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중앙교회 윤창현목사(1984-2022) 정년 은퇴
한 교회서 20년 이상 목회하고 은퇴를 하는 분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우리의 작은 종 윤창현목사가 오는 13일 주일 3시에 37년간 시무하고 은퇴를 했다. 나보단 하나 위로 1982년 장신대 입학부터 만난 도반이다. 사모 김혜란은 춘천 신북교회 고 김은일목사 여식인데 강원대 다니며 출석하던 78기 서명철이 연결해 결혼했다.
고향은 부산이지만 몇명 뽑지 않았던 공립 성동고에 합격해 큰 형 따라 서울로 와서 국민대를 거쳐 장신대로 온다. 영등포 당일교회(이상운목사) 전도사 때 사회봉사처 총무 오상열목사와 도계 신리교회 김상국이가 제자다. 윤목시절 초대 고 임학기,권오문,유상배,주양식,김종섭장로를 세웠고 지난 달 최종복장로를 선출하였고 후임인 정동직목사 가 부임하여 2주전 장립했다.
77기는 파란만장한 세대였는 데 76기가 70여명인 것에 비하여 배나 된다. 박정희 유신독재를 물리치면 다 되는 줄 알았던 세대들이 신군부가 광주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집권하자 운동과 사명을 동시에 해결하려고 온 이들도 있었지만 끝까지는 못 갔다.
이런 기류는 한해 전 76기로 입학한 이들 부터로 이근복,서정오,진희근,박진석,신재영,손은하,강대은,임정석,이은태등이 시대의 고민으로 현신을 만들었다. 이후 조선대 해직교수 임영천,경실련 창립자 서경석,차선각,박은일,이정수,전응휘,김민수가 77기다. 장신대 목사 후보생 과정의 최초 운동권이라고 해두자 원조는 15기들로 금영균,홍성현,윤두호,김덕재,김종희,문전섭 선배로 '새시대' 라고도 했는 데 졸업후 초교파적 활동을 한다. 그리고 71기에 '현목' 이라고 하여 조성기,정태일,정태봉,기현두,최양춘,김기복 선배들에 이어 76기에 '현신' 이 만들어진다.
인하대 기독학생운동을 거쳐 경기서노회 장청 출신 강우경은 인천서 광야서점을 하다 신대원 재학중 국보법으로 감옥 갔다와 복학해 78기가 된다. 78기는 홍만조,이상성,지승룡,김인주,장의성,최대석,이대성,조하무,김경인,이계심,유재무,이강준,임광빈,최덕기,하정택이 있었다.
77기는 강우경이 빵에 간 덕으로 열심으로 뭉쳤고 신대원 김영락,이종윤,김성호,임대식,허성환,조승철,류택규,구춘서,김도현등과 목연 3학년으로 편입한 허춘중,김일재,김규복,서충성,고왕곤,현순호,장택순,박맹춘등과 통합 써클이 된다. 이후 산선훈련을 받고 김영락(울산),김규복(대전),안기성(대구),박진석(안양),유재무(성수),윤창현은 태백 황지교회 이정규목사가 설립한 복지회 총무로 갔다.
광산복지회서 상장중앙교회로
그후 황지교회 전도사를 거쳐 1984년 안수 받던 해 관내 상장중앙교회로 부임해 풍전광업소에서 철거한 미군콘서트 철막사였던 교회를 신축해 입당한다. 당시 태백 광산지역은 사북사태 후 나라서도 긴장을 하는 곳이 었는 데 1983년 NCC 태백인권선교위원회를 조직하여 87년 부터 총무를 지낸다. 당시 목회자로 인권운동, 더군다나 지방에서 중앙을 오르내리면서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기 위하여 청량리서 밤기차를 탄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복지회는 고 이정규목사가 설립한 단체로 윤목사가 초대 총물 했고 이후 조남호목사도 지냈다 가장 활발한 활동은 최준만목사 총무시절인데 최목사는 광부의 아들로 연대 경제과와 장신대(74기)을 거쳐 미국 아틀란타 컬럼비아신학대학을 졸업한 태백의 신화다. 사모 정순미원장은 태백선 최초로 정신과 의원을 열었다. 총무 시절 산골전도대서 동역한 광부출신 황지교회 지호규(은퇴),이주영(현 강원노회장)등이 목사가 되었다
당시 강원탄광 고 성완희 광산노동자 분신과 강원대 학출 노동자 고 박인균(전 강릉시 도의원 역임)에 대한 보안사 납치 사건등 굴찍한 공안사건의 대척점에서 대정부 투쟁을 했다. 강원대 운동권 츌신들인 안재성을 비롯하여 빅인균등이 광산지역 노동운동을 하였고 기장 선교 100주년 기념으로 선린교회(신성식목사)를 중심으로 원기준등 운동권들이 모였고 이후 직전 대백시장 류태호가 나왔다. 그외 한겨례신문 초대 지국장 조호성도 같은 세대였다.
88년 부터 는 현신 이상진, 유재무가 태백에 합류하고 인근 증산의 이성도,만항의 김영윤,고한의 엄주성,도계의 안재호, 강선수목사가 '광목회'을 통하여 강원동노회 개혁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때 일본의 기타 큐슈 다가와 광산박물관도방문하는 등 활발한 활동들을 했다.
여러 일화가 많은 데 경제학과 출신이지만 얼리 어답터로 태백 최초의 컴퓨터 사용자로 이후 보급과 지원에 힘썼다. 또 테니스와 탁구,수영,영어,일어공부,아마츄어 햄등 새로운 것의 개척자로 동역자들을 이끌었다. 그러나 윤목사의 가장 큰 장점은 남과 경쟁하지 않는 것으로 내공이 있는 자만이 할 수있는 경지다. 노회장만 지내고는 모두가 목을 메는 총대자리는 더 이상 연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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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1일(금) 태백시장으로 부터 모범시민 표창 |
담임목사면 최고라는 의식
나는 이런 윤목사의 라이프 스타일을 가정 목회자다운 품성이라고 본다. 그의 약력에도 보면 장신대나와 상장중앙교회 목사외에는 더 군더더기가 없다. 오직 목양에 마음으로나 시간으로 충성한 작지만 큰 종이다. 또 부드럽지만 목회자로써의 지켜야 할 것에는 양보와 타협하지 않았다. 목회하는 동안 맞지 않는 분들도 있었지만 다투지 않았고 끝까지 함께 해준 교인들에게 감사해 원로도 사양하고 어떤 예우도 원하지 않았다.
태백이라는 지역적 어려움도 있지만 늘 힘겹게 살아가고 교회를 섬기는 이들에 대하여 어버이의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었으며 모두가 떠났어도 자신이 만든 '광목회' 을 지키고 있다. 후임자는 속초중앙교회(강석훈 위임목사) 부목사 출신인데 자식과 같은 년배로 잘 훈련 된 분을 모셨다는 후문이다.
윤목사 큰 형 윤맹현장로는 서울대 원자력학과를 나와 미국 UCLA 원자력핵 공학박사로 한수원 원자력 사장을 지낸 국내 원자력 최고 전문가다. 작은 형 윤신현장로도 부산공대 기계과 교수로 은퇴했으며 누나는 부산시청 공무원을 지냈다. 딸 진영은 감리교 신재권목사와 결혼하여 지금 맥시코 몬테레이 그레이스 한인교회서 선교사로 사역중이다. 윤목사는 지난 달 노회에서 사임하고 공로목사로 추대가 된 후에 태백시 철암에 거처를 마련하고 이사를 했다.
이전에 태백에 계셨던 분들로는 장성병원 원목 남기탁(부천 복된),이점용목사와 태백출신 최준만선배(태백연동),이상진목사(황지중앙)는 이미 년전에 은퇴했다. 또 우리 또래로 동역한 이들로는 황진형,고이병일(황지),김태현,김성진,조재일(철암남부),유재무(소도),김유신,이병도(계산동),엄대현(계산중앙)박대원,박종현(태백영락),라찬훈(장성제일),김철웅(태백서부),정영민,임학수(한성)안재호,권한기(도계 사랑의 교회),김준철(철암)부목사가 있었다.
그 때 매년 설이면 황지교회 고 이정규목사님께 세배를 드리고 먹고 놀며 덕구온천에도 가던 일이 기억난다. 후임 최삼우열목사는 황지교회서 시무하시다 카나다로 이민목회를 가셨는 데 황지교회가 다시 재청빙하여 은퇴시 까지 모셨고 은퇴후 다시 카나다로 가셨다. 황지교회는 현신 후배 김종언목사가 내가 있던 소도교회는 박충호,조남호목사에 이어 문광한 목사가 철암교회도 후임이 부임하여 지역, 노회을 잘섬기고 있다.
태백은 강원노회였다가 1980년경 강원동으로 분립을 하였는 데 당시 강원노회 청년연합회가 유명하다 이상진목사도 강청출신이고 현 남선교회 전국 회장 강창선장로, 신종선,리창호장로도 장성중앙교회 출신들로 석공 노조 간부출신들로 회장을 역임했다. 도계 출신으로 박철희장로, 홍만조목사, 79기 포항의 노동하는 목사 김상은이 도계공전(삼척대학)출신이다. 이 날 참석한 속초 김상기장로(만천교회)나 장성중앙 정영희선생이나 황지교회 김정희권사도 강청출신들로 모두 태백이 낳은 여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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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이정규목사님을 모시고 좌로부터 고 이병일,라찬훈,유재무,조재일,김유신,윤창현,이상진,김철웅,박대원목사 |
상장중앙교회 윤창현목사(1984-2022) 정년 은퇴
유재무 편집인 | ds2sgt@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