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여 년 전 집을 지을때 옥상에 두어평 밭을 만들었다.
그 조그만 땅에 고추 상추 시금치 같은 푸성귀를 심었다.
해마다 새 생명이 싹터서 자라나는 기쁨도 컸지만 못지않게
힘든일이 생겼다. 나날이 늘어나는 잡초와 벌레와의 싸움이었다
여행을 다녀오는 바람에 며칠 물을 주지 못했다.마음이 급해서
새벽에 물을 주러 올라갔더니 잡초가 열무와 상추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주객이 전도 되고 있는게 아닌가
유기농법을 한답시고 비료를 주지 않아서인지 밭은 윤기도 없고
엉망이었다
우선 호미로 잡초를 뽑는데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양팔이며
가슴으로 흙투성이가 되어 내려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온몸이 가렵고 양쪽팔과 가슴이 벌레에 물렸는지 북두칠성
같은 모양을 그리며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물파스를 발라도 그때 뿐
손을 댈수록 가려움증이 심해졌다.어져면 풀잎에 진딧물 , 벌레들이
내게 말을 걸어 온것은 아닐까.가려움에 시달리면서도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긴긴 날 아무도 찾지 않아 마치 버림받은것 같아 너무 외로웠다고...
연신 긁으면서 가려움증같이 불편한 나의 짝사랑, 문학을 되돌아 보게 되었다
옥상에 텃밭을 만들 즈음 문화센터 시창작반에 등록했다
오래 모시고있던 시어머님과의 시간, 크게 어려움은 없다해도
어던 한계점에 도달하게 되어 돌파구를 찾고 싶었던것 같다
학창시절에도 책읽기를 좋아하여 소설과 철학서적을 즐겨 읽었지만
내가 무엇을 쓰는 작가가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그런데 갑자기 내딛은
그날의 외출이 나의 짝사랑이 될줄은 미처 몰랐다
결혼후 살아가는이유에대한 의문이 생기고 내 자신의 본모습이 알고 싶었다
아니 세상에대한 그리움이라고 해야 옳은지도 모른다.그래서 저지른 나의 행동으로
많은 시간 시의 이론을 공부했으나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내가 배운 시론을 파괴하고서야 나만의 작품을 쓸 수 있어 허탈했다.
평범한 삶 속에서 내가 쓸수 있는 것은 역시 평범할 수 밖에 없어 인생의
적나라한 까발림도, 깊은 현실 탐구도 없이 막연히 꿈꾸는아름다운세계
아니면 자책의 고백서였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늘 아쉬었다.
이 모두는 나의 모자람에 대한 변명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가려움증같이 불편한 문학을 짝사랑 하며 시를 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었인가 자문한다
지루하고 상투적인 일상에서 한 편의 시를 완성했을때의 해방감은
혼자만이 누리는 뿌듯함이고 기쁨이다.
비록 내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질지언정 같은 목적으로 만나는 시인들과의 만남은
새로운 즐거움이었다.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좋은 작품을 읽으며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인생을
간접 체험하며 느끼는 감동은 문학을 사랑하기에 충분했다.
나의 내향성과 싸우고 나의 무기력과 싸우면서 나를 들여다볼 수있는
거울은 글쓰기 뿐 인것 같아 텃밭같이 초라한 나의 영토를 지키며
불편함을 즐긴다.
몇년전 세번째 시집을 출간할 때 "그네"라는 시로 어머님께 사죄하는 나의
간절한 마음을 쓴 시가 있다
그 네
눈은 멀리보고
발은 힘차게 내밀어라
어릴 적
그네타기 무서워 움츠리는 내게
어머니가 하신 말씀
오늘
느려지는 생의 그네 줄을 잡고
아직도 앞만 보는 눈과
떨리는 다리로 발을 구르네요
어머니
어쩌면 좋을까요
한 번도 닿아보지 못한
저 푸른 하늘을.
언제나 나를 믿고 내편이셨던 하늘나라의 어머니는 나에게
무어라고 말씀하실까
최근에 읽은 이성복 산문집의 글이 생각나 숙연해진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나의 잘못이 아니듯이 허락되지 않은
재능으로 인한 변변찮은 결과는 내 탓이 아니다
그러나 희망이라는 구멍 앞에서 망설이거나 물러나는 것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