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타고 유럽여행, 서울 '서래마을'
한국 속 작은 프랑스, 맛과 멋의 국경을 허물다
- 이국적인 음식점부터 고급스런 브런치 카페까지
- 골목마다 자리한 맛집들, 미식가들 입맛 유혹
- 마을 곳곳의 작은 공원에선 내·외국인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풍광 만들어내
가을에는 잠시 여행을 떠날 일이다./ 그리 수선스러운 준비는 하지 말고 / 그리 가깝지도 그리 멀지도 않은 아무데라도 /
가을은 스스로 높고 푸른 하늘 / 가을은 비움으로써 그윽한 산 / 가을은 침묵하여 깊은 바다. / 우리 모두의 마음도 그러하길.
가을엔 혼자서 여행을 떠날 일이다. / 그리하여 찬찬히 가을을 들여다 볼 일이다.
박제영 시 '가을에는'에서.
달력에서 8월을 뜯고 9월을 보는 순간, 들끓었던 여름날의 열정은 사그러들고 마음에서부터 선선한 가을이 시작된다. 여름의 끝과 가을의 시작이 공존하는 9월, 그 곳에는 낭만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그동안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낸 것도 아닌데 괜시리 사람이 그립고 정겹고 소박한 이야기가 그리워진다. 시인의 말처럼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고 일상에서 잠깐 빠져나와 여유와 낭만을 즐기고 싶은 마음은 절실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적게 나마 자신에게 휴가를 주고 싶다면 '한국의 작은 프랑스'로 불리는 서울 서래마을을 한 번 가보는 것은 어떨까.
마을 앞으로 개울이 굽이쳐 흐른다는 뜻에서 유래된 서래마을은 서울 한남동에 있던 주한 프랑스학교가 1985년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자연스럽게 프랑스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해왔다. 현재는 국내 거주 프랑스인 중 절반 이상이 이 마을에 정착해 살고 있을만큼 많은 수의 프랑스인이 거주하고 있어서 마을 여기저기에서 수시로 이들과 만나게 된다.
낮은 빌라들이 넓직하게 펼쳐져 있는 마을 전경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삭막한 아파트와 자극적인 전광판이 대부분인 서울 강남의 한복판에 있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지나가는 외국인과 눈인사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마냥 걸어다녀도 다른 사람과 어깨를 부딪히거나 간섭받을 일이 없다. 동네 어디를 다녀도 곳곳에 나무와 꽃을 볼 수 있고 하루종일 책 한 권을 끼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맘에 드는 곳에 골라앉아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게 한다. 창문과 대문에도 색색의 화분이 걸려 있고 뛰는 사람을 보기 힘든 이 마을은 전체적으로 유럽의 여유로운 전원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이국적인 향취를 머금고 있어 하루종일 산책해도 질리지 않을만큼 눈이 즐겁다.
그리고 이 곳은 눈이 즐겁기도 하지만 미식가들에게도 이미 잘 알려진 지역이기도 하다. 이국적인 디자인의 노천카페, 귀차니즘에 빠진 예술가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여유를 누리고 싶은 미시족들에게 안성맞춤인 브런치 카페, 가벼운 음료와 다양한 종류의 디저트가 많은 카페, 주인의 센스를 엿볼 수 있는 특색있는 와인 바 등이 보물찾기라도 하듯 골목 곳곳에 숨겨져 있다.
서래마을에서 스스럼없는 친구와 오전에 만나 함께 우아하게 브런치를 즐기고 몽마르뜨 공원, 서리풀 공원을 산책하고 도서관에 들러 한동안 보지 못했던 책 속에 빠져 있다가 어스름 저녁이 되면 노천까페에서 와인 한 잔과 아껴두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느긋하게 하루를 낭비해보자. KTX가 있는 요즘 서울이 성큼 가까이 다가와 있기에 마음 먹기 따라 주말을 이곳에서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
서래마을은 고속터미널, 신세계백화점, 강남 성모병원, 최고급 아파트 단지인 '래미안 퍼스티지', 국립중앙도서관 등 이름만 대도 알만한 곳과 인근해 있지만 마치 잘 숨겨놓은 보물처럼 초행길에는 찾기 까다로운 데에 위치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4동의 한 어귀에 위치하고 있는 서래마을은 정확하게 어디서부터가 서래마을로 불리는지 경계도 명확지 않은 데다 다른 번화가처럼 교통편이 좋지도 않다. 그러나 일단 여기가 서래마을이라는 곳을 알게 되면 왜 사람들이 이 동네에 한 번 정착하면 나가기 싫어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2호선 서초역에서 법원쪽으로 나 있는 일명 정보사길이라고 불리는 길로 접어들면 엽서의 한 장면처럼 가로수가 양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곳이 나타난다.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몽마르뜨 공원'이라는 안내표지판이 한국어와 프랑스어 두 가지로 적혀 있다. 표지판을 따라 약간 경사진 언덕을 걸어 들어가면 넓게 펼쳐진 잔디밭과 탁 트인 공원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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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래마을에 있는 이탈리아 식당 '아르떼', 잡지들에 자주 소개된 맛집 '키친플로', 일본식 이자까야 음식점(왼쪽부터). 이용우 기자 ywlee@kookje.co.kr |
날씨가 좋은 날에는 나무에 해먹(그물침대)를 걸어놓고 낮잠을 자는 사람, 돗자리를 펴고 앉아 담소를 나누며 와인을 마시는 사람, 함께 공놀이를 하는 아빠와 아들, 한가롭게 책을 읽는 엄마와 딸과 같은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속에는 한국인과 외국인이 섞여 있는데 다른 곳에서는 낯설어 보일 그 모습이 왠지 이 곳에서는 자연스러워 보인다.
서래마을의 대표적 문화 교류 행사인 '한불 축제'가 열리는 주요 무대이기도 한는 이 공원은 밤에 더욱 눈에 띄는 누에다리로 서리풀 공원과 연결되어 있다. 또 몽마르뜨 공원 뒤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 서초 국립중앙도서관과 만난다. 1988년 지금의 반포동 신축건물로 확장 이전하면서 남게된 이 국립중앙도서관은 지하 1층 지상 7층 규모로 넓고 웅장하다. 현재는 국립디지털도서관과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까지 갖추고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독서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몽마르뜨 언덕에서 내려오면 방배중학교를 만날 수 있는데 이 학교 앞으로 길게 뻗어 있는 길이 바로 서래마을의 메인 거리이다. 이 길 양쪽으로 다양한 음식점과 카페 등이 늘어서 있는데 전체적으로 멋을 내지 않아도 멋이 나는 프랑스 신사처럼 유명한 거리임에도 조용하고 색다른 여유를 느낄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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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래마을 전경. |
그 길 맨 처음에 위치한 'Oriental Spoon'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시아의 음식들을 선보이는 캐주얼 레스토랑으로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음식이 유명하다. 주로 쌀이 주재료인 음식들이 많아 한국사람들의 입맛에도 잘 맞는 이 곳은 서래마을에서 오래된 매장 중 하나다.
맞은 편에는 '압구정 볶는 커피'가 있는데 바리스타가 손수 내려주는 핸드 드립 커피와 신선한 원두로 만든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와플이나 샌드위치를 가벼운 식사 대용으로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그 아래로 나란히 자리한 'STOVE' , 'MARKET VINO FLOWER' 등은 맛있는 브런치와 와인으로 유명하다. 주말보다 평일이 더 인기가 있는 이들 카페들은 오전 11시만 돼도 자리가 없을 정도다. 브런치 메뉴로는 파스타나 와플에 커피나 가벼운 와인을 추천하는데 먹어보면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를 알게 된다.
'STOVE' 건너편에는 주한 프랑스 학교가 있다. 얼핏 봐서는 학교 건물처럼 보이지 않는 이 프랑스 학교는 프랑스 현지 교육과정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3월에 새학년 새학기가 시작되는 한국 교육과정과 달리 9월에 새학년에 들어간다.
수업이 끝날 때가 되면 아이를 데리러 온 엄마 아빠들로 붐빈다. 조용하기만 하던 이 동네도 이럴 때가 있구나 싶을 만큼 부모들은 조금은 요란스럽게 아이들과 함게 귀가하는데 다양한 인종의 가족들이 상봉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한편의 외국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잠시 빠져들기도 한다.
프랑스 학교를 뒤로 하고 계속 길을 따라 내려오면 '크라제버거'와 'TOM N TOMS' 등의 브랜드 매장이 자리잡고 있고 사이사이 편의점이나 부동산소개소들이 심심하지 않게 보인다.
그렇게 크고 작은 커피집과 카페들을 지나면 프랑스 쉐프가 만든 프랑스 빵을 맛볼 수 있는 '파리크라상'이 나온다. 파리크라상 체인점이긴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롭고 특이한 이름의 예쁜 빵들이 많다. 이 곳 파리크라상은 프랑스인들이 좋아하는 빵들을 엄선하여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름도 생소하고 모양도 독특해서 눈요기거리로도 그저그만이다. 가격이 다른 곳에 비해 비싼데도 불구하고 먼 곳에서 일부러 빵을 사러 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파리크라상 맞은편에 있는 커피 체인점 'STARBUCKS'를 끼고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서래마을에서 오래된 와인바 중 하나인 '맘마키키'가 나온다. 운이 좋으면 유명 연예인의 옆 테이블에 앉아 그를 훔쳐보는 재미를 만끽하면서 와인을 마실 수도 있다. 날씨가 좋은 밤이면 밖에까지 테이블을 놓고 시원한 바람과 함께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서래마을의 메인 거리를 다 돌았다고 서래마을 전부를 봤다고 생각하는 건 절대 금물. 서래마을은 발품을 팔수록 골목 골목안에 새로운 곳들을 발견하게 된다. 대표적인 곳으로 '키친플로''5cijung''red brick''VINO IN VILLA' 등 각종 잡지에 자주 소개되는 맛집들이 곳곳에 있는데 찾아다니는 재미도 쏠쏠하다. 최근에는 ''5cijung'같은 갤러리 카페가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프랑스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 프랑스 음식점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정통 프랑스 요리를 선보이는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고 대부분 파스타같은 이탈리아 음식점이다. 최근 들어'무사'같은 일본식 이자까야 음식점이 많이 들어서고 있고 '왕가(구 만리장성)'같은 오래된 중국음식점도 있어 다양한 문화권이 공존하고 있다.
메인 거리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서래마을의 대표적인 놀이터 2곳 중 하나인 청룡공원이 나온다. 항상 아이들로 북적대는 놀이터는 아니고 한적하고 서정적인 곳으로, 크리스마스 즈음인 12월 둘째 주 토요일이면 프랑스 주민과 한국 주민이 한데 어울리는 '크리스마스 프랑스 전통 장터'가 열리는 장소다. 프랑스인들이 가정에서 직접 만든 치즈와 훈제 연어, 거위간 요리, 포도주 등 정통 프랑스 요리를 판매하고, 그 수익금을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기탁하는 뜻 있는 행사장이다.
또 하나 놀이터는 한신 서래 아파트 입구 쪽에 있는 놀이터로 서울시가 만든 상상 어린이공원이다 .이곳에는 일반 놀이터에도 있는 미끄럼틀과 그네 같은 기구들과 함께 한 쪽에 물의 낙차를 이용해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물놀이 시설과 함께 파라솔과 테이블을 놓아 부모들이 아이들 노는 모습을 편하게 지켜보면서 차를 마시거나 담소를 나눌 수 있게 꾸며 놓았다. 신나게 노는 아이들에게 언어의 장벽은 존재하지 않고 물에 젖고 모래를 온 몸에 묻히고 놀아도 누구하나 만류하거나 눈쌀을 찌푸리지 않는다.
이 밖에 서래마을을 대표하는 것으로는 매해 6월 21일 몽마르뜨 공원에서 열리는 '반포서래 한·불 음악축제'가 있다. 프랑스 학교와 반포4동 주민들이 함께하는 행사로 프랑스에서 1982년부터 6월 21일에 전 국민이 장르의 구분없이 어디서나 악기를 연주하거나 음악을 듣는 '음악축제(fete de la musique)'에서 착안한 것이다. 행사 당일 서래마을 메인 거리에서 국내 대학 불문과 음악동아리가 길거리 공연을 벌이고, 프랑스학교에서 몽마르뜨 공원까지 퍼레이드가 열린다. 주행사장인 몽마르뜨 공원에선 샹송경연대회를 비롯해 국내외 유명 연예인과 프랑스인들의 공연이 펼쳐지는데 오후 3시부터 밤 10시까지 신나는 축제가 펼쳐진다.
# 부산에서 서래마을까지 가려면
◇ 버스
- 부산종합버스터미널 출발 → 서울고속터미널 하차 → 마을버스 13번 탑승 → 서래마을 도착
◇ 기차
- 부산역 출발 → 서울역 하차 → 지하철 2호선 서초역 하차 → 도보로 10분
- 부산역 출발 → 서울역 하차 → 3호선 고속버스터미널역이나 7호선 고속버스터미널역 하차 → 마을버스 13번 탑승 → 서래마을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