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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순천행
윤혜련
여행은 예나 지금이나 설레인다. 그래서일까 시와 늪 문인협회 도반들과 순천으로 문학기행 갈 생각에 잠을 설쳤는지 늦잠을 잤다. 그래도 미리 준비를 해 둔 상태여서 조금이나마 여유를 가자고 집을 나섰다.
새벽 6시20분 김해 경찰서 정문 앞에서 박 국장님과 만나 창원 문학관에 도착하니 같이 갈 도반들은 벌써 도착해 문학관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방 시인님이 새벽부터 준비했다고 만들어 오신 김밥을 서로 권하면서 드시고 한쪽에선 박스에 간식거리를 챙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꼭 관광버스 대기 시켜놓고 여행 가는 모습 같아서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았다.
가을, 순천 문학기행
윤혜련
여행은 예나 지금이나 설렌다. 그 때문이었을까. 시와 늪 문인협회 도반들과 순천으로 문학기행 갈 생각에 들떠 잠을 설치다가 예정보다 늦게 일어났다. 그래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미리 챙겨 두었던 까닭에 다소 여유를 가지고 집을 나섰다. 새벽 6시20분 김해 경찰서 정문 앞에서 박 국장님과 만나 창원 시와늪 문학관에 도착하니 동행할 도반들은 벌써 도착해 이야기꽃을 피우며 시끌벅적했다. 방 시인님이 꼭두새벽부터 정성스레 준비해 오신 김밥은 훌륭한 아침식사였다. 이부는 열심히 김밥을 먹는데, 다른 한쪽에선 박스에 간식거리를 열심히 챙겼다. 그 광경이 꼭 관광버스로 여행을 떠나는 모습 같아서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우리가 탑승한 12인승 승합차는 만석이었다. 평소 같으면 불편했겠지만 목적이 여행이라 불편함도 모르고 차는 순천으로 달렸다. 이른 시간에 출발해서인지 산자락에 내린 운무가 한폭의 수묵화 같았고 차창으로 스치는 이정표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묘한 느낌을 받았다. 어느덧 목적지인 순천에 도착 했다. 때마침 광양에서 오신 김 시인님이 순천에 다 왔다는 마지막 이정표인 양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12인승 승합차가 만석인 상태로 출발했다. 평소 같으면 비좁아 불편해 했으리라. 하지만 목적이 문학기행이라서 불편함도 까마득하게 잊고 순천을 향해 신나게 달렸다. 이른 시간에 출발해서인지 산자락에 내린 운무가 한 폭의 수묵화 같았고 차창으로 스치는 이정표들은 정겹게 반겼다. 창원에서 아침 일곱 시 무렵에 출발해 대략 두 시간 만에 목적지인 순천에 도착 했다. 우리 일행을 마중하기 위해 광양의 김 시인님이 미리 나와 대기하고 있다가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첫 기행지는 조례동에 있는 드라마 세트장이었다. 이곳은 순천시가 지역 관광 유치를 위해 1950년대부터 70년대 서울 변두리 달동네를 조성하여 드라마 세트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빌려 주는 교복을 입고 달동네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며 추억과 낭만에 젖었다. 그러면서도 저 집들 중 어느 사글셋방에 누군가가 연탄불을 살피고 있을것 같았다. 빛바랜 지붕들은 나지막이 처마를 맞대고 가난과 애환이 서려 있었고 골목 계단에 핀 민들레는 낮은 웃음으로 피어 나 햇살을 받고 있었다. 달동네 이편과 저편 가난했지만 꿈이 있는 그들만의 자화상이 서려 있는것 같았다.
첫 기행지는 순천의 조례동에 자리한 드라마 세트장이었다. 이곳은 순천시가 관광객 유치를 위해 1950년대부터 70년대 서울 변두리 달동네를 조성하여 드라마 세트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빌려 주는 교복을 입고 달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추억과 낭만에 젖었다. 조붓하고 고불고불한 골목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오두막 집 어딘가 사글셋방에는 누군가가 연탄불이 꺼질세라 노심초사 살피며 고단한 삶을 꾸리고 있을 것 같았다. 또한 빛바랜 지붕들은 나지막이 처마를 맞댄 궁색한 풍경엔 가난과 애환이 서려 있었고, 골목 계단에 핀 민들레는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듯 헤벌쭉 웃고 있었다. 달동네 이편과 저편 모두가 궁색하고 고단한 삶이었을지라도 내일에 대한 꿈을 안고 살던 희망의 언덕이었으리라.
달동네에서 여운을 남기고 순천만 국가 정원에 입장하여 꿈의 다리를 건넜다. 꿈의 다리는 물 위에 떠 있는 미술관이라 하여 설치미술가 강익중씨와 순천 시민이 2013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위해 만들어졌다. 길이 175미터인 꿈의 다리 외벽은 우리 고유 문자가 적힌 글판으로 되어 있었다. 내벽은 전 세계 어린이와 한국 어린이들의 꿈을 그린 14만여 작품인데 타일식으로 조각조각 붙여져 있었다. 다리 전체가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된 꿈의 다리는 아이들의 꿈과 우리의 한글을 함께 보여주고 있어 감동이었다.
아쉽지만 달동네를 뒤로 하고 순천만국가정원의 동문(東門)으로 입장하여 여러 나라 정원 등을 구경하다가 ‘꿈의 다리’를 건너 동편(東便) 정원으로 향했다. ‘꿈의 다리’는 물 위에 떠 있는 미술관이라 하여 설치미술가 강익중씨와 순천 시민이 2013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이 다리는 길이 175미터로써 우리 고유 문자가 적힌 글판으로 되어 있었다. 내벽은 전 세계 어린이와 한국 어린이들의 꿈을 그린 14만여 작품인데 타일식으로 조각조각 붙여져 있었다. 전체가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이루어져 아이들의 꿈과 우리의 한글을 함께 보여주고 있어 감동이었다.
꿈의 다리에 새겨진 그림과 글들을 보니 내 어릴 적 꿈이 생각났다. 중학교에 들어 가고 나서부터 틈만 나면 미래에 내가 살 집을 도화지에 연필로 그렸다. 툇마루가 있는 곳에 책이 놓여 있는 탁자를 그리고 마당과 울타리를 그리며 울타리 밑으로는 꽃밭을 그렸던 아담한 집이었다. 나는 어린 나이인데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글 쓰고 여행 다니며 자유롭게 사는 것이 꿈이었다. 그랬던 지금의 나는 문학은 하고 있으나 하지 않겠다는 결혼은 하였으니 절반의 꿈은 이룬 셈이 아닐까. 만약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때 가졌던 나의 꿈은 변함이 없는데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꿈의 다리’에 새겨진 그림과 글들을 보다가 문득 내 어릴 적 꿈이 생각났다.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 틈만 나면 미래에 내가 살 집을 도화지에 연필로 그렸다. 툇마루가 있는 곳에 책이 놓여 있는 탁자를, 마당과 울타리를, 울타리 밑으로는 꽃밭을 그렸던 아담한 집이었다. 나는 어린 나이인데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글 쓰고 여행 다니며 자유롭게 사는 것이 꿈이었다. 그렇게 다짐했건만 지금 문학을 하고 있는데 비하여 결혼은 했기 때문에 절반의 꿈은 이룬 셈이 아닐까? 만약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때 가졌던 꿈은 변함이 없으리라. 하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꿈의 다리를 건너서 순천 문학관으로 가기 위해 스카이 큐브를 타고 이동 하였다. 여섯 사람이 탈 수 있는 스카이 큐브 운행 구간은 순천만 국가정원 정원 역에서 승차하여 순천 문학관 역에 하차하는 전동차다. 스카이 큐브를 탄 기분은 마치 가을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한쪽에는 황금들판이 넘실거리고 반대편에서 갈대가 어우러진 사이로 강물이 흐르고 새들이 날갯짓 하여 더없이 좋았다.
‘꿈의 다리’를 건너서 순천 문학관으로 향하는 스카이 큐브를 탔다. 여섯 사람이 탈 수 있는 스카이 큐브 운행 구간은 순천만국가정원 정원역에서 승차하여 순천문학관역에서 하차하는 전동차다. 스카이 큐브를 탄 기분은 마치 가을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한쪽에는 황금들판이 넘실거리고 반대편에서 갈대가 어우러진 사이로 동천(東川)이 흐르고 새들이 날갯짓 하여 더할 수 없이 아름답고 황홀했다.
더 타고 싶었던 스카이 큐브는 아쉽게도 문학관 역에 당도했다. 소설 무진기행을 제작한 과정과 각종 영화 제작에서 각색을 김승옥 작가, 문학관에는 감자, 영자의 전성시대, 안개 등 많은 영화 포스터가 전시되어 있었다. 김승옥 선생은 일본에서 태어나 순천에 정착하셨다. 그의 작품 무진기행은 실존하는 지명이 아니고 순천만과 대대 포구 앞 바다와 갯벌을 창작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문학관 마당가에 대나무 울타리는 오랫동안 집필 한 선생의 손마디가 굳어서 시누대처럼 보였다. 울타리를 휘감은 붉은 유홍초는 선생의 예술 열정이 꽃이 되어 타 오르는것 같았다.
더 타고 싶었던 스카이 큐브는 아쉽게도 순천문학관역이 종착지였다. 하차하여 몇 걸음 옮기자 자연스럽게 김승옥과 정채봉님의 문학관에 다다랐다. 먼저 김승옥 문학관을 둘러봤다. 소설 무진기행을 제작 과정과 감자, 영자의 전성시대, 안개 등 많은 영화 포스터가 전시되어 있었다. 김승옥 선생은 일본에서 태어나 순천에 정착하셨다. 그의 작품 무진기행은 실존하는 지명이 아니고 순천만과 대대 포구 앞 바다와 갯벌을 창작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문학관 마당가에 대나무 울타리는 오랫동안 집필 한 선생의 손마디가 굳어서 시누대처럼 보였다. 울타리를 휘감은 붉은 유홍초는 선생의 예술 열정이 꽃이 되어 타 오르는 것 같았다.
정채봉 문학관에는 선생의 연대기와 문학 사상 작품집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특히 오세암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었다.1946년 순천시 해룡면에 태어 난 선생은 소천아동문학상, 세종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오세암, 스무 살 어머니,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등 다수의 작품이 있는데 그중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가 하루 휴가를 나온다면 억울했던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 라는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시를 읽으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읜 선생 생각에 가슴속에서 눈물이 울컥 할것 같았다.
한편, 정채봉 문학관에는 선생의 연대기와 문학 사상 작품집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오세암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었다. 1946년 순천시 해룡면에 태어 난 선생은 소천아동문학상, 세종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오세암, 스무 살 어머니,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등의 다수 작품이 있다. 그 중에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가 하루 휴가를 나온다면 억울했던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고 하는 내용의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라는 시를 읽으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읜 선생 생각에 가슴속에서 눈물이 울컥했다.
해는 어느덧 하오 기행 마지막 코스인 순천 향동에 있는 문화의 거리로 갔다. 여기에는 도로가에 물길이 흐르고 있었는데 난봉산 자락에 흘러나오는 물을 끌어들인 친환경 시설이다.
여름철에는 온도를 낮추고 먼지와 습도를 조절하여 친환경 시설 역할을 한다고 한다.
한옥글방 마당에서는 최시인의 아들 승민이가 투호 던지기를 재미있게 즐기고 있었다. 기행내내 어른들 따라 다니면서 무료했던 승민이 마음이 보는이도 즐거웠다. 여기는 체험 놀이와 각종 공연도 할 수 있고 방에는 서재가 있었는데 책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 기행의 마지막 코스인 순천 향동에 있는 문화의 거리로 갔다. 여기에는 도로가에 물길이 흐르고 있었는데 난봉산 자락에 흘러나오는 물을 끌어들인 친환경 시설이라는 안내였다. 여름철에는 온도를 낮추고 먼지와 습도를 조절하여 친환경 시설 역할을 한단다. 그 곳 한옥글방 마당에서는 최시인의 어린 아들 승민이가 투호(投壺) 놀이를 하며 무척 즐거워했다. 기행 내내 어른들을 따라 다니느라고 무척 무료했을 터임에도 불구하고 투정을 부리거나 싫은 내색을 한 번도 하지 않던 승민이가 대견하기만 했다. 이 거리에서는 체험놀이와 각종 공연도 할 수 있고 방에는 서재가 있었는데 책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긴 나무 탁자가 놓여 있는 아래 자리에 앉고 은발의 멋쟁이 한 교수님을 윗자리에 모시니 꼭 서당 훈장님과 공부하는 학생들 같아 문학관 배움 교실을 연상시켰다. 기행 하는 내내 우리들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한 교수님은 기행지 하나하나 면밀히 살피시고 안내문까지 한 묶음 챙겨 오셔 생각의 차이가 확실히 드러났다. 조금은 심심했을 교수님을 위하여 다음 문학기행 때는 말벗이 되어 주시는 분을 필히 대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한옥 글방을 나왔다.
한옥글방을 외지인들에게도 개방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럼없이 실내로 들어가서 여러 개의 나무 탁자 앞에 그 옛날 서당(書堂)의 학동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훈장이 앉을 자리에 은발의 멋쟁이 한 교수님을 모시니 영락없는 서당의 훈장님과 학동 같아 문학관 배움 교실을 연상시켰다. 기행 하는 내내 우리들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에 비해 한 교수님은 기행지 하나하나 면밀히 살피시고 안내문까지 한 묶음 챙겨 오셔 생각의 차이가 확실히 드러났다. 조금은 심심했을 교수님을 위하여 다음 문학기행 때는 말벗이 되어 주시는 분을 필히 대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한옥글방을 나왔다.
저녁은 도반들이 순천에 오셨다고 김 시인님께서 고맙게도 낙지전골을 대접 하셨다.
아, 그런데 어쩌나 나는 낙지를 먹을 수 없으니... 오징어 문어 주꾸미는 먹어도 아무 탈이 없는데 낙지는 먹었다 하면 안색이 노래지면서 식은땀이 나고 배앓이를 해서 곤욕을 치르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 하나 때문에 다른 것을 먹자고 할 수 없는 일이다. 식당은 만원이었지만 미리 예약이 되어 있어 편안하게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드디어 문제의 낙지전골이 나왔지만 싸늘하게 외면하고 식당 아주머니께 고추장과 밑반찬으로 나온 나물을 더 달라고 해서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저녁은 자기의 고향을 찾아주셔서 고맙다 면서 이 지역 토박이 김 시인님께서 낙지전골을 대접해 주었다. 아! 그런데 어쩌나? 나는 낙지를 먹을 수 없으니... 오징어 문어 주꾸미는 먹어도 아무 탈이 없다. 그런데 웬 일인지 낙지를 먹었다 하면 안색이 노래지면서 식은땀이 나고 배앓이를 한다. 그렇다고 나 하나 때문에 다른 것을 먹자고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식당은 만원이었지만 미리 예약이 되어 있어 편안하게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드디어 문제의 낙지전골이 나왔지만 눈물을 머금고 외면해야 했다. 그 대신에 식당 아주머니께 고추장과 밑반찬으로 나온 나물을 더 달라고 해서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 문화의 거리에서 연세 드신 분이 피아노를 치고 계셨다. 이 광경을 놓칠수가 없어 도반 몇몇 분과 같이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일송정~ 푸른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음악의 선율이 문화의 거리에서 울러 퍼질 때 예향의 도시 전남 순천의 밤(夜)은 익어 가고 우리들 마음도 익어갔다. 돌아오는 길 하행선과 상행선을 달리는 자동차 불빛이 생의 족적이듯 흘러갔다. 우리일행은 서로를 격려하고 못 오신 분들을 다독거리며 문학기행 여정을 아름답게 마무리 하였다.
서둘러 둥지로 돌아올 준비를 해야 시간이었다. 지긋한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의 거리 노천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이 광경을 놓칠 수가 없어 도반 몇몇과 어우러져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 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음악의 선율이 문화의 거리에서 울러 퍼질 때 예향의 도시 전남 순천의 밤(夜)과 우리들 마음은 하나로 승화되어 익어갔다. 돌아오는 길 하행선과 상행선을 달리는 자동차 불빛이 우리네 생의 족적처럼 휙휙 지나갔다. 우리 일행은 서로를 응원하면서 함께하지 못한 글밭지기들에 대해 아쉬워하며 문학기행 대미의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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