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전 조선 중기 배움의 세기적인 교류
진리는 하늘이 가르쳐주고
진리를 슬기롭게 활용하여 지혜롭게 살아가라 기르친다
퇴계와 기대승의 교류
퇴계와 이이의 교류
배움은 마음을 열어 겸손해야 한다
서로 세우고, 존경하고 존중하며 아름다움 배움이 있었다
교학상장, 졸탁동시, 배움동행이 학문을 이루다
천리만리 먼 거리이지만 편지로 배움을 나누었다
옛 사람들은 삶을 보는 것을 참되게 보았다
삶을 보는 눈은 마음이다
모든 것은 마음이 근본이다
학문의 논쟁은 아름다우나
이념의 논쟁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었다.
학문 하는 사람은 먼저 사람 됨됨이를 중시했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는 것이 삶의 첩경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서 그 마음을 움직여라.
이황(1501~1570 영남 좌도). 남명(南冥) 조식 [曺植](1501(연산군 7)~ 1572(선조 5) 영남우도
고봉(高峯) 기대승(1527(중종 22)~1572(선조 5). 율곡 이이 [李珥](1536(중종 31)~1584(선조 17).
이황은 도산서원
주리파(主理派), 理(性) 氣(情)파, 이기호발설(理(性) 氣(情)互發說) 이기이원론(理氣二原論)
대산 이상정(大山 李象靖,1711∼1781)선생이 강학한 안동 고산서원, 소 퇴계
고봉 기대승 광주 월봉서원
1558년부터 퇴계 58세, 기대승 31세가 만남 13년간 교류(26세 차이로)
‘사단 칠정의 이기이원론 편지로 13년간 학문을 논함 기대승은 칠정이 모두 정(情)이다’
주자의 주장의 이기일원론(理氣一原論)
주정설(主情說) 주기파(主氣派), 이기공발설(理氣共發說) 이기일원론(理氣一原論)
율곡 이이는 강원도 강릉 오죽현
율곡도 이기일원론(理氣一原論)을 주장하였다
율곡 이이에게 사사 받은 약봉(藥峯) 서성(徐渻 1558~1631) 안동 소호헌)
주정설(主情說) 주기파(主氣派), 이기공발설(理氣共發說) 이기일원론(理氣一原論)
조선의 학문은 편지로 배움을 나누었다
퇴계는 58세, 기대승은 31살(26살 차이) 율곡은 23살(35살 차이)
1558년부터 퇴계 58세, 기대승 31세, 율곡은 23살에 만나 13년간 교류했다
그들은 깊은 사상적 교류를 통해 26년, 35년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었고,
두 사람의 편지는 이황이 별세하기 한 달 전인
1570년 11월까지 13년간 학문을 교류하였다.
고봉은
막 과거에 급제한 고봉은 성균관 대사성이었던 퇴계를 방문하였고
퇴계의 학설과 성리학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졌다.
기대승은 퇴계의 학문을 극찬하였다
'동방의 주자'라고 하였다
서로를 위해 필요한 진정성 있는 직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경청하며 끝까지 유연한 자세로 임했다
진심에서 우러나는 조언을 해주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4단 칠정의 이기이원론 편지로 13년간 학문을 논함 기대승은 칠정이 모두 정(情)이다’
기대승은 주자의 이기공발설(理氣共發說) 이기일원론(理氣一原論)을 주장하였다
율곡 이이는 장원급제(율곡은 13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23세부터 29세까지 9번의 과거에서
9번 장원급제(10번 합격에 9번 장원)를 여러 차례나 한 천재중의 천재였다
율곡은 남을 칭찬하는데 비교적 인색했다
웬만하면 날을 세운 비판 부터하여
율곡 안하 무완 인이란 말이 생겼다
율곡의 눈 아래 흠 없는 인간은 없다는 말이다
1558년 율곡이 도산서원을 찾아가 머무르며
율곡은 퇴계만큼은 공자와 주자 같은 분을 만났다고 최고 칭송을했다
‘동방의 공자, 주자’라고 최고의 존경을 하였다
사단칠정에 대해 '성, 정, 심, 의'에 대한 논쟁하며
'성', '정' 이 뭔지 '이', '기' 가 뭔지..
(性은 仁義禮智信, 情은 喜怒哀懼愛惡欲, 性은 理. 忠, 情은 氣, 恕)
율곡은
마음(心)을 논함에
심성(心性, 理, 性, 忠, 天道, 체)
'성(性)'을 체로서의 '理', '정(情)'을 용으로서의 '氣'을 하나로 봄
'정(情)'을 용으로서의 '氣' 로 봄
심정(心情 氣 情 恕 人道, 七情(心情) '정(情)'과 ‘성(性)’이기(理氣) 하나로 봄
주정설(主情說), 주기파(主氣派), 혼륜파 수설 爲己之學
주자 이이 주리파(主理派), 주성파(主性說) 혼륜파 爲己之學 이기공발설(理氣共發說)
이기일원론(理氣一原論)
퇴계는
마음(心)을 논함에 理(性 忠 天道, 체), 氣(情 恕 人道 용)
'성', '정' 이 뭔지 '이', '기' 를 분리파, 횡설 爲人之學
주기파(主氣派), 주정설(主情說) 이기호발설(理(性)氣(情)互發說) 이기이원론(理氣二原論)
마음(心)을 논함에
공자는 忠者는 天道요 恕者는 人道이다
忠者는 體요 恕者는 用이니
仁은 忠恕로 '충(忠)'을 체로서의 '理(性)', '서(恕)'을 용으로서의 '氣(情)'로 봄
심성(心性 理 忠 天道)은 '성(性)'을 체로서의 '理', 忠者는 體요
심정(心情 氣 恕 人道)은 ‘정(情)’을 용으로서의 '氣'로 봄 恕者는 用이니
퇴계는 '성(性)'을 체로서의 '理', '정(情)'을 용으로서의 '氣'로 봄
심정(心)을 성(性)과 정(情)으로, 이기(理氣)로 봄
'정(情)'을 용(用)으로서의 '氣'를 주로 보는 주기파(主氣派),
주성설(主性說), 주리파(主理派), 분리파 爲人之學
이황의 이기호발설(理(性)氣(情)互發說) 이기이원론(理氣二原論)을 주장하고
심성인으로 인간의 본성으로 서로 어울리고,
심정인으로 인간의 심정으로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
심성(性)과 심정(情)은 모두 마음에서 나오기에 하나이다.
마음의 심성(心性 理) 마음의 심정(心情 氣)은 모두 마음이다. 이기일원론 (理氣一原論) 心(性情)
마음의 심성(心性 理) 마음의 심성(心情 氣)은 다른 마음이다. 이기이원론 (理氣二原論) 心(性 情)
퇴계도 똑똑한 젊은 율곡에게 따뜻한 격려의 말과 시를 보내었다
앎과 깨달음에 대해 논쟁
율곡은 새와 짐승의 지와 각을 예로 들어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퇴계는 율곡의 견해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퇴계에 따르면 인간은 도덕 판단을 할 수 있는 선천적 능력을 지녔다.
하지만 새와 짐승의 지각은 여기에 미칠 수 없다는 것이다.
퇴계의 관점은 율곡의 견해에 대하여 모두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다.
유학에 대한 두 사람의 견해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을 입증한다.
퇴계는 율곡의 독서하는 방법을 비판하기도 했다.
말을 끌어다 억지로 연결하여 이해하려는 것은 올바른 독서의 태도가 아니라고 말했다.
특히 '성, 정, 심, 의'에 대한 율곡에 설에 대해서는
'바보 앞에서 꿈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둘의 사상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졌다.
퇴계는 1570년 12월 8일(음력)에 세상을 떠났다.
율곡은 애도하는 글을 지어 슬퍼하고, 선생에 대한 기록을 후세에 남겼다.
퇴계에 대한 율곡의 평가는 친구인 성혼에게 보낸 편지에 가장 분명하다.
죽은 자에 대한 글에서는 덕담을 중심으로 기술하는 경향이 있다.
진정한 평가로 보기 힘든 면이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평가는 이후 율곡학 계열의 학자들이 퇴계를 바라보는
관점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율곡의 학문적 관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삼가면 실수가 적고, 호방하면 실수가 많으니,
차라리 퇴계의 모방하는 태도를 취해야만 하지,
화담의 자득하는 것을 본받아서는 안 됩니다.’
친구인 성혼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다.
율곡의 퇴계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다.
편지 말미에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해달라는 말을 덧붙인다.
선현에 대한 율곡의 평가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퇴계의 입장을 옹호하는 율곡이 학문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고 말한다.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 중요한 사상가이다.
당시 '동방의 주자'로 추앙되던 퇴계와의 사단칠정(四端七情)을 논하였다
퇴계는 고봉의 의견을 받아들여 자신의 주장을 수정하기도 하였다
고봉 역시 퇴계의 학문과 인격을 존경하여 그의 의견을 수용하며 논쟁을 하였다.
논쟁은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었다.
율곡과 퇴계는 서로 자기주장을 하였다
퇴계가 죽은 후 율곡은 애도하는 글을 지어 슬퍼하고, 선생에 대한 기록을 후세에 남겼다.
'삼가면 실수가 적고, 호방하면 실수가 많으니,
차라리 퇴계의 모방하는 태도를 취해야만 하지,
화담의 자득하는 것을 본받아서는 안 됩니다.’
퇴계의 입장을 옹호하는 율곡이 학문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고 말한다.
퇴계는 젊은 학자들의 이야기를 겸손하게 경청하고 수요하는 자세를 취하였다
퇴계의 겸손 또한 되새겨 보아야할 소중한 유산일 것이다.
고맙게 듣고 잘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평생을 우러르면 그리워했다
학문의 논쟁
학문은 화합하고 통합하고 문화의 융합과 통합으로 새로운 창조를 하여야 한다
학문 논쟁은 존경과 존중이 있고, 겸손과 겸허로 서로 발전이 있다
학문의 논쟁은 아름다우나(먼저 爲人之學하여 배움을 爲己之學이 되게 하라)
이념의 논쟁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었다.
정치에서 나누어 싸우면 나라는 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