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도서관을 찾아 나선 여행
대구 성화여자고등학교 박 홍진1)
1. 시행착오 혹은 갈등
요즘 들어 부쩍 학교 도서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어느 TV 프로그램에서까지 일본과 한국의 학교 도서관을 비교하였는데 일본에는 한 학교에 평균 2명이 넘는 사서가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는 4만여 개의 초․중등학교가 있고, 그 4만개의 학교에 사서는 고작 142명밖에 안 된다. 대구만 하더라도 400 여 개 초․중등학교가 있으나, 사서 교사는 대구 전체 초․중등학교에 단 한 명뿐이다.
- 도서폐기 -
내가 처음 우리 학교 도서관을 봤을 때는 창고나 다름없었다. 십 년도 더된 낡은 책과 신문들이 먼지를 켜켜이 뒤집어 쓴 채 쌓여 있었다. 족히 만 권은 되는 낡은 책들 중에 그래도 쓸만한 책을 가려내었다. 삼천 여권을 남기고 나머지는 폐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낡은 책도 법적으로 학교 재산이라 마음대로 버릴 수도 없었다. 대장에 등록이 되지도 않았건만 낡은 책이 더 가치가 있으니 함부로 버리지 말라던 윗분의 반대에 부딪힌 것이다. 그래서 낡은 책일지라도 폐기하려면, 대장에 등록한 뒤 폐기 절차를 따르도록 한다. 세상에! 버리기 위해 대장에 등록을 해야 하다니. 그야말로 쓸데없는 일에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야 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폐기 할 수도 등록할 수도 없었다. 우선 도서관 한 켠에 창고를 만들어 버릴 책들을 쌓아 두었다. 우리 모임2)의 어느 선생님은
“일요일에 학교에 갔어요. 미리 폐품업자에게 트럭을 가져오라고 했죠. 그래서 헌 책을 두 트럭을 실어 내고 나니 도서관이 좀 깨끗해 보이더군요.”
다들 그 여선생의 행동에 통쾌하다며 박장대소를 하는데, 그 중 한 회원이 걱정스런 얼굴로
“잘못하면 큰 일 납니데이,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은 지난 1년 동안 분실한 책을 내보고 변상하랍니다. 안그라머 전근을 보내지 않는다 캅디더.”라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걱정이 되면, 폐기해야 된다고 생각되는 책을 수북히 쌓아 놓고 사진을 찍어 두이소. 그리고 교장 선생님이 폐기를 반대하시면, 무슨 일이 생기면 도서관 담당자가 책임진다는 내용을 글을 써 드리고, 폐기를 시켜뿌이소. 십 수년 동안 잠자던 도서관에 있는 책이라머 뻔한 거 아입니까. 그걸 트집 잡는 사람이 있다면 상식이 모자라는 사람입니다.”
공공 도서관에 사서로 근무하면서 우리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김 계장의 말이었다.
“학교 도서관은 자료적 가치가 있는 책을 보관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건 대학 도서관이나 공공 도서관의 몫이지요. 학교 도서관을 학생들이 그들의 수준에 맞는 책을 손쉽게 구해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주된 기능입니다. 어떤 선진국의 학교 도서관에서는 극단적으로 한 해에 한 번씩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폐기시키기도 한답니다.”
김 계장은 덧붙였다.
어설프게 학교 도서관과 인연을 맺게 된 후부터는 학교 내에서 갈등이 많았다.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자유롭게 책을 보려면 개가식이라야 한다는 것은 도서관에서 일해본 사람은 안다. 그런데 재개관 당시 교장 선생님은 “책을 잃어버리면 선생이 책임지렵니까?”라며 폐가식을 명령했다.
- 도서공동구매 -
도서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는 새 책을 사는 일이 즐거우면서도 힘든 일이다. 농부가 뿌린 씨가 우리들의 먹거리가 될 때가지 여든 여덟 번 손이 간다고 한다. 책도 마찬가지다. 독자들 손에 가기까지 숱한 손이 필요하다.
전산화가 되면서부터 일손이 덜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아직 새책을 살 때는 많은 일손이 필요하다. 학교 도서관 연구회에서는 도서구입에 관한 획기적인 안을 마련하여 실천하고 있다.
새 책을 살 때, 도서관 담당 교사가 할 일은 살 책 목록을 만들기만 하면 된다. 구입할 책 목록을 만들어 지정한 서점에 주면, 그 서점에서 책을 구해서 라벨과 바코드를 붙이고, 다양한 주제어까지 입력하는 전산화를 마무리해서 해당 학교 도서관 서버에 등록시켜준다.
이러한 방법으로 학교 도서관에 책을 납품하는 안은 이제 대구만의 사례가 아니다. 서울 등 수도권이나 지방의 중소도시에 있는 학교 도서관에서도 이러한 방법으로 책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책은 수시로 사야 한다. 서점이나 출판사에서 뜨겁게 광고해주는 책들을 학교 도서관에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학생들은 즐거워한다.
그런데, 행정실은 일 년에 한두 차례만 살 것을 요구한다. 일 년에 책값으로 책정된 돈이래야 고작 학생 두어 명의 1년치 공납금에 지나지 않으면서 말이다. 책을 수시로 산다는 것은 그 많은 서류와 절차 때문에 행정실뿐만 아니라 도서관을 담당하는 사람에게도 성가신 일이다.
학교도서관 연구회에서 도서공동 구매를 한 뒤부터는 서점에서 수시로 책을 배달해준 뒤, 일 년에 한 두 차례 결산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책을 구입하고 있다. 서점의 양해와 학교 행정실의 이해만 뒷받침되면, 따끈따끈한 책을 학교 도서관에서도 만날 수 있다.
- 도서 기증 -
학교 도서관을 담당하다보면 도서기증으로 인한 시행착오를 한번쯤 겪게 된다.
몇 해 전 우리 학교를 졸업한 학생의 아버지 되는 사람이 교장실로 전화를 했다.
“내가 평생 모은 책을 귀교 도서관에 기증하려 합니다.”
그 전화를 받은 교장 선생님께서는 행정실 직원과 도서관 담당인 나에게
“우리가 가서 가져오는 게 예의지요. 감사패라도 하나 마련해 드려야하는 건 아닌지. 대학에서처럼 기증한 사람의 서가를 따로 마련해야겠지요?”
그 집을 먼저 다녀온 행정실 직원은
“거의가 새책들로, 세 개의 책장에 빼곡이 차 있었어요. 그 양반이 멀쩡한 책장까지 가져가라고 합디다.” 라면서,
“1톤 트럭까지 준비해가야겠어요.”고 덧붙였다.
한 나절 후 트럭에 실려 온 책들이 도서관 바닥에 쏟아졌다. 책 주인은 아마 어느 학교에서 정년을 맞은 분인 듯했다. 기증 받은 책은 그분이 평생 모은 것이었다. 그러니 10년, 20년, 30년 된 책들이었다. 버리기는 아까운 그렇다고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만한 가치도 없는 책들이었다. 그 책에서 쓸만한 것을 고르느라 며칠을 보냈다. 그러나, 내가 그 책 더미를 헤쳐가며 고른 책은 스무 권쯤 되었나? 나머지는 폐품처리 했다. 이제 섣불리 책을 기증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실, 책 기증은 얼마나 좋은가. 학교 운영비 중 도서구입 비는 눈곱 만큼밖에 안 된다. 그 예산으로는 아이들이 읽고 싶어하는 책을 다 살수는 없다. 좋은 뜻을 가진 공동체 구성원들의 도움을 얻어 도서관을 살찌울 수만 있다면 좋은 일이다. 동창회원들에게 모교의 도서관을 살리기 위해 1년에 만 원씩 자동이체 시키는 운동을 전개하는 학교도 있고, 어쩌다가 생긴 뒷돈으로 책을 사 기증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학교도 있다.
- 도서관 위치 -
작년 말에는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려는 대통령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 전국에 있는 모든 초․중등학교에 교실 증축 공사가 실시되었다. 우리 학교도 예외는 아니어서 도서관 건물 윗층과 옆으로 건물이 올라서고 붙이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덕분에 도서관 문을 반 년 가까이 닫게 되었다.
이제 짓던 건물이 완공되었다. 새로 생긴 건물들로 인해 각 교실의 위치를 재배치해야 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도서관은 조용히 공부하는 곳이라는 막연한 선입견 탓에 도서관 위치가 맨 꼭대기 층이나 지하층으로 쫓겨날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학교도서관의 중심 기능은 무엇인가? 자습(자율 학습)을 위한 공간인가 아니면 도서를 빌려주는 곳인가.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곳인가. 다양한 매체(도서, 비도서, 다양한 기자재)를 활용한 여러 가지 전략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곳인가. 도서관의 올바른 기능에 대한 확신이 없이는 도서관 위치가 왜 학생들이 잘 들락거리는 곳이라야 하는 지를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
10년이란 짧지만은 않는 시간을 도서관에 앉아 있으면서도 학교도서관의 주된 기능에 대한 고민을 크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책이나 사서 아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한 게 내가 도서관을 지키면서 한 일의 전부인 셈이다. 요즘 들어 학교도서관의 기능이 무엇이어야 하는 지를 고민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나는 국어 선생이다. 국어 선생이면 국어나 잘 가르치면 될 일 아닌가. 국어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내가 대체 왜 학교도서관의 주된 기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까지 해야 하나? 내가 고민해봐야 비전공자이기 때문에 가지는 나름의 한계가 있지 않은가?
학교 도서관의 본질에 대한 고민은 내 몫이 아니다. 그보다는 사서 교사들이 운영하는 학교도서관을 찾아 해답을 찾아보자. 그리고 능력이 모자라는 만큼 흉내내다가 사서가 우리 학교 도서관에 오는 날 툭툭 털고 도서관 문을 나서면 그만이다.
2. 학교 도서관을 찾아 나선여행
비전문가의 한계를 절감하고 송곡여고에서 전임 사서로서 10 여 년을 근무하시는 이덕주 선생을 찾았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도서관에 앉아 세월만 죽이고 있었다는 것을 늦게 사 깨달았던 것이다. 잘 나가는 도서관을 찾아 배우고 싶으니 추천을 해 달라며 메일을 띄웠더니, 며칠 후 답장이 날아왔다.
1. 일반 교과목을 담당하는 교사가 운영하는 도서관 사례는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인창고등학교
2. 도서반 학생들의 활동이 모범적이고, 디지털 도서관이 운영되고 있는 학교눈 송곡여고
3. 시설이 잘 갖추어진 곳은 숙명여고와 경신 고등학교 도서관
4.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학교 도서관은 동덕여고 도서관
이왕 어려운 걸음 하는데 제대로 배워 와야겠다 싶었다. 평소 들락거리던 인터넷 카페를 찾아 도서관을 담당하는 교사들의 글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가 내가 도서관에서 보낸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게 하는 글을 만났다.
윗분들의 완전코미디 결정판.(대책마련을 하고자...) 3)
여름정도에 도서실은 이사를 합니다.
지금 아주 좋은 위치인 본관 2층이 아닌 별관 맨 꼭대기 5층으로요.
본관에 도저히 도서실자리를 마련해줄 수 없다고 그래도 맨 꼭대기층으로 새로 지은 거라고 저를 달래며 도서실이사한다고....통보를 하셨죠.
오늘 거의 외관은 완성된 것 같아서 5층으로 올라가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특별실은 모두 벽과 문을 만들어 놨는데...도서실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 공간은 기둥만 있지...아무것도 텅 비어있었습니다.
공사하시는 분께 여쭈워보니....도서실은 칸막이를 칠거라나요?
전 정말 황당했습니다.
예전에 교장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크기랑은 많이 차이가 날 뿐더러..
무신 서고도 아니고 칸막이라니요.
전 정말 심장이 벌렁벌렁 뛸 만큼 흥분했습니다.
바로 교장선생님께 가서 도서실 이사가 어찌되는지 어쭤보았습니다.
교장선생님 얘기는 완전 코미디였습니다.
대충 설계도를 그려주시는데...정말 엽기적인 설계도였습니다.
도서관은 책이 우선이잖습니까....도서관 안에 학생들에게 책을 열람할 수 있고, 자료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주고.....그렇잖습니까?
그럼. 당연 도서관 안에 공부할 공간을 만들잖습니까....
그런데, 교장선생님의 설계는 학생들의 공부할 공간 구석에 도서실을 완전 서고실로 만드는 발상이었습니다.
아무리 학교에 공간이 없어도 그런 엽기적인 발상이 나올 수 있는건지...
암튼. 설계도를 설명하신 걸 다 듣고, 정말 마음속으로는 이건 정말 말도 안된다고 소리쳤지만, 워낙 우리 교장선생님께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무슨 말을 해도 씨도 먹히지 않는 스타일이시기 땜시. 교장실에서는 꾸욱 참았습니다.
그리고, 아직 설치도는 확실하지 않다고 하시며....공사가 마무리 되면 그때 결정할거라고 하셔서...인단 저는 결정하실때 저도 참여시켜달라고만 부탁드리고 교장실을 나왔습니다. (아래 부분은 생략함)
이 글에다 내가 댓글을 달았다.
윗분들은 그분들이 살아온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교육 환경 등이 선생님의 뜻과는 정 반대의 결정을 내리게 했어요.
윗분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보세요. 사소한 문제로 부대끼다 보면 지쳐 버려요. 그러다 보면 즐거운 마음이 사라지죠. 무거움 마음으로는 일을 꾸준히 이어갈 수는 없어요.
저는 이번에 서울에 있는 좋은 도서관(송곡, 동덕, 덕성, 인창,경신 고등학교 도서관)을 방문합니다 교감 선생님과 정보부장 선생님과 같이 말입니다.
도서관을 맡은 지 10년 째 됩니다만, 늘 그분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분개하고, 좌절하고, 그러다 보니 도서관에서 도망가려하고...
이번에 다녀오면 많은 것들이 바뀔 거란 생각이 듭니다.
제가 어떻게 하잔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분들이 먼저 이렇게 저렇게 하자고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분들의 생각이사 방문할 도서관의 분위기와 그곳 사람들이 세뇌시켜 주실 것이 틀림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선생님 학교의 윗분 중에서 여행을 좋아하시는 분을 점찍으시고, 그분께 함께 출장 갈 것을 제안해 보십시요. 뜻밖에 좋은 반응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울 도서관 여행의 주요 일정
5월 7일 (화)
7시 41분 동대구 출발 - 11:44 서울역 도착
13시 구리 인창고 도착
15시 반 송곡여고 도착
교육문화회관에서 숙박
5월 8일
오전: 숙명 여고
점심 시간: 동덕여고
15시 : 경신 고등학교
함께 한 사람
성화여고: 교감, 정보부장, 도서관 담당 달성중학교: 도서관 담당
가. 인창고등학교 도서관
구리 인창고등학교의 도서관은 인문계 고등학교(전체 47학급) 도서관의 전형적인 틀을 유지하고 있다. 자료를 제공하는 도서관과 자율학습을 위한 자습실의 기능이 통합되어 있다.
전체 도서관의 규모는 교실 세 칸 정도다. 열람실은 한 반 정도가 수업할 수 있는 크기다. 그곳에는 빔프로젝트와 대형 멀티미디어가 있어 교실에서 할 수 없는 수업이 가능하다.
서고는 원래 복도였던 곳을 잘 구성하여 활용하고 있다.
전체 공간의 2/3는 고3을 위한 자습실로 활용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칸막이가 있는 열람석으로 채워져 있다.
전체적으로는 깔끔하게 잘 정비되었고, 서고의 신간들로 채워져 있었는데, 2000년과 2001년에 산 책들이 많다.
사회과에서 도서관을 활용한 수업을 하기도 하고, 수행 평가 과제로 독후감을 써서 홈페이지에 올리게 한다.
우리 학교에서 이번 여름 방학에 강원도로 문학기행을 갈 계획이다. 인창고등학교에서 만든 CD 자료인 ‘도서실 정보화를 활용한 자기주도 학습 능력 신장’는 큰 도움이 되었다.
인창고도서관은 2001년도에 독서 교육 시범 학교에 지정된 후, 도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도서관이 정비되었다.
올 해 사서보조(임금 월 60만원)의 임기가 끝난 뒤의 도서관 모습은 어떨까?
나. 송곡여자고등학교
이번 여행의 길잡이이신 이덕주 선생은 지난 겨울 참실 연수를 계기로 만났다. 우리 일행이 첫 방문지인 인창고에 도착해서 도서관을 둘러보고 있는데, 이 선생이 당신의 학교에 나와 있던 교생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우리가 인창고 도서관을 둘러보고, 늦은 점심을 먹고 송곡여고 도서관에 도착했다. 이 선생은 주변에 있는 다른 학교 도서관을 교생들에게 보여주느라 우리보다 늦게 도착했다.
송곡여고 도서관은 오래된 건물일망정 아주 넓었다. 문헌정보실․자료정리실․멀티미디어실․연속간행물실이 잘 나뉘어져 있다. 그러나 규모를 제외하고, 눈에 띠는 시설만 훑어보면서 ‘이 정도 도서관은 우리도 꾸밀 수 있겠다’ 싶다.
우리가 도서관을 둘러 본 뒤, 뒤늦게 오신 이 선생이 송곡여고도서관에 대해 프로젝션 TV를 활용해 설명했다. 그때야 비로소 그가 십 년 세월을 도서관에서, 도서관 쪽으로는 꽉 닫힌 귀들을 뚫으려 얼마나 애썼는지를 알 수 있었다. 입시가 닫아버린 학교 도서관의 문을 열기 위해 애쓴 선생의 노력은 개인의 ‘희생’ 이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선생의 송곡여고 도서관은 우리나라 학교도서관 중에서 가장 앞서 가는 몇 안 되는 도서관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송곡여고 도서관을 발판으로 학교도서관의 필요성을 역설한 덕분에 학교도서관에 대한 관심이 이만큼이나마 일어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침 시험기간이라 학생들이 도서관을 이용하는 현장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도서반 학생들이 도서관 운영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우리 학교 도서반 학생들에게 전해 주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 도서관의 기능4)-
도서관에 대한 안내를 마치고 나올 때 전해준 ‘송곡도서관 편람’과 송곡도서관을 운영하면서 만든 자료들은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얻은 실천적인 것들이었다. 학자들이 써낸 책들보다 도서관 현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학교 도서관에는 단행본뿐만 아니라, 신문․잡지 등 연속 간행물과, 필름, 슬라이드, 영상자료, 레코드, 테이프 등 음향자료, 사진, 지도, 모형, 표본, CD-ROM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태의 자료를 관리하는 자료센터의 기능을 해야한다.
학교도서관이 전통적인 기능이 독서 센터의 기능을 올바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관심 있는 분야의 책들을 잘 갖추어야 한다. 즉, 초등학교라 할지라도 취학전 어린이들에나 적당한 그림책에서부터 중학생들이 읽을 만한 책들까지 고루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도서관은 독서 센터라는 전통적인 기능 이외에 학습센터의 기능도 수행해야 하고, 주말을 이용해서는 레크레이션 센터의 기능도 해야 할 것이다.
- 도서 선정 -
학교도서관 연구회 회원들의 큰 걱정의 하나가 하루에도 수십 수백 권씩 쏟아져 나오는 책들 중에 어떤 것을 골라 학교 도서관에 정리하느냐는 것이다. 여럿이 함께라면 그 많은 책들을 적절하게 고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갈증으로 만든 그 모임에서도 모든 책을 검토하기란 불가능하다. 도서관을 담당하는 교사 한 사람이 작업을 검토하든, 모임을 만들어 함께 작업을 하든 도서선정에 대한 나름의 기준은 필요하다. 그 기준에 따라 책을 골라서 구입한다면, 비록 출판되는 모든 책을 검토하지 않았더라도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송곡도서관의 도서 선정 기준5)을 살펴보면,
① 교사들의 연구에 도움이 되는 것
②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 충실하면서 교육적 가치가 있는 것
③ 외국 지식을 흡수할 수 있는 것
④ 교과 관계 도서
⑤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유발시키고 개성을 신장시키는 자료
⑥ 많이 이용되는 책은 복본을 구입한다.
이러한 기준을 미리 정한 뒤에 학교로 배달 되어오는 다양한 도서목록을 검토하고, 방송이나 신문․인터넷 등에서 제공하는 도서 정보를 참고하여 살 책 목록을 정해야 한다. 이때 같은 지역의 학교와의 정보 교류가 있다면 더욱 좋은 도서 목록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이버 공간에서 학교도서관을 위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에 동참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잘 만들어진 학교 도서관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것도 좋다.
- 도서반 활동 -
도서관에 전담 사서가 있더라도 그 사서 교사 혼자서 도서관을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교과 수업을 하는 교사가 도서관 책임자로 있다면 도서관 운영 동아리는 필수다. 학생들과 함께 도서관을 운영하려면 운영비가 있어야 한다. 학교에 따라서는 근로 장학생을 뽑아 도서관을 운영하거나, 그러한 방식을 변용하여 도서관 운영비를 확보하는 경우도 있다. 도서관 운영비는 도서반 학생들이 격려하기 위해서 집행할 때 집행한다.
도서반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 행사의 사례도 송곡여고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다.
도서관 연구회에서는 지역의 도서반 학생연합을 만들어 단위 학교에서는 경비 등의 문제로 할 수 없는 규모가 큰 행사를 열고 있다. 작년에는 작가를 초청한 강연, 독서 기행, 도서반 연합 등반 대회, 도서관축제 등을 도서관 연합 행사로 개최했다.
다. 숙명여자고등학교 도서관
백 년이 넘는 학교의 도서관은 학교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줄 것이다. 숙명여고의 도서관은 삼층으로 된 독립 건물이다. 붉은 벽돌집이 담쟁이 넝쿨에 뒤덮여 있고, 도서관 앞에는 쭉 뻗은 소나무들로 숲을 이루고 있다. 고등학교도 오랜 역사를 가지면 이렇게 멋질 수가 있구나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도서관 안으로 들어섰다.
- 도서관 비품 -
큼직한 도서관에 꽉 들어찬 서가들은 오래된 가구로 도서관의 전통을 잘 말해 주고 있었다. 보통 학교의 일 년 도서관 예산은 천만 원이 채 안 된다. 그 예산의 대부분을 도서 구입비에 지출한다. 개교 20년을 맞이하는 우리 모임의 어떤 학교 도서관은 책걸상이 낡고, 서가는 사이즈가 큰 책을 꽂기에 어려움이 많다. 바꾸어야 할 형편이다.
그러나 도서관에 대한 투자는 우선 순위에서 밀리게 된다. 그러다 보니 도서관 시설에 대한 투자는 또한 턱없이 부족하다. 어쩌다가 책정된 도서관 비품비는 필요한 금액에 턱없이 모자라고, 그러다 보니 몇 년 못 가 망가지게 될 것을 알면서 값싼 제품을 들여놓을 수밖에 없다.
그런 학교 도서관을 운영하는 사람의 눈에는 수십 년 손 떼가 묻어 더욱 값져 보이는 서가들로 가득한 도서관이 부러울 따름이다.
도서관 일부를 학교 역사관으로 만들었다. 그곳에는 그 학교 교사들이 외국을 다녀오면서 선물로 사온 인형을 전시한 것이 눈길을 끈다. 세계 여러 나라의 풍물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음직한 학교 역사관 전시관 건너편으로는 첨단의 시설을 자랑하는 디지털 자료실이 있다.
디지털 자료실에서는 한 학급의 학생들이 영화를 감상하거나,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하기에 어려움이 없다. 디지털 자료실 문밖에 있는 서지자료(책)실과 연계하여 자기 주도적 수업을 통한 토론식 수업도 아주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마침 시험 마지막 날이라 한 시간 시험을 마친 아이들이 하교하고 있다. 더러는 도서관 앞 솔밭 벤취에서 모처럼의 평화를 즐기고 있다.
라. 동덕여자고등학교의 도서관
점심 시간을 맞춰 오라는 이숙희 사서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 일행은 점심 무렵에 동덕여고 도서관에 들어섰다. 운동장 조회대 밑으로 난 출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큼직한 학생 식당이 있다. 학생 식당에 놓인 책상들은 도서관에 있는 6인용 책상이다. 그 위로 칸막이가 놓인 것으로 보아 독서실로 쓰이고 있음에 틀림없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곳 식당은 학생들의 공부방으로도 사용된다. 학생들은 4시 반만 되면 하교를 한다. 그들 중에 더러는 이곳에서 원하는 공부를 밤늦게까지 하기도 하는데, 그때에도 감독 교사는 없다.
식당겸 공부방으로 쓰이는 공간에 동덕여고 도서관이 있다. 전교생이 일과 중 한 번은 꼭 들러야 하는 식당에 도서관이 붙어 있다는 것은 접근성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동덕여고의 도서관은 최적의 위치다.
도서관은 교실 네 칸 정도 크기의 장방형이다. 넓지 않은 열람실이지만 도서 검색에 필요한 넉넉한 검색용 컴퓨터가 있어 학생들은 찾으려는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검색 컴퓨터를 이용하면 원하는 책이 어느 서가에 있는지도 알 수 있다.
- 도서관은 조용한 곳이라야 하나? -
컴퓨터에 달라붙어 자료를 찾는 학생, 서가를 뒤집어 책을 고르는 학생들로 도서관은 북새통을 이루지만 사서 교사는 그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엄한 얼굴로 분위기를 누르려하지 않고, 쉴새없이 쏟아지는 자질구레한 질문에도 즐거워하고 있다.
대출-반납은 온전히 도서반의 몫이다. 도서반 아이들은 ‘Mae’프로그램으로 전산화된 도서들을 핸디 스캐너를 통해 처리된 자료들을 능숙하게 대출하거나 반납한다.
시장판 같던 도서관은 종소리와 함께 파장이다.
“책이 많을 때는 오만 권쯤 되었어요. 최근에 전산화하면서 엄청 버렸어요. 지금은 한 이만 권쯤 돼요.” 이렇게 말하는 이숙희 선생은 동덕여고 3대 사서다.
“지금 있는 2만 권은 다 새책입니다. 대게 2년 안쪽에 싼 것들입니다.”
“아이들이 참 많이 오네요.”
“도서관에 읽을 만한 책만 있으면, 아이들은 오게 마련입니다.”
-도서관과 성적 그리고 인성 교육 -
“자율 학습도 안 하는 모양인데, 학생들의 성적은 어떻습니까?”
“작년에 언어영역 성적이 엄청 좋았어요. 다들 도서관 때문이래요.”
“책을 얼마나 읽는데요?”
“한번 보실래요?.…… 지금까지 가장 많이 빌려간 학생이 427권이군요.”
“그리고 50권 이상 읽은 학생은 함 볼까요? ……음 한 삼사 백 명되죠?”
“지난 수시 모집 때, 서울대에 응시한 우리 학교 학생이 비슷한 조건의 다른 학교 학생 대신 합격했어요. 입시 서류에 그 학생들이 읽은 책 목록을 첨부해서 보냈더니, 그게 교수들에게 어필 된 모양입니다.” 사서 선생님의 듣기 좋은 자랑은 끝이 없다.
“아까 점심 시간에 책을 빌리러 온 녀석들에게 물어보니, 쉬는 시간에 책 읽는 학생들이 많더군요. 안 그러고는 2년 남짓만에 4백 여권을 어찌 읽겠어요. 삼사 일에 한 권씩 읽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함께 간 정보 부장이 도서관에 온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들은 말로 맞장구친다.
“책을 많이 읽으면 성적에도 반영합니까?”는 질문에
“책 읽은 것을 성적에 반영하면 아이들이 책을 멀리해요. 하던 짓도 멍석 깔아 놓으면 마다하는 게 사람 심리잖아요? 성적을 위해 책을 읽게 하면 갖가지 부정적인 방법이 동원 될 가능성이 많아요. 친구의 독후감을 적당하게 배낀다든가…… 우리 나라 대학생들이 책을 안 읽는 이유 중에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억지로 읽었던 교과서나 참고서에 물린 탓이라고들 하잖아요?”
“그리고 박선생 니는 봤나.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왔는데, 흰 실내화를 구겨 신은 학생들이 하나도 없더라.” 라는 말에 우리 교감 선생님도 눈여겨 봤다는 듯이
“맞아요. 우리 학교에서도 흰 실내화를 신겨봤잖아요. 그런데 자주 빨지 않아서 떼가 낀 것을 그대로 신는 녀석들이 많아 몇 년 못 가서 실내화를 쓸리퍼로 바꾸지 않았습니까?” 신이 난 것은 주인 격인 동덕여고 사서 선생이다.
“그렇지요. 책을 많이 읽으면 인성 교육도 절로 되어요. 이 도서관은 아이들의 쉼터고, 상담실이지요.”
- 도서 기증 2 -
“그런데 일 년 도서 구입비가 얼마나 됩니까?”
“한 칠팔 백에서 천쯤 될 겁니다.”
“보통 학교보다 별로 많은 것도 아니네요?”
“아, 그건 학교 운영비에 공식적으로 책정된 것이고요. 다른 경로로 많이 들어옵니다.”
“도서관이 잘 운영된다는 소문을 들은 학부형들이 촌지를 도서관으로 주셔요. 그럼 그때마다 감사장을 드리지요. 얼마 전에도 어떤 분이 수십 만원을 도서 구입비로 기부하셨지요.”
“우리 학교에 재직 중이신 어떤 선생님은 자신의 회갑을 기념해서 백만 원 어치 책을 사서 도서관에 기증하시기도 하셨어요.”
“그리고 참 우리 학교에는 선생님들의 독서 토론 모임이 있어요. 한달에 삼천원씩 회비를 내어 책을 사서 돌려읽고 토론을 하지요. 그리고 그 책은 도서관에 기증하고...”
“제가 자랑이 너무 많지요? 하는 김에 하나만 더, 저는 우리 학생들이 한 주에 세 번 이상 도서관에 오게 하려고 애써요. 조사를 해서 도서관에 온 횟수가 적은 학생들에게는 일일이 편지를 써요. 전교생을 대상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내가 읽은 좋은 책은 친구 5명 이상에게 권하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효과가 좋아요.”
동덕여고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에는 비닐 커버로 씌워져 있다. 바코드를 보호하고, 책의 수명을 연장된다. 그리고 규격화된 비닐 표지를 업체에서 팔기 때문에 큰 힘이 들지도 않고, 경비도 그다지 비싸지 않다.
두어 시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 머무는 동안에 동덕여고에서의 도서관의 위치를 가늠하기란 불가능하다. 아이들이 실내화를 단정히 신는 것이 독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독서가 수능 성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구체적인 근거를 대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자율 학습과 보충 수업을 하지 않는데, 조건이 동일한 주변 학교에 비해 성적이 높다. 특히 언어 영역 성적이 높다. 그리고 지역 백일장에서도 동덕여고 학생들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마. 경신 고등학교 도서관
서울역에서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여정의 맨 끝 순서에 경신 고등학교를 잡았다. 경신 고등학교에서는 시간에 쫓겨 20분 정도 머물었다.
경신 고등학교 도서관은 사서 전담이 있다. 별관 건물의 2-3 층이 도서관이다. 경신 고등학교의 도서관은 우리가 방문한 도서관들 중 시설이 가장 앞선 도서관이다. 작년에만 도서관에 1억 2천만 원을 투자했다고 한다. 작년에 2001년 서울시 지정 도서관 운영 활성화 시범 학교가 계기가 되어 도서관 활성화를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하는 모양이다.
열람실은 3층 도서관에 있다. 도서관 입구에는 일반 도서대여점에나 있을 법한 도서자동반납기가 설치되어 있다. 열람실에 설치된 서가도 단지 책을 꽂아두는 기능을 하지 않고, 시각적인 아름다움까지 고려한 것이다. 도서관 창에 드리워진 포근한 브라인더는 도서관을 카페인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3층 도서관에는 프로젝션 TV와 빔프로젝터․ 대형 스크린이 있어 다양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마침 중간 고사 후 첫 수업인데, 기술 가정 과목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입시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과목 시간에 도서관을 활용한 수업을 많이 한다. 이곳에서는 송곡여고 도서관에서 진행 중인 창의적 재량 활동 수업을 할 수도 있겠다 싶다.
젊은 사서가 있고, 학교의 집중 투자가 뒷받침되는 점을 미루어 경신 고등학교 도서관은 앞으로 학교의 명성에 걸맞게 크게 발전 할 것이다.
3. 디지털 도서관
학교 도서관을 찾아 나선 마지막 여행으로 지난 5월 28일 서울 교육 문화회관에서 있은 ‘디지털 자료실 시범 구축을 위한 세미나’에 참석했다. 사실 세미나에 참석하기 전만 하더라도 관이 주도하는 행사인데 어련할까 싶었다.
10시부터 시작된 세미나는 예정된 저녁 6 시를 넘겨서야 끝이 났다. 두세 시간의 강좌 사이에 15분간의 휴식만이 주어질 정도로 꽉 짜여진 세미나였다. 전국적인 세미나임에도 너무 이른 시간에 시작하고 너무 늦게까지 진행했다. 이틀 동안 진행했어야 할 연수였다. 그리고 참가자를 몇 개 동아리로 나누어 서울 지역의 우수한 학교 도서관을 구경할 수 있도록 배려하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이런저런 형식상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바뀌려고 많이 노력한다’는 생각을 들게 한 연수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가능한 것은 다해 봤어요. 교육 정상화의 길을 찾기 위해서 말입니다. 입시제도도 바꾸어 보고, 교육 과정도 바꾸어 봤습니다만 뾰쪽한 수를 찾지 못했어요. 그런데, 아직 안 해 본 게 하나 있어요. 그것은 학교도서관 활성화를 통해서 교육 정상화의 길을 찾는 것입니다.” 이 말은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디지털 도서관을 만들려는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나왔다는 분의 말씀이다. 이 말을 굳이 빌지 않더라도 도서관의 활성화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입시에 발목잡혀 시들어 가는 우리 교육의 활로를 학교도서관 활성화에서 찾으려 한다. 그렇다면, 동덕여자고등학교 도서관의 사례로부터 일반 학교에 접목시킬 수 있는 보편적인 방안을 마련할 수는 없을까?
- 여행의 즐거움 -
여행의 즐거움은 뜻밖에서 발견된다.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났는데, 만나보니 나와 닮은 점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이번 서울 세미나에는 학교장과 도서관 담당 교사를 함께 초청했다. 도서관을 맡고 있는 실무자가 아무리 의욕을 불태워도 결정권을 지닌 관리자의 뒷받침이 없다면 공염불이 되고 말 것이다. 세미나를 마친 뒤 대구 지역의 세 학교에 올라 온 여섯 명의 참가자들은 다음 날 좋은 도서관을 돌아보고 내려 갈 참이었다.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도서관을 머리에 이고 다녀도 나는 모르겠다.”고 말하던 함께 한 S 중학교 교장 선생님이
“교장실을 내줄까?”란 농담을 하더니만,
“미술실을 도서관 자리에 오게 하고, 그 자리에 도서관을 가게 하면 되겠구만.”이라면 한 칸 짜리 도서관을 교실 두 칸 짜리 미술실과 바꾸려는 마음을 낸 것이라든가
“1학년 때까지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해. 책 읽는 것이 어디 언어 영역 신장에만 도움이 되나. 책을 많이 읽어 문리를 틔우면 영어는 물론이고 수학도 잘하게 돼있어.”라는 독서에 대한 철학을 피력한 K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과의 만남은 여행이 주는 값진 선물이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해 주고 싶은 점6)
1. 자료의 선택 시 꼭 교과 담임들의 협조를 구하세요.
2. 다른 학교의 선정도서나 구입 목록을 무조건 따라하지 마세요.
3. 도서관 운영에 동일 교과 교사나 동년배 교사의 협조를 구하세요
4. 도서반 학생들을 선발하여 CA겸 봉사동아리로 활용하세요.
5.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을 통해서 도서관 이용 지도를 철저히 하세요
6. 도서관에 모든 학생이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가급적 이용제한을 하지 마세요
7. 자료의 분실과 훼손에 대해서 지나치게 연연해하지 마세요
8. 도서원부와 운영일지, 회의록, 비품 대장 이외에 불필요한 장부를 만들어 잡무를 늘이지 마세요.
9. 분실 자료를 즉시 재적처리 하지 말고, 한 학기나 1년 정도 회수 노력을 하세요
10. 자료의 선택 기준을 분명히 하여 주관적 판단이나 인간관계에 따라 선택하지 마세요
11. 주제 영역별 수성 비율을 조종하고 특정 분야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세요
12. 1년에 한 번 정도는 장서 점건을 하여 분실 자료를 파악하고 훼손 자료를 수리하세요
13. 복본은 최대 5권 이내로 하고, 같은 주제에 대한 다른 저자의 작품을 구입하여 자료의 다양성에 신경을 쓰세요.
위 글은 이번 세미나의 자료집에 실린 것이다. 학교 도서관이라는 제도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도기에 실천적인 교사들의 사례를 교육인적자원부의 자료집에 실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학교 현장에서 도서관을 운영하다 보면 어설픈 권위에 눌려 의욕을 잃을 때가 많다. 그때 먼저 간 선배들의 조언과 어울린 교육인적자원부의 권위는 돌파구를 마련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4. 또 다른 시작
도서반 아이들과 얼마간 부산을 떨고 나니, 반년쯤 닫았던 도서관 문을 열 준비가 어느 정도 되었다.
이제 도서관 문을 열고 나면, 도서반 학생들에게 자율 학습 시간에 일 시키느라 담임 선생님들의 눈치를 살피는 일도 뜸해질 것이다.
- 도서관리 프로그램 -
웹 상에 구현된 사이버 도서관은 오프라인 상의 실제 도서관의 기능을 신장시키는 시너지 효과를 높여 준다.
사이버 상에서 독서 토론을 할 수 있고, 읽고 싶은 책을 사이버 상에서 신청할 수있다. 사이버 상의 검색을 통해 읽고 싶은 책이 누구 손에 가 있으며 언제쯤 반납될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웹 상의 기능 못지 않게 오프라인 상의 기능도 중요하다. 전체 학생들의 독서 실태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다양한 통계를 보여 주어야한다. 나는 5-6년 전 우리 학교 정보부 선생님과 함께 도서관리 프로그램을 직접 만든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도서관리 프로그램을 손수 만들려 한 여러 가지 이유 중에 하나는 학생들에게 ‘독서 통지표’를 만들어 주고 싶어서다. 그가 읽은 책 목록을 학기 말 성적표와 함께 주고 싶다. 부모가 자식의 생각을 알 수 있고, 그 자료를 보고 생일 선물로 사 준 책은 책꽂이에 그냥 꽂혀 있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재작년에 우리가 만든 덜 다듬어진 프로그램을 교육청에서 무료로 보급하는 ‘sajonior'란 도서 관리 프로그램으로 바꾼 바 있다. 그러나 산 게 비지떡이라고, sajonior는 위에서 요구하는 도서관리 프로그램의 중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기존에 나와 있는 좀더 나은 프로그램으로 교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현재 검토 중인 프로그램은 ‘책꽂이’, ‘매’ 등인데, 이 프로그램들은 중등학교 도서관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은 구입비가 웹 버전인 경우는 200만원 내외이고, 연간 사용료 (5-60만원)가 정도 된다.
프로그램이 교체 될 때까지는 수작업으로 대출․반납하기로 했다.
- 도서관 비품 -
디지털 자료실 시범 구축 학교로 선정한 덕분에 도서관에 대한 투자가 많아졌다. 서가도 새롭게 갖추고, 책걸상도 새것으로 바꾸었다. 도서관의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협의체도 구성되었다. 몇 차례의 회의를 거치면서, 학교 도서관이 종합 정보 센터로 나아가야 한다는 공감은 형성하였다. 검색용PC․AV시스템․DVD․레이저 프린터․정수기 등이 도서관에 필요하다는 공감도 쉽게 이루어졌다.
한 종류만 구입하는 정기 간행물이나 고가품이라서 대출이 불가능한 참고 도서의 활용도 높이기 위해서 도서관에 복사기가 있어야한다. 그러나 허름한 복사기를 구입하는 것보다 카드 복사기를 설치하기로 했다. 카드 복사기는 설치 업체에서 설치를 해 주고, 수리도 책임져 준다. 복사기 고장으로 인한 인력 손실을 막을 수 있어 좋다.
정기간행물과 참고 도서가 모여 있는 곳에는 타원형 소파를 마련하여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한다. 도서관 내에 기둥은 둥글게 소파를 배치할 것이다.
도서관 입구 벽에는 전자 광고판을 만들어 권장 도서 목록이나 공지 사항을 수시로 보여줄 수 있게 할 것이다.
책과 몇 장의 CD가 전부이던 자료의 종류도 다양해질 것이다.
그러나 e-book을 포함한 디지털 자료를 어느 정도 확보 할 것이며, 어떤 단계(시기적)로 추진할 것인가. 기존에 있던 멀티미디어실과 자료 제작실과 도서관을 어떤 방식으로 연계할 것인가.
- 새로운 시도 그리고 망설임 -
우리 학교 학생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권장 도서 목록을 만들겠다. 이 권장 도서 목록은 단순한 책이름만 소개하는 아니다. 그것은 천안에 있는 복자여고에서 만든 ‘나의 애송 시집’과 같은 형식이 될 것이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 자유로운 형식으로 쓴 책 소개글로 묶을 것이다. 그 책(권장도서 목록)을 보는 신입생들이 ‘아,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그 선배가 읽은 책이구나. 그럼 나도 읽어야겠군!’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올해부터는 모든 신입생들에게 지역에 있는 공공 도서관의 대출 카드를 발급 받도록 했다. 이 때 발급 받은 공공 도서관의 독서 카드는 주민등록 번호로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 학교 도서관에서 별도의 독서 카드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
북 카드, 북 포켓을 없애는 방안은 좀더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북카드를 없애면, 대출․반납을 간편하게 할 수 있어 좋다. 그러나, 전산장애가 일어났을 때는 대출․반납 자체가 불가능해 진다. 백 파일을 만들어도 한계가 있다.
도서반 학생들이 한 주일에 한 번은 저녁 자율학습 시간에 도서관 일(책 수리, 위치 바로 잡기 등)을 할 때면, 담임 선생님이 격려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다양한 도서반 활동을 통해 인성 키우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더라도 이용을 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도서관 이용은 교사들의 관심에서 비롯된다. 도서관에 대한 교사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직원회의 장소를 도서관에서 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그리고 회의 때마다 수업을 위해 준비한 시설과 자료를 소개할 참이다. 교사들이 수업에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자료나,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을 위해 필요하다고 추천하는 도서나 비도서 자료도 적극 구입할 것이다.
그리고 도서관을 활용한 다양한 수업 사례는 교내외에서 채집하여 소개할 예정이다.
학교 도서관이 지역 사회를 위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탁상공론 행정에서 발로한 것이다. 단적인 예 하나만 들자. 지역 주민이 책을 빌려가서 반납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공 도서관에서 일반 시민이 책을 빌려가서 반납하지 않으면, 몇 차례 가정 방문을 가서 책을 받아 온다고 한다. 혹시라도 먼 곳으로 이사를 가버린 경우는 망실 처리를 한다고 한다.
사서도 없는 학교. 공부가 목적인 학생들에게 도서관을 맡겨 대출-반납 일을 시키는 것도 논란이 있는데, 책 반납 받으러 가정 방문을 해도 될까? 그것도 다 큰 처자들인 고등학교 여학생을 말이다.
- 사서(보조) -
학교 도서관이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한 최우선 관제는 사서 교사의 채용이다. 그것도 사서 보조가 아니라야 한다. 그러나 현행법상 교사의 수가 학교 단위로 총원이 묶여 있다. 그러나 사서를 채용하려면 다른 교사를 한 명 해임시켜야 한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사서 교사총원 외로 임명하는 것이다. 이는 예산 문제가 따르기 때문에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입법화가 될 때까지는 사서 보조를 채용하는 학교가 더러 있다.
우리 학교의 경우 사서(보조)를 구하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합의가 된 상태다. 지금은 예산 확보의 방법을 논의할 단계이다. 정보화 능력을 가진 교직 이수자를 찾기로 했다. 학교 운영비에서 600만원을 확보하고, 특기 적성 (독서 관련) 수업을 담당하게 하거나 시간외 수당을 이용하여 월 100만원 정도의 임금을 유지 할 수 있도록 한다.
대구 경북 지역에는 4 년제 대학에만 도서관 관련 학과가 있는 곳이 4 곳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학교 도서관학이란 과목은 주변 과목이다. 4년 동안에 두어 과목을 배우는 학교가 대부분이다. 또한 교직을 이수하는 학생도 10% 정도다.
학교 도서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러나 급하게 탄생한 사서들이 도서관을 맡아서는 곤란하다. 분당에 있는 송림고등학교 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박종륜 선생님은
“학교 도서관에는 정보화 마인드를 가진 도서관학과 출신 중에 교직을 이수한 분이 필요해요. 인터넷에다 구인 광고를 내 보기도 했지만, 학교 도서관에 열의가 있는 좋은 사서 선생님을 찾기가 쉽지 않았어요. 정식 사서 자리가 만들어지면 우선 채용한다는 내걸고도 한 달 만에 겨우 좋은 분을 모시게 되었어요.” 라며 함께 있던 김 선생님을 가르킨다.
“사서 선생님을 찾는 일에 시간을 걸리더라도 서두르지는 마세요. 학교 도서관 조건 맞는 분을 찾아합니다.”라고 덧붙인다.
“그렇지요. 우리 지역 공공 도서관에는 도서관 관련 학과를 졸업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더군요. 오래 전에 사서 인력이 갑자기 많이 필요했답니다. 그러자 3 개월 단기 연수를 마친 사람들이 배치되었어요. 그래서 공공 도서관의 중견 간부들 중에서 학부 출신은 고사하고, 2 년제 관련학과 출신들도 적지 않답니다. 학교 도서관에도 사람이 중요하지요. 급하게 배치된 사람이 발전을 가로막게 해서는 안될 것 같군요.”
5. 나가는 말
학교도서관을 만들려는 사람이 앞서가는 도서관을 찾아는 것은 가르침을 줄 스승을 찾는 일과 같다. 그러나 도서관 시설만 보고 그곳을 이용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지 않는다면, 알맹이는 놓치고 껍데기만 본 셈이다.
학교 도서관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다양한 지식을 편하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위치하는 게 좋다. 그리고, 학교 도서관은 일과 중에는 늘 열려 있어야 한다.
또한 학교 도서관은 고전뿐만 아니라 가장 최근의 정보도 만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전략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학교도서관 활성화는 사서교사의 몫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전담 사서가 있어야 한다. 사서가 없이는 학교도서관의 활성화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학교도서관이 수업지원 공간으로서, 혹은 창의적인 수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사서 이외의 인력을 필요하다. 사서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다양한 수업 전략을 마련하고, 그 전략을 도서관에서 실현시킬 인력이 도서관 운영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한다. 그 인력은 한 두 명 이상이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교무 분장에 독서지도부를 독립시켜 독서 교육을 차원 높은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경기 화수고등학교7)의 사례는 모범적이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