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어머니 11장 천일국 안착을 위한 천주적 가나안 40일 노정 8. 가슴에 묻은 사진 한 장, 조국 광복을 찾아서 1 지금도 나는 한 장의 사진을 가슴에 품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더욱 또렷이 떠오릅니다. 누렇게 바랜 사진 속에는 한 여인이 여자아이를 업고 손에는 태극기를 들고 서 있습니다. 내 고향 평안도 안주의 시장 어디선가 찍었을 사진입니다. 그 여인의 표정은 무척 상기되어 있습니다. 누군가를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은 듯한 표정입니다. 1919년 3월 초하루, 조원모 외할머니가 어린 홍순애 어머니를 업고 만세 운동에 참가한 모습입니다. 2 그러나 그 사진은 안타깝게도 북한에서 삼팔선을 넘어 남으로 내려오면서 가지고 오지 못했습니다. 고향집 어딘가에 소중히 간직돼 있을 것입니다. 내가 그 사진을 더욱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외삼촌으로부터 여러 차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3 나는 비슷한 모습의 또 다른 장면을 떠올려 봅니다. 1945년 8월 15일, 조원모 외할머니가 나를 업고 손에는 역시 태극기를 들고 서 있는 모습입니다. 얼굴은 희열에 넘쳐 누구라도 만나 얼싸안고 싶어 하는 표정입니다. 4 나라를 잃고 비분강개하는 모습과 나라를 되찾아 뛸 듯이 기뻐하는 표정은 지극히 대조적입니디. 나는 두 장면을 평생 기억하며 살아왔습니다. 둘 다 내 생애 가장 소중한 삶의 디딤돌이요, 이정표였습니다. 5 내가 겨우 말을 알아들을 때부터 "너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다"라고 말씀하시던 외할머니는 나의 근본과 정체성을 일깨워 주신 신앙의 모토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나라를 잃고 비분강개하는 외할머니의 모습은 내가 찾아야 할 나라의 표상이자 해방시켜 드려야 할 또 다른 하늘부모님의 모습이었습니다. 광복을 맞아 만면에 웃음을 띤 외할머니는 내가 장차 맞이해야 할 하늘부모님의 또 다른 표상입니다. 6 100여 년 전 안중근 의사는 만주 하얼빈역에서 거사를 감행한 후 체포되어 뤼순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조성녀 마리아는 아들에게 간결하면서도 단호한 편지를 보냈습니다. 7 "네가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하지 마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마라.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8 아들에게 생명을 구걸해 구차하게 항소하지 말 것을 강권하며 아들의 수의를 손수 지어 보낸다는 내용에서 나라를 생각하는 어머니의 숭고한 뜻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형이 집행되기 전 하얀 수의를 입고 하늘을 우러른 그의 눈망울이 "천하를 응시하니 어느 날에 뜻을 이루고 동풍이 점점 차가우나 장사의 뜻이 뜨겁다"는 단호함을 넘어 어머니의 말씀을 되새기는 듯 처연하게 비칩니다. 9 안중근 의사의 거사 후 일본 헌병들이 찾아와 어머니를 추궁했으나 "국민으로 태어나 나라의 일로 죽는 것은 국민 된 의무"라며 오히려 태연하게 반박했습니다. 100여 년 전 섭리의 조국, 대한민국의 광복을 위해 싸운 한 애국지사의 어머니는 사생결단의 강인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10 문선명 총재와 나는 한평생을 하나님의 조국 광복을 위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았습니다. 결코 뒤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걸었습니다. 처한 상황에 연연하지 않았고 좌고우면하지도 않았습니다. 낮이나 밤 어느 한순간도 하늘부모님을 가슴속에서 내려놓고 산 적이 없습니다. 11 소련의 크렘린궁에서는 레닌 동상을 철거하고 하나님을 받아들이라고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북한의 주석궁에서도 결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김일성 주석과의 담판으로 남북한 통일을 위한 새로운 활로를 개척했습니다. 하나님의 조국 광복을 위해서라면 한 치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위기가 닥칠 때마다 하늘부모님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12 나는 참아버님 성체 앞에서 "생이 다하는 날까지 이 땅에 천일국을 정착시키겠다!"고 눈물로 다짐했습니다. 이 다짐을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유언처럼 되뇌었습니다. 성화 이후 말씀을 땅끝까지 전파하고 세상을 품기 위해 나는 미친 듯이 동분서주했습니다. 입안이 헐어 끼니를 거르고 금방 쓰러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한시도 쉬지 않았습니다. 아버님과의 약속, '기필코 내가 이루어 드리겠다'는 다짐을 눈앞에 걸어 두고 살았습니다. 13 참아버님 성화 당시 천상을 향해 떠나시는 길을 국가 단위에서 배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참아버님께 올리는 성물로 7개 국가를 복귀해 새로운 천일국을 열겠다고 언약했습니다. 14 이제 모든 문명의 결실은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합니다. 태평양 문명권도 한국에서 결실을 맺게 됩니다. 그것은 하늘의 천명입니다. 이제는 주고 또 주는 효정문화인 태평양 문명권이 대한민국으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에서부터 시작된 세계평화고속도로가 한국에 당도하고, 남미 칠레 산티아고에서 출발해 역시 한국에 도착합니다. 15 2019년 새해 원단을 맞이해 청평 청심평화월드센터에서 전국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신(神) 통일한국 시대 안착 범국민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전날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하늘부모님의 조국 해방과 국가 복귀를 위해 전진하자는 결의를 다지는 원단 기도회였습니다. 16 나는 전국을 5대 권역으로 나눠 희망전진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수도권에서는 '천운 상속, 국운 유성'이란 주제로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10만 희망전진대회를 열었고, 유엔 참전 16개국 보훈 관련 주제의 대회도 열었습니다. 충청도에서는 도지사가 참여한 가운데 '삼일절 100주년 기념과 한일 간 화합전진대회'를, 경상도에서는 '읍면동 지도자대회'를 개최했습니다. 호남에서는 '참어머님을 중심으로 한 새생명 탄생과 태평양 문명권 시대 안착 희망전진대회'를 가졌습니다. 17 전남 강진군에는 아기 울음소리가 끊긴 지 몇 년째 되는 곳이 있었습니다. 아기 울음소리가 귀한 사정은 최근 농촌 대부분이 마찬가지입니다. 강진군 전역에서 진행된 '아기 탄생 참가정 희망전진대회'와 함께 3개 면에서 축복식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참여한 이들 가운데 세 쌍이 쌍둥이를 낳는 경사가 났습니다. 게다가 어미 소가 송아지를 쌍둥이로 낳아 강진군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축복식 때 대표 가정으로 단상에 올라온 나이 많은 부부에게 나는 선물로 귀하게 간직한 성의(聖依)를 선물로 보냈는데, 이 옷을 입은 그 가정에서도 역시 쌍둥이를 낳아 고맙고 감사하다면서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18 또한 그 지역의 현직 군수가 오늘날과 같은 인구절벽 시대에 가정연합의 축복식이야말로 나라를 살리는 진정한 애국이라면서, 지자체를 책임진 입장에서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경배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 전해 왔습니다. 19 나는 가끔 이 시대에 '하늘부모님을 위해 조국을 찾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100년 전 나의 외할머니가 하얀 무명 헝겊을 풀자 모습을 드러낸 태극기처럼, '이 시대에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해 봅니다. 이제는 하늘부모님의 조국 광복을 위해 자신의 가슴에 간직하고 있던 각자의 태극기를 꺼내야 하겠습니다. 조원모 외할머니가 태극기를 꺼내 들고 소리 높여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듯이, 만방에 하늘부모님의 조국 천일국 만세를 힘차게 외쳐야 하겠습니다. 20 새로운 역사의 여명이 서서히 밝아 오고 있습니다. 독생녀 참어머님의 현현과 구원 섭리로 말미암아 인류는 새로운 희망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늘의 섭리는 이제 완전한 천일국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지구촌 모든 인류는 독생녀, 평화의 어머니를 맞아 환호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비전 2020'을 맞아 가슴 벅찬 희망봉에 올라 있습니다. 이제 새롭게 떠오르는 밝은 태양을 가슴으로 맞이할 때입니다. 밝고 소망 찬 새로운 천일국 안착의 시대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
平和の母 第十一章 天一国安着のための天宙的カナン四十日路程 8. 心の中に秘めた一枚の写真、祖国光復を目指して 私は一枚の写真を、今も心の中に秘めています。目を閉じると、その写真が鮮明に思い起こされるのです。色あせた写真には、一人の女性が女の子を背負い、手に太極旗を握って立っている姿が写っています。私の故郷、平安南道安州の市場のどこかで撮った写真でしょう。 女性はとても気持ちが高ぶった表情で、誰かをつかんで、必死に何かを訴えているかのようです。一九一九年三月一日、祖母の趙元模が、まだ幼かった母の洪順愛を背負って万歳運動に参加した時の写真です。 その写真は残念ながら、北から三十八度線を越えて南に下りる際、持ってくる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今も故郷の家のどこかに、大切に保管されていることを願うばかりです。私がその写真をことさらはっきり覚えているのは、叔父から何度もその話を聞いていたからです。 私はまた、似たようなもう一つの光景をよく思い浮かべます。一九四五年八月十五日、祖母が私を背負い、やはり手に太極旗を持って立っている場面です。歓喜にあふれ、誰彼問わず、抱き合って喜びを分かち合いたいというような表情をしています。 国を失って悲憤慷慨する姿と、国を取り戻して飛び上がるように喜んでいる表情は、極めて対照的です。私は生涯、この二つの場面を胸に刻みながら生きてきました。どちらも、私にとって最も大切な人生の土台となり、里程標となったものです。 私が何とか言葉を理解するようになった頃から、「神様が、お前の父親である」と語った祖母は、私の原点とアイデンティティーに気づかせてくれた信仰の手本でした。一方で、国を失い悲憤慷慨する祖母の姿は、私が探し出さなければならない国の象徴であり、解放してさしあげるべき天の父母様のもう一つの姿でした。そして解放を迎え、満面の笑みを浮かべている祖母の姿もまた、私が将来迎えるべき、天の父母様のもう一つの姿なのです。 今から百年以上前、安重根義士は満州のハルビン駅で事件を起こして逮捕され、旅順刑務所に収監されて死刑宣告を受けました。その彼に対して、母親の趙姓女(趙マリア)は簡潔かつ断固とした手紙を送っています。 「老いた母より先に逝くことを親不孝だと思うな。卑屈に生を乞うのではなく、大義に死ぬのが母に対する孝行だ。こちらで作ったお前の寿衣(死装束)を送るから、この服を着て逝きなさい」 息子に、命を乞うて控訴するようなことはしないように強く言い聞かせ、息子の寿衣を自ら作って送るという手紙の内容から、国を思う母親の崇高な志を見て取ることができます。 刑が執行される前、白い寿衣を着て天を仰いだ義士の瞳は、「天下を雄視し、いつ志を果たそうか。東風は次第に冷たくなるが、壮士の志は熱い」という断固とした思いに加え、母親の言葉を胸深く刻むかのように、静かに輝いていたことでしょう。 事件後、日本の憲兵が母親を尋ねて追及した際も、彼女は「国民として生まれた身で、国のために死ぬのは、国民としての義務」と言って、落ち着いた態度で反論しました。百年以上も前、祖国光復のために闘った一人の愛国志士の母親から、死生決断の覚悟を垣間見ることができます。 文鮮明総裁と私は、神様の祖国光復のために一片丹心の生涯を生きてきました。決して振り返ることなく、ひたすら前だけを見つめて歩んできたのです。置かれた状況がいかなるものであれ、それを受け止め、回りに左右されることもありませんでした。 昼も夜も、ただの一時も、天の父母様のことを忘れて生きたことはありません。 ソ連のクレムリン宮殿では、「レーニンの像を撤去し、神様を受け入れなさい」と大胆に伝えました。北朝鮮の主席公館でもためらうことなく、金日成主席に談判して、南北統一のための新たな活路を開きました。神様の祖国光復のためであれば、一寸の迷いもなく進んできたのです。そのような私たちに危機が迫るたびに、天の父母様は奇跡的なみ業によって導いてくださいました。 夫の聖体の前で、私は「命が尽きる日までに、この地に天一国を安着させる」と涙で誓いました。この決意を、事あるごとに心に刻んできました。 夫の聖和後、み言を地の果てまで伝え、世の中をかき抱くため、私は一心不乱に駆け回りました。口の中がただれて食事もできず、すぐにでも倒れてしまいそうな状態でも、一時も休む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夫との約束、「必ず私が成し遂げる」という誓いを、常に心に留めながら生きてきたのです。 私たちは、天上に向かって出発する文総裁を国家レベルで見送る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そのため私は、夫に捧げる聖物として七ヵ国を復帰し、新たな天一国を開くと約束したのです。 今やすべての文明は、大韓民国を中心に結実します。太平洋文明圏も韓国で実を結びます。それは天の摂理です。与えてはまた与える情文化として、 太平洋文明圏が韓国に結実しているのです。 国際ハイウェイは、アフリカ大陸においては南アフリカの喜望峰から出発して韓国に至り、南米大陸においてはチリのサンティアゴから出発して、やはり韓国に到着します。 二〇一九年にを迎えるに当たって、京畿道加平郡の清心平和ワールドセンターに韓国全土の信徒が集まり、「新統一韓国時代開門汎国民祈祷会」を行いました。大晦日の夜から新年の明け方まで、涙で祈りを捧げ、天の父母様の祖国解放と国家の復帰に向けて前進しようと決意を固める元旦祈祷会となりました。 私は韓国全土を五つの地区に分け、希望前進大会を開催しまた。首都圏では「天運相続国運隆盛」というテーマで南北統一を祈願する十万人の希望前進大会を行ったり、韓国動乱の際の国連軍参戦および十六ヵ国の報恩というテーマで大会を行ったりしました。 忠清道では道知事が参加する中、三・独立運動百周年記念と韓日和合をテーマにした前進大会を、慶尚道|では邑面洞の指導者大会を開催しました。湖南では、「真の母を中心とした新たな生命誕生および太平洋文明圏時代安着希望前進大会」を開きました。 全羅南道康津郡には、赤ん坊の泣き声を耳にすることがなくなって何年にもなる地域がありました。最近、農村のほとんどが同じような状況にあります。康津郡の全域で開催した「新生児誕生真の家庭希望前進大会」と共に、全羅道の三つの地域でも祝福式が行われました。 すると、それに参加した三組のカップルがみな双子を生むという慶事が起きたのです。さらに、その地域で双子の子牛まで産まれたため、郡全体がお祝いムードに包まれました。祝福式の時、代表家庭として壇上に上がった高齢の夫婦に、私が大切にしてきた聖衣を贈ったのですが、その家庭にもやはり双子が生まれ、感謝のメッセージが届きました。 また、その地域の現職の郡守(郡の長)が、今日のような人口絶壁(超少子化)時代において、家庭連合の祝福式こそが国を生かす真の愛国の道であるといって、地方自治体の代表として感謝の意を伝えるために敬拝をした姿が、映像で届きました。 私は折に触れて、今の時代、本当の意味で天の父母様のために祖国を探し立てることとは何だろうかと考えます。百年前、祖母が木綿の布の中から取り出した太極旗を熱心に振ったように、この時代、天一国のためにすべきことは何だろうと考えるのです。 今、私たちは天の父母様の祖国光復のため、それぞれ胸にしまっていた国旗を取り出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祖母の趙元模が太極旗を振りながら、大声で「大韓独立万歳!」と叫んだように、天の父母様の祖国である天一国億万歳を、世界万邦に向かって力強く叫ば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新しい歴史の夜明けが近づいてきています。独り娘、真の母の顕現と救いの摂理によって、人類は新たな希望の世界へと向かっています。天の摂理は完全な天一国時代を迎えつつあり、地球村の人類はみな、歓声を上げています。 私たちは「ビジョン二〇二〇」実現の時を迎え、胸を膨らませて、希望の岬に立っています。新たに昇る明るい太陽を、心を開いて迎える瞬間です。明るく希望に満ちた、新たな天一国安着の時代に向かう時なのです。 |
Mother of Peace CHAPTER 11. The Restoration Of Canaan In Heaven And On Earth 8. Giving birth to the Heavenly World Over the decades, I have kept a particular photograph close to my heart. When I close my eyes, I can clearly see it. It is of a woman, with a little girl on her back, holding the Korean flag. It was taken in the market of Anju, my hometown. The woman's face is flush with desperation, and it looks as if she wants to grab onto someone and plead her difficult situation. The image is of my maternal grandmother, Jo Won-mo, carrying her daughter-my mother Hong Soon-ae-on her back, as she took part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on the first day of March in 1919. My maternal uncle used to tell me stories as we looked at that photo. Unfortunately, we did not bring it with us when we fled the North. It is probably safe, somewhere in my hometown. And there was a very similar photograph of grandmother Jo waving the Korean flag. But this one was taken August 15, 1945, and in that photo it is me she is carrying on her back. This time, her face is filled with joy, and she looks ready to embrace everyone she meets. Her expressions in those two photos contrast the sorrow of losing one's nation with the joy of gaining it back. Our sorrow over having lost God's world is soon to transform into the joy of gaining it back. From the moment I could understand speech, my maternal grandmother told me, 'God is your Father.” Her words formed the core of my faith. They set me on the course I had to walk. My husband, Father Sun Myung Moon, and I have lived our whole lives for the liberation of God's homeland. We have nothing to be ashamed of, nothing to hide. I have never looked back, nor to the left or the right; I have only looked at the path ahead. I never became attached to my circumstances. Night or day, there has never been a moment that I did not keep Heavenly Parent with me. In the Kremlin, we said to the leaders that they should remove the statues of Lenin and accept God. In the presidential residence in North Korea, we spoke out. On that foundation, President Mikhail Gorbachev and Chairman Kim Il Sung opened their hearts. We never wavered for the sake of the liberation of God's homeland. Whenever crises arose, Heavenly Parent guided us with pillars of fire and cloud. Standing before True Father's holy body in 2012, I promised in tears, 'By the end of my days, I will absolutely bring about the settlement of Cheon Il Guk on this earth!” Whenever the opportunity arises, I repeat these words. After True Father's ascension, I set forth like a female Don Quixote spreading our teachings and embracing the world. I have lived every day with my promise to Father Moon in mind. The Republic of Korea did not honor True Father at his Seonghwa Ceremony. That is why I publicly committed to restore seven nations by 2020 and open the new Cheon Il Guk as a gift to True Father. With that accomplished, the providential opportunity has returned to Korea. The call of the Pacific hyojeong culture of giving and giving again must take root and show visible fruit in this nation. This door will not remain open forever. In 2018 on New Year's Eve, members from all over Korea gathered at the Cheongshim Peace World Center to pray for the Settlement of the Era of a Unified Heavenly Korea. From the evening until the small hours in the morning of the new year, 2019, we beseeched God in tears to restore the Korean nation and liberate our Heavenly Parent's homeland. That winter and spring I addressed five Rallies of Hope in South Korea. In Seoul, 100,000 people attended. We promoted the unification of North and South Korea under the theme, “Inherit Heavenly Fortune, Bring National Unity.” We also held a rally in honor of the United Nations troops that came to Korea's aid during the Korean War. In Chungcheong Province, our rally was themed,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March First Movement and the Movement for Peace between Korea and Japan.” In Gyeongsang Province, we held a “Rally for Town and Community Leaders,” and in the Honam region, the rally theme was, “New Life Centering on True Mother and the Settlement of the Era of the Pacific Civilization.” In Gangjin County, there were villages that had not heard the cries of new babies for many years. It is like that in all farming areas in Korea, because young women have moved to the cities. We held the “Gangjin County Rally of Hope for Childbirth and True Families” and conducted the Blessing Ceremony in three villages. The whole of Gangjin County was filled with a festive atmosphere. I sent holy robes that I had treasured as a gift to a slightly older couple that had been one of the representative couples during one of the Blessing Ceremonies. I later received a note of thanks: After wearing the robes, they had given birth-to twins! Amazingly, three couples that attended those Blessing Ceremonies gave birth to twins. In addition, as if caught up in the spirit, a cow gave birth to twin calves. The governor of the area sent a video of himself bowing to express his thanks. He said that Korea is on a demographic cliff-there have been too few marriages and births, and now the workforce is shrinking. He said that the Family Federation’s Blessing Ceremony is the path of true patriotism, for only it can save the nation. Sometimes I ask myself, “What will save the world for the sake of our Heavenly Parent?” Korea is not alone on the demographic cliff. Japan, China, Europe, Russia—the birthrate is in decline in many countries. The only solution is to bring joy through the Blessing of marriages in harmony with Heavenly Parent. The Blessing will bring peace within ourselves, within our families and communities, nation and world, heaven and earth. One hundred years ago, for the liberation of her homeland, my maternal grandmother waved the Korean flag that she had hidden in her bosom. Now, for the liberation of our global family's homeland, we must raise the Heavenly Parent flag that we have hidden in our bosom. Just like her, we must passionately live for God's kingdom of Cheon Il Guk. The dawn of a new history is growing brighter. Through the manifestation of the only begotten Daughter in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humanity has new hope. Now Heaven's providence is entering the era of the completed Cheon Il Guk. I am reaching everyone in our global village with the message of the Mother of peace and the only begotten Daughter. Vision 2020 brought us to the mountain top. The promised land is in sight. Now it is time for us to greet the new rising sun with all our hearts. Let us march together toward the bright, new, hopeful era of the settlement of God's kingdom, Cheon Il Gu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