
아름다운 여성과 약혼하였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을 위하여 오던 약혼녀가 배의 침몰로 사망하게 되자
그는 큰 충격을 받고 3개월을 실망 속에 살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교회에서 기도하는 중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나는 사랑하는 약혼녀를 호수에서 잃었으나 G은 그 독생자를 +에서 잃었다. - 2 -
그러나 G은 사랑하는 아들을 잃음으로써 인류를 사랑하신 것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스크리븐은 맑은 샘이 가슴 속에서 솟아나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더 큰 사랑을 위하여 작은 고통과 자신의 감정을 수습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날 밤 그는 시 한편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 곡이 바로 찬송가 369장 “죄 짐 맡은 우리 구주”입니다.
이 찬송의 2절의 가사는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 말고
기도 드려 아뢰세.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 볼 수 있을까 .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라는 내용입니다.
우리 인간은 장래 일을 모르지만 하나님은 내 미래를 아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소망으로 복된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불확실한 미래를 향하여 갈 수 밖에 없으나,
하나님과 함께 걷는 생활은 안전한 미래가 보장된 것입니다.
성도는 땅에 발을 디디고 살고 있지만 땅에 속한 생각을 버리고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골3:2에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땅에 속한 생각에 사로잡혀 살게 되면 시기와 질투, 부하게 되려는 욕망,
분한 생각과 남을 미워하는 생각, 부정적인 생각과 파괴하는 생각을 하며 살게 됩니다.
성도는 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신약 본문 17절에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라고 했습니다.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마음에 있는 땅의 생각을 비우고 버려야 합니다.
병 속에 들어있는 공기를 내보내려면 맑은 물을 병 안에 넣으면 됩니다.
그러면 자연히 공기는 밀려나가게 됩니다.
이것이 소위 물리학에서는 "한 공간에 두 물체가 동시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여
‘불가입성의 원리(不加入性의 原理)’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위를 보며 하나님으로 가득 채우면 더러운 생각,도피할려는 생각,
깨끗하지 못한 마음은 자연히 밀려 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게 되면 자연히 땅엣 것은 밀려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베드로와 가롯 유다는 똑같이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가롯 유다는 땅의 것, 즉, 놀라운 능력을 가지신 예수님을 이용해
민족의 독립과 권력을 쥐어보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는데,
십자가 지고 죽으시겠다고 하자 실망하여 은 30냥에 팔아 배신자가 되었고,
베드로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는 말씀을 따라 오직 주의 복음을 위해 충성하며 살다
예수님의 최고 제자가 되었습니다.
위엣 계신 주님께 소망을 두고 위엣 것을 바라보며 바르게 사는 성도가 됩시다.
3.정직한 모습으로 선한 일에 부한 자로 사는 삶입니다.
구약 본문 19절에는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정로로 인도할지니라
.”했습니다. ‘
듣고 지혜를 얻어’라는 말은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원하는 길을 찾아가라'는 말입니다.
그 길이 바로 정로입니다.
말씀을 깨달아 믿고 가는 자는 바르고 정직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왕들을 평가할 때 다윗을 특별히 G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시고, 다윗을 표준삼아 - 3 -
평가하는 내용을 보게 됩니다.
바르게 G을 경외하며 산 왕들에 대해서는 ‘내 종 다윗과 같이 정직히 행하여’라는
수식어가 따릅니다.
믿음을 떠나 악한 길로 행한 왕들에 대해서는 ‘내 종 다윗과 같지 아니하고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였더라.’라고 평가합니다.
다윗도 죄와 허물이 있는 자였지만 선지자를 통한 G의 책망을 들었을 때
정직하게 죄를 인정하고 통회자복 했습니다.
그는 죄를 감추거나, 변명하거나, 합리화하지 않고 정직하게 잘못을 시인하고
회개함으로 하나님 앞에 정직함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평가하실 때 정직을 귀하게 보신다는 말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정직한 자를 사랑하십니다.
성도는 정직하게 살면서 선한 일을 힘쓸 때 하나님은 그 모습을 귀히 여기십니다.
신약 본문 18-19절에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큰 사업을 하여 많은 돈을 버는데 목적을 두고 삽니다.
그래서 성공한 사업가들을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대부분이 돈 때문에 교만하게 되고,
세상의 열락에 빠지게 되며, 사치와 방탕으로 타락하게 되어 결국 물질로 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참으로 성공한 사람은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자기에게도 유익이 되고, 가정에 평화가 찾아오고,보람이 되고, 덕을 끼치게 되며,
남에게도 유익을 주고, 남을 살리는 일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여기서 ‘좋은 터를 쌓는다.’는 말은 앞을 위해(아포)와
저장하다(데사우리조)의 합성어로 저축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선한 사업을 많이 할수록 천국에 영광의 상급을 많이 저축해 놓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갑니다.
유머 가운데 있는 이야기입니다.
정주영 회장이 저승에서 이건희 회장을 만났습니다.
“자네도 왔는가? 혹시 돈 있으면 5천 만 원만 빌려주게.” “선배님, 죄송합니다.
돈이 한 푼도 없는데요.” “허허허, 자네도 빈손으로 왔구먼.”
어차피 빈손으로 가는 인생인데, 선한 일에 부한 자는 지혜로운 자입니다.
유명한 ‘모노바즈’라는 랍비가 있었습니다.
어느 해 기근이 닥치자 그는 모든 재산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때 그의 형제들이 와서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을 왜 다 허비하느냐?"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내 조상은 보화를 땅 밑에 쌓았으나 나는 땅 위에 쌓았으며,
내 조상은 이 세상을 위해 재산을 쌓았으나 나는 내세를 위해 쌓았다."라고
대답했다 합니다.
우리도 정직한 모습으로 선한 일에 부한 자로 살다가
영원한 하늘 기업의 후사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늘에 소망을 쌓는 삶은,
◇.마음을 높이지 않고 겸손히 사는 삶입니다.
◇.주님께 소망을 두고 위엣 것을 생각하며 사는 삶입니다.
◇.정직한 모습으로 선한 일에 부한 자로 사는 삶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