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비명
원제 : A Cry in the Night
1956년 미국영화
감독 : 프랭크 터틀
출연 : 나탈리 우드, 에드먼드 오브라이언, 브라이언 돈레비
리처드 앤더슨, 레이몬드 버, 아이린 허비
캐롤 비지, 메리 로렌스, 안소니 카루소
'한밤의 비명'은 우리나라에 개봉되지 않은 1950년대 흑백 고전입니다. 이 영화를 주저하지 않고 고른 이유는 바로 나탈리 우드 때문이지요. 아역 배우 출신의 나탈리 우드는 아시다시피 '초원의 빛'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라는, 20대 초반에 출연한 걸출한 두 영화로 인하여 우리나라에서 만인의 연인으로 인기를 누린 미모의 여배우입니다. 특히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의 미모는 가히 당대에 독보적이었습니다. 아담하고 가녀린 외모로서 남성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미녀였지요. '한밤의 비명'은 그녀의 아름다움이 절정이었던 18세에 출연한 작품입니다.
나탈리 우드가 30세가 넘은 덩치 큰 마마보이에게 납치당하는 사건을 다룬 필름 느와르 장르입니다. 1시간 20분이 안되는 짧은 흑백영화지요. 납치당한 소녀와 범인의 대치, 그 사건을 추격하는 경찰과의 긴박감 넘치는 반나절 새벽의 이야기입니다. 짧게 끝난 사건이었지만 납치범과 소녀의 긴장감 넘치는 신경전, 그리고 완고한 경찰 아버지로서 딸을 찾으려는 다급함과 그런 그를 지켜보며 우려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까지, 제법 심리적인 요소도 담겨 있습니다.
어른들의 눈을 피해 아베크족이 많이 몰려있는 도시의 구석진 어느 언덕, 18세가 된 경찰관의 딸 리즈(나탈리 우드)와 자동차 판매원 오웬(리처드 앤더슨)은 차안에서 뜨거운 키스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오웬은 리즈와 빨리 결혼하고 싶어했고, 부모에게 인사드리고 싶지만 무슨 이유인지 리즈는 그걸 꺼려하고 있었습니다. 오웬은 애타는 입장이지요. 둘이 차 안에서 키스를 나누던 중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오웬은 화가 나서 그에게 다가가서 다그치는데 불의의 일격을 맞고 정신을 잃습니다. 해롤드(레이몬드 버)라는 이름의 그는 오웬의 차를 훔쳐타고 리즈를 납치한 채 달아나고, 정신을 차린 오웬은 충격으로 잠시 기억을 잃었고 그런 모습을 본 경찰은 그가 술에 취한줄 알고 연행합니다. 정신이 든 오웬은 경찰에서 리즈가 납치당한 사실을 이야기하는데 리즈는 그곳 총경인 태거트(에드먼드 오브라이언)의 외동딸이었습니다. 야간 근무중이던 베이츠 총경(브라이언 돈레비)은 그 사실을 태거트에게 알리고 흥분한 태거트는 베이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경찰 수색에 합류합니다. 오웬은 하필 장인이 될 남자를 이렇게 최악의 상태에서 맞닥드리게 되어 난감해 하고 태거트는 오웬 때문에 리즈가 납치되었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화를 냅니다. 평소 딸의 사생활에 굉장히 간섭하고 경계하는 태거트는 그로 인하여 여동생의 애인마저 쫓아버렸고, 그런 아버지 때문에 리즈는 몰래 오웬을 은밀한 장소에서 만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해롤드는 리즈를 자신만이 아는 폐쇄된 벽돌공장으로 데려가서 감금하고 그녀의 환심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와중에 아들이 밤 늦게 돌아오지 않는다고 실종신고가 들어오고 경찰은 다 큰 아들의 실종신고를 한 그녀에 대해서 수상하게 생각합니다. 결국 그 전화가 단서가 되어 추격이 본격화 됩니다.
단지 한 소녀의 납치사건만을 다룬게 아니라 딸의 사생활을 너무 민감하게 여기는 가부장적 남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가급적 딸이 어린애가 아님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려는 엄마와 18세가 된 딸에게도 여전히 품안의 자식으로 끼고 살려는 아버지로 인하여 발생하는 문제, 특히 경찰로 평생 살아가면서 온갖 추악한 남자들의 범행을 봐온 아버지로서는 하나뿐인 딸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도 한편으로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의 사생활을 간섭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법, 결국 리즈의 유괴사건이 가족간의 숨겨진 갈등을 폭발시키게 되는데 과연 태거트는 자신의 강압적인 문제에 대해서 깨달을까요?
나탈리 우드는 흑백 화면이지만 감출 수 없는 그야말로 절정의 미모를 보여주며 그래서 더욱 유괴당한 상황을 안타깝게 만듭니다. 워낙 작은 체구라서 범인이 더 커 보였고, 가녀린 피해여성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출됩니다. '이유없는 반항'에서 비중있는 역할로 출연한 이후 '수색자'에서 실종된 백인 처녀로 출연한 뒤, 다시 납치당하여 위협을 겪는 소녀로 출연한 것입니다. 오랜 세월을 다룬 '수색자'와는 달리 반나절도 안되는 자정에서 새벽녘까지의 사건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나탈리 우드의 아버지로 출연한 에드먼드 오브라이언은 결코 잘생긴 외모는 아니지만 1939년 '노틀담의 꼽추'로 데뷔한 이래 40-60년대 많은 영화에서 개성있는 조연을 많이 한 인물입니다. 주로 악역을 많이 한 편이고, '맨발의 백작부인' '살인자' '알카트라즈의 조류가' '와일드 번치' 등의 영화 등이 유명한 작품들입니다. 1953년 '히치 하이커'라는 영화에서는 모처럼 주연으로도 등장하여 연쇄살인마에게 인질이 되어 고생하는 중년의 운전사로 출연했는데 3년뒤에 출연한 '한밤의 비명'에서는 주연으로 등장하여 납치당한 딸을 찾는 아버지로서의 급하고 답답한 상황을 잘 연기했습니다. 동료 경관으로 등장한 브라이언 돈레비도 침착하고 품위있는 연기를 보여주었고, 범인 해롤드 역의 레이몬드 버는 얼빠진 사이코 같은 역할을 그럴싸하게 했습니다. 조연진들의 연기가 대체로 좋습니다.
나탈리 우드의 연인으로 등장한 리처드 앤더슨은 우리나라에는 '6백만불의 사나이' 에서의 오스카 골드맨 국장으로 많이 알려진 인물입니다. 여기서는 훨씬 젊은 시절의 모습인데 그럼에도 18세 소녀의 연인으로는 너무 늙수그레해 보입니다. 훤칠한 훈남이긴 했지만 30살이나 되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의의 일격을 당해 연인을 납치당하고 그녀 아버지와 심한 갈등을 겪지만 나중에 자기 역할을 합니다.
유괴범과 피해자 여인과의 이야기보다는 경찰이 추격전을 펼치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다루는 것이 볼만한 영화입니다. 딸의 납치사건이라서 이성보다는 흥분하여 다급하게 행동하는 아버지와 그런 동료를 적절하게 컨트롤하면서 차분하고 침착하게 사건을 해결하려는 동료 총경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보여지면서 흥미를 높여주고 있습니다. 밤에 시작하여 아침이 되기 전에 끝나는 영화입니다. 몇 시간 동안에 벌어지는 일들을 범인과 피해자, 경찰, 가족, 범인의 어머니 등 다앙한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박진감있게 전개했습니다. 유명한 나탈리 우드가 출연했음에도 우리나라에 너무나 알려지지 않은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의 작품이지요. 개봉도 안되었지만 방영된 기억도, 출시도 되지 않은 영화니까요. 저는 오래전 어릴때 어느 잡지에서 아마도 'AFKN" 방영기사를 보고 알게 된 영화인데 참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접하게 된 것입니다. 제법 볼만한 영화지만 워낙 필름 느와르 영화중 빼어난 걸작들이 많아서 그다지 주목받는 작품은 아닙니다.
ps1 : 범인은 마마보이로 키운 엄마의 문제, 납치된 딸은 품안의 자식으로만 키운 아빠의 문제....엄마의 문제, 아빠의 문제를 다 다룬 셈입니다. 즉 부모는 자식이 빨리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미지요.
ps2 : 우리나라도 예전에 남산 순환도로 부근이 아베크족이 많이 모이는 고지대였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ps3 : 동시대 배우를 비교할 때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그레이스 켈리, 데보라 커, 에바 가드너, 리타 헤이워스 등은 고전적 미모의 여배우이고, 나탈리 우드는 굉장히 현대적 미모를 지닌 여배우입니다. 적어도 미모만 따진다면 지적할 게 없는 배우가 나탈리 우드죠. 그래서 맡을 수 있는 배역이 한정되어 있는 단점도 있었지만.
[출처] 한밤의 비명(A Cry in the Night, 56년) 나탈리 우드 주연 납치극|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