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17 (토) '이재명 비선 여론조사 파문' 일파만파
권노갑 상임고문과 정대철 헌정회장 등 더불어민주당 원로들이 최근 불거진 민주당 공천 과정에서의 이재명 대표 비선(秘線) 조직 개입 논란과 이들에 의한 '여론조사 생성·조작설'에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하고 나서면서 야권 내 파문이 확산될 조짐을 보인다. 권노갑 고문과 정대철 회장, 이강철 전 노무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강창일 전 의원은 2월 14일 공동 명의 입장문을 통해 "22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당내 상황이 심히 우려돼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며 "비선 조직이 공천에 개입한다는 소문이 여의도에 파다하다"고 지적했다.
권노갑 고문은 'DJ의 분신'이라 불리며 최근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 시기에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극심한 고문을 겪는 등 민주당 역사의 산 증인이다. 정대철 회장은 야권 출신으로 첫 헌정회장에 선출된 인물로 부친 정일형 박사와 본인, 아들 정호준 전 의원까지 3대가 민주당 계열로 14선 의원을 지낸, 역시 민주당의 살아있는 역사다.
이강철 전 수석은 1988년부터 2005년까지 17년간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꾸준히 출마하며 민주당의 동진(東進) 정책을 스스로 실천한 'TK 야권의 대부'다. 강창일 전 의원은 3선 개헌 반대 시위부터 시작해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정통 민주화 세력으로, 민주당에서 4선 의원을 지냈다. 이들은 입장문에서 "경기도팀 등 정체불명의 비선 조직이 공천에 개입한다는 소문이 여의도에 파다하다"며 "공당의 공천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인데, 공천 과정이 불투명하다면 어느 누가 그 당을 신뢰하겠느냐"고 우려를 표명했다.
원로들의 우려는 최근 경기 광주을 지역의 공천을 둘러싼 내홍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경기 광주을에는 인근 지역구에서 재선을 한 문학진 전 의원과 안태준 이재명 대표 특별보좌역, 신동헌 전 경기광주시장, 박덕동 전 경기도의원 등 네 명의 민주당 예비후보가 공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상황에서 이재명 대표가 지난달 1월 27일 오전 문학진 전 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형님(문학진 전 의원)이 꼴지를 했다더라"며 "후보 적합도 조사 결과 안태준이 31%, 신동헌과 박덕동이 각 11%, 형님이 10% 나왔다"고 불출마를 종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 문학진 "납득할 수 없는 수치를 조작"
이에 대해 불출마 종용을 받은 문학진 전 의원 본인은 물론 민주당 안팎에서도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언급한 여론조사 수치가 너무나 절묘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당헌·당규에 따르면 후보 적합도 1위 후보가 차점자 그룹과 20%p 이상 차이가 나면 경선 없이 단수공천을 줄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런데 하필 이재명 대표 본인의 특별보좌역을 맡고 있는 안태준 예비후보가 차점자인 신동헌·박덕동 예비후보와 정확하게 20%p 차이가 나는 여론조사가 나올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예비후보들의 경력을 봐도 신동헌 예비후보는 전직 기초단체장, 박덕동 예비후보는 전직 광역의원, 문학진 전 의원은 인근 지역구의 전직 재선 의원으로 나름의 인지도와 조직이 있는데, 이재명 대표의 특별보좌역인 안태준 예비후보만 30%대 적합도가 나오고, 다른 세 예비후보는 나란히 10~11% 적합도가 나온 게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반응도 나온다. 당사자인 문학진 전 의원은 "터무니 없는 수치"라며 "(이재명 대표가 자신의) 친위 부대를 꽂으려다보니 비선에서 무리수를 둔 것이고,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없는 수치를 조작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권노갑 고문과 정대철 회장 등 민주당 원로들도 "우리 (민주)당에는 시스템 공천 제도가 확보돼 있다. 모든 후보가 신뢰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밟기를 바란다"며 "이미 비선의 개입으로 그 공정성이 의심되는 바, 경기 광주을 지역에서 경쟁력 있는 후보간 경선을 실시하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소상공인연합회 간담회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이에 대해 "당의 공식 조사 결과"라며 "그분(문학진 전 의원)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은데, 그 입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대통령 축사 중 카이스트 졸업생도 입 틀어막고 ‘사지 연행’
2월 16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졸업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을 항의하던 졸업생이 대통령실 경호처 경호원에 의해 끌려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KAIST 졸업생 A씨는 대전 유성구 KAIST에서 열린 2024년 학위수여식에 참석해 축사 중이던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올해 과학기술 분야 R&D 예산이 삭감된 데 항의했다. 이후 경호원들이 그를 붙잡았고, 졸업식 현장에서 쫓겨났다.
A씨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졸업식장에서 끌려 나와 경호원들이 대기하라고 한 장소에 혼자 있다가 유성경찰서로 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대통령실 경호처에서 경찰로 인계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초 국무총리가 온다는 얘기를 듣고 항의를 하려고 했는데 대통령이 방문했고 예정대로 항의하다가 쫓겨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경호처는 “경호 구역 내에서의 경호 안전 확보 및 행사장 질서 확립을 위해 소란 행위자를 분리 조치했다”며 “법과 규정, 경호 원칙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이날 현장에 있었던 KAIST 졸업생 B씨는 “친구 A씨가 발언하자 근처에 졸업 학위복을 입고 있던 경호원들이 끌고 나갔다”고 전했다. 정부는 지난해 국가 R&D 예산 전면 재검토에 들어가 올해 관련 예산은 총 26조5000억원으로 확정돼 전년 31조원 대비 15%가량 삭감됐다.
정부의 R&D 예산이 줄어든 것은 1991년 이후 처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축사를 통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라”며 “대통령 당선 후 매년 KAIST를 방문하는 이유는 한계 없는 상상력과 탐구로 성장한 우리나라 최고 인재들이 대한민국은 물론 인류의 미래를 더욱 밝고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KAIST 방문은 이번이 세 번째다. 윤석열 대통령은 “과학 강국으로의 퀀텀 점프를 위해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확대하겠다”며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연구와 신진 연구자의 성장을 전폭 지원하겠다. 세계 최고 연구자들과 협력하고 교류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KAIST 학위수여식에서는 학사 694명, 석사 1564명, 박사 756명이 학위를 받았다.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졸업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삭감된 연구개발(R&D) 예산 복원을 외치던 졸업생이 경호원에 의해 강제로 퇴장당했다. 퇴장당한 졸업생은 녹색정의당 대전시당 신민기 대변인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2월 16일 오후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에서 열린 2024년 학위수여식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십시오.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제가 여러분의 손을 굳게 잡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졸업생들이 앉은 좌석에서 검은색 학사복을 입은 한 남학생이 윤 대통령이 선 곳을 향해 고성을 질렀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 학생은 'R&D(연구·개발) 예산을 보강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경호원은 즉각 해당 졸업생의 입을 틀어 막았다. 졸업생이 제압되지 않자 경호원 여러 명이 붙어 곧장 그의 사지를 들고 행사장 밖으로 끌고 나갔다. 대통령실은 대변인실 명의 입장문을 내고 "윤석열 대통령이 오늘 오후 참석한 카이스트 학위 수여식에서 소란이 있었다"며 "대통령경호처는 경호 구역 내에서의 경호 안전 확보 및 행사장 질서 확립을 위해 소란 행위자를 분리 조치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법과 규정, 경호원칙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강조했다.
녹색정의당은 이날 오후 국회소통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카이스트 졸업식에 졸업생으로 참석한 녹색정의당 대전시당 신민기 대변인이 연구개발 예산을 복원하라는 요청 한마디를 내뱉던 와중에 대통령 경호원들에 의해 폭압적으로 끌려 나갔다"며 "카이스트 모처에 감금되어 있던 신민기 대변인은 현재 경찰서로 연행된 상황"이라고 밝혔다. 현재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는 대통령 경호원들이 졸업생을 끌고 나가는 사진과 영상들이 게시된 상태다. 특히 카이스트 졸업복을 입고 학생들 사이에 잠복해 있던 경호원들이 소란이 벌어지자 곳곳에서 튀어나와 졸업생을 제압하는 모습을 두고 불쾌감을 표하는 의견도 나왔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군중이 많은 곳에서는 위장 근무를 한다. 예전부터 해오던 경호기법"이라며 "매뉴얼에 따른 대응이었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달 1월 18일에는 대통령이 참석한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대통령경호처 경호 요원들에 의해 강제 퇴장을 당한 바 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과 악수하면서 손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끌어당기며 큰 소리로 국정 기조 전환을 요구했다. 대통령실은 '경호상 위해 행위'로 판단해 강성희 의원을 퇴장 조치했다.
클린스만 축구 감독 경질… 정몽규, "사퇴 여론에 오해"
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을 전격 경질했지만, 본인의 책임은 교묘하게 피해갔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2월 16일 서울시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임원 회의에서 클린스만 감독의 거취 문제에 대해 논의한 뒤 회의 결과를 발표했다. 먼저 정 회장은 "많은 국민께 실망을 드려 대단히 송구스럽다"면서 "협회에 대한 비판과 비난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오늘 대표팀 감독에 대한 평가가 중점적으로 논의했고, 최종적으로 대표팀 감독을 교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해 3월 부임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다. 지도력에 대한 의구심은 물론 여러 기행을 일삼아 선임을 두고 여러 의문이 제기됐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2019년 11월 헤르타 베를린(독일)을 맡았지만 단 10주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은 바 있다. 당시 구단과 상의 없이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사퇴를 발표하는 등 기행을 벌였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 정몽규 회장이다. 그래서 정몽규 회장은 감독 선임 과정에서 원칙과 시스템을 무시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협회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탈락한 뒤 경질 여론이 불거지자 정몽규 회장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는 "오해가 있는 것 같다. 파울루 벤투 전 감독 선임 과정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정몽규 회장은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할 때는 후보가 61명에서 23명으로 좁혀지다 마이클 뮐러 위원장이 5명으로 좁혔다"면서 "최종 후보 5명과 인터뷰 했고, 우선 순위 2명과 면접 후 클린스만 감독이 선임됐다"고 말했다. 클린스만 감독의 기행은 한국 지휘봉을 잡은 뒤에도 이어졌다. 클린스만 감독은 잦은 해외 출장과 재택 근무로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는 "나는 워커홀릭이다. 일하는 방식을 다를 수 있다"고 존중을 요구했다.
그러나 클린스만 감독을 믿고 맡긴 결과는 참담했다. 손흥민(토트넘),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등 역대 최고 전력을 앞세워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을 노렸지만 허무하게 좌절했다. 대회 과정에서 클린스만 감독의 무능이 증명됐다. 준결승에서 요르단에 0-2로 참패했는데, 앞서 조별리그(2-2 무승부)에서 한 차례 맞붙었음에도 상대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결국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한 정몽규 회장의 책임론이 이어졌다. 시민단체 '턴라이트'는 전날에 이어 연이틀 축구회관 앞에서 "정몽규는 물러가라"라고 외치며 정몽규 회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하지만 정몽규 회장은 사퇴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18년 축구협회 총회 때 회장 임기를 3연임 하도록 제안을 했다"면서 "당시 대한체육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이것이 답변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을 아꼈다. 결국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 대표팀 사령탑에서 물러나게 됐다. 지난해 3월 부임 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경질됐다. 이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확실한 원칙과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정몽규 회장은 "새로운 전력강화위원회를 선임하고, 차기 사령탑 선임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韓, '北 형제국' 쿠바와 수교… 김정은, '충격' 예상
한국이 2월 14일 중남미 공산국가인 쿠바와 수교를 공식화했다. 북한의 '형제국'인 쿠바와의 외교 관계 수립은 수교 국가 수가 하나 늘어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외교적 고립 심화로 이어질 전망이다.
◆ 193번째 수교… 시리아만 남아
외교부는 "한국과 쿠바가 미국 뉴욕에서 양국 주유엔대표부 간 외교 공한 교환을 통해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쿠바는 한국의 193번째 수교국이다. 이로써 유엔 회원국 중 한국이 아직 수교하지 않은 나라는 시리아가 유일하다. 외교부는 "중남미 카리브 지역 국가 중 유일한 미수교국인 쿠바와의 외교 관계 수립은 한국의 중남미 외교 강화를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라며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한국의 외교 지평을 더욱 확장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그간 한국과 쿠바가 문화, 인적 교류, 개발 협력 등 비정치 분야를 중심으로 교류·협력을 강화했던 것도 수교의 주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쿠바 내에 퍼진 한류의 영향과 쿠바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의 증가로 양국 국민 간 우호 인식은 최근 크게 증진됐다. 배우 이민호, 윤상현 등은 쿠바에서 한류 스타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코로나 19 이전까지 연간 약 1만 4000명의 한국 국민이 쿠바를 방문한 것으로 집계됐다. 외교부는 이날 수교 사실을 발표하며 "향후 쿠바 정부와 상호 상주 공관 개설 등 수교 후속 조치를 적극적으로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 걸림돌 北 넘어섰다
한국과 쿠바는 쿠바의 공산혁명이 있었던 1959년 이후 교류가 단절됐다. 이듬해인 1960년 쿠바는 북한과 수교하고 서로의 '형제국'이라고 불릴 만큼 밀접한 관계를 쌓아갔다. 북한은 쿠바에 대해 "미국에 맞서 같은 참호에서 투쟁하는 사이"라고 강조해왔는데 이런 북한과 쿠바의 특수 관계가 한·쿠바 관계 개선에는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이후 정부가 쿠바에 수교 교섭을 처음으로 공식 제안한 건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이다.
이후 미국이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4~2015년 교황청의 중재로 쿠바와 국교 정상화 절차를 마무리한 이후 한국도 쿠바와 외교 관계 수립을 위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시기였던 2016년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이 한국 외교 수장으로는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한 게 상징적 사례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 미국은 쿠바 정권이 인권을 탄압하고 베네수엘라를 돕는다는 이유 등으로 쿠바에 고강도 제재를 가했다.
미국과 쿠바 관계가 전례없이 악화하면서 국내에서도 쿠바와의 수교 논의는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다. 국내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 들어선 것도 큰 영향을 줬다. 그렇다고 불씨가 완전히 사그라든 건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5월에도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이 쿠바에서 개최된 제37차 유엔 중남미카리브경제위원회(ECLAC) 총회에 참석해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 장관과 회담을 진행했다. 그러나 북한과의 관계를 우선시한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달가워할 리 없는 쿠바와의 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진 않았다.
◆ 북한 압박 효과 강할 듯
반면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쿠바와의 수교 협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하는 효과를 노리는 한편 쿠바와의 수교로 시리아 외 모든 유엔 회원국과 수교를 이뤘다는 상징적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마지막 퍼즐을 맞춘 것이나 마찬가지다. 박진 전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5월 과테말라에서 개최된 카리브국가연합(ACS) 정상회의와 각료 회의 계기에 쿠바 측 대표로 참석했던 쿠바 외교 차관과 만나 양국 간 교류 협력 증진 방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때도 수교 협상과 관련한 논의가 오갔는데 이후 양국 간 물밑 협의가 본격화했고 이후 실제 수교로 이어졌다.
이날 한국과 쿠바의 전격적인 수교 합의로 북한은 적지 않게 당황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최근 평양에는 에두아르도 루이스 코레아 가르시아 신임 주북한 쿠바 대사가 새로 부임했다. 코로나 19 여파가 지나간 이후 중국, 몽골에 이어 쿠바가 세 번째로 북한에 신임장을 제출한 셈이다. 최근 북한은 핵·미사일 도발을 이어가며 비서방, 반미 외교 강화를 기치로 내걸고 있는데 핵심 우방 중 하나인 쿠바가 한국과 수교를 결정하면서 사실상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됐다. 북한으로선 1992년 한·중 수교와 맞먹는 급의 충격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북한과 쿠바와의 관계는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이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들어서도 긴밀하게 유지됐다.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장은 김일성 주석과 친밀한 관계였고, 그는 1986년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기도 했다. 1980년대 당시 소련이 쿠바의 무기 지원을 거절한 것과 달리 김일성은 카스트로에게 AK소총 10만 정 등을 무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2018년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도 평양을 찾아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했다. 당시 북한은 김정은-디아스카넬 정상회담을 "두 나라 친선관계를 영원히 계승해가려는 확고한 의지를 과시한 분수령"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조만간 북한이 한·쿠바 수교와 관련해 공식 입장 등을 통해 노골적으로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앞서 2016년 윤병세 장관이 쿠바를 방문한 직후에도 김정은은 방북한 살바도르 발데스 메사 쿠바 국가평의회 부의장을 배석자 없이 만나는가 하면 그를 끌어안고 뺨을 맞대는 장면을 공개하는 등 극진하게 예우하며 한·쿠바 관계 개선을 막으려 했다. 2월 14일 외교부에 따르면 한국은 쿠바를 포함해 193개국과 수교하고 있으며, 북한은 159개국과 수교하고 있다. 북한과의 외교 관계 없이 한국과 단독으로 수교한 국가는 36개국이다. 반면 한국과의 외교 관계없이 북한과 수교한 국가는 전 세계에서 시리아, 팔레스타인 2개국뿐이다.
지난 2월 14일 밤늦게 발표된 한국과 쿠바의 수교는 우리 정부의 오랜 외교 숙원이었다. 중남미와 사회주의 국가 가운데 유일한 미수교국인 쿠바는 ‘글로벌 중추 국가’를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의 마지막 퍼즐로 꼽혔다. 그동안 ‘형제 국가’인 북한과의 관계 등을 이유로 신중한 입장을 보여 왔던 쿠바와의 외교관계 논의가 급물살을 타자 정부는 이번엔 반드시 결실을 볼 수 있도록 모든 절차를 매우 극비리에 진행했다.
2월 15일 정부와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설 연휴 직전 쿠바 측이 적극적인 수교 협의 의사를 밝히면서 연휴 내내 미국 뉴욕의 주유엔대표부와 쿠바를 관할해 온 주멕시코대사관 채널을 통해 막판 소통이 이뤄졌다. 외교 공한(공적 편지)을 주고받은 황준국 주유엔대사, 헤라르도 페날베르 포르탈 주유엔쿠바대사를 포함해 극소수를 제외하고 양국 유엔 대표부에서도 협상 진행을 알지 못했다. 양국 수교는 유엔대표부가 현지시간 14일 오전 8시(한국시간 오후 10시)에 외교 공한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14시간 시차를 두고 양국이 동일한 수교 일자를 맞추기 위해 합의한 시간이다.
양측은 공한을 주고받고 정확히 5분 뒤 이를 공표하기로 ‘분’까지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국내 언론에 배포할 보도자료에 수교의 의미를 좀더 자세히 담겠다는 것도 쿠바 측과 협의했다. 국내에서는 지난 2월 13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비공개로 한·쿠바 수교안이 의결됐다. 국무위원들조차 회의장에서 안건이 적힌 종이를 보고서야 양국 수교 방침을 인지했고, 회의 종료 뒤엔 이 종이를 바로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표 시점이 2월 14일 늦은 밤인 만큼 국내 언론에 ‘엠바고’(보도유예)를 걸고 미리 알리는 방안도 언급됐지만 무산됐고, 당국자들은 약속된 시점 직전까지 철저히 함구했다.
정부 관계자는 “외교 공한을 교환할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북한의 견제나 방해로 무산되지 않도록 철저한 비밀을 유지한 것이다. 양국은 외교 공한 교환 사진도 공개하지 않았다. 정부는 동맹인 미국에도 수교 12시간 전에 공식적으로 수교 사실을 알렸다. 막판 절차는 긴박하게 이뤄졌지만 한국 정부는 쿠바의 문을 열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가 아니라 물컵에 계속 물을 따르다가 어느 순간에 확 차고 넘친 것”이라고 표현했다. 특정한 계기보다 오랜 시간의 노력과 경제·문화·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교류로 개선된 상호 인식 등 종합적인 요인이 결실을 맺었다는 설명이다.
1959년 쿠바 사회주의 혁명 이후 양국은 교류하지 않았다. 반면 쿠바와 북한은 1960년부터 수교를 맺고 반미, 사회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형제국’으로 불리며 깊은 우호관계를 이어 왔다. 그러다 1999년 한국이 유엔총회의 대(對)쿠바 금수 해제 결의안에 처음 찬성표를 던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2000년부터 쿠바에 직접 수교를 제안했고 2005년 쿠바 수도 아바나에 코트라(KOTRA) 사무소를 여는 등 교류를 늘렸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이후 정부마다 수교와 영사관계 수립을 꾸준히 제안했고, 2016년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외교수장으로는 처음 쿠바를 공식 방문하며 수교 추진에 속도를 내기도 했지만 여전히 쿠바는 극도로 신중했다. 현 조태열 외교부 장관도 당시 외교부 2차관으로 쿠바를 찾았다.
윤석열 정부 들어 더 적극적으로 쿠바의 문을 두드렸다. 박진 전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5월 카리브국가연합(ACS) 정상회의와 9월 유엔총회 등 한 해 동안 세 차례 쿠바 고위 관료들과 접촉했다. 또 국제 다자회의는 물론 영화제, 민간 학술회의 등 교류 때마다 각급에서 쿠바와 소통했다. 정부는 2022년 연료 저장시설 폭발사고(20만 달러), 지난해 6월 폭우(30만 달러) 피해에 대해 쿠바에 인도적 지원을 제공했다. 유엔 회원국 가운데 또 다른 미수교국인 시리아는 수교가 불가능한 내전 상황이라 이번 쿠바와의 수교는 사실상 정부가 추진해 온 국교 수립의 완성으로 여겨진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과거 동구권 국가를 포함해 북한의 우호 국가였던 대사회주의권 외교의 완결판”이라고 설명했다.
‘외교 운동장’을 한 뼘 더 넓히는 계기로도 기대를 모은다. 이번 쿠바와의 수교로 정부는 집권 초기 인도·태평양 지역 내 외교 집중에서 벗어나 중반부터는 중남미·서반구로 지평을 넓히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도 평가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쿠바는 미국의 제재를 받는데도 190여개국과 수교했고 100여개국이 아바나에 대사관을 운영하는 중남미 거점국 중 하나”라며 제3세계 외교 등에서 쿠바가 갖는 영향력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국제사회에서 갈수록 고립되고 있는 북한을 향한 ‘압박 메시지’가 될 것으로도 예상된다. 이 고위 관계자는 “북한으로서는 상당한 정치적·심리적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양국 발표가 있기 전까지 이를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한·쿠바 수교에 대해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이날 북한 매체들이 북한 주재 외교단 소식을 전하면서 쿠바는 언급하지 않아 불쾌감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철밥통이 장점?… 당장 받는 건 쥐꼬리"
한때 꿈의 직업으로 꼽혔던 9급 공무원의 인기가 수직 하강 중이다. 올해 공채 경쟁률이 32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2010년 82.2대 1에 육박했던 경쟁률은 올해 21.8대 1로 급감했다. 지원자 수도 전년에 비해 약 1만8000명 줄었다. 초·중·고등학생들의 희망 직업에서 공무원은 희망 직업 1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공무원 인기가 사그라든 배경에는 낮은 보수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9급 공무원 초임 연봉은 올해 처음으로 3000만원을 넘겼다.
◆ 82.2대 1→21.8대 1… 32년만 최저 경쟁률
2월 15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올해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 채용시험 평균 경쟁률(18~22일 원서 접수)은 21.8로 집계됐다. 이는 1992년(19.3대 1) 이후 32년 만에 최저치다. 지원자 수 역시 작년(12만1526명)과 비교해 1만7929명 급감했다. 올해 선발 예정 인원 4749명에 총 10만3597명이 지원했다. 평균 경쟁률은 지난 2005년(76.1대 1)에서 2010년(82.2대 1)로 정점을 찍었다가 2015년(51.6대 1)부터 하락세가 뚜렷하다. 2020년 37.2대 1, 2021년 35.0대 1, 2022년 29.2대 1, 지난해 22.8대 1, 올해 21.8대 1 등으로 꾸준히 떨어졌다.
지원자 평균 연령은 30.4세다. 연령대별로는 20대 이하가 54.0%로 가장 많고, 30대 35.6%, 40대 9.2%, 50세 이상 1.2% 순이었다. 연령대가 낮을수록 직업으로서의 공무원 인기는 더욱 떨어진다. 교육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초중고 장래희망 조사(2023년)를 보면, 공무원은 희망직업 톱 10위에 모두 들지 못했다. 초중고 모두에서 10위권에 밀려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년(2022년)까지는 중학생에게서만 희망 직업 10위로 턱걸이했으나 작년 무려 17위로 밀렸다. 중학생 장래희망에서 공무원은 2020~2021년 6위 등 매년 6~10위권 안에 드는 상위 희망 직업이었다.
◆ 올해 9급 초임 연봉 3000만원 넘겨
공무원 인기 하락에 정부가 처우 개선에 나섰다. 올해 9급 공무원의 초임 연봉이 전년 대비 6% 인상되면서 처음으로 3000만원을 넘기게 됐다. 인사처의 '공무원 보수 규정'에 따르면 올해 전체 공무원 보수는 전년 대비 2.5% 인상되는데, 여기에 7~9급 일부 저연차 공무원에게는 3.5%의 추가분을 적용해 6% 인상된다. 아울러 저연차 공무원의 장기 재직을 장려하기 위해 5년 이상 재직 공무원에게만 지급하던 정근수당 가산금 지급대상을 확대해 5년 미만에게도 월 3만원의 수당을 지급한다.
이를 반영한 2024년 9급 초임(1호봉) 보수는 연 3010만원(월 평균 251만원) 수준으로, 지난해 2831만원 대비 6.3%(연 179만원) 인상됐다. 9급 초봉이 연 3000만원을 넘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재난·안전업무를 상시 수행하는 재난안전법상 재난관리주관기관 소속 일반직 공무원에게는 월 8만원의 특수업무수당이 신설된다. 육아휴직 기간 중 실질적 소득 지원이 가능하도록 육아휴직수당 지급 방식도 개선된다.
종전에는 휴직 중 매월 육아휴직수당의 85%만 지급하고 나머지 금액은 복직해 6개월 이상 계속 근무 시 일시에 지급하고 있었지만, 올해부터는 둘째 이후 자녀에 대한 육아휴직자의 경우 휴직 중 공제 없이 육아휴직수당 전액을 지급한다. 김승호 인사처장은 "앞으로도 청년세대 저연차 공무원과 민생현장 공무원에 대한 처우를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등 공무원들이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근무여건을 개선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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