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권 제 9 장
용문성의 후예
소연황이 들어선 세 번째 대전도 이전의 관문과 다를 게 없었다.
허나 등을 돌리고 앉은 인물은 그 뒷모습이 특이했다.
유려한 어깨의 선,
잘록히 들어간 허리,
아무리 보아도 여자였다.
그것도 아주 젊은 나이의...
소연황은 세번째 관문의 인물이 소녀라는 것에 내심 놀라움을 나타내
고 있었다.
하지만 장포를 걸치고 돌아앉아 있는 소녀의 옆에는 도(刀)가 놓여있
어 더욱 신비함을 더했는데....
이때,
한 손가락만을 사용해 도갑(刀甲)을 밀어내며 도를 끌러내는 동작,
스르릉....
장도가 도갑에서 완전히 벗어난 순간 소연황의 눈에 다시 놀람이 스쳐
갔다.
( 삼인도(三刃刀)다. 이런 병기는 중원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기병
인데....? )
삼인도라는 것은 도의 끝부분이 세 갈래로 나뉘어져 있는 도(刀)를 말한다.
이 삼인도는 그 형태만큼이나 사용법도 특이해 주로 세외의 고수들만이
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때였다.
장포소녀가 여전히 몸을 돌린 채 입을 열었다.
[ 듣기만 해라. ]
[ ......! ]
[ 너는 이곳을 통과하려느냐? ]
[ ......! ]
[ 이곳을 통과하면 음양무령 내에서는 위로는 한 분의 아래이고 아래로는
만인(萬人)의 위인 음양무령 최고의 대우를 받게 될 것이다. ]
( 위로는 한 명의 아래이고 아래로는 만인의 위라....? 곧 부문주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
소연황이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실로 파격적인 대우인 것이다.
장포소녀의 말이 이어졌다.
[ 허나....이 마지막 관문은 다른 관문들과는 다르다. 만약 네가 도전
해오면....너에게는 두 가지 길 중 하나만이 있게 되는 것이다 ]
[ ......! ]
[ 본녀는....네가 도전하게 되면 너를 죽일 것이다. ]
[ 후후후훗....그러니까 곱게 돌아가서 음양무령내의 서열 오십 위 이내
의 직위에 만족하라 이것인가....? ]
[ 그렇다! ]
신비의 장포소녀는 여전히 몸을 돌리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말을 하고 있건만 어깨한번 들썩거리는 법이 없었다.
소연황이 질문을 던졌다.
[ 너를 꺾으면 음양무령 내에서는 위로는 한 명의 아래이고 아래로는 만
인의 위라는 그 말을 믿을 수 있겠느냐? ]
[ 물론이다. 허나 본녀를 이길 수 있다고는 꿈도 꾸지마라. ]
[ 대단한 자부심이로군. 그렇다면 무적(無敵)이란 말인데....그런 사람
이 어떻게 음양무령에 소속되어 있단 말이지....? ]
소연황이 돌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질문하는 것인지 홀로 독백하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말투이다.
허나 명백히 장포소녀에게 들려주려는 말이 아니겠는가.
쓰----웃!
장포소녀의 몸이 앉은 자세 그대로 세치 가량 허공위로 떠오르며 돌려졌다.
하나의 충격이 소연황의 노리에 곧장 전달되었다.
아아....
누가 이 소녀를 보고 인간세상의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빙설(氷雪)처럼 깨끗한 피부,
환상 같기만 한 얼굴의 선(線).....
신비장포여인의 아름다움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천하제일의 화가가 심혈을 다 기울여 그려낸 미인도 같다고나 할까.
게다가 장포여인은 중원인이 아닌 듯 이국적인 미(美)마저 풍기고 있어
진정 한번 대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떨려올 정도였다.
소연황은 내심 자신도 모르게 감탄성을 흘려냈다.
지금까지 그가 보아온 어떤 미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 호호호....천하에 누가 있어 본녀를 거느릴 수 있겠느냐. ]
순간 신비장포여인의 음성이 이어졌다.
오만으로 가득차 있는 음성이었다.
[ 내가 이곳 음양무령에 있는 것은 음양무령에 속해 있기 때문이 아니
다. 설사 음양무령의 지존일지라도 본녀를 어찌할 수 없음이다. ]
[ 그렇다면....? ]
소연황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신바장포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 음양무령과 본녀의 용문성(龍門城)은 단지 동맹관계를 맺고 있을 뿐
누가 누구의 수하가 아니다. ]
[ 용문성----! ]
소연황의 입에서 놀람에 찬 음성이 튀어나왔다.
신비장포여인이 교소했다.
[ 호호호....그렇다. 본녀는 바로 용문성의 성주, 용후(龍逅) 매적군
(梅炙君)이다. ]
[ 용후....매적군....? ]
소연황은 아연해지는 기분이었다.
허나 이 순간 용후 매적군은 이미 삼인도를 천천히 들어 올리고 있었다.
----삼극용뢰인(三極龍雷刃).
용문성의 이대신병(二大紳兵)중 하나.
이것은 용문성의 지존신물인 칠십이단천수리표와 함께 용문성 최고의
무상신위를 나타내는 병기라 할 수 있었다.
[ 이제....네놈은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한다. 원래 음양대제의 부탁을
받고 너의 무공화후를 측정해보기 위해 온 것이었으나....본녀는 음양
무령의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네놈을 죽일 수 있음이다. ]
[ ......! ]
[ 본녀로 하여금 삼극용뢰인을 뽑게 만든 것이 네놈의 실수인 것이다.
삼극용뢰인은 일단 발출되면 누군가의 피를 보기 전에 회수할 수 없다.]
소연황이 돌연 미소를 머금었다.
너무도 화려한 미소....
신의 조각인 양 아름답기 그지없는 얼굴위에 더욱 화려한 미소가 솟아
나자 용후 매적군의 눈 깊은 곳에서 이채가 솟아났다.
[ 후후후....그대의 말뜻......! ]
용후 매적군의 안색이 급변했다.
자신이 전개해낸 생사도결, 용문십천제일도결이 어째서 위력을 잃고 소
멸되어 버렸는지 이해할 수도 없었다.
허나 그녀가 놀라고 있는 진정한 이유는 자신의 몸에 박혀있는 칠십이단
천수리표를 알아본 때문이었다.
[ 칠십이....단천....수리표! ]
[ 오오....! ]
용후 매적군의 전신이 화살을 맞은 듯 부르르 진동했다.
그녀의 눈이 황급히 소연황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
허나 그녀의 경악의 눈빛속에는 터질 듯한 격동이 어려 있었다.
그리고....
털----썩!
이내 그녀의 신형이 바닥에 오체투지했다.
[ 용문성의 제 삼십일대 제자....용후 매적군....삼가....용황(龍皇)을
대합...니다! ]
그녀의 음성이 떨려나왔다.
격동과 불신, 경악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떨려나오는 음성이었다.
[ 용....황? ]
[ 그렇습니다. 본성 대대로 내려오는 선조의 유시에 의하면....칠십이
단천수리표는 곧 용문성의 지존신물....이것을 지니신 분은 본성 모든
제자들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용황이라 하였습니다. ]
[ ......! ]
소연황의 눈에 이채가 솟아났다.
칠십이단천수리표가 용문성의 지존신물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
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천년 전 백의종사 소단성 시대의 일이었고 그 뒤 오백
여 년이 흐른 뒤 다시 부활된 제 이대 용문성에서마저 통용될 줄은 예상
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아득한 일천여 년 동안 실전되었던 지존신물의 권위를 일천여 년
이 흐른 지금까지도 인정하고 있음이 아니겠는가.
[ 으음....예를 받기 어렵소이다. 어서 일어서시오. ]
[ 명을 받습니다. ]
용후 매적군의 태도가 급변되었다.
그녀의 오만하기 그지없는 차가운 기품이 이 순간 더할 나위 없이 공손한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일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존신물의 무상권위를 인정하고 있었던 것
이다.
[ 헌데....용문성에 있어야 할 그대가 어째서 중원에 들어와 있는지 궁
금하구려? 그리고....용문성과 음양무령이 동맹하게 된 사연에 대한 것
도 말이오. ]
[ 예. ]
용후 매적군이 허리를 접었다.
헐렁한 장포....
그 속에 떠올라 있는 희디흰 피부의 아름다운 얼굴....
게다가 오만한 아름다움이 이제는 공손한 아름다움으로 바뀌어 있어 진
정 보는 것만으로도 심혼이 뒤흔들릴 것만 같았다.
용후 매적군은 차분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내용은 간단했다.
청해의 용문성은 중원에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중원진출을 꾀하고 있었
고 바로 그때 음양무령에서 합작을 제의해온 것이었다.
물론 음양무령이 천하제패에 성공한다면 중원내에 용문성의 기반을 확보
해준다는 조건이었다.
[ 으음....]
용후 매적군의 모든 이야기를 듣고 소연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서 심오한 기광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자세에서....
용후 매적군과 마주선 자세로 그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음양무령이라는 적의 세력 내에서 자신을 키우고....
결국은 음양무령을 정복한 후 나아가 그외의 제가(諸家)들마저 차례로
굴복시킬 원대한 야망을 위한 계획이 그의 머릿속에서 자리 잡기 사작했
다.
확고한 의지와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담고 있는 음성이었다.
[ 내가 용문성의 용황이었다는 사실을 일체 비밀로 해주시오. 그대와 나
의 비무에 대한 것은 내가 그대를 겨우 이긴 정도로만 하고 말이오. ]
[ 천명----! ]
[ 그리고....용문성과 음양무령의 합작에 관한 것은 애초에 의도대로 계
속 진행시키시오. 결정적인 시기가 될 때까지 음양무령의 인물들이 용문
성을 완전히 동맹세력으로만 믿고 있도록 말이오. ]
[ 결정적인 시기라면....? ]
[ 후후훗....나중에 알게 될 것이오. ]
[ 아.... ]
용후 매적군의 눈에 일순 기이한 빛이 솟아났다.
감탄의 눈,
음양대제 종인뢰의 음성이 조용히 대전을 울렸다.
[ 그대를....본문의 부영주로 임명하겠소. ]
[ 부영주....! ]
[ 으음.... ]
시립해 있던 음양무령의 고수들의 입에서 경악성이 흘러나왔다.
실로 파격적인 대우가 아니겠는가.
소연황이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 후후후훗....본인은....영주님의 기대를 어긋나게 하지 않을 것이오.]
[ 하하핫....그렇게 되기만을 빌 뿐이오. ]
[ ......! ]
[ ......! ]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얽혔다.
두 사람 모두 만면에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어찌 보면 이제부터 한배를 타게 돌 피를 나눈 동지의 미소 같았다.
허나 두 사람의 눈빛만큼은 그 미소와 달랐다.
두 사람의 눈빛은 모두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도저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헤아릴 수 없는 유현한 눈빛이었던 것
이다.
특히 음양대제 종인뢰의 눈 깊은 곳에서는 눈앞의 소연황을 조소하는 듯
한 알 수 없는 빛이 떠돌고 있지 않은가.
허나....
소연황 역시 더할 나위 없이 깊은 눈빛을 흘려내고 있었다.
× × ×
....이제....시작하는 것이다.
....다른 생명체의 몸에서 부화하여 그 생명체를 갉아먹으며 성장하는
거미의 유충처럼....
....나는....이 음양무령에서 나의 기반을 만들 것이다.
....천하여 기다려라!
....일 년, 단 일 년이다.
전설의 구대제가,
이 구대제가의 제삼차 격돌에 하나의 변수가 자라고 있었다.
다른 제가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아무런 세력을 지니지 않은 채 가전되어
온 유가일맥의 후예가 그렇게 다른 제가의 세력 내에서 기반을 쌓아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원래는 아무런 기반도 없었으나....
우연과 필연이 얽혀 용문성이라는 청해의 괴문파와 구대제가 중 독가의
힘을 물려받게 된 유가일맥의 후예 소연황....
그렇다.
그의 존재는 확실히 예측할 수 없는 폭풍의 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외쳤다.
일 년!
일 년 안에 모든 난세를 종식시키겠다고 그는 외쳤다.
아아....
만약 누군가가 이런 그의 광오한 외침을 들었다면 어찌 그의 광오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허나,
허나.....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