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宗御製訓民正音
製(제)는 글 짓는 것이니, 御製(어제)는 임금이 지으신 글이다.
訓(훈)은 가르치는 것이요, 民(민)은 백성이요, 音(음)은 소리니, 訓民正音(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시는 바른 소리이다.
國之御音이(나라의 말씀이)
國(국)은 나라이다. 之(지)는 입겿(토씨)이다. 語(어)는 말씀이다.
異乎中國하여(중국과 달라)
異(이)는 다른 것이다. 乎(호)는 “아무에게”라는 겿(토씨)에 쓰는 글자이다.
中國(중국)은 황제 계신 나라이니, 우리나라의 흔한 말에 강남이라 하느니라.
與文字로 不相流桶할새(문자가 서로 통하지 아니할새)
與(여)는 ”이것과 저것과”라는 겿(토씨)에 쓰는 글자이다.
文(문)은 글월이다. 不(불)은 “아니”라는 뜻이다. 相(상)은 “서로”라는 뜻이다.
流通(유통)은 흘러 통하는 것이다.
“잡이”라는 말이 있다.
“글의 어떤 부분에 보태고자 덧붙이는 새김”을 뜻하는데
위 《세종어제훈민정음》을 보건대 참 잡이가 많다.
오늘날 보아도 쉬운 한자에 꼬박꼬박 잡이를 달아 준 걸 보면
아마도, 한문을 배우는 사람이 아닌 터에야, 옛 사람들에게도 한자는 낯설고 어려운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만큼 훈민정음은 뭇사람들에게 반가운 것이었고, 삶에 종요로운 것이 되었을 테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한글이 너무 자랑스러운 나머지, 정작 그 안에 담긴 우리말에서는 눈을 돌리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우리말은 소리가 주는 느낌에 따라 그 뜻을 섬세하게 나누는데, 이를 이제는 거의 잊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오늘은 훈민정음으로써 우리말의 소리가 어떤 됨됨이를 가졌는지 돌아보려 한다.
세종대왕이야말로 누구보다 우리말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깊이 살폈을 사람으로
훈민정음은 우리의 말소리에 대한 실마리를 잔뜩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옛 한글 자료가 적은 만큼 어림으로 헤아린 것이 많다는 것을 미리 일러 둔다.
ㆍ舌縮而聲深◦ 天開於子也。形之圓◦ 象乎天也。
ㆍ는 혀가 오그라져 소리가 깊으니, 하늘이 자시(子時)에 열린 것이다. 그 꼴이 둥근 것은 하늘을 본떴다.
ㅡ舌小縮而聲不深不淺◦ 地闢於丑也。形之平◦ 象乎地也。
ㅡ는 혀가 조금 오그라져 소리가 깊지도 얕지도 않으니, 땅이 축시(丑時)에 열린 것이다. 그 꼴이 고른 것은 땅을 본떴다.
ㅣ舌不縮而聲淺◦ 人生於寅也。形之立◦ 象乎人也。
ㅣ는 혀가 오그라지지 않아 소리가 얕으니, 사람이 인시(寅時)에 생긴 것이다. 그 꼴이 곧은 것은 사람을 본떴다.
ㅗㅏㅛㅑ之圓居上與外者◦ 以其出於天而為陽也。
ㅗ, ㅏ, ㅛ, ㅑ에서 ㆍ이 위와 밖에 있는 것은 이들이 하늘에서 나와 양이 되기 때문이다.
ㅜㅓㅠㅕ之圓居下與內者◦ 以其出於地而為隂也。
ㅜ, ㅓ, ㅠ, ㅕ에서 ㆍ이 아래와 안에 있는 것은 이들이 땅에서 나와 음이 되기 때문이다.
(……)
取象於天地人而三才之道備矣。
하늘과 땅과 사람을 본뜨므로 삼재(三才)의 도리를 갖추었도다!
然三才為萬物之先◦ 而天又為三才之始◦ 猶ㆍㅡㅣ三字為八聲之首◦ 而ㆍ又為三字之冠也。
삼재는 만물에 앞서고, 삼재는 또한 하늘에서 비롯하니, 마치 ㆍ, ㅡ, ㅣ 세 글자가 여덟 글자의 머리가 되고, ㆍ가 또한 세 글자의 갓(으뜸)이 되는 것과 같다.
1. 밝은 것과 어두운 것
먼저 훈민정음은 가운뎃소리를 밝은홀소리(陽性母音)와 어두운홀소리(陰性母音)로 뚜렷이 나누어 밝힌다.
다시 말해, 하늘을 본딴 「ㆍ」는 곧 양(陽)이고 땅을 본딴 「ㅡ」는 곧 음(陰)이며,
하늘(ㆍ)이 저마다 위와 밖으로 드러난 「ㅗ」와 「ㅏ」는 양(陽)이고
하늘(ㆍ)이 저마다 아래와 안으로 들어간 「ㅜ」와 「ㅓ」는 음(陰)이다.
그리고 이들 소리는 「ㆍ」와 「ㅡ」, 「ㅗ」와 「ㅜ」, 「ㅏ」와 「ㅓ」로 짝을 이룬다.
소리의 깊음과 얕음을 견준 것이다.
이를테면 「ㅗ」와 「ㅜ」는 모두 입이 오므라지지만, 「ㅗ」는 「ㅜ」보다 혀가 낮고 입이 벌어진다.
「ㅏ」와 「ㅓ」의 경우는 모두 입이 오므라지지 않지만, 「ㅏ」가 「ㅓ」보다 혀가 낮고 입이 벌어진다.
홀소리(母音)를 밝은 것과 어두운 것으로 나누는 나라말이 우리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처럼 혀가 높고 낮음으로써 밝음과 어둠을 나누는 나라말은 아직 본 적이 없다.
흔히 다른 나라말에서는 혀가 이 쪽으로 나느냐 목 쪽으로 드느냐로 나누기 때문이다.
하물며 홀소리어울림(母音調和)이 없는 영어에서조차 혀가 앞으로 나는 /a/와 /i/ 따위를 밝은 홀소리로 보고, 혀가 뒤로 드는 /o/와 /u/ 따위를 어두운 홀소리로 본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가 소리를 듣고 느낄 때 남다른 데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훈민정음에 나오는 모든 홀소리를 나누어 적자면 아래와 같다.
┌─ 홑홀소리 ─┐ | ┌─────── 두겹홀소리 ───────┐ | ┌ 세겹홀소리 ┐ | |||||||||||
양성모음 | ㆍ | ㅗ | ㅏ | ㆎ | ㅚ | ㅐ | ᅟᆝ | ㅛ | ㅑ | ㅘ | ㆉ | ㅒ | ㅙ |
음성모음 | ㅡ | ㅜ | ㅓ | ㅢ | ㅟ | ㅔ | ᅟᆜ | ㅠ | ㅕ | ㅝ | ㆌ | ㅖ | ㅞ |
중성모음 | ㅣ |
이처럼 홀소리를 밝은 것과 어두운 것으로 나누고 짝을 지은 데에는 우리말 나름의 까닭이 있었는데
홀소리어울림(母音調和)이 바로 그것이다.
말하자면, 밝은 것은 밝은 것끼리 어울려 어두운 것을 꺼리고, 어두운 것은 어두운 것끼리 어울려 밝은 것을 꺼렸던 것이다.
따라서 밝은홀소리끼리 어울린 낱말과 어두운 것끼리 어울린 낱말이 나뉘었으므로
이는 곧 우리말을 살아 숨 쉬게 하는 고동이 되었다.
아쉽게도 머지않아 하늘(ㆍ)이 무너지며, 우리의 홀소리어울림도 함께 무너져 내렸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말결은 오늘날까지 남아 우리말을 여러 빛깔로 아름답게 빛내고 있다.
밝은홀소리 | 어두운홀소리 | 더 보기 | ||
ᄀᆞᆰ다 → 갉다 | 긁다 → 긁다 | • 갉작갉작/긁적긁적, 갉죽갉죽/긁죽긁죽 | ||
ᄀᆞᆺᄀᆞᆺ다 → 깨끗하다 | 긋긋다 → ✗ | |||
ᄂᆞᆰ다 → 낡다 | 늙다 → 늙다 | • 낡은이/늙은이 | ||
ᄃᆞᄉᆞ다 → 따스하다 | 드스다 → 뜨스하다 | • 따뜻하다/뜨뜻하다, 따습다/뜨습다, 따갑다/뜨겁다, 따끔/뜨끔 | ||
ᄇᆞᄃᆞ티다 → ✗ | 브드티다 → 부딪치다 | |||
ᄇᆞᅀᆞ다 → 바수다 | 브ᅀᅳ다 → 부수다 | • 바서지다/부서지다, 바스러지다/부스러지다, 바삭바삭/부석부석, 바슬바슬/부슬부슬, 바스스/부스스, 바스라기/부스러기 | ||
ᄉᆞᆯ다 → 사르다 | 슬다 → 슬다 | • 사라지다/스러지다, 사르르/스르르, 살살/슬슬, 살금/슬금 | ||
ᄉᆞᆯ갑다 → 살갑다 | 슬겁다 → 슬겁다 | • “슬기롭다”라는 뜻이었다. • 곰살갑다/굼슬겁다, 슬기 | ||
ᄌᆞᄂᆞᆨᄌᆞᄂᆞᆨ → 자늑자늑 | 즈늑즈늑 → ✗ | |||
ᄆᆡᅀᆡ엽다 → 매섭다 | 믜ᅀᅴ엽다 → 무섭다 | • 무시무시하다 | ||
ᄆᆡᆺᄆᆡᆺᄒᆞ다 → 맷맷하다 | 믯믯ᄒᆞ다 → 밋밋하다 | • 매끄럽다/미끄럽다, 매끄러지다/미끄러지다, 매끌매끌/미끌미끌, 매끈매끈/미끈미끈, 매끄당/미끄덩 | ||
ᄇᆡᆨᄇᆡᆨᄒᆞ다 → 빽빽하다 | 븩븩ᄒᆞ다 → 삑삑하다 | • 빼곡하다/삐국하다 | ||
ᄉᆡ환ᄒᆞ다 → ✗ | 싀훤ᄒᆞ다 → 시원하다 | |||
ᄎᆡᆨᄎᆡᆨᄒᆞ다 → ✗ | 츽츽ᄒᆞ다 → 칙칙하다 | • “빽빽하다”라는 뜻이었다. | ||
곱다 → 곱다 | 굽다 → 굽다 | • 고부리다/구부리다, 고불고불/구불구불, 고붓고붓/구붓구붓, 곱작곱작/굽적굽적, 곱슬곱슬/굽슬굽슬, 곱실곱실/굽실굽실, 꼬박꼬박/꾸벅꾸벅, 고부장/구부정, 고부랑/구부렁 | ||
녹다 → 녹다 | 눅다 → 눅다 | • 녹녹하다/눅눅하다, 노그라지다/누그러지다, 녹진하다/눅진하다, 노긋노긋/누긋누긋, 노글노글/누글누글 | ||
도탑다 → 도탑다 | 두텁다 → 두텁다 | • 도톰하다/두툼하다 | ||
모ᇰᄀᆡ다 → 몽치다 | 무ᇰ긔다 → 뭉치다 | • 몽똥그리다/뭉뚱그리다, 몽개몽개/뭉게뭉게, 몽글몽글/뭉글뭉글 | ||
보ᄃᆞ랍다 → 보드랍다 | 부드럽다 → 부드럽다 | • 보들보들/부들부들, 보드레하다/부드레하다 | ||
ᄲᅩ롣다 → 뾰족하다 | ᄲᅮ룯다 → 쀼죽하다 | • 뾰루지, 뾰두라기 | ||
오목ᄒᆞ다 → 오목하다 | 우묵ᄒᆞ다 → 우묵하다 | • 오므리다/우므리다, 오므라지다/우므러지다, 오망하다/우멍하다 옴쏙/움쑥, 옴폭/움푹 | ||
옷곳ᄒᆞ다 → ✗ | 웃굿ᄒᆞ다 → ✗ | • “향기롭다”라는 뜻이었다. | ||
옴ᄌᆞᆨ- → 옴직- | 움즉- → 움직- | • 움직이다, 옴직옴직/움직움직, 옴질옴질/움질움질, 옴짝옴짝/움쩍움쩍, 옴실옴실/움실움실, 옴지락-/움지럭-, 오무락-/우무럭- | ||
촉촉ᄒᆞ다 → 촉촉하다 | 축축ᄒᆞ다 → 축축하다 | • 촉초근하다/축추근하다, 촉촉지근하다/축축지근하다 | ||
남다 → 남다 | 넘다 → 넘다 | • 나마, 너머, 남짓, 나머지, 남실남실/넘실넘실 | ||
다랍다 → 다랍다 | 더랍다 → 더럽다 | |||
반ᄃᆞᆨ반ᄃᆞᆨ → 반득반득 | 번득번득 → 번득번득 | • 빤하다/뻔하다, 반드럽다/번드럽다, 반들반들/번들번들, 반드르르/번드르르, 반드레하다/번드레하다, 반질반질/번질번질, 반지르르/번지르르, 반짝반짝/번쩍번쩍, 반듯반듯/번듯번듯 | ||
사ᄂᆞᆯᄒᆞ다 → 사늘하다 | 서늘ᄒᆞ다 → 서늘하다 | • 산산하다/선선하다, 산뜻/선뜻, 산들산들/선들선들, 산득산득/선득선득 | ||
삭다 → 삭다 | 석다 → 썩다 | |||
아ᄃᆞᆨᄒᆞ다 → 아득하다 | 어득ᄒᆞ다 → 어득하다 | • 어둑하다, 까마아득하다, 어두컴컴하다 | ||
아ᄌᆞᆯᄒᆞ다 → 아질하다 | 어즐ᄒᆞ다 → 어질하다 | • 어지르다, 어지럽다, 아찔하다/어찔하다 | ||
뱌ᄇᆡ다 → 뱌비다 | 비븨다 → 비비다 | • 뱌비작뱌비작/비비적비비적 | ||
환ᄒᆞ다 → 환하다 | 훤ᄒᆞ다 → 훤하다 | • 훤칠하다 |
오늘날 그 말뜻과 쓰임새가 갈리지 않고 말맛을 더하고 있을 뿐이라면
우리는 두 낱말을 저마다 “작은말”과 “큰말”로 일컬어
작은말은 “큰말에 견주어 작고, 가볍고, 밝고, 세게 느껴지는 말”이라 뜻을 달고
큰말은 “작은말에 견주어 크고, 무겁고, 어둡고, 여리게 느껴지는 말”이라 뜻을 단다.
그래서 우리는 작고 가벼운 것이 달려 있거든 “달랑달랑”이라 하고, 크고 무거운 것이 달려 있거든 “덜렁덜렁”이라 하며
“촉촉한” 초코칩은 갓 만들어 맛있을 것같이 느끼지만, “축축한” 초코칩은 지하실에 며칠 묵혔을 것같이 느끼며
모른다는 듯 고개를 이쪽저쪽 움직이면 “갸웃거리는” 것이 되지만, 궁금하다 듯 이리저리 오가면 “기웃거리는” 것이 되고
무언가를 가리켜 “주먹”보다 작거든 “조막”이라고 한다.
다만 옛적에도 이제와 같은 느낌으로 밝은홀소리와 어두운홀소리를 받아들였는지는 똑 부러지게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우리말은 예부터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라는 것은 알겠다.
聲有緩急之殊◦ 故平上去其終聲不類入聲之促急。
(끝)소리에는 느림과 빠름의 구분이 있으니 평성·상성·거성의 끝소리는 입성의 빠름과 다르다.
不清不濁之字◦ 其聲不厲◦ 故用於終則宜於平上去。
불청불탁의 글자(ㆁ, ㄴ, ㅁ, ㅇ, ㄹ, ㅿ)는 그 소리가 세지 않으니 끝소리에 쓰면 곧 평성·상성·거성에 알맞고
全清次清全濁之字◦ 其聲為厲◦ 故用於終則宜於入。
전청·차청·전탁의 글자(ㄱ·ㅋ·ㄲ, ㄷ·ㅌ·ㄸ, ㅂ·ㅍ·ㅃ, ㅈ·ㅊ·ㅉ, ㅅ·ㅆ, ㆆ·ㅎ·ㆅ)는 그 소리가 세니 끝소리에 쓰면 입성에 알맞다.
所以ㆁㄴㅁㅇㄹㅿ六字為平上去聲之終◦ 而餘皆為入聲之終也。
그러므로 ㆁ, ㄴ, ㅁ, ㅇ, ㄹ, ㅿ 여섯 자는 평성·상성·거성의 끝소리가 되고 나머지는 모두 입성의 끝소리가 된다.
然ㄱㆁㄷㄴㅂㅁㅅㄹ八字可足用也。
다만 ㄱ, ㆁ, ㄷ, ㄴ, ㅂ, ㅁ, ㅅ, ㄹ 여덟 자로 충분히 쓸 수 있다.
五音之緩急◦ 亦各自為對如牙之ㆁ與ㄱ為對◦ 而ㆁ促呼則變為ㄱ而急◦ ㄱ舒出則變為ㆁ而緩。
다섯 소리의 느림과 빠름이 저마다의 짝이 되니, 어금닛소리 ㆁ과 ㄱ이 짝이 되므로 ㆁ을 빠르게 내면 ㄱ이 되어 빠르고, ㄱ을 느리게 내면 ㆁ이 되어 느리다.
舌之ㄴㄷ◦ 脣之ㅁㅂ◦ 齒之ㅿㅅ◦ 喉之ㅇㆆ◦ 其緩急相對◦ 亦猶是也。
혓소리 ㄴ·ㄷ, 입술소리 ㅁ·ㅂ, 잇소리 ㅿ·ㅅ, 목청소리 ㅇ·ㆆ이 그 느림과 빠름을 견주어 또한 같다.
且半舌之ㄹ◦ 當用於諺◦ 而不可用於文。
그리고 반혓소리 ㄹ은 우리말에만 쓰며 한문에는 쓰지 못한다.
2. 느린 것과 빠른 것
그리고 훈민정음은 끝소리에 따라 느린 소리와 빠른 소리(入聲)를 나눈다.
어려운 말은 되도록 빼고 이야기를 간추리자면
울림소리 「ㆁ, ㄴ, ㅁ, ㄹ」이 끝소리로 오면 느린 소리가 되고
막힘소리 「ㄱ, ㄷ, ㅂ, ㅅ」이 끝소리로 오면 빠른 소리가 된다는 것이다.
① 울림소리
첫째로 울림소리란 목청의 울림이 센 소리를 가리킨다.
유성음(有聲音, voiced sound)이라고도 하는데
중학교 국어에서 김영랑 시인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을 배우며
울림소리로써 부드럽고 가벼운 느낌을 주고 있다고 했던 것을 기억할는지 모르겠다.
하나, 기억한다손 해도 열에 아홉은 울림소리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는데
다른 나라말에서는 흔히 울림소리와 안울림소리로 닿소리를 맞세우는 데 비추어
우리말은 울림소리와 안울림소리를 맞세우지 않으므로 이들 소리를 듣는 데 무딘 탓이다.
이를테면, 영어에서는 아래처럼 닿소리를 나누고, 우리는 그것을 어설프게 알아듣는다.
울림소리 | 우리가 듣는 것 | ↔ | 안울림소리 | 우리가 듣는 것 |
/b/ | /ㅂ/ | ↔ | /p/ | /ㅍ/ |
/d/ | /ㄷ/ | ↔ | /t/ | /ㅌ/ |
/g/ | /ㄱ/ | ↔ | /k/ | /ㅋ/ |
/v/ | /ㅂ/ | ↔ | /f/ | /ㅍ/ |
/z/ | /ㅈ/ | ↔ | /s/ | /ㅅ/ |
/ʤ/ | /ㅈ/ | ↔ | /ʧ/ | /ㅊ/ |
/ð/ | /ㄷ/ | ↔ | /θ/ | /ㅅ/ |
그래서 거꾸로 저들이 우리의 소리를 들었을 때는 아래처럼 한가지로 듣게 된다.
예사소리 | 저들이 듣는 것 | ↔ | 된소리 | 저들이 듣는 것 | ↔ | 거센소리 | 저들이 듣는 것 |
/ㄱ/ | /k/ | ↔ | /ㄲ/ | /k/ | ↔ | /ㅋ/ | /k/ |
/ㄷ/ | /t/ | ↔ | /ㄸ/ | /t/ | ↔ | /ㅌ/ | /t/ |
/ㅂ/ | /p/ | ↔ | /ㅃ/ | /p/ | ↔ | /ㅍ/ | /p/ |
/ㅅ/ | /s/ | ↔ | /ㅆ/ | /s/ | |||
/ㅈ/ | /ʧ/ | ↔ | /ㅉ/ | /ʧ/ | ↔ | /ㅊ/ | /ʧ/ |
우리말은 오직 「ㅇ, ㄴ, ㅁ, ㄹ」만을 울림소리로 가지며 나머지는 모두 안울림소리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이것이 너무도 당연하지만 오히려 울림소리를 가름하지 않는 우리말이 별난 축에 든다.
② 막힘소리
둘째로 막힘소리란 숨을 터트려 내야 할 소리를 숨을 막은 채 터트리지 않아 나는 소리를 가리킨다.
불파음(不破音, unreleased stop)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는, 첫소리로 올 때면 혀 또는 입술을 열어 숨을 터트리는 닿소리를
끝소리에서는 혀 또는 입술을 닫아 숨이 터지지 못하도록 막으므로 막힘소리가 생긴다.
그래서 「ㄱ, ㄲ, ㅋ」은 모두 끝소리에서 「ㄱ」이 되며
「ㄷ, ㄸ, ㅌ, ㅅ, ㅆ, ㅈ, ㅉ, ㅊ, ㅎ」은 모두 끝소리에서 「ㄷ」이 되며
「ㅂ, ㅃ, ㅍ」은 모두 끝소리에서 「ㅂ」이 된다.
훈민정음에서는 「ㅿ, ㅈ, ㅊ,」이 끝소리가 되거든 「ㅅ」으로 쓴다고 하는데
오늘날 더는 「ㅅ」을 끝소리로 쓰지 않기에 옛날의 「ㅅ」이 끝소리로서 어떤 소리값을 가졌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막 이것도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해서 아직 무엇이 다른 건지 쉬이 알아채기 어렵다.
아래의 보기를 한번 보자.
낱말 | 우리가 듣는 것 | 낱말 | 우리가 듣는 것 |
babe /beɪb/ | 베이브 | tape /teɪp/ | 테이프 |
vague /veɪg/ | 베이그 | cake /keɪk/ | 케이크 |
fade /feɪd/ | 페이드 | date /deɪt/ | 데이트 |
pave /peɪv/ | 페이브 | safe /seɪf/ | 세이프 |
gaze /geɪz/ | 게이즈 | base /beɪs/ | 베이스 |
우리는 위 낱말의 마지막을 “-그, -크, -드, -트, …”와 같이 「ㅡ」로써 쓰고 듣지만, 실상은 모두가 한 음절짜리 영어 낱말이다.
“-그, -크, -드, -트, …” 따위는 끝소리를 끝까지 숨을 터트려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울러 /eɪ/는 겹홀소리인데 한글에 마땅한 글자가 없어 두 마디로 적힌다.)
발음 기호를 보아도 마지막에 「ㅡ」와 같은 홀소리는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첫소리와 끝소리를 다르게 내는 것도 다른 나라말에서는 흔하지 않으므로 또한 우리말의 별난 점이 된다.
③ 울림소리와 막힘소리
이제 울림소리와 막힘소리가 어떻게 다른지 느껴 보려면
「앙, 안, 암, 알」과 「악, 앋, 압」을 한 번씩 소리 내 보면 된다.
앞엣것은 소리가 쭉 이어 나지만, 뒤엣것은 소리가 뚝 바로 멎는다.
그리고 이러한 소리의 성질은 곧 시늉말의 말맛을 살리는 데 쓰인다.
울림소리 「ㅇ, ㄴ, ㅁ, ㄹ」을 끝소리로 쓰거든
“느리거나 부드럽거나 이어지는 소리 또는 모습”을 흉내 내며
막힘소리 「ㄱ, ㄷ, ㅂ」을 끝소리로 쓰거든
“빠르거나 거세거나 끊어지는 소리 또는 모습”을 흉내 내는 것이다.
ᄒᆞᆯᄀᆞ로 무든 지븨 ᄇᆞᆯᄀᆞᆫ 비치 머므럿고 솔 션 門엔 드믄 그르메 반ᄃᆞᆯ원ᄃᆞᆯᄒᆞ도다
흙으로 묻은 집에 밝은 빛이 머물고 소나무 선 문에 드문 그림자 반들반들하도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9, 1481》
ᄒᆞᆫ가지로 난 터희 野양馬망 ᄀᆞᆮᄒᆞ야[野양馬망ᄂᆞᆫ ᄒᆡᆺ비쳇 듣그리라] 熠읍熠읍히 ᄆᆞᆯ기 어즈려[熠읍熠읍은 번들원들ᄒᆞᆫ 야ᇰᄌᆡ라]
한가지로 난 터에 아지랑이 같아[야마는 햇빛에의 티끌이다] 습습히 맑게 어질러[습습은 번들번들한 모양이다.]
《능엄경언해 권10, 1461》
世솅俗쑉ᄋᆞᆫ 緣ᄋᆑᆫᄋᆞ로 닌 이ᄅᆞᆯ 나토아 諸졍法법이 반ᄃᆞᆨ반ᄃᆞᆨᄒᆞᆯᄊᆡ 부텻 이레 ᄒᆞᆫ 法법도 ᄇᆞ리디 아니ᄒᆞ샤
세속은 인연으로 일어난 일을 나타내어 제법이 반득반득하므로 부처님의 일에 한 법도 버리지 아니하시어
《월인석보 권8, 1447》
번득번드기 開元ㅅ 時節ㅅ 이리 눈 알ᄑᆡ 分明히 잇도다
번득번득이 개원 시절의 일이 눈앞에 분명히 있도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 1481》
때론 울림소리와 막힘소리가 짝을 이루어 다른 그림을 그리곤 하는데
15세기에 쓰인 “반ᄃᆞᆯ원ᄃᆞᆯ/번들원들”과 “반ᄃᆞᆨ반ᄃᆞᆨ/번득번득”을 견주어 보아도
(이때 “반ᄃᆞᆯ원ᄃᆞᆯ/번들원들”은, 마치 “부드럽다”가 「부드러버 → 부드러ᄫᅥ → 부드러워」가 되듯이, 「ㅂ」이 울림소리로 둘러싸였을 때 「ㅂ → ㅸ → ㅜ」가 되어 나타난 꼴로서 “반ᄃᆞᆯ반ᄃᆞᆯ/번들번들”과 다른 것이 아니다.)
앞엣것은 그림자와 아지랑이가 느리고 부드럽게 빛나는 모습을 그린다면
뒤엣것은 법과 기억이 똑똑하고 생생하게 빛나는 모습을 그린다.
더욱이 이러한 구분은 홀소리어울림과 아울러 우리말을 살아 숨 쉬게 하는 고동이 되었는바
시늉말은 “들썩이다, 움직이다, 일렁이다, 망설이다, 속삭이다, 주춤하다” 따위로 다시금 뻗어 나갔기 때문이다.
울림소리 | 막힘소리 | 더 보기 | ||
가분가분/거분거분 | 가붓가붓/거붓거붓 | • “가뿐가뿐”이 가장 눈에 익은 꼴일 테다. | ||
고들고들/구들구들 | 고독고독/구둑구둑 *고닥고닥/구덕구덕 | • “굳다”에서 비롯한다. • “고닥고닥”은 북한어로 올라 있다. • 면은 “고들고들” 해야 맛이고, 떡은 “구덕구덕” 해야 맛이다. | ||
곰실곰실/굼실굼실 곰질곰질/굼질굼질 | 곰지락/굼지럭 곰작곰작/굼적굼적 | • “곰/굼-”과 “옴/움-”은 같은 말에서 비롯한 듯 보인다. • “꼼짝달싹”, “옴짝달싹” 따위로 비슷한 짜임새를 갖는 낱말이 서로 많다. | ||
옴실옴실/움실움실 옴질옴질/움질움질 옴칠옴칠/움칠움칠 | 옴지락/움지럭 옴작옴작/움적움적 옴칫옴칫/움칫움칫 | |||
고불고불/구불구불 곱슬곱슬/굽슬굽슬 곱실곱실/굽실굽실 | 꼬박꼬박/꾸벅꾸벅 고붓고붓/구붓구붓 곱작곱작/굽적굽적 *곱삭곱삭/*굽석굽석 | • “곱다/굽다”에서 비롯한다. • “꼬박꼬박/꾸벅꾸벅”이 표준어로 올라 있으며, “고박고박/구벅구벅”은 북한어로 올라 있다. • “곱삭곱삭/굽석굽석”은 북한어로 올라 있다. | ||
걀쯤걀쯤/길쯤길쯤 갸름갸름/기름기름 | 걀쭉걀쭉/길쭉길쭉 걀짝걀찍/길찍길찍 | • “길다”에서 비롯한다. | ||
깐질깐질/끈질끈질 | 깐작깐작/끈적끈적 *깐질깐질/*끈질끈질 | • “깐깐하다/끈끈하다”에서 비롯한다. • “깐질깐질/끈질끈질”은 북한어로 올라 있다. | ||
깨질깨질/께질께질 | 깨작깨작/께적께적 | |||
납신납신/넙신넙신 | 납작납작/넙적넙적 납죽납죽/넙죽넙죽 | • “납다/넙다”에서 비롯한다. “넙다”는 오늘날 “넓다”로 이어진다. | ||
도돌도돌/두둘두둘 | 도독도독/두둑두둑 | • “돋다”에서 비롯한다. | ||
되똥되똥/뒤뚱뒤뚱 | 되똑되똑/뒤뚝뒤뚝 | |||
동글동글/둥글둥글 | 동긋동긋/둥긋둥긋 | • “동글다/둥글다”에서 비롯한다. | ||
똥땅똥땅/뚱땅뚱땅 | 똑딱똑딱/뚝딱뚝딱 | |||
몰큰몰큰/물큰물큰 몰씬몰씬/물씬물씬 | 몰칵몰칵/물컥물컥 | |||
반들반들/번들번들 반질반질/번질번질 | 반득반득/번득번득 반뜻반뜻/번뜻번뜻 반작반작/번적번적 | • “반하다/번하다”에서 비롯한다. “빤하다/뻔하다”가 더 눈에 익다. • “빛이 나다”라는 뜻에서, “반뜻반뜻/번뜻번뜻”이 표준어로 올라 있으며, “반듯반듯/번듯번듯”은 북한어로 올라 있다. | ||
발롱발롱/벌룽벌룽 | 발록발록/벌룩벌룩 | • “벌다”, “벌어지다”에서 비롯한다. | ||
방글방글/벙글벙글 방실방실/벙실벙실 | 방긋방긋/벙긋벙긋 방싯방싯/벙싯벙싯 | • “버ᇰ글다”에서 비롯한다. “벌다”, “벌어지다”라는 뜻이다. | ||
보글보글/부글부글 | 보각보각/부걱부걱 복작복작/북적북적 | |||
볼강볼강/불겅불겅 볼근볼근/불근불근 | 볼각볼각/불걱불걱 | • “볼가지다/불거지다”에서 비롯한다. | ||
배뚤배뚤/비뚤비뚤 | 배뚝배뚝/비뚝비뚝 | • “배뚤다/비뚤다”에서 비롯한다. | ||
배슬배슬/베슬베슬/비슬비슬 | 배슥배슥/베슥베슥/비슥비슥 | |||
산들산들/선들선들 | 산득산득/선득선득 산뜻산뜻/선뜻선뜻 | • “사늘하다/서늘하다” 또는 “산산하다/선선하다”에서 비롯한다. • “산뜻산뜻/선뜻선뜻”이 표준어로 올라 있으며, “산듯산듯/선듯선듯”은 북한어로 올라 있다. | ||
*사르릉/*스르릉 | 사르륵/스르륵 | • “ᄉᆞᆯ다(>사르다)/슬다”, “사라지다/스러지다” 에서 비롯한다. • “천천히 없어지다”라는 뜻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으로 뜻이 넓어지며 시늉말이 이루어진 듯 보인다. • “사르르/스르르”에 저마다 끝소리 ㅇ과 ㄱ을 더해 “울리는 소리”와 “끊기는 소리”를 나타낸다. • “사르릉/스르릉”은 북한어로 올라, “쓸리며 울리는 소리”를 뜻으로 삼고 있다. • 요즘 칼을 뽑는 소리로 “스르릉”의 줄임말 “스릉”이 널리 쓰이는데, 천천히 움직이되 쇠가 울리는 소리를 나타내는 듯하다. | ||
사분사분/서분서분 | 사붓사붓/서붓서붓 | • “사뿐사뿐”이 가장 눈에 익은 꼴일 테다. | ||
속살속살/숙설숙설 속달속달/숙덜숙덜 소곤소곤/수군수군 | 속삭속삭/ 속닥속닥/숙덕숙덕 소곤닥-/수군덕- | • “숙석숙석”은 없는 말이다. | ||
생글생글/싱글싱글 | 생긋생긋/싱긋싱긋 | |||
아른아른/어른어른 | 아릿아릿/어릿어릿 | • “아리-/어리-”에서 비롯한다. • 아렴풋하다/어렴풋하다, 아리송하다/어리숭하다, 아련하다, 어리둥절하다 | ||
아슬아슬/으슬으슬 | 아쓱아쓱/으쓱으쓱 | |||
아롱다롱/어룽더룽 알롱달롱/얼룽덜룽 | 아록다록/어룩더룩 알록달록/얼룩덜룩 | |||
오망하다/우멍하다 | 오목하다/우묵하다 | • “옴/움-”에서 비롯한다. • 오므리다/우므리다, 오므라지다/우므러지다, 옴쏙/움쑥, 옴폭/움푹 | ||
*와르릉/*우르릉 | 와르륵/우르륵 | • “우르다/울다”에서 비롯한다. • “와르르/우르르”에 저마다 끝소리 ㅇ과 ㄱ을 더해 “울리는 소리”와 “끊기는 소리”를 나타낸다. • “와르릉/우르릉”은 북한어로 올라, “요란스럽게 울릴 때 나는 소리 또는 그 모양”을 뜻으로 삼고 있다. | ||
올망졸망/울멍줄멍 | 올막졸막/울먹줄먹 | |||
자춤자춤/저춤저춤 | 자축자축/저축저축 | |||
잘그락/절그럭 | 잘그랑/절그렁 | |||
잘름잘름/절름절름 | 잘록잘록/절룩절룩 | • “절다”에서 비롯한다. | ||
조잘조잘/주절주절 | 조작조작/주적주적 | |||
졸망졸망/줄멍줄멍 올망졸망/울멍줄멍 | 졸막졸막/줄먹줄먹 올막졸막/울먹줄먹 | |||
차근차근 | 차곡차곡 | |||
찰랑찰랑/철렁철렁 찰람찰람/철럼철럼 | 찰락찰락/철럭철럭 | |||
타달타달/터덜터덜 타발타발/터벌터벌 | 타닥타닥/터덕터덕 타박타박/터벅터벅 | |||
팔랑팔랑/펄렁펄렁 | 팔락팔락/펄럭펄럭 | |||
하늘하늘/흐늘흐늘 | 하늑하늑/흐늑흐늑 | • “흐늘다”에서 비롯한다. “흔들다”라고 하는 뜻이다. | ||
할금할금/흘금흘금 핼금핼금/힐금힐금 | 할긋할긋/흘긋흘긋 핼긋핼긋/힐긋힐긋 | • “할기다/흘기다”에서 비롯한다. | ||
회똘회똘/휘뚤휘뚤 | 회똑회똑/휘뚝휘뚝 | |||
횡/휭 횡횡/휭휭 | 획/휙 획획/휙휙 | • “두르거나 돌다”, “매우, 마구”의 뜻을 갖는 “회/휘-”와 뿌리가 같아 보인다. • 회회/휘휘, 회동그라지다/휘둥그러지다, 회동그래지다/휘둥그레지다, 회돌이, 회오리, 휘돌다, 휘두르다, 휘젓다 |
又以聲音清濁而言之。
또 소리의 청탁으로 말하자면
ㄱㄷㅂㅈㅅㆆ◦ 為全清。
ㄱ, ㄷ, ㅂ, ㅈ, ㅅ, ㆆ은 전청이 되고
ㅋㅌㅍㅊㅎ◦ 為次清。
ㅋ, ㅌ, ㅍ, ㅊ, ㅎ은 차청이 되고
ㄲㄸㅃㅉㅆㆅ◦ 為全濁。
ㄲ, ㄸ, ㅃ, ㅉ, ㅆ, ㆅ은 전탁이 되고
ㆁㄴㅁㅇㄹㅿ◦ 為不清不濁。
ㆁ, ㄴ, ㅁ, ㅇ, ㄹ, ㅿ은 불청불탁이 된다.
3. 여린 것과 거센 것
마지막으로 훈민정음은 닿소리를 여린 것(全淸)와 거센 것(次淸)으로 나눈다.
숨을 터트려 내는 소리 「ㄱ, ㄷ, ㅂ, ㅈ」에 숨을 더 섞거든
한 긋(劃)을 더 그어 「ㅋ, ㅌ, ㅍ, ㅊ」으로 쓰는 것이다.
오늘날 앞엣것을 일컬어 예사소리라 하고, 뒤엣것을 거센소리라 하는데
다른 나라말에 이 둘을 가름하는 말이 또 적다고 하니, 보면 볼수록 우리말은 좀 남다른 구석이 있다.
① 된소리
다만 이때 한 가지 삼갈 것은 전탁(全濁)인 「ㄲ, ㄸ, ㅃ, ㅉ」이다.
오늘날처럼 된소리를 나타내려고 만든 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훈민정음도 문득 땅에서 솟은 것이 아니므로 중국의 음운학에 기대고 있는데
「ㄲ, ㄸ, ㅃ, ㅉ」은 울림소리 「/g/, /d/, /b/, /dz/」를 쓰려고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글에 「ㄲ, ㄸ, ㅃ, ㅉ」는 거의가 중국의 한자음을 적는 데에 쓰였다.
이따금 우리말을 적는 데에도 쓰였지만, 「ㄹ」 뒤에서 또는 울림소리로 둘러싸였을 때에만 나타나므로
울림소리에 물들어 울림소리가 된 「ㄱ, ㄷ, ㅂ, ㅈ」을 적으려 했던 것인지
사잇소리 탓에 된소리가 된 「ㄱ, ㄷ, ㅂ, ㅈ」을 적으려 했던 것인지 똑똑하지 않다.
오늘날에 우리가 “gas”(/gæs/)을 “까스”로 듣기도 하고, “ball”(/bɔːl/)을 “뽈”로 듣기도 하는 것처럼
울림소리와 된소리를 헷갈려서 이런들 저런들 마음에 두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ㄲ, ㄸ, ㅃ, ㅉ」는 우리말의 낱말을 이르는 데 쓰이지 않았으며
“된소리” 또한 우리말의 낱말을 이루는 데 종요롭지 않았던 듯 보인다.
나중에 된소리를 적는 데 쓰인 「ㅺ, ㅼ, ㅽ, ㅾ」도 훈민정음 때부터 된소리였습네 아니었습네 하는 다툼이 있을뿐더러
된소리가 우리말에 꼭 있어야 하는 소리였다면, 우리말을 바르게 적고자 만든 훈민정음에 글자가 따로 없는 까닭이나
낱자 하나하나를 풀이한 훈민정음에 된소리의 풀이가 없는 까닭을 밝히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벼운입술소리 「ㅸ, ㅹ, ㅱ, ㆄ」도 비슷하다.
입술소리 「ㅂ, ㅃ, ㅁ, ㅍ」에 「ㅇ」을 아래로 나란히 써서, 입술이 채 다물리지 않음을 나타냈는데
거의가 한자음이나 여진어·일본어 같은 외국어를 나타내는 데에 쓰였으며
오직 ㅸ만이 우리말을 적는 데 쓰였으나, 이조차 낱말과 낱말이 만나 울림소리로 둘러싸였을 때 나타나므로, 낱말을 이루는 데 이바지하지 않았다.
이러한 실마리로 미루어 보건대, 훈민정음이 나오던 때는 된소리가 가름되어 슬슬 낱말을 이뤄 가는 즈음으로 여겨진다.
(적어도 16세기부터 사람들이 된소리를 가름했다는 데에는 한목소리인 듯하다.)
② 예사소리와 된소리와 거센소리
아무튼 우리말은 예부터 예사소리와 거센소리를 가름했는데
이것이 또한 된소리와 함께 낱말의 말맛을 가르는 데 쓰인다.
예사소리 「ㄱ, ㄷ, ㅂ, ㅈ, ㅅ」을 첫소리로 쓰거든
“말맛이 세거나 거세지 않은 말”인 여린말이 되며
된소리 「ㄲ, ㄸ, ㅃ, ㅉ, ㅆ」을 첫소리로 쓰거든
“뜻은 같으나 말맛이 센 말”인 센말이 되며
거센소리 「ㅋ, ㅌ, ㅍ, ㅊ」을 첫소리로 쓰거든
“뜻은 같으나 말맛이 거센 말”인 거센말이 된다.
옛글에서는 여린말과 거센말의 가름이 뚜렷이 보이지 않으므로, 된소리가 생기면서 함께 자라난 것으로 보인다.
끝내 우리는 낱말을 이루는 첫소리, 가운뎃소리, 끝소리 모두로써 아주 자잘한 말맛까지 나타내게 되었는데
아래와 같은 보기를 보자면 말문이 절로 막힐 만하다.
하물며 다 사전에 오른 낱말들이다.
달-/덜- | 느린 말 | 빠른 말 | |||
작은말 | 큰말 | 작은말 | 큰말 | ||
여린말 | 여린말 | 달가당 | 덜거덩 | 달가닥 | 덜거덕 |
센말 | 달까당 | 덜꺼덩 | 달까닥 | 덜꺼덕 | |
거센말 | 달카당 | 덜커덩 | 달카닥 | 덜커덕 | |
센말 | 여린말 | 딸가당 | 떨거덩 | 딸가닥 | 떨거덕 |
센말 | 딸까당 | 떨꺼덩 | 딸까닥 | 떨꺼덕 | |
거센말 | 딸카당 | 떨커덩 | 딸카닥 | 떨커덕 | |
거센말 | 여린말 | 탈가당 | 털거덩 | 탈가닥 | 털거덕 |
거센말 | 탈카당 | 털커덩 | 탈카닥 | 털커덕 |
잘-/절- | 느린 말 | 빠른 말 | |||
작은말 | 큰말 | 작은말 | 큰말 | ||
여린말 | 여린말 | 잘가당 | 절거덩 | 잘가닥 | 절거덕 |
센말 | 잘까당 | 절꺼덩 | 잘까닥 | 절꺼덕 | |
거센말 | 잘카당 | 절커덩 | 잘카닥 | 절커덕 | |
센말 | 여린말 | 짤가당 | 짤거덩 | 짤가닥 | 쩔거덕 |
센말 | 짤까당 | 쩔꺼덩 | 짤까닥 | 쩔꺼덕 | |
거센말 | 짤카당 | 쩔커덩 | 짤카닥 | 쩔커덕 | |
거센말 | 여린말 | 찰가당 | 철거덩 | 찰가닥 | 철거덕 |
센말 | 찰까당 | 철꺼덩 | 찰까닥 | 철꺼덕 | |
거센말 | 찰카당 | 철커덩 | 찰카닥 | 철커덕 |
ᄇᆞᅀᆞ-/브ᅀᅳ- | 느린 말 | 빠른 말 | |||||||
작은말 | 큰말 | 작은말 | 큰말 | 작은말 | 큰말 | 작은말 | 큰말 | ||
여린말 | 여린말 | 바슬 | 버슬 | 보슬 | 부슬 | 바삭 | 버석 | 보삭 | 부석 |
센말 | - | - | - | - | 바싹 | 버썩 | 보싹 | 부썩 | |
센말 | - | - | - | - | 빠삭 | 뻐석 | 뽀삭 | 뿌석 | |
거센말 | 파슬 | 퍼슬 | 포슬 | 푸슬 | 파삭 | 퍼석 | 포삭 | 푸석 |
간추리자면 우리말은 소리가 주는 느낌에 따라 말맛을 달리하여
첫소리에서는 ‘예사소리’와 ‘된소리’와 ‘거센소리’를 맞세워 여린말과 센말과 거센말을 나누고
가운뎃소리에서는 ‘밝은홀소리’와 ‘어두운홀소리’를 맞세워 작은말과 큰말을 나누며
끝소리에서는 ‘울림소리’와 ‘막힘소리’를 맞세워 느린 말과 빠른 말을 나눈다.
누군가는 이러한 우리말의 됨됨이가 유치하다고 하지만, 나는 제법 사랑스럽지 않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