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야 말로 웃기는군요^^
북관대첩에 대한 이야기의 출처를 조선실록이라고 한적도 없는데, 제글이나 제대로 읽고 쓰시죠?
그리고 군사체제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어디서 왜란사를 운운하는지..쯔쯔..
내가 언제 신립장군의 부대가 제승방략으로 모은 부대라 했습니까?
말을 아예 만드시지요?
ㅋㅋㅋ
좋게 표현하려다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대하는게 낫겠죠
주변사람들이 걍 무시하라지만, 당신이 내 말을 멋대로 해석하는것에 무시는 못하겠죠.
또한 북관대첩을 조선군 단독 전투라고 규정지은것은 제글을 제대로 읽지 않고 또 지멋대로 해석한 당신땜에 또쓰는 거지만,
의병모집으로 모인 의병들을 규합하여 이룬 전투들이였지만, 그 의병들이 흩어졌던 관군들이였다는 설을 개인적으로 가장 정설일것이다 여겨 판단해서 쓴 글입니다.
글이나 제대로 보고 쓰시오.
그리고, 임진왜란 전의 왜란들에 대해 별로 의식을 못하는데, 삼포왜란 및 을묘왜변등은 조선에게 큰 타격을 입힌 난들입니다.
탄금대 전투처럼 임진왜란의 일부 전투는 잘알면서,
그 이전의 이 왜란들은 전혀 모른다?
헐....
조선에는 비변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전시때만 설치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초로 설치된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하긴..조선군사체계도 제대로 모르시는분께 이건 넘 큰 질문인가?
바로 삼포왜란때 비변사가 설치됩니다. 전시때만 설치된다는 군사조직이 이때설치됩니다.
또한, 사량진왜변, 을묘왜변, 이 터지고, 을묘왜변때는 비변사가 아예 상설기구로 변합니다.
이처럼 임진왜란 이전부터 일본에 대해 조선인은 경계심도 두려움이 상시합니다.
그러다 을묘왜변 다음에 임진왜란이 터집니다.
그전의 난들은 제대로 막지못해 피해가 컸지만, 이후의 피해를 제대로 막기위해 군사조직이 변합니다.
그러나, 이 체계가 잡혔다 라고 생각하는 그 군사조직도 임진왜란때 무참히 짓밟힙니다.
원균의 함대가 온전했다라는 댓글을 봤는데....원균함대는 2척만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부산 함락되고, 이후, 일본육군의 진격속도를 제대로 막아내는 성들은 없습니다.
제대로 막아낸 성들이 왜 없냐? 그 출처를 대라. 라고 주장하면 찾기 쉬우니까 님이 찾으세요.
당신한테 이런 짜잘한 기록 찾아주는거 당신같은 사람한테는 귀찮으니까.
이미 부산 함락되었을때부터 조선군은 사기가 떨어집니다.
어떻게 아냐구요?
이미 이전에 일본군 쳐들어온다는거 알고있었거든요. 그런데도 제대로 싸워보지 못하고 무참히 패했으니까요. 게다가 일본군 진격 후 용인전투 전까지 조선관군이 승리한 전투는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원균은 당시 조선조정에서도 인정받는 장수입니다.
그 장수의 함대가 대패했다는데....님이 그때사람이라면, 반대로 사기가 충천할수있나요?
하기야....탄금대전투에 관심이 많아서 신립장군의 배수진을 최고의 전술이라고 극찬했으니..
그럴만도 하겠네요.
ㅋㅋㅋㅋㅋ
그리고 댓글 쓰지말고 저처럼 답글쓰세요. 님 답글은 복사해서 북간도조선사 연구동호회에서 자문 구할수있으니까. 일일히 꼬리글 쓰면 그거 다 복사하기 귀찮아요.
그리고 신립장군이 양동작전으로 대패했다 라는 그 기록은 당시 역사의 희생자니까 믿을수없다??
ㅋㅋㅋㅋ
할말을 잃네요....그래 님의 말처럼 역사의 희생자로 당했다고 칩시다.
그럼 마지막으로 대패할때까지 버틴건 어떻게 버텼는가? 버티긴 뭘 버텼다고...여기서 또 답답함이 철철철 넘칩니다....
적군의 공격에 버티다...혹은 저항하다...혹은 방어하다. 막아내다.. 그런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서 버텼다 라고 말씀하는건지...
신립이 버틴건 없습니다. 3번 싸웠다고 하는데.... 음....3번이 맞는거 같네요.
그 3번 다 대패합니다. 마지막에 자결하죠.
처음에는 선봉장이였던 자만 살아남았으니까. ㅎㅎㅎ
신립의 말대로 보병은 기병으로 제압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칼든 보병들이고..ㅋㅋ
총들고 있는 보병한테는 기병은 쥐약입니다. 왜냐구요? 조총소리에 조선군도 깜짝놀랬다는데..
말들은 귀머거립니까? 기병제압하는 전술은 인터넷에 많이 돌아냉기니까 찾아서 참고하세요.
그리고 조선실록을 왜곡했다?
ㅋㅋㅋㅋ
삼국지 1권 읽으면 삼국지 다읽은거군요. 님의 논리대로하면..ㅋㅋㅋㅋ
실록에 기록된 문구 몇줄 따온거가지고, 이게 용인전투다??
참 대단하십니다.
그럼 제가 실록을 참고하여 쓴글은 님말대로 왜곡한거군요.ㅋㅋㅋ
이제부턴 님처럼 글을 써야 왜곡하는게 아니군요.ㅋㅋㅋ
좋은거 배웠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주제가 있으면 방대한 분량의 실록에서 몇줄만 찾아서 써야겠네요^^
괜히 땀빼면서 찾을필요가 없었네요. ㅋㅋㅋ
그리고 신립장군이 퇴각하면 병사들이 도주하지 않고 어떻게 온전히 복귀할수 있느냐?
참...답답한 질문....
제가 님 군사참모도 아니고....전술 전략 다 설명해줘야합니까?
사기가 떨어져 퇴각하면 다 도주할것이다 라고 판단하시면서, 그 병력으?배수진 치는게 옳다?
사기가 떨어져 퇴각하면 다 도주할 겁에 질린 병사들로 배수진 치는게 옳다?
일부의 병력이 님말대로 도주할수있습니다. 이는 원균이 수군통제사로 있을때 도주함대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일부가 도주하는것이 전병력이 다 도주한다고 과대해석하는건 님의 착각입니다.
1차전투에서 패한후, 전력차가 난다는 것을 알았다면, 몽진할것을 전령으로 먼저보내고, 몽진한 후 함경도에서 병력을 다시 모을때까지 신립은 그 병력을 한성으로 돌려 한성에서 수성을 펼친다.
1만의 병력이 퇴각하여 돌아온 병력이 5천밖에 되지 않는다해도 결국 전멸은 막은셈입니다.
배수진쳐서 1만 병력 다 잃는것보다는 5천이라도 살아돌아가는것이, 그리고 나머지 흩어진 5천도 결국 후일에 다시 수습할때 다시 나올것입니다.
앞서 쓴 글처럼 우수한 지휘관이 있으면 결국 전쟁때는 그 장수밑으로 몰려오기 마련입니다.
어떻게 퇴각할거냐고? 어떻게 온전히 퇴각할거냐고?
몇번을 써야 제대로 이해하려는지...용병학에서 온전히 퇴각할수있는 전술은 없습니다.
본대만 피해를 입지 않으면 그 퇴각전술은 성공한 것입니다.
여기서 또 그럼 어떻게 퇴각전술을 할거냐고 물어보면...진짜 가관이네요..ㅋㅋㅋ
전술설명해달라? 설마 전술설명해달라고 물어보진 않겠죠. ㅋㅋㅋ
그리고 당시 조선조정은 이정도의 대규모일줄 몰랐다?ㅋㅋㅋㅋ
이미 일본함대수와 원균 함대의 대패, 부산진 함락, 그리고 일본군 진격 소식까지.....
일본함대수만 봐도 대규모인데....조선조정은 대규모일줄 몰랐다?
그건 님의 개인적 판단이죠^^
을묘왜변 당시 일본은 70척이 왔습니다. 임진왜란은 그보다 수가 휠씬많습니다.
이미 일본육군수까지도 전령으로 보고되었을터인데...대규모일줄 몰랐다?
이거...운영자께 경고먹겠지만, 이말은 꼭 해야겠네요.
대단하십니다. 님이 왕을 하세요^^ 조선왕^^
그리고 성을 쌓는데, 사람들이 욕을했더라? ㅋㅋㅋㅋ
참 대단하십니다.....사람들이 왜 욕했다고 보십니까? 단지 힘들게 성쌓게 시켰다고?
여기서 또 당시 조선사를 전혀 모르고있다는 증거나 나오는 겁니다.
이거...여기서 또 2차 경고 먹겠지만, 이말은 꼭 해야겠네요.
이사람아! 당신 세금 걷고, 또 걷고, 군역 안해도 되는데 군역시키고, 성쌓는 돈까지 당신이 다 내라고 하고, 또 인력까지 다 제공하라고 하면 당신 욕안해요? 당신 슈퍼맨이야?
임경업 장군 이야기 아십니까? 당시에는 세금수가 무려 100개가 넘는 때였지만, 임경업이 성 쌓을때는 사람들 군소리도 않했습니다. 물론 성쌓을때 농부들도 다 썼었죠. 그런데 왜 사람들이 임경업 욕안했는지 아십니까?
성쌓는데, 임경업 자신도 웃통을 벗고 직접 하루죙일 돌날랐답니다. 그곳을 지키는 장군이, 직접 주먹밥 같이 먹고 일했다고 합니다.
답답한 사람아...조선사에 대해 뭔가 의문이 들면 문구 하나만 가지고 평가하지말고 왜 그런 상황이 나왔는지, 왜 그렇게 할수밖에 없었는지 그 전체를 가지고 평가하는거야.
역사는 사료를 가지고 추측으로 형상을 만드는게 바로 역사야.
답답한 사람아....
그리고 임진왜란 전에는 기껏해야 왜구수준이였다?
대단하십니다. 바다의 해적이 70척의 함대를 끌고다니는군요.
캐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몇척의 해적과는 판이하게 다른 일본해적들이네요. 70척!!
님은 70척수준의 일본군을 단지 왜구수준으로 평가할정도니....얼마나 많은 함대수여야 님은 일본군이라고 평가할수있을지..ㅋㅋㅋ
그리고 다음에 또 머 쓰고싶으면 중간에 썼듯이 꼬리글로 쓰지말고 답글로 방대하게 써요.
님이 얼마나 무식한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이것저것 줏어가지고 맞다라고 주장하는지, 여실하게 밝혀줄테니까.
뭐 제대로 알고서 쓴것도 없어. 탄금대전투에 관심이 있어서 조사했다면서, 양동작전으로 괴멸당한것도 몰랐고.....나참네...
도대체 뭘 가지고 탄금대전투를 조사했다는건지...
실록은 신립장군이 희생자라고 하니, 믿을수없다 라고 하니, 그럼 탄금대전투를 실록에서 찾아보진 않으셨을테고...그럼 어디서 조사했다는건지....
그래놓구선 적반하장, 머뭍은 개가 머뭍은 개 나무라는지, 아님 자기가 모르고 있던것을 계속 다른걸로 확인시켜주니까, 자기는 그것에 대해 모르니까 도둑이 제발저리나?
인신공격하지말라고 글쓰진 마세요. 애초에 글올라가다보면 님이 꼬리글로 인신공격 먼저해왔으니까.
참다 참다, 경고는 받지 말아야지......지도 조선사 안다니까 공부하다보면 알겠지..하면서 참으려다가
글쓰는거니까.
역사공부는 인터넷에서 하는게 아닙니다.
역사책으로도 하는게 아니고요.
사료를 가지고도 하는게 아닙니다.
어떤 주체적 역사의식을 가지고도 하는게 아닙니다.
역사 자체에 대해 문외한 사람아..그러고는 뭐 알고있다는 식으로 다른사람 평가하려는 무식한사람아.
역사는 하나의 자기의문에서부터 시작되는거야.
그래서 내가 오래전부터 글을 썼지만, 역사글을 쓸때 자신의 견해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쓰라했던거야.
자신의 무언가 의문이 들면 그것을 공부할테니까.
당신처럼 인터넷으로 하라는게 아니야. <<< 이말은 옆에 있는 선배가 전해주랍니다.
조선의 병사들은 애초에 그 군체계가 세금걷기위해 만들어진거지, 나라지키려고 만들어진게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 군사기가 시간이 갈수록 떨어질수밖에 없는거야.
왜또 세금이냐고 머라하겠네...ㅋㅋㅋㅋ
글 쓸거 있음 꼬리글 쓰지말고 답글로 써요. 복사해가기 편하게.
그리고 일본군 1600? 답답한사람아 아무리 전투 못해서 평지에서 4만하고 1600이 싸우면 4만이 대패하나?
전술 잘짜서 이긴다해도 그렇게 대패하진 않아요.
답답한사람아. 제글 제대로 읽어요.
용인전투는 표면은 조선군이 막고 일본군이 공격하는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조선군이 일본군을 공격하는겁니다... 뭔가 조사좀 하고 글써요.
조선군이 한번에 4만을 모은게 아닙니다. 곳곳에 병력을 규합해서 그 수가 4만입니다. 이는 일본군도 알고있었기 때문에 수가 부족해 수성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완전 소극적 방어전을 펼치기 시작해서 시간을 끕니다. 그리고 한성에 지원군을 요청하여 그 지원군과 함께 조선군을 괴멸시킵니다.
답답한사람아....한성지원군과 합해서 고작 일본군이 1600이면..... 도대체 40만 일본군중 398400명은 조선팔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전투중에 밥먹으러 갔습니까?
이런데도 당신의 1600이라는 말이 황당하지도 않으세요? 뭔가 쓰고싶으면 문구 몇줄 가지고 쓰지말고 뭔가 조사좀 하고 쓰던가 해요.
인신공격하는 말투로 시작해서 황당한 말 하지말고요.
첫댓글 음 글들을 봤는데 주장하시는 내용이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군요. 논리도 안맞고 사료에 대해서도 얼버무리고... 그리고 임진년에 일본군이 40만이라는 애기는 어디서 나온것입니까??? 첨듣는 애기군요.
일본군 선봉대와 후진 본대를 포함하여 일본군은 40만이 옵니다. 이글 쓰게 만든 사람 때문에 제가 좀 흥분해서 제대로 설명을 못했네요^^;; 감정적으로 쓴 글이 맞기 때문에 님의 지적대로 논리가 잘 안맞을수있습니다. 그리고 사료를 얼버무리렸다는 부분을 지적해주시면 수정토록 하겠습니다.
그 40만 왜군편제랑 출처좀 대주실래요?.. 일본애들이 20만도 안되는 애들 먹인다고 완전 등골이 휘었는데 40만????? 우리가 알고있는 16만여 병력외에 무려 24만이나 있으면 그병력들을 이끄는 장수도있을거고 조선사람들도 그들과 싸웠을것아닙니까? 그러면 왜장이름도 있을거고.. 그 24만여 병력도 전투를 했을건데.. 기록을 한번대보시죠~참고로 실록에 기록입니다'왜노들의 말에 의하면 그 수가 30만 혹은 40만이라 하지만, 이는 과장한 말에 불과하니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 끌끌 재미있죠? 일본애들이 우리 30~40만있다고 큰소리쳤지만 당연히 씨알도안먹혔던걸 보여주죠?.. 어디서 40만 출처를 꺼내실지 궁금하네요..
"역사는 사료를 가지고 추측으로 형상을 만드는게 바로 역사야."를 근거로 하면...연의도 역사군요 -_-;;
"역사공부는 인터넷에서 하는게 아닙니다. 역사책으로도 하는게 아니고요. 사료를 가지고도 하는게 아닙니다. 어떤 주체적 역사의식을 가지고도 하는게 아닙니다. 역사 자체에 대해 문외한 사람아..그러고는 뭐 알고있다는 식으로 다른사람 평가하려는 무식한사람아. 역사는 하나의 자기의문에서부터 시작되는거야." 에 의하면 역사공부는 의문에서 시작해서 추측으로 끝나는 거군요 ㅇ_ㅇ;;
이런 주장을 하실 때는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본인의 추측을 기정 사실화 시키지 마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