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장 ------ 오오, 복잡난해한 女心
대체 얼마나 걸었을까?
금천풍호와 단봉중옥.
그들은 얼굴에 일말의 의혹과 권태감이 서려 있었다.
(벌써 세시진도 넘게 걸어온 것 같은데...... 이 동굴은 대체 얼
마나 길기에 끝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 정도 시간이면 불귀도를 한바퀴 돌고도 남을 시간이거늘......!)
막 그런 생각을 떠올리던 금천풍호는 번뜩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그렇다. 이 동굴은 불귀도의 지하로 계속 이어져 잇는 것이다.
참으로 대자연의 힘이란 신비한 것이다. 섬 밑에 이런 동굴이 이어
져 있다니......)
금천풍호는 새삼스럽게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 인간이 아무리 위대한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하지만 어찌
대자연의 신비를 헤아릴수 있겟는가?
동굴은 자꾸만 깊어져 갔다.
그렇게 얼마를 더 갔을까? 문득 같이가던 단봉중옥이 자리에서
털석 주저 앉았다.
금천퐁호가 의아한 듯 바라보자 단봉중옥은 울상을 지었다.
"더이상 못 걷겠어요, 봐요...... 발바닥이 온통 부르텄단 말이
예요. 대체 우리는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는거죠......? 출구를 찾으
라고 했더니 점점 동굴 안쪽으로만 가고 있는 것 같으니...... 이
러다가 우리는 이 땅 반대편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 아닌가요? 호호
백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서......?"
금천풍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우리가 들어온 입구의 문은 이미 닫혔소. 그곳은 한번 닫히면
천년이 걸려야 다시 열리게 되어 있소. 그러니 이곳을 빠져 나갈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 우리가 들어온 반대편의 출구를 찾아
나가는 것이오......"
"처, 천년이라고요......?"
단봉중옥의 옥용이 하얗게 질렸다.
"그렇소. 그러니 어서 출구를 찾아야 하오. 그렇지 않으면 천년
동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던지......"
그말에 단봉중옥은 얼름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아......"
그녀는 짤막한 신음성을 지르며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이어
그녀는 햇살처럼 투명한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발바닥이 온통 터져버렸나 봐요......!"
금천풍호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간을 살짝 좁혔다.
(제기랄! 여자다 이처럼 귀찮은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면 무슨 수
를 써서라도 우리가 들어온 출구를 열고 보내는 것인데......)
허나 어쩌랴!
이미 시작된 장단이고 굿거리인 것을......
그는 돌연 단봉중옥의 앞에 쪼그리고 앉더니 불쑥 등을 돌렸다.
단봉중옥의 봉목이 해연히 커졌다.
"무슨 뜻인가요......?"
"엎히라는 뜻이오!"
순간,
짝!
단봉중옥은 금천풍호의 등을 사정없이 손바닥으로 때린 연후 몸
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동시에,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문득
금천풍호를 향해 얼음처럼 싸늘한 낯빛으로 말했다.
"뭐해요...... 빨리 가지 않고...... 그곳에서 천년을 썩을 셈인
가요......?"
"......!"
어리둥절해진 금천풍호, 그는 내심으로 투덜거렷다.
(제기랄! 얼음장을 껴안고 있어도 저보다는 따뜻할 것이다. 여자
들이란 참으로 알수 없는 동물들이군. 조금 전만 해도 한발자국도
못 움질일 것 같더니만...... 지금은 잘만 가지 않는가?)
오호! 여자!
아는가? 천기의 기상보다도 더 변화막측한 것이 여자라는 사실을?
철비(鐵匕).
얼마나 오랜 세월을 이곳에서 지냈는지 녹이 시뻘겋게 쓴 철비.
철비에 쓰여있는 글씨.
<이곳은 위대한 무의 혼이 잠들어 있는 성스러운 영지!
돌아가라!
속진에 때묻은 인간의 발걸음이 닫는 순간, 지옥의 나락으로 떨
어질지니......>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심장이 떨릴만큼 으시시한 내용의 글귀.
단봉중옥과 나란히 서서 그 철비의 글귀를 바라보고 있던 금천풍
호는 문득 피식 실소를 흘렸다.
"후훗! 누구인지는 모르나, 이 안에 있는 사람은 대체로 신비한
척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군."
담담하게 내 ⅸ는 금천풍호의 말에 비해서 단봉중옥의 음성은 은
근히 떨려나오고 있었다.
"꼭 그렇지만은 않은것 같아요. 저기를 보세요......"
그녀는 이순간 다른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를 따라 시선을 돌리던 금천풍호의 눈에 언뜻 이채의 빛이
스쳤다.
그들의 전면 삼장쯤 되는 거리, 하나의 철문이 가로막혀 있었고
그 위로는 가로 삼장 세로 이장 크기의 거대한 편액이 걸려 있는데
<천지제황비부!>
녹이 뻘겋게 슬어있는 청동편액이 반자 가량의 깊이로 새겨진 글
씨.
(천지제황부! 그럼 이제 제대로 찾아온 셈인가?)
"이것을 어떻게 열죠......? 이 커다란 두꺼운 문을...... 아무
래도 우리는 여기서 천년을 썩는 것이 아닌가요......?"
단봉중옥.
당시 무림을 떨어울렸던 위대한 무림명가의 딸,
허나, 그녀는 무림의 일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나 없었다. 더우
기 기관진식에 관한 것은 더더욱 전무한 상태!
높이 육장에 두께 일장은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철문의 위용
에 기가 질린 그녀는 절망에 가득찬 표정을 지으며 땅바닥에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다.
금천풍호는 그 모습을 보고 내심으로 혀를 끌끌 찼다.
(쯧쯧! 대체로 여인들이란 엉덩이가 커서 그런지 조금만 놀라도
주저앉는 버릇이 있는 모양이군......!)
내심 그렇게 뇌까린 후, 금천풍호는 성큼성큼 철문 앞으로 걸어
갓다.
"대저 문이란 열기 위해 만들어 진 것! 닫혀 있으면 열면 될 것
아니오......!"
이어 그는 철문의 좌우상하 그리고 주위를 세밀하게 살피기 시작
했다.
(장보도에 의하면 분명 이 철문의 근처에 열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는데......!)
대충 한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장보도에 적힌 모든 기관의 내용
을 푼 그, 어느 틈엔지 단봉중옥이 그의 옆에 다가와 의아한 눈빛
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문을 열려면 빗장을 풀거나 밀어서 열어야 하는데 왜 엉뚱한 곳
만 두리번거리는 것인가요?"
금천풍호는 확실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여인과 함게 다닌다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라는 것을......
허나 내심의 생각과는 달리 그는 부드러운 낯빛으로 말했다.
"소저, 자고로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것은 미련한 짓이오.
사람의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는 것이 아니오."
이어 그는 단봉중옥이 샐쭉한 표정으로 뭐라고 대꾸하려 하자 얼
른 시선을 돌려 재차 철문의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순간, 그의 눈에 번쩍 기광이 섬전처럼 스쳐갔다.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
그의 시선이 머문 곳, 돌로 깍아 만들어진 듯한 작은 돌출부가
있었다. 허나 그곳은 너무 오랜 세월 동안 이끼에 뒤덮여 있었는지
라 금천풍호는 미처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순간, 그는 망설이지 않고 그 돌출부를 힘껏 눌렀다.
헌데, 요지부동이었다.
마치 문을 열려는 사람을 비웃듯이 문은 오연한 자세로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럴 리가......!)
금천풍호는 다시 한번 돌출부를 힘껏 눌렀다.
이번에는 너무나 힘을 주었기에 단단하기로 천하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청강석으로 만들어진 돌출부가 아예 가루가 되어 흩어졌
다.
허나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 저 끔찍하도록 거대한 철문은 도대
체가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단봉중옥이 답답하다는 듯이 물
었다.
"뭘하고 계시는 거예요...... 문은 이쪽인데 아까부터 그쪽만 밀
고 있으니......?"
금천풍호는 어설픈 미소를 떠올리며 단봉중옥을 향해 고소를 날
렸다.
"아무튼 이 문을 여는 기관장치가 망가진 모양이요...... 아마도
너무 오랜 세월동안 이 습기찬 동굴 안에 있다보니 녹이 슬은 모양
이요."
단봉중옥의 커다란 눈이 경악과 두려움의 빛으로 가득 물들었다.
"그,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정말로 이곳에서 천년을 썩어
야 하는 건가요......?"
순간 금천풍호는 빙긋 미소를 떠올렸다.
"후후! 아직 한가지 방법은 남았소......!"
"예! 한가지 방법이 남았다고요......?"
"그렇소. 가장 무식한 방법을 쓰는 수 밖에는......"
이어, 금천풍호는 철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나 우뚝 멈췄다.
다음 순간, 그는 쌍수를 합장하듯이 천천히 가슴 앞으로 모았다.
단봉중옥이 경악에 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 설마하니...... 저 큰 문을 힘으로 부술 생각은 아니....."
그녀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쾅!
어느새 금천풍호의 쌍수가 춤추듯 갈라지며 엄청난 경력이 철문
을 두드리고 있었으니까.
허나, 철문은 요지부동이었다.
다음 순간 금천풍호는 재차 일장을 갈겼다.
쾅!
순간,
"아, 아니 이럴 수가......?"
단봉중옥의 옥용이 경악의 빛으로 물들었다.
그도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그녀는 보았던 것이다. 처음
에는 꿈쩍도 하지 않던 철문이 두 번째 가서는 천천히 금이 가기 시
작하는 것을......
그녀의 경악의 빛이 채 가시기도 전에......
쾅! 콰쾅!
철문이 엄청난 굉음과 함께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며 안으로 밀려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마, 말도 안돼......!)
단봉중옥의 눈이 완전히 혼이 달아나 버린듯 멍하니 굳어져 버렸
다. 헌데 바로 그때,
쿠쿠쿠쿵!
돌연 대지진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천정이 마구 진동을 하며 여기저기서 마른 논바닥처럼 균열이 쩍
쩍가는 것이 아닌가?
와르르르......
순식간에 집채만한 바위들이 단봉중옥의 머리 위로 폭우처럼 쏟
아져 내렸다.
단봉중옥, 그녀는 무공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모르는 평범한 여인
이었다. 아니 설사 그녀가 무공을 알고 있다고 해도 이 돌변한 상
황에서 급박하게 쏟아져 내리는 저 돌우박을 피해낼수는 없었다.
그녀의 안색이 일순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아릿다운 그녀의 몸이 일순간 무지막지한 바윗돌에 깔려버리려는
바로 그 위기의 찰나!
그녀는 갑자기 완강한 힘이 자신의 허리를 조여오는 것을 느꼈다.
뒤이어 금천풍호의 묵직한 음성이 귓전을 파고들어온 것은 그 다음
의 일이었다.
"소저. 잠시 실례를 해야겠소이다."
우당당! 쿵쿵!
쿵!
"악!"
너무나 급박한 위기의 순간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경황중에 단봉중옥을 구해 몸을 날린다고는 했지만 그것에 급급
하다보니 금천풍호는 착지를 제대로 할수가 없었다. 당연히 그들의
몸은 땅으로 볼상사납게 처박히고...... 여자인 단봉중옥의 입에서
짤막한 비명이 터져 나온 것은 그 다음의 일!
금천풍호는 바닥에 쓰러진 채 순간 괴이한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된 것일까? 예전에 나는 혼신을 다해 몸을 날려보았자
삼사십장에 불과했거늘...... 이번에는 적어도 칠팔십장은 날아온
것 같으니......!)
오오!
말이 좋아 칠팔십장이지...... 당금 무리을 통틀어 단 한번에 이
같은 거리를 단번에 날아갈 수 있는 경공의 소유자가 과연 몇이나
된단 말인가?
허나, 이 순간 금천풍호는 경황 중이라 미쳐 한가지 생각을 깨닫
지 못하고 있었을 뿐 그의 지금 이런 현상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미 그는 이곳으로 옮겨지기 전에 중원칠절로부터 이기차력대법으로
내공을 전수받았지 않았는가?
각기 삼갑자 이상의 공력을 지닌 중원칠절. 그들의 몸에서 절반
의 공력만 받았다해도 각기 구십년의 공력. 합하면 칠구 육십사 육
백사십년의 공력. 그 어마어마한 공력이 지금 그의 몸 속에 내재되
어 있는 것이다.
육백사십년의 공력!
오오!
삼천년 무림사를 깡그리 통틀어 보아도 이런 어마어마한 공력을
지녔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허나,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금 금천풍호의 몸속에
잠재된 그 어마어마한 공력은 일시에 용해되지 못하고 그의 몸속에
깃들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때, 금천풍호는 막 몸을 일으키려고 하다가 그대로 흠칫 굳어
들었다.
그의 가슴을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지그시 눌러오는 솜처럼
부드러운 감촉......
그렇다.
지금 그의 위에는 단봉중옥이 엎드려 있었던 것이다. 떨어질 때
충격이 너무나 컸는지 그녀는 이순간 어안이 벙벙한 상태에서 반쯤
정신이 나가있는 듯 했다.
어쨌든...... 그천풍호로서는 난생 처음으로 접해보는 여인의 부
드러운 살결에 정신이 아득해 지는 것 같은 황홀경에 빠져 들었다.
콧 속에 밀려들어오는 저 능금향같은 체향은 그렇다 치더라도......
뼈라곤 찾아볼수 없고...... 온통 부드러운 연체동물같은 이 여체
의 나긋나긋한 감촉......
금천풍호는 젊다. 그것도 이제 한창 혈기왕성한 이십세.
여자의 이 황홀하고도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면서 아무런 느낌을
받지 않는다면 그는 아예 부처님이나 내시 비슷한 종족들 뿐일 것
이다.
금천풍호는 자신도 모르게 단봉중옥의 가느다람 허리를 완강하게
끌어안았다.
힘없이 끌려 들어오는 여체......
"아......!"
단봉중옥의 붉디 붉은 입술 사이로 고혹적인 신음성이 흘러 나왔
다. 이어져 느껴지는 것은 매화향같은 달콤한 구향......
금천풍호는 문득 단벙 부위로부터 불기둥같은 뜨거운 것이 치밀
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순간, 목구멍에서 심한 갈증을 느꼈다.
누군가 가르쳐 준것도 아닌데...... 금천풍호는 본능적으로 단봉
중옥의 입술을 찾았다.
이때 단봉중옥의 입술은 살짝 벌어진 상태...... 석류알같은 입
술 사이로 단순호치는 눈부시게 빛나고..... 금천풍호의 두툼한 입
술이 단봉중옥의 입술에 뜨겁게 부딪쳤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단봉중옥이 갑자기 그를 힘껏 밀어젖히는 것이 아닌가?
"악------!"
비명이 터져 나온 것은 그 뒤의 일이고...... 엉겹결에 단봉중옥
의 얼굴을 바라보던 금천풍호는 하얗게 공포에 질린 단봉중옥의 얼
굴에 의혹의 빛을 띄우지 않을 수 없었다.
"소, 소저......?"
"저, 저......"
단봉중옥은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그의 뒤쪽을 가르키
며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음?"
의아한 빛을 띄우며 무심결에 시선을 돌리던 금천풍호의 눈이 경
악으로 크게 부릅떠졌다.
"저, 저것은......?“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