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명재상 약포 정탁)
By 정온
오백 년 넘는 세월을 가로질러
철들지 않은 나를 가르치는 자
전류처럼 흘러 심장을 펄떡이게 하는 자
싸늘하고 위태로운 밤길을 헤맬 때
나를 지탱해 준 내 시간의 아버지
멈춰진 시간 속에 영원히 살아
혼과 맥을 펄떡이게 하는 자여!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여!
떠도는 내 삶의 고삐를 단단히 움켜쥔
독수리의 발톱 같은 당신은
내 삶이 흔들리는 고비고비마다
귓속 망치뼈 모루뼈를 공명하는 자여!
전란에 난처럼 살다가 학처럼 가신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파도가 바위를 씻는 푸른 아침
그가 태어날 때 해시계는
어디쯤을 가리키고 있었을까?
물시계는 어디까지 차올랐을까?
해시계는 어느 편에 손을 들어주었을까?
동이었을까? 서였을까?
해를 벌컥 삼킨 흑룡의 시간에 태어나
자신의 목숨을 거침없이
나라를 위해 던져버린 약포 정탁
동서를 아우르는 포용력 있는 통 큰 정치인
1298자 아름다운 글로 왕의 싸늘한 마음을 녹여
충무공 이순신의 생명을 구하니
귀한 인연 아직도 계속되니
아름다워라, 오백 년의 사랑!
서른 번을 돌고 돌아 휘돌아 가면
내 아버지의 아버지가 뿌리처럼 언제나 그곳에 있다.
조선 최고의 명재상 정탁은 이순신, 김덕령, 곽재우 등 많은 명장들을 천거하고 그들의 생명을 구했다. 정탁의 기일에 충무공의 후손들이 오랫동안 함께했다. 아름다운 인연이다. 본인은 동인이었으나 서인과도 친분이 깊었으며 존중과 배려를 실천했다. 동서의 갈등이 극에 달한 시점에서도 양당을 아우르는 그의 포용력은 현재 많은 정치인들이 배워야 할 파라곤이다. 28대손 정재한이 현충사를 짓기 위해 노산이은상과 함께 했다. 난중일기를 해석했다. 독립기념관에는 정재한의 기증품이 있다. 그는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다. 아버지는 약포 정탁, 어머니는 서애 류성룡의 후손이다. 서애는 이순신을 까는데 앞장섰다. 대학자 할아버지께 늘 부끄러운 나는 약포 정탁의 30대 후손 정온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난 오늘도 공부를 한다.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