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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가 주목한 수필집⑧】이선애 《강마을 편지》(2021, 도서출판 경남)
강마을에 꽃피는 푸른 감성 / 백남오
1. 작가 이선애의 문학공간
이선애 수필가는 현재《한국교육신문》에 독서칼럼‘강마을에서 책읽기’를 연재하고 있다. 2013년부터 시작해 격주로 명작을 대상으로 지금까지 2백여 편의 작품 및 작품집을 소개했다. 유발 하라리의《사피엔스》, 알베르 카뮈의《페스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노인과 바다》, 조지오웰의《동물 농장》, 밀란 쿤테라의《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톨스토이의《안나 카레리나》등 세계적인 명작과 고전들이다. 물론 이 작업은 앞으로도 더 계속될 것이라 한다. 정말 놀라운 독서가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갑자기, 이런 다독자가 읽는 수필은 어떤 것 일까가 궁금해졌다. 그의 수필이 문장의 호응도가 강하고 약하고, 문학성이 있고 없고는 그 다음의 문제라 여겨진다.
작가는 경남 의령군에 소재한 조그마한 시골중학교의 현직 국어교사다. 실제로 그가 근무하는 학교의 교실에서 바라보면 남강의 지류가 흐르고 있다. 낙동강으로 합류하기 직전의‘지정’이란 곳이다. 그는 흐르는 강물을 매일 바라보면서 책을 읽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글을 쓴다. 그에게 강마을 작가라는 애칭이 붙은 것은 빈말이 아니다.
이선애는 2009년 계간《에세이 문예》로 등단했으며 한국에세이 작가상, 해인문학상, 문학신문사작가상, 대한민국문학대전 수필부분 최우수상, 향촌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 그동안 《강마을 편지》(2015, 도서출판 경남) 《강마을에서 책읽기》(2020, 지식과 감성) 《바람이 그린 풍경(공저)》(2021, 지식과 감성) 등 세권의 수필집을 펴냈는데, 2015년에 나온 수필집《강마을 편지》는 세종도서 문학나눔에 선정되었으며, 3쇄를 찍은 책이다. 본고에서는 3쇄본 수필집《강마을 편지》(2021, 도서출판 경남)를 텍스트로 그의 수필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수필이 수필다운 향기와 맛을 내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색채가 분명해야 한다. 이것은 내용뿐만 아니라 문체나 표현 기법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선애의 수필집《강마을 편지》는 작가의 숨결이 날 것 그대로 감각적으로 와 닿는 느낌이다. 초록이 일렁이는 대지와 오밀조밀 빛나는 야생화의 향기, 윤슬이 반짝이는 강마을의 풍경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진다. 화자가 곧 강이고 풀이고 나무고 자연이다. 일반 작가들이 공유하기 쉽지 않은 특별한 문학적 공간이 그에게 있다.
이푸투안은《공간과 장소》에서, 만약 공간이 방향이나 특별한 관점을 지니고 있다면 그 공간은 역사적인 곳이 된다, 라고 하였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공간을 향해 움직일 때 시간상으로도 앞이나 뒤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목적 있는 행동을 할 때 공간과 시간은 의식의 표면 위로 부상하고, 별다른 특징이 없던 그곳에 감정의 교류가 일어나 마침내 삶의 장소가 되고 위안이 되고 의미가 된다는 이론이다. 이선애에게 강마을이라는 공간은 매일 매일, 수년에 걸쳐 반복되는 찰나적이지만 유의미한 경험들이 쌓여 있다. 그 느낌은 시각, 청각, 후각의 특별한 조합으로 뼈와 근육에 새겨진다. 아침 안개와 저녁의 산 그림자, 봄의 초록과 가을의 낙엽을 마주하기도 하고, 교무실 창을 타고 흐르는 아카시아 향기, 여름날의 소낙비, 개구리 울음소리가 독특한 감성을 드러내는 장소가 된다. 강이 보이는 그곳에서 작가는 끊임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골 교사로 살아간다. 중학생이 읽어도 이해가 되는 책, 칠순의 독자가 읽어도 깨달음을 얻는 책을 쓰고 싶다는 그녀의 의지가 반영된 듯 물 흐르듯 쉽게 읽힌다. 그렇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깊은 성찰과 수채화와 같은 따뜻한 감성이 녹아있다.
2. 자연으로 채색한 푸른 감성
이선애는 강마을의 자연을 젊은 감성으로 노래하는 수필가다. 그녀가 그려내는 서정적 풍경은 강이 보이는 마을 즉, 강마을에서 출발한다. 수필은 글로 그리는 풍경이고 철학이고 이야기다. 작가가 근무하는 시골 중학교 도서관에서 봄이 오는 강나루와 지천으로 피는 자잘한 풀꽃에 눈을 맞추고 그곳에서 느끼는 바를 그림처럼 그려낸다. 그래서 그녀의 수필은 월든 호숫가에 집 한 채를 지어 자연 속에서의 삶을 이야기한 데이빗 소로의《월든》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녀가 그려내는 자연은 결이 다르다. 소로의 자연이 깊은 숲과 문명 비판을 노래한 것이라면, 이선애의 자연은 가까운 숲과 강과 그곳에서 사는 사람과 아이들의 이야기다. 작은 풀꽃 한 송이를 오래 들여다보며 그 속에 펼쳐지는 우주의 원리를 찾고자 하는 맑은 심성이 스며있다.
<물푸레나무 같은>, <꿈의 씨앗>, <열매>, <고들빼기를 캐며>, <도발적인 봄꽃>, <가을 들판에서>, <땡삐와 산딸기>, <눅눅한 바람 사이로 비 냄새가 납니다> 등의 작품은 모두 자연물을 객관적상관물로 등치시킨 것이다. 이들 제목에서 보듯 그녀는 자연을 향해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녀는 풀 향기에서 생명의 혈맥을 느낀다. 씨앗에서 풀로, 풀에서 꽃으로, 꽃에서 나무로, 흙에서 하늘로, 시선을 넓혀가며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까지 잘 드러난다. 자연과 아이들에게서 순수를 배우고, 푸른 서정을 호흡하며 살았던 강마을의 흔적들을 더듬으며 그녀는 하루를 산다. 그리고 자연에서 삶의 지혜를 묻는다. 이런 이유로 그녀는 이미 강마을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인간은 결국 대자연이란 온실만은 끝내 일탈할 수 없음을 이 수필집은 잘 보여준다. 자연의 질서가 삶의 근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생의 참된 의미나 조화의 과정을 여유 있게 관조하고 수필의 문학성을 확보하는 데도 성공했다고 본다. 구체적인 자연물 그 이상의 제재는 다시없을 것이다. 이선애 작가에게 자연물은 순리의 삶을 가르치는 스승이다. 작가의 시선과 사유가 푸른 감성의 경계를 넘어 자연의 숨소리와 맥박, 발견과 깨달음으로 확산한다.
꽃처럼 피어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의 삶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지키는 작은 등불이 교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슴 속에 품은 꿈의 씨앗이 상처받지 않도록, 교사인 나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학생이 행복한 세상을 위해 아이들이 가지고 싶은 것을 알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교사들의 의식이 제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아 때로 안타깝습니다. 여기 시골 강마을에서 자라는 꿈나무의 씨앗이 전국을 푸르게 녹화할 날을 꿈꿔봅니다.
- <꿈의 씨앗> 부분
위 수필의 첫 문장은 “제가 근무하고 있는 시골 중학교의 아침은 안개로 무성합니다. 어제 저녁에 비가 내린 모양입니다. 교문 앞이 촉촉하게 젖어있습니다. 비가 내리니 떨어진 낙엽도 젖어있습니다”라는 풍경 묘사로 시작된다. 이 수필에서 아이들의 성장을 꽃이 피어나는 데 비유하고, 교사로서의 사명이 아이들의 행복을 책임지는 데 있다는 것을 말한다. 작가가 근무하는 작은 시골 중학교에서 자라는 꿈의 씨앗이 전국을 푸르게 녹화할 날을 꿈꾼다. 워드워즈는, 작가는 인류의 교사여야 한다. 눈앞에 보이는 문제만 해결할 것이 아니라 꿈을 가꾸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작가는 자신의 교육적 사상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기를 기대한다. 이는 그녀가 범상치 않은 교육자적 자질까지 겸비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제 점점 더 푸른 산과 들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무수한 봄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가 맺히는 여름이 곧 다가오겠지요. 시어머니께서는 부추 밭과 마늘밭으로 부단히 움직이면서 그분의 팔과 무릎에서는 푸른 잎이 돋아날 것입니다. 손가락 사이로 자연과 교감하면서 푸른 물결을 일으키는 모습을 황홀하게 바라볼 것입니다. 그리고 제 삶도 꽃피고 열매 맺는 나무처럼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화사한 봄꽃도 아름답지만 그 꽃도 시간이 되면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내어주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순리입니다. 저도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열매> 부분
<열매>는 휴일을 맞아 시가의 농사일을 도와주며, 농촌의 삶을 이해하고자하는 내용이다.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서 주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열매는 결실의 상징이다. 농사일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면서, 자연을 닮은 삶을 살겠다는 따뜻한 감성을 드러낸다. 자연 그 자체인 시어머니와 방관자로 살아가는 자신을 비교한다. “그에 비하면 저는 일하다가도 보랏빛 자운영에 한눈을 팔고 하얀 조팝꽃을 꺾어 내려옵니다. 노오란 양지꽃을 보다가 남새밭 가는 길에 자꾸만 뒤처지는 그런 사람이지요. 토끼풀을 따서 책갈피에 넣었다가 누름 꽃을 만들어 엽서를 쓰기를 좋아하는 철부지입니다”라는 솔직한 진술은 자기반성의 모습이다. 자연과 교감하며 살아가는 시어머니의 삶을 자연의 일부로 인식하면서 작가는 자신의 삶도 꽃피고 열매 맺는 나무처럼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자연을 꿈꾸며, 자연의 품에 안기고자 하는 자연친화 의지가 잘 표현된 대목이다. 막스 피카르트는《침묵의 세계》에서 “기도의 말은 저절로 침묵 속으로 되돌아간다. 기도란 애초부터 침묵의 영역 안에 있었다. 기도는 인간에게 떨어져 나가 신에게 받아들여진다”라고 하여 기도는 진정한 침묵 속에서 그 의미를 완성한다고 했다. 작가 역시 꽃피고 열매 맺는 나무의 삶을 닮고자 기도한다. 기도를 통해 내면의 침묵 속에 자연의 순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모습이다.
3. 생태적 세계관과 철학적 사유
이선애 수필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포기하기 어려운 수많은 욕망을 비워내고자 하는 생태적 사유가 진솔하게 나타난다. <우렁각시>, <웅어>, <여름 화단에서>, <망종>, <밤꽃 내음이 무성합니다>, <그리운 것들>의 작품에서 생태주의를 바탕으로 한 문명 비판적 사유가 드러난다.
<우렁각시>에서“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였습니다. 이제라도 이역만리에서 우리 생태계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지하게 인간의 이익만을 위해 동식물을 함부로 들여오는 것에 신중해야 하리라”와“인간의 적절치 못한 동식물의 유입은 생태계의 불균형을 초래하기도 하고 심지어 인간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생태계가 파괴되기도 합니다”라는 구절은 생명 사랑에 대한 신념이다. <웅어>에서“누구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개발의 논리에 밀려 버려 놓았던 우리의 환경은 어느새 우리에게 물고기가 돌아오지 않는 강으로 되돌려준 것입니다”는 개발 논리에 밀려 파괴되는 자연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모든 생명체가 함께 이 지구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생태주의적 세계관이 짙게 깔려있다.
집에 도착해서도 우렁이가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다는 생각에 괴로웠습니다. 우리의 자연은 각 지역의 환경과 서식 조건에 따라 동식물이 그에 맞게 진화 번성하였습니다. 인간의 적절치 못한 동식물의 유입은 생태계의 불균형을 초래하기도 하고 심지어 인간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생태계가 파괴되기도 합니다. 인간들이 저지른 잘못으로 인한 대표적 생태교란 사례를 살펴보면 해충의 박멸을 위해 보급된 호주의 두꺼비로 인간의 오만한 편견은 곧 화를 불러오게 되었습니다. 식성이 좋은 이 두꺼비 떼는 해충뿐만 아니라 자연의 먹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합니다. 또한 두꺼비 본연의 독은 매우 강해서 자연 상태에서 천적이 거의 없어 지금은 정부 차원에서 이 두꺼비를 몰아내기 위해 해마다 두꺼비 잡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역시 생태계 교란에 대한 대책도 없이 들여온 수많은 외래종에 의해 우리의 토종 생물들이 그 존재가 위태롭습니다.
- <우렁 각시> 부분
오늘날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환경문제는 단순히 자연세계 내에서의 문제로만 접근할 수 없다. <우렁각시>는 자연 그대로의 눈으로 자연을 관조하면서 현실을 비판한다.“그러나 자연은 우리가 생각한 대로 되는 게 아닙니다.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였습니다”라는 대목은 생명 그 자체의 존엄을 이야기한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물질적 풍요를 얻었지만 환경파괴가 심각해져 여러 문제점들이 발생하였다. 전통적인 환경주의자는 기존 사회의 틀을 유지하면서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환경문제는 갈수록 더 심각해졌다. 단지 환경문제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부 농가에서는 왕우렁이를 외국에서 들여와 제초의 기능이 끝난 겨울에는 얼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왕우렁이는 인간을 우롱하듯 추위를 견디고 살아남아 일 년에 몇 번씩 번식하여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다. 준비 없이 우리 생태계에 들여온 외래 생명이 인간의 이기심과 맞물려 엄청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에 작가는 설화 우렁각시와 견주어 현실을 비판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한겨울의 들판은 긴 침묵을 누리는 빈 논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얗게 줄지어 선 비닐하우스가 숲을 이룹니다. 그래서 이제는‘농한기’라는 말이 농촌에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농촌의 검고 붉은 흙과 마주하면 존경의 마음이 생겨납니다. 수많은 곡식과 채소의 씨를 싹 틔우고 자라게 하는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어릿어릿한 선생인 내가 그런 땅의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씨앗을 품어 키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올곧고 튼실한 씨앗도 품어서 키우고, 조금 비고 여린 씨알은 좀 더 잘 자라게 실핏줄 같은 가는 뿌리에 힘을 돋우어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 <흙의 가슴> 부분
화자는 순간순간의 삶에 더 성실하고 스스로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을 해나가려 한다. 세상의 모든 씨앗을 품어 안는 땅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할 수 있었으면 하는 인간적인 소망을 흙을 보며 생각한다. 이러한 사유는 일상을 지나가는 관성이 아니라 창조적 존재로 끌어올리기 위한 의지의 확산이다. 자기 삶을 표현함으로써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려 한다. 사물 속에서 우주의 진리를 발견해 내려는 철학적 사유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4. 그리움과 인연의 자리
이선애 수필은 사람 사이의 인연을 바탕으로 그리움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수필을 가장 인간적인 문학이라고 했을 때, 수필의 존재 가치는 인간의 삶과 함께 빛을 발해야한다. 그의 수필에서는 그리움의 대상을 찾아 추억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녀는 정이 많은 사람이다. 따뜻한 눈으로 세상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자세히 들어다 보고 아파하고 슬퍼하고 손을 잡아 주려한다. 이선애 수필의 특징 중에서 강한 색채성을 가지는 것은 그리움의 서정성이라 할 수 있다. <마음보다 계절이 먼저 가버립니다>는 작가가 산소 주변에 무수히 핀 찔레꽃을 보면서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글이다.
육십을 코앞에 둔 젊디젊은 아버지를 보냈습니다. 저는 슬프기보다 억울하였습니다. 저보다 더 일찍 더 아프게 부모님을 여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별을 잃은 저는 무조건 분하고 억울하여 아버지 무덤 옆에 핀 하얀 찔레꽃만 노려보았습니다. 이제 저는 다른 이의 환갑잔치며 칠순 잔치엔 가기 싫습니다. 괜한 시샘에 제 맘속에 또 하얗게 찔레꽃이 피워 올려서 마음 한구석을 찔러 버립니다. 하지만 봄날이 가듯 세월이 흐르면 이 가시도 무뎌지고 제 마음에 핀 꽃도 시들겠지요.
-<마음보다 먼저 계절이 가버립니다> 부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자연물의 형상으로 그려낸다. “아버지를 보내는 길에 찔레꽃은 흰옷을 입고 처연하게 피어 있었습니다”라는 표현이 그렇다. 한결같이 다정다감한 인정이 녹아 있고, 그 인정으로부터 삶의 의의를 깨닫는 작가의 인간적 체취가 드러난다. “싱그러운 첫여름이 저 멀리서 다가서고 있습니다. 제 마음은 아직도 봄의 한 자락을 잡고 있는데 마음보다 계절이 먼저 가버립니다”라는 표현은 봄의 찔레꽃으로 상징화된다. 아버지라는 제재를 통해 그리움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이다.
그냥은 없습니다. 어쩌면 우연이란 탈을 쓴 필연들이 모여 있는 것이 이 세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봄날입니다. 하롱하롱 떨어지는 봄꽃은 피어야 할 필연이 있고, 지금 바람이라는 우연을 맞아 자신의 유전자를 전해 줄 열매를 기약하는 것입니다. // 우연이 없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내 눈앞에 뒹구는 돌멩이 하나에도 풀꽃 한 송이에는 나와 만나야 할 이유가 있고, 존재의 이유가 있습니다. 내 영혼의 부름에 답한 것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이고, 내가 이 세상에 답하여 나온 것입니다. 나의 존재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연은 없다> 부분
위작품은 인간의 삶이 그저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실핏줄처럼 연결된 필연에 의해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한다. “우연이 없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라는 표현은 존재의 깊이를 상징한다. 인연(因緣)에서 인(因)이라는 것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직접적이고 내재적인 원인, 연(緣)은 인을 도와 결과를 만들어내는 간접적이고 외적인 원인이다. 불교에서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일체의 사물은 각각의 인연이 합해져 만들어지는 것으로 항상 변화하고 일순간이라도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작가는 아침 수업에 들어가 과제검사를 하면서 학생들의 그냥이라는 대답에서 철학적으로 사유를 한다. 삶의 생태계에서 우연의 탈을 쓴 필연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란 사실을 말하며 이것을 도킨스의《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내 유전자를 이어받는 자손을 만들기 위해 생명체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타인을 돕는 일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남을 돕는 행위가 개체수준에서는 손해를 보는 일이지만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작가는 생명이란 유전자의 이어짐으로 생태계는 보이지 않는 끈들이 이어져 있음을 말해준다.
5. 건강한 욕망과 열림의 사유
이선애는 자연 속에서 순응하는 모습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인간은 자연과 사회 환경 그리고 정신이라는 삼각의 구도를 형성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그러면서 새롭고 건강한 욕망을 꿈꾸며 열림의 사유를 지향한다. 다음 인용문을 보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큐피드의 사랑하는 소녀 프시케(psyche)는 나비란 뜻입니다. 영혼이 있는 나비로 어떤 어려움도 견디고 자신의 사랑을 이루는 프시케의 모습은 누에고치를 찢고 나와 기어 다니는 존재에서 날아다니는 찬란한 생명체로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한 마리의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고치를 짓고 그 속에서 자아성찰과 고독의 과정을 겪어야 온전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봄은 꽃의 계절이고 나비의 계절입니다. 꽃이 피려면 생살을 찢는 아픔을 동반하여야 하듯이 나비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날개를 얻기 위해 긴 침묵의 시간을 외롭게 혼자 견뎌야하니까요.
- <나비를 보다>부분
꽃과 나비를 대조하면서 욕망의 근원을 향해 달려간다. 그 접근 과정에서 장자의 나비의 꿈 이야기가 공감을 자아낸다. 꽃의 성장과정과 나비의 진화 과정이 아픔을 동반하고 인내를 필요하다는 점이다.
현대의 여인들도 비슷합니다. 봄이면 꽃구경과 축제를 핑계로 바다로 산으로 꽃 같은 옷을 입고 나서는 것이죠. 그 향기를 따라 젊은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입니다. 물론,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지 않아 봄에 눈이 맞은 처녀 총각이 가을에 혼례를 올리는 어여쁜 일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봄에는 가슴이 뛰고 가을이 그 뛰는 가슴으로 내 사랑을 거두어들여 한 가정을 이루는 삶은 찬란한 봄꽃처럼 아름답습니다. 봄꽃은 도발적입니다. 그 봄꽃의 도발에 동참하고 싶은 봄입니다.
- <도발적인 봄꽃> 부분
자연 속에 관찰한 대상에 대한 애정과 성찰은 수필을 우물처럼 깊게 한다. 하버드 대학의 쿠퍼랜드 교수는 모범적인 수필가란 방랑자요, 구경꾼이요, 게으름뱅이라고 한 바 있다. 작가는 모범적인 수필가의 길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또한 강마을의 봄꽃을 구경하며 봄이 오는 강가를 천천히 걷는 게으름뱅이가 되어 느릿느릿 걷기도 한다. 수필을 통해 자기 존재를 자기 눈으로 응시하는 것이다. 그녀가 강마을에서 봄꽃을 바라보는 눈길과 그 의미화는“봄꽃은 도발적입니다. 그 봄꽃의 도발에 동참하고 싶은 봄입니다”이다. 이 부분은 욕망 주체의 진정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참신한 비유와 암시를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미학적 형상화가 이루어졌다. “봄에는 가슴이 뛰고 가을이 그 뛰는 가슴으로 내 사랑을 거두어들여 한 가정을 이루는 삶은 찬란한 봄꽃처럼 아름답습니다”라는 말로 건강한 욕망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상에서 이선애의 작품세계를 수필집《강마을 편지》를 통해서 살펴보았다. 그 결과를 요약해보면 ①그만이 가진 특별한 문학적 공간, ②자연으로 채색한 푸른 감성, ③생태적 세계관과 철학적 사유, ④그리움과 인연의 자리, ⑤건강한 욕망과 열림의 사유, 등이었다.
독자에게 사랑받는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작품 속에 남다른 작가의 숨결과 체취가 있어야 한다. 수필집《강마을 편지》에는 사계절이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강기슭엔 물푸레나무가 푸른 향기 가득한 바람을 날리고 그 아래 도발적인 봄꽃이 피어있다. 2층 계단으로 타악기 소리를 내며 뛰어가는 아이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정 많은 선생님이 있다. 강마을 작가로 불리는 그녀의 색깔은 분명하다. 그녀의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는 신문이나 잡지에서도 이선애 작가의 글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독특한 분위기와 필체가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색채의 언어로 깊은 성찰의 세계를 보여준다. 자연을 자신만의 개성으로 그려낸다고도 할 수 있다. 꾸준한 자기 연찬으로 늘 책을 손에 놓지 않고, 동네 사람들과 독서 모임을 통해 독서의 사회화에도 힘쓰고 있다. 열정적이며 다양하게 활동하는 젊은 작가의 모습을 통해 수필의 밝은 미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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