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광해군(光海君) 때 명(明)나라와 연합하여 부원수(副元帥)로서 만주(滿洲) 건주위(建州衛) 정벌에 나섰다가 도원수(都元帥) 강홍립(姜弘立)의 배신으로 오랑캐들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충무공 김응하(金應河 1580-1619) 장군이 죽기 직전에 당신의 옷에다가 유서(遺書)를 써서 애마(愛馬)로 하여금 고향에 전하게 했다.
요동(遼東) 벌판과 압록강(鴨綠江)을 지나 평안도(平安道)를 거쳐 강원도(江原道)의 장군 고향(故鄕)까지 무사히 임무를 수행한 후 북녘에 묻힌 장군을 그리며 굶어 죽었다.-
우리나라 고사(古事)에 나오는 말들도 천리마(千里馬)였는지는 모르지만, 그 사연(事緣)을 보면 모두 명마(名馬)이자 준마(駿馬)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나라의 명마(名馬)들은 한결같이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고 목숨을 바친 말들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 성덕왕이 김유신의 손자에게 내준 절영산마(絶影山馬)
영도의 본디 이름은 일찍이 신라(新羅)때 절영산(絶影山)으로 나와 있다.
신라 제33대 성덕왕(聖德王)이 삼국통일대업(三國統一大業)을 이룬 김유신(金庾信)의 공로를 높이 기리며 그 손자인 김윤중(金允中)에게 절영산(絶影山) 말 한 마리를 하사(下賜)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와 있다.
열전(列傳) 제3 김유신(金庾信) 하편(下篇)에 나오는 기록이다.
『김유신의 아내 지소부인(智炤婦人)은 태종대왕(太宗大王-무열왕)의 셋째따님으로서 아들 다섯을 낳았다.
그 맏아들은 이찬(伊?) 삼광(三光)이고 둘째아들이 소판(蘇判) 원술(元述)이며......
문무왕(文武王)15년(*서기675년) 당(唐)나라 군사가 매소천성(買蘇川城)으로 쳐들어와 공격했다.
원술은 지난번 치욕을 씻고자 싸움터로 나아가서 큰공을 세우고 상을 받았다.....
그 적손(嫡孫) 윤중(允中)은 성덕대왕(聖德大王) 때 대아찬(大阿?)이 되어 번번이 은고(恩顧)를 받았다......
왕은 말하기를「지금 과인(寡人)이 경(卿)들과 더불어 평안무사한 것은 윤중의 조부(*김유신) 덕이로다.
그 공을 잊어버린다면.....어찌 옳은 일이라 하겠는가」하고 윤중을 불러 앉히고 그 조부의 평생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날이 저물어 윤중이 물러갈 뜻을 하뢰자 왕은 절영산(絶影山-*오늘의 영도)의 말한 마리를 하사했다.(사절영산마일필:賜絶影山馬一匹)』
절영산마(絶影山馬)는 태종대 국마장(國馬場)에서 기른 명마(名馬)이다.
서라벌에서 1천리나 떨어진 머나먼 곳인 절영산(絶影山)의 국마장(國馬場)에서 기른 말이다.
1등 공신인 김유신을 높이 기려 그 자손에게 내린 말이다.
국마장(國馬場) - 말 그대로 나라에서 각별히 관심을 쏟아 말을 기르던 곳이다.
오늘에도 영도 끝머리에 있는 절벽 부분을 태종 무열왕이 휴식을 취하였다고 하여 왕의 이름
을 따서「태종대(太宗臺)-명승 제17호로 지정. 공식 명칭-부산 영도 태종대」라고 한다.
○ 절영산마(絶影山馬)
지금의 영도(影島)를 옛 기록에는 절영산(絶影山), 절영도(絶影島)라고 했다.
'절영(絶影)'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그림자조차 끊어진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말(馬)이 '그림자도 생기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달린다.'라는 뜻이다.
'절영(絶影)' 은 중국의 삼국시대 위 나라 조조(曹操)의 애마(愛馬) 이름이다.
적토마(赤 馬)의 한 종류로 하루에 천리를 달리 수 있다.
절영산(絶影山), 절영도(絶影島)가 말을 기르는 국마장(國馬場)이었다면 이는 조조의 명마 이
름인 '절영(絶影)'에서 따옴직도 하다.
'절영과 같이 빠른 말들을 기른다'는 뜻에서 '절영'을 국마장의 이름으로 한 것이 아닐까?
땅 모양과의 연관성은 영도의 동남쪽 지역이 절벽으로 되어 있다.
절벽의 뜻을 지닌 '끊어질 절(絶)'은 관련이 있다고 보나 '그림자 영(影)'은 어디서 갖고 온
말일까?
'절벽의 그림자가 끊어진다.' ,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뜻에서 절영이라고 했을까?
무슨 의미로? 절벽이 깊다보니 그림자가 끊어지게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뜻보다는 국마장과 연관시켜 많은 말들 중에 화살을 세대나 맞고도 계속 달
린 '절영'의 이름을 따옴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