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양재역
< '강남 속 비강남' 뜨내기상권 >
돈은 길과 사람, 건물을 따라 흐르게 마련이다. 지하철 3호선 양재역 상권은 남부순환로, 강남대로, 경부고속도로 서초IC 등이 마주치는 사통팔달 교통요지에 자리 잡고 있다. 양재역 이용인구가 하루 평균 10만여명에 달하는 데다 수도권 대학의 스쿨버스와 대기업 통근버스의 승하차 지점이기도 해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사람들로 북적인다.
'강남속의 비강남' 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양재역상권은 뜨내기 손님이 많다.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양재점 매니저 이재필씨(34)는 "외지인 고객 비중이 지역주민보다 더 많다"고 전했다. 양재역 상권은 지하철역 출구별로 차별적인 모습이다. 외교센터 건너편의 12번 출구 쪽은 오피스가 많아 직장인 상대 주중장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맞은편 서초구청 쪽 7,8번 출구 쪽은 출퇴근 시 좌석버스로 양재역까지 와서 지하철을 갈아타는 수도권 남부지역의 환승고객을 노린 소규모 상권이 형성돼 있다. 반대쪽 5,6번 출구는 양재역 상권의 핵심으로 먹자골목이 발달해 있다. 건너편 3,4번 출구 쪽은 학교중심과 소규모 주택가를 기반으로 한 동네상권이 형성돼있다.
은광여고 앞 돈가스 전문점 '메차쿠차'의 주인 임명재씨(41)는 "3,4번 출구 쪽은 역세권 이점을 별로 누릴 수 없다"고 분석했다. "학생 장사라서 객단가가 낮고 하루 매출 역시 5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주중에는 여고생들이, 주말에는 지역 주민들이 찾는다는 임씨의 가게는 보증금 6,000만원, 월 임대료 180만원, 창업 당시 권리금을 포함해서 1억,600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오후가 되면 천안, 수원 등지의 수도권 남부대학과 지방 분교의 스쿨버스들이 양재역에 학생들을 쏟아낸다. 강남대학교 스쿨버스에서 내린 정효상씨(24)는 친구와 닭갈비집을 찾았다. "양재역이 강남역보다 더 싸고 친절한 편인 것 같아요." 정씨가 들어간 대로변의 춘천닭갈비냉면은 30평 점포가 반 정도 찬 상태. 백윤순 사장(50)은 "지난달매출은 1,100만원이었는데 작년보다 40% 급감했다"며 울상을 지었다. 백씨는 바로 옆의 '한솔 로이젠트' 주상복합 건물 신축공사로 고객이 줄었다고 분석했다. 양재부동산 유병직 대표(40)는 "얼마 전 완공된 SK허브 1층에 스타벅스가 들어온다"면서 "주상복합건물이 양재역 상권을 업그레이드 시킬 것"이라고 기대했다.
저녁을 먹고 술 한잔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수입맥주 전문점 캔비어 대표 김길태씨(48)는 양재 상권을 "상업지역치곤 아주건강한 곳"이라면서 "학교 때문에 각종 규제가 많아서인지 단란주점이나 모텔도 거의 없다"고 전했다. 호프집정도가 수지타산을 맞출 뿐 본격적인 물장사(술장사)는 안 되는 곳이라는 얘기다.
180평 규모의 라이브 호프집 보보스는 10년째 여기를 지키는 터줏대감. 엄익정 실장(38)은 "지금까지 그런대로 꾸려왔다"면서도 "최근 들어 비슷한 상점들이 많이 생겨 재단장하고 다시 오픈했다"고 귀띔했다. 호프집 객단가는 3만~4만원선.
북적거리는 5,6번 쪽 출구와는 대조적으로 1,2번 출구는 썰렁했다. 죽 체인점인 본죽 서초구청점의 이순이 점주(여47)는 가게를 내놓았다. "하루 매출이 30만원밖에 안돼요. 직장인 상대라 퇴근 후와 주말엔 파리 날리죠. "2주일 전까지 한식집 '밥상머리'를 운영했던 조기만 사장(39)의 사정은 더 딱하다. "한 때 권리금이 3억원까지 갔을 정도로 장사가 잘되었는데 경쟁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빚만 3억원 졌습니다." 조 사장은 "양재역 상권은 장사는 별로인데도 점포임대료는 명색이 강남이라고 너무 높다"면서 "프로가 아니면 양재역에서 성공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밥상머리'가 있던 자리엔 고급 일식집이 들어올 예정이다.
밤 11시. 수원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회사원 김민정씨(여28)는 정류장 근처에 맥도날드, 커피빈, 던킨도너츠, 베스킨라빈스 등이 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커피빈 양재 스포타임점 매니저 이주영씨(여25)는 "밤 8시부터 11시까지가 피크타임"이라고 전했다. 회사원 조남원씨(43)는 "비즈니스 약속에 적합한 고급 횟집이 부족한 게 아쉽다"고 지적했다. 24시간 영업하는 '동막골 감자탕'의 사장 조기형씨(57)는 "객단가는 9,000원이며 한달 매출은 2,400만원 정도"라면서 "박리다매 장사가 먹히는 강남 속의 서민상권"이라고 전했다.
금풍부동산 이종길 대표(54)는 "지하도시 건설 등 장밋빛 개발계획이 그대로 추진되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현재로선 강남역 상권에 비해 상업지구가 부족해상권 발전에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유동인구를 흡수하기 위해선 방배동 카페촌처럼 양재역 상권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구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주변 아파트시세 대치동의 절반수준 >
양재역 상권의 핵심은 양재1동이다. 양재1동은 서초구에서 잠원동에 이어 인구밀도가 두번째로 높은 곳이다. 그러나 양재역 상권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아파트는 몇 개동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단지가 서너 개 존재할 뿐이다. 이는 그만큼 다세대주택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곳에 사는 중하류층이 결국 양재역 상권의 배후기반이라는 것이다.
양재1동의 다세대주택의 경우 평당 850만원 정도의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양재역에서 가까운 역삼 우성아파트의 경우 31평형 시세가 5억5,000만원 정도로, 대치동의 같은 평형대 아파트 시세가 10억원에 가까운 것을 감안하면 거의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인근 부동산 관계자들도 고개를 내젓는다. 도곡동 대성공인중개사 박영희 대표는 "은광여고가 전국 여고 중 진학률이 으뜸이라고 한다. 주변환경이 좀 낙후되긴 했지만 아파트 값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건 좀 이상한일"이라며 의문을 표시했다.
< 신분당선 개통 맞춰 지하도시 추진 >
양재역 주변은 개발 심리로 들떠 있다. 2010년 말로 예정된 신분당선(강남역~양재역~정자역)이 개통되면 양재역을 지나는 유동인구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분당선 건설과 맞춰 서초구는 최근 '강남교보타워와 뱅뱅사거리를 잇는 지하도시'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강남속의 비강남'이라고 할 정도로 청담 로데오나 강남역, 도곡동 타워팰리스 상권 등에 비해 한참 격이 떨어지는 양재 상권에 희소식은 민간기업 쪽에서 많이들린다.
현대 기아 자동차는 현재 내년 완공을 목표로 기존 양재동 사옥 옆에 대지면적 6,642평, 연면적 1만9,355평 규모의 지하 4층~지상 21층짜리 2개동을 지어 자동차 연구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LG전자도 2008년까지 양재2동 오토몰 주변에 대지면적 7,321평, 연면적 3만196평 규모의 지상 25층짜리 건물을 지어 IT, LCD 등 전자 연구단지를 조성한다.
양재역에서 2~3km 정도 떨어진 우면동 일대에 들어서는 대규모 국민임대 주택단지도 양재역 상권력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린벨트지역 15만3,000평의 대지에 2008년 말부터 국민임대 1,955가구를 포함한 2,918가구가 공급된다. 또 최근 양재 IC 옆에 위치한 양재동 화물터미널 토지주들은 화물터미널 전체 부지 중 5만5,421㎡에 37층짜리 복합건물을 지을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지주들은 이 건물에 화물터미널(7만7,183㎡)과 지하창고(2만9,123㎡)와 함께 상가(31만4,103㎡)를 유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초구청 도시정비과 관계자는 "반포 센트럴시티와 유사한 개념의 복합화물터미널이 탄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건축 중인 주상복합건물들도 양재역 상권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양재역 사거리에 나란히 위치한 지상 20층짜리 SK허브와 지하 5층~지상 15층짜리 한신휴플러스는 입주를 시작했다. 양재역 5,6번 출구 쪽엔 지상 20층짜리 한솔로이젠트가 3,4번 출구 쪽에는 지상 20층짜리 극동스타클래스가 각각 올해 8월과 내년 2월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한솔은 아파트와 상가 분양이 대부분 완료됐다. 극동의 경우 아파트 분양은 끝났다. 상가는 상대적으로 높은 분양가로 인해 약58%의 분양률을 보이고 있다.상 가 분양가는 평당 3,000만원에서 6,800만원 선. 상가 임대료는 대체로 분양가의7~8% 선에서 결정되고 있다.
< 창업포인트/먹자골목 내 정통일식 등 >
양재역에서 예비창업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구역은 지하철 3호선 양재역 4번,5번 출구에서 매봉역으로 향하는 대로변과 그 이면골목의 음식점 밀집 지역이다. 양재역을 이용하는 유동인구의 주 동선인 7번 출구 환승주차장 건물 앞 대로변은 세븐일레븐, 크라운베이커리, 파리바게뜨, 던킨도너츠 등 유명 브랜드 체인점 10여개가 꽉 들어차 새로 진입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 상권의 변수는 15층 이상의 대형 업무용 또는 주상복합 건물 5곳이다. 이 중 양재역사거리 코너에 자리 잡은 SK허브는 지난달 완공돼 입점 대상이 거의확정 단계다. 건물 1층의 간판격 가게는 스타벅스로 결정됐다. 확정 보증금이나 월세가 아니라 수수료(매출의 일정 비율을 건물주에 내는 것)조건부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고 있다.
4,5번 출구 대로변의 '한솔 로이젠트'와 '극동 푸른빌' 2개 주상복합 건물은 낡은 느낌을 주는 이곳 상가 분위기를 바꾸는 전위대 역할을 할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 건물이 점포 공급량을 획기적으로 늘리지는 않겠지만 주변 상가에 주는 영향은 적지 않으리란 게 현지 부동산가의 예측이다. 상가정보사이트인 상가뉴스레이다 서준 상권분석팀장은 "신축 건물 안 점포들은 권리금이 없어 주변 상가 권리금을 끌어내리는 대신 임대료는 상승시키는 구실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들 건물이 완공된 이후 올 하반기에는 대로변의 간판들이 서서히 바뀔 것이란 예상이다.
주상복합 건물에 거주할 것으로 예상되는 싱글족이나 젊은 맞벌이 부부를 겨냥한 업종도 유망한 것으로 분석된다. 서준 팀장은 "대로변에서 찾기 힘든 이동통신 대리점이나 안경점은 블루오션 업종이란 점에서 장기적으로 권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로변이 젊어지는 데 맞춰 유명 브랜드 베이커리점이나 카페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조언했다. 현재 패션업종 강세에서 장기적으로는 식음료 업종이 강세를 띠는 거리로 변화할 것이란 게 서 팀장의 분석이다.
5,6번 출구 뒤쪽에 사각형으로 형성된 먹자골목은 인근 오피스가 직장인들과 양재역에서 수도권 남부의 캠퍼스를 오가는 대학생들이 주 고객이다. 배후 단독 주택가 거주민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에 장사의 초점을 직장인들의 점심과 저녁 회식 수요에 맞춰야 한다. 이상헌 창업경영연구소장은 "이곳에는 점심 메뉴 객단가 5,000원대, 저녁에는 1만원 안팎의 한식집과 횟집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면서 "임대료가 너무 비싼 테헤란로를 피해 양재역 인근에 둥지를 튼 회사들이 많은 만큼 이들의 접대 수요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깔끔한 일식집이 유망해 보인다"고 밝혔다.
신축 중인 주상복합 건물에 거주할 젊은 부부나 싱글족들을 감안, '조이스'와 같은 프랜차이즈 패밀리레스토랑을 개점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3번 출구 인근 TGI의 경우 점심 메뉴 객단가가 1만3,000원 이상인 데도 여성 직장인들로 빈 자리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먹자골목에서 블루오션 업종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건너편 '싸리고개길' 쪽으로 눈을 돌리면 매물이 다수 나와 있다. 매력이 없는 상권이란 뜻이다. 배후 주거 지역이 워낙 좁고 언주초등학교와 은광여고 학생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푼돈'이 수요 기반의 전부다. FC창업코리아 이준 컨설턴트는 "대로변에 신축 중인 대형 빌딩을 감안하면 이 부근에 하나도 없는 편의점을 여는 방안은 유망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 (인터뷰) '셀레돈 포크와 묵은 김치' 사장 >
"세계 5대 건강식품에 김치가 있는 거 아시죠?" 인사가 끝나기도 무섭게 돌아오는 답변이었다. '셀레돈 포크와 묵은김치'의 박칠성 사장(42)은 하나씩 메뉴를 소개했다. 김치계란말이, 김치찌개, 김치찜 등. 이 가게의 메뉴는 대부분 김치다. 한국인이라면 매일 먹는 김치로 어떻게 사업에 성공했을까.
박 사장의 성공 비결은 간단했다. "재료만 본사에서 받고, 저희가 직접 맛을 만들어 냅니다. 고객들이 좋아하는 맛을 내기 위해 매일 아이디어를 짜냅니다." 이런 노력의 결실일까. 동네 가게지만 현재는 한달 평균 3,000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린다. 하지만 처음부터 순탄치는 않았다. 잘 나가던 장어 장사를 접고 작년 6월에 이 가게를 개점했다. "중국산 장어 파동이 있은 후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자 살길이 막막해졌죠"라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 지역 특성에 맞는 사업이 무엇일까 고심했습니다. 주변에 회사가 많아 회사원들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아이템을 찾던 도중 이 사업에 착안했죠." 그냥 김치 장사로는 경쟁력이 없어 재료의 차별화에 신경 썼다고 한다. "김치의 경우 충북 제천에서 6개월간 숙성시킵니다. 고기는 전북 익산 농장에서 키워 포장까지 해 이곳으로 넘어옵니다.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최고의 재료입니다."
박 사장은 이렇게 넘어온 재료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맛을 본다. 단골손님을 만들기 위해 가족단위 손님에게는 음료수를 서비스로 제공하고 주차장도 완비해 놓았다. 현재는 1층을 비워 두고 2층에서만 장사를 하고 있는 상태." 올 여름에 1층에서도 장사를 할 계획입니다. 더 많은 손님을 받아야죠"라며 박 사장은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