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납골당
권현옥
책들은 햇살을 어떻게 쐬는가, 사람의 눈빛과 콧김으로 쐰다. 무덤은 산과 들에서 명당자리를 차지했지만 납골당 항아리는 햇살도 포기하고 눈비를 피하고 바람을 피해서 안전한 곳에 숨어든다. 숨결이 뜸한 세상을 억지로 기다리는 모습이 차다, 그렇게 사람이 남긴 것들은 존재하다 사라진다.
도서관은 화려한 전시장이다. 필자의 납골당이고 책의 납골당이다. 수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살아남은 책들과 금방 나온 책들에게도 자리를 줬다. 유령의 접전 지역처럼 과거와 현재, 미래가 살아있다. 점토와 파피루스와 목판과 천들에 입혀온 책들의 영혼이 다 사라지고, 필사되고 활자로 인쇄된 수많은 책들이다. 그래도 살아서 아직 남아있는 곳, 일단 모아놓은 전시장이자 결국 남게 된 대형 납골당, 이곳이 도서관이다.
내 삶의 격정적 문체를 지녔던 화려한 페이지와 진부하기 짝이 없이 설명만 늘어놓았던 만연체의 페이지와 행동은 없고 생각만 있는 납골당. 수많은 책들이 등을 보이고 꽂혀있다. 시간과 노력과 성찰 끝에 이끌어낸 압축된 책은 납골당의 뼛가루 같은 육신의 실체들이다.
나는 도서관의 문을 밀고 들어서면 거대한 침묵에 압도당한다. 수십 년이나 수년간 집필한 영혼의 세포들 앞에서 값도 없이 얻을 수 있는 선택권에 흐뭇하다. 오직 책으로 만날 수 있는 이 장소가 위대하다. 등을 보이고 있는 많은 책들의 이름을 본다. 드디어 하나를 꺼내어 책장을 넘기면 책은 숨을 쉬고 내 안에 들어와 햇살이 되기도 하고 햇살을 보기도 한다.
니베내 도서관이나 ‘바벨의 도서관’이 추구한 것은 결국 그 옛날 이집트 도서관 현판에 쓰인 “영혼의 시약소, 약방”이 아닐 수 없다. 도서관에는 희망을 품은 책들이 납골당처럼 과거로 꽂혀있지만, 현재에 살아 숨 쉬고 햇살을 쐬고 미래를 말하고 있다. ‘책이 없으면 신도 침묵하고 정의도 잠자고 과학은 정체되고 철학은 불구가 되고 문학은 벙어리가 된다.’고 했던가. 도서관에 가면 문을 밀고 들어설 때의 뿌듯함만으로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