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고려 우왕 6년, 남원 인월.
용맹 무쌍한 소년 왜장(倭將) 아지발도
[阿只拔都-]를 이성계와 이지란 (퉁두란)
둘이서 神技의 활쏘기로(?) 제압,
대승한 황산대첩(荒山大捷)이 있었다고.
이성계는 개선장군이 되어 조상의
고향인 전주(全州)로 돌아왔다.
문중 사람들이 모두 오목대(梧木臺)에 모여
잔치를 베푸는 자리에서 이성계는 흥에 겨워
중국 한나라 유방의 대풍가(大風歌)를
큰 소리로 불러 고려 왕조를 무너트리려는
뜻을 내비쳤다고,,,
- 대풍가(大風歌)-
大風起兮雲飛揚
큰 바람이 부니 구름이 흩어지누나.
威加海內兮歸故鄕
온 세상에 위세 떨치고 고향( 沛縣)에 왔도다.
安得猛士兮守四方
어떻게 용맹한 군사들을 얻어 사방을 지킬까?
(역은 소생이 약간 개칠했음)
그리타면,
위화도 회군 8년 전, 이미 이곳 전주 오목대에서
고려 왕조를 뒤엎을 마음을 품었자녀.
종사관(從事官)으로 갔던 정몽주가
이를 보다 분연히 일어나 홀로 말을 타고
한벽루 아래 전주천을 건너, 오목대 바로
건너편 남고산성 (견훤의 비사벌 성터)의
만경대(萬景臺)에 올랐다고.
초등 6학년 진급 후, 이 동네 살아
전주천이 수영 놀이터였던 짝꿍이
장마철에 걸상에 앉자 왈 :
'너 시엄 칠 줄 알어?'
이 녀석이 물개였던 걸 모르는
수영의 '수'자도 몰랐던 소생,
기선 안 잽히려,,
' 응 알어,,,,,'
위 사진 우측 젤 아래 상류에서
장마진 물결 흐름에 끌려 들어갔다.
허우적거리는 소생을 그 동네 형들
3명이 하류 쪽으로 일정 간격으로 대기,
3번째 형이 소생 발목을 잡아 추켜올려
二死一生!
요때부터 소생 평생 언어 사용 시
진위 트라우마에.
열두 살에 종첬을 팔자가 67년 덤살이로
이렇듯 전주 이바구를 하고 있으니!
그러니께 소생이 익사해서 흘렀다면
포은은 그 루트 따라 남고산
만경대(萬景臺)에 오른 것일 터.
만경대
보호 철책 안에 포은의 시가 암각된 바위.
고려 망국의 한을 읊은 끝 련
,, 하늘가 해는 지고
뜬구름 덧없이 뒤섞이는데
고개 들어 하염없이 송도만 바라보네'
애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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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정을 비롯 조선의 다수 문사들이
이곳을 들려 정몽주의 충절을 기려
시문을 남겼다고,,,
조선 문신이요 대 학자인 서거정(徐居正)도
한나라 유방의 10 영 중 이곳
만경대를 3 영으로 치고 감흥에 젖어
아래와 같이 읊었다고,,,,
臺高千仞倚靑空
천 길이나 높은 대가 창공에 솟아 있어
俛仰乾坤萬里通
위아래 천지 사이에 만 리가 탁 트였구나
莫說甄郞興廢事
견훤의 흥망에 관한 일을 말하지 마소
靑山黙黙鳥飛中
청산은 말이 없고 새만 높이 나노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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勝てば将軍, 敗れば逆賊.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반란,
전주 객사 豊沛之館
( 豊沛는 중국 한나라 유방의 고향).
정면 3칸 , 측면 4칸 규모의 건축물로
여수 진남관 , 나주 금성관 , 통영 세병관
다음으로 큰 규모입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이성계는 선조들의 고향이라는
것뿐 전주와의 연이 별로 단다.
전주에 온 건 오목대가 딱 한번!
'전주는 하늘이 내린 왕기가 있는
터여서 전주 이 씨가 왕이 된다.'는
프로파간다.?
전주 경기전에 있는 이태조 어진
(소생이 여기서 놀 때는 어진이
있었는지 기억이 없는디,,,,)
임진왜란 때 유일하게 지켜낸
조선왕조실록 보존 전주사고(史庫) - 실록각.
'역사에 가정은 부질없는 일이다.'는
말도 있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단재 신채호)는 말도 있어
한 번 가볍게 소생 개인적 소견을
뇌까려 보면,
이성계의 혁명에 대립한
정몽주가 뜻했든 부패한 말기
고려 왕실을 뒤엎지 말고 협력,
개혁해 나갔으면,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 없었을 것이고,
'고구려'의 기상을 받들어 지은 국호 '고려'가
대륙의 明을 쳐 옛 고구려 영토를 회복했다면,
싸워 보지도 않고 회군으로만
그치지 않고, 창뿌리를 고려 송도로
돌려 뒤엎고는 알아서 小中華,
즉 중국의 속국을 자처하지는
않았나 싶은
그야말로 부질없지만
참 아쉽고 아쉬운 생각을 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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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비해서 고려가 경제적 역동성이
있었고 대외 무역도 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생 나름의 어설픈 근거(?)는,
지금 우리 영문 국호가 KOREA(고려),
아직도 유명세를 잃지 않는 고려 인삼과
고려청자.
-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은 전주 역사문화여행으로
'정여립(대동사상) VS
송강 정철(기축옥사)'
입니다.
전쟁의 비참, 슬픔 - 소생 재일 시 자주 들었던 노래.
첫댓글 지송 만만입니다.
第善 어르신의 성실한 댓글을 지웠습니다.
조금 전 아마 逸泉님 아니면 goldwell님 이시리라 사료되는 댓글 달림의 알림이 폰에 뜨고, 동시 친구들 모임 카페에서도 댓글 알림이 와서 살펴 보는 중 올렸던 자료가 사라졌습니다.
아무래도 버벅거리는 수준의 소생 잘못으로 결례를 했습니다.
재등록으로 사죄드립니다.
거듭 죄송하단 말씀올립니다.
一雲 님:
방금, 저에게 로사 님의 글이 올라와서 황급히 열어 보았더니
로사 님이 一雲 님의 글에 댓글을 다려는 과정에서 저의 댓글도
사라지고 말았다며, 이 일을 어쩌면 좋으냐고, 한 걱정을 하시며
一雲 님과 저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해 오셨기에, 우선 一雲 님
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저도 경험한 적이 종종 있었으며, 본의 아닌, 컴퓨터
조작의 실수로 인한 것이 오니 부디 해량 하여 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총총 ... 제선 드림
@第善 아 그랬군요?
휴우~! 그런데 왜 본문이 사라질까요? 여튼 디지털 작동은
스트레스 네요. 편리성에 중독되어.
일운 님
우선 역사에 대한 해박한 식견에 경의를 표합니다.
포은 정몽주가 고려 충신이라는 건만 알고 있었는데, 이태조의 역성혁명을 당초에는 반대하지 않았다는 후세 사가의 해석을 볼 때 역사의 애매함을 느끼면서 오목대와 만경대의 사적을 음미해 봅니다.
‘관찰사(觀察使) 이서구(李書九) 시(時)’의 時는 詩의 오기임을 다 알 수 있는데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처사는 번역가의 입장으로 괜히 부끄럽습니다.
아무튼 전주 고을이 그토록 역사가 깊은 곳임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서구 관찰사에 대한 선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가 무안 현에 내려가 보니 나주 김씨 일문이 관가를 무시하고 백성의 송사까지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고, 그 세력을 꺾고자 그들 선산 앞에 커다란 소나무를 심고 또 앞에 사장을 두어 활을 쏘게 했다고 합니다. 그 세 소나무가 해방 후에 쓸어지자 김씨 일문은 삼정승이 난다고 기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지 나주 김씨 문중에서 군정 시 대법원장을 지낸 김용무 국회의원과 그 동생 김용현 제헌 국회회원 또 한 사람 더하자면 전북경찰국장을 지낸 민권당 당수 김의택 국회의원이 나왔다고 합니다. (췌언 용서바람)
안녕히 계십시오.
goldwell 어르신!
고뿔은 좀 어떠신지요?
댓글 감사합니다.
어르신의 댓글을 보면 소생 나름 文.史.哲이 도저하신 걸 느낍니다.
그 위에 소생은 물론 대부분 이들 특히 전주시가 지나치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時자 오기를
보시고 부끄러움을 느끼셨다는 지적, 소생 또한 문화도시라 으시댄 게 한량없는 자괴감을 느낍니다.
바로 전주시청에 접속, 전화로 알렸으나 사이버 민원은 참으로 힘들고, 전화 응대 또한 남 일인 듯 ,,젊은 세대다 보니,,,,애향, 애국 보다 자신들 이기에 가치를 두고 있네요.
그러 하온데 실례이오나 무슨 장르의 번역 인지요?
거듭 댓글 감사합니다.
내내 강녕하십시요.
一雲님: 전주 이야기 3 <오목대 VS 만경대. 감명깊게 읽엇습니다.
梧木臺에 萬景臺, 그리고 巖刻書와 豊沛之館등, 소생은 아마도 이 기행문이 아니엿다라면 평생 모르고 지나쳤을 귀한 사적이군요. 그중에서도 정몽주가 오목대에서 대풍가로 야심을 피력하는 이성게를 보고 홀로 남고산성의 만경대에 올라 그 우국지정을 시로 남겼다는 암각서에 관한 이야기는 마치 한편의 역사소설을 읽는 듯 합니다. 일운님이 전주천에서 二死一生으로 생환하셨다는 이야기는 이 기행문을 더욱 리얼하게 해주는군요.
후속편을 기대합니다.
逸泉 어르신!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서 사뢰온대로 이 카페는 촌철살인의 시문 하이쿠를 축으로 순수문학과 엔카 정서의 교감을 하는 분위기이지요. 소생의 기행문이 중언부언의 개인적 얘기가 많아져 좀 껄적지근 하옵니다만 이왕지사
염치 불구 이어가겠다고 작심하는 거는 여러 어르신님들이 읽어주시고
공감 추임새를 넣어주시는데 있습니다. 또 하나는 자료를 준비하면서 공부하는 보람입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내내 강녕하십시요.
전주 출신인 저도 일운님에게 많이 배우게 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