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 전쟁 같은 북새통에 일손 부족한 모텔은 하루하루를 기적처럼 연명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연말을 맞아 가족이 모이기로 한 밴쿠버 집을 잠깐이라도 안 가 볼 수는 없다. 동네에 들어온 석유회사들의 고 임금 손짓에 모든 직원들이 흔들리고 있는 참이니 이럴 때 모텔을 비우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 없는 동안의 예약관계, 교대시간표등을 프런트의 선임 격인 멜린다에게 맡겼지만 평소 떠드는게 특기인 멜린다가 오늘따라 눈을 내리깔고 너무 조용한게 도무지 수상하다.
잘 부탁한다는 뜻으로 피자도 몇 판 시켜 주고 떠나오면서도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도착해서 모처럼 아이들과도 만나 회포도 풀고 만날 사람들도 좀 만나고 다음 날 시내 볼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전화가 여러 번 와 있었다. 무슨 일? 이 겨울에 난방이나 온수에 무슨 일이 생겼나? 떨리는 마음으로 급히 전화해 보니 프런트의 제니퍼 말이, 오늘 멜린다가 모텔을 그만둔다는 통보가 있었고 멜린다가 없으니 자신을 교대해 줄 사람이 없다고 발을 구른다.
‘아니, 왜?’ 아무리 정성을 쏟아봤자 언제나 남남인 이곳 직원들의 몰인정과 무책임에 어느 정도는 적응이 된 나지만 이번에는 피가 거꾸로 솟았다. 들인 공이 얼만데 하필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에! 프런트를 비워둘 수 없으니, 급한 대로 영어가 되는 딸 Tina를 데리고 올라가야겠다. Tina는 시험이 닥쳐있다며 못 간다고 버티지만 비상상황인 모텔을 생각하면 지금 시험이 문제인가. 다음날 아침, 년말의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Tina를 간신히 달래어 아내와 함께 에드먼턴행 첫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뛰었다.
멜린다는 도시의 석유회사로 옮겨가 있었다. 보다 못해 아내까지도 청소일에 들어가 온종일 땀과 세제에 젖어 자면서도 앓는 소리를 할 정도로 모두가 지쳐가던 중, 다행히 주정부에 신청했던 필리핀 인력이 때맞추어 도착해 준 덕분에 간신히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manager 가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직원과 건물, 고객관리가 가능했던 것은 그동안 손님이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었다. 유가상승으로 도시가 활기를 띄면서 바빠진 모텔 일의 양은 더 이상 내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사람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Rhonda가 있잖아!" 아내는 같이 일하면서 지켜본 청소원 Rhonda를 추천했다. Rhonda는, 선이 굵은 얼굴 윤곽에 늘 청바지 차림으로, 호주에서 살다가 얼마 전 고향으로 돌아온 전직 호주 경찰 출신이다.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을 동안 우리 모텔의 임시 청소원으로 들어와 일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 두번 사무실로 불러 공문작성을 돕게한 적도 있다. Rhonda를 찾아 면담한 후 Manager직을 제의했고 뜻밖의 제안에 놀란 Rhonda는 나를 와락 끌어안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Rhonda는 타고난 manager였다. 그녀의 빨간 포드 트럭이 쓸데없는 경적을 가끔 울려가며 작은 도시의 거리를 내달리거나 모텔 주차장에 떠억 버티고 서 있으면 나는 아무 걱정할 게 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Rhonda가 일하는 동안에는 그녀의 두 아들인, 네살, 다섯살짜리 'Zac'과 'Zen'을 데리고 모텔 옆 동네공원에서 공 차고 놀아주는 게 중요한 일과가 되어버렸다. 내가 주인답게 아침 미팅 시간을 정해 Rhonda를 앉혀놓고 이런저런 지시를 할 때면 Rhonda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비같은 너털웃음과 함께 내 어깨를 두 번 툭툭 치며 이렇게 말했다. “Don’t worry, John!”
노후된 우리 모텔은, 영하 30도까지 기온이 내려가 안팎의 온도차가 50도가 넘으면 아무리 보일러를 때도 별로 따뜻하지가 않다. 난방에 대한 고객 항의가 있을때마다 전열기라도 찾아 가져다주며 사과해야 하는 일이 나에게는 큰 고역이었는데 이것을 간단히 해결하는 Rhonda를 보고 눈이 부셨다. 항의하는 투숙객에 대해 Rhonda는, "다른 방은 불평이 없는데 왜 유독 너만 추운가?" "혹시 너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내일 방을 빼라. 모두 환불해 주겠다." 이 추운 겨울, 바빠진 도시에 방이 남아있는 호텔은 없었으니 옮겨가거나 같은 투숙객이 다시 항의하거나 하는일은 한 번도 없었다.
Rhonda에게 Manager 일을 맡긴 후 2년 여가 지났을 때 모텔을 처분했다. 30년 된 3개 동의 모텔 건물은, 도시 한가운데 좋은 위치의 멋진 외관과는 달리, 하루도 문제없는 날이 없었고 특히 가장 중요한 겨울철 난방은 배관이 이미 부식되어 손 쓸 수도 없는 상태였다. 몇 년 동안의 고된 일과 스트레스로 지치기도 한 데다가 내 건강을 걱정하는 아내의 권유도 끈질겼다. 도시에는 프랜차이즈 호텔이 몇 개나 새로 들어올 예정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석유값에 따라 기복이 심한 앨버타의 경기도 항상 불안해 그동안 매매를 추진해 왔었다.
새 주인과의 합의로, Rhonda를 지금보다 더 나은 보수의 manager로 계속 일할수 있게는 해 놓았지만 매매사실을 알릴 일이 난감했다. 오늘따라 바쁘다는 Rhonda를 동네 찻집으로 불러 어렵게 말을 꺼내자 Rhonda의 놀란 눈이 야구공만 해졌다. 나는 곰 같은 큰 덩치의 Rhonda가, 찻집안의 모든 손님이 바라보든 말든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한참만에 울음을 그친 Rhonda는 눈물이 범벅인 채로 테이블 위 내 손을 잡았고 들릴락 말락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Don’t worry, John!”
새 주인에게 모텔 넘길 날을 며칠 앞두고 Rhonda는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 오랫동안 속을 썩이던 거래회사들의 모든 외상대금을 남김없이 회수해주어 나를 놀라게 했다. Rhanda는 그동안 동네의 장비기술자 Tom을 맞아 새 가정을 꾸리고 제2의 인생을 맞이하고 있었다. Rhonda가 호주에서 돌아온 건 이혼 때문이었다. Rhonda는, 그녀의 인생이 가장 비참했을 때 뜻밖의 일자리로 기회를 준 나에게 감사했지만 그러나 사실, 그건 내가 할 말이었다. 바다 건너 멀리서, 지쳐 쓰러질듯한 나를 지켜본 듯 시간까지 맞춰 나타나 준 Rhonda는, 그때 나에게는 ‘굴러들어 온 호박’이었다.
우리가 떠나온 다음 해, Rhonda는 그녀의 두 아들, 남자 친구 Tom과 함께 먼 길을 달려와 밴쿠버의 우리 집에서 며칠동안 여름휴가를 보냈다. 완전히 새 인생을 찾아 안정된 Rhonda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는 어린 옛 친구 들을 다시 만나 집뒤의 도랑에서 가재도 잡고 아이스크림먹으러 다니느라 바빴고 Rhonda네가 집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한 가족이었다. Rhonda는 두 아들이 학교에서 그려온 그림을 선물로 나에게 주고 갔는데, 가족을 그린 Zac과 Zen의 모든 그림에는, Rhonda와 함께 축구공과 내가 그려져 있었다.
몇 해 후, 이곳 친구 둘과 함께 앨버타 주를 여행하면서 오는 길에 Bonnyville을 찾아 Rhonda를 만나보기로 했다. 저유가가 장기화되면서 석유회사들이 떠나고 도시는 깊은 불황에 빠져있었다. 손님이 끊어진 모텔에서 새 주인과 갈등을 겪고 있는 Rhonda도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도착한 우리를 보자마자 뛰어나온 Rhonda는 내가 준비한 인사말을 꺼낼 틈도 없이 나를 안았고 안자마자 울음이 터져 나왔다. 놀란 나의 두 친구는 아직도 문 밖에 멀쭘히 서 있는데 한참을 울고 난 후 진정이 된 Rhonda는 울음반 웃음반으로 말했다. “Don’t worry. 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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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Don't worry, John!"
참 인상깊은 문장이네요.
배려가 많으신 사장님과 일해서 론다는 행복했겠어요. 폴부부도 말없이 떠났으나 충성스럽고 성실하셔서 어디서든 잘 사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