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서 성찰한 서정시학 --청허 박영수 시선집 『』 김 송 배 (시인. 한국현대시론연구회장. 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들어가면서 청허 박영수 시인인 시력(詩歷) 40여년을 지나면서 그동안 11권의 시집을 상재하고 그 중에서 100여편을 추려서 시선집을 발간한다. 그는 일생을 시를 위해서 살아온 열정적인 시인이다. ‘시는 보다 더욱 위대하고 다감한 영혼들의 음악’이라는 프랑스의 시인 볼테르의 말처럼 박영수 시인은 그의 다감한 영혼을 탐색하기 위해서 평생을 시창작에 몰두하면서 영육(靈肉)을 버티어 왔는지 모를 일이다. 산에서 묻은 짙은 향기 한줌 무작정 따라 들어와 내 영혼을 말아 올리듯 코끝을 맴도네 무언가 쓰다말고 잠시 흥얼거리며 퍼덕거리는 아우성 소리에 그만 멀거니 눈 뜨고 마네. 그의 작품 「미완의 사유」 전문에서와 같이 ‘내 영혼’과의 교감을 위해서 자연 속에서 ‘무언가 쓰다말고’ 언제나 미완의 사색에 잠겨 있는 것이다. 시는 누군가가 ‘인류에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법칙과 패턴을 제공해 주’는 소임이 따라야한다는 말과 같이 시인과 독자가 공유하는 한 편의 시는 복잡한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서는 한 모금의 청정한 정화수로 갈증을 해소하는 삶의 충전의 역할이 필요하게 된다. 이처럼 박영수 시인의 시들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원류로서 진솔한 삶의 지향점으로 그의 인생관을 정립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인생론을 위해서 시와 더불어 존재의 방식을 탐구하였으며 이의 결실을 위해서 오늘도 꾸준히 창작에 열정을 쏟아 붇고 있는 것이다. 그는 1946년 경북 청도에서 출생하여 국립체신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졸업한 후 문단에 나와서 현재 국제펜한국본부 회원과 한국문인협회 문학사편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에는 《세월의 강》《천년을 부는 바람》《파도야 바람아》《별이 전하는 말》《소리 등불》《사랑 한 잎》《유랑의 길 저편》《21세기 장식론》《바람의 향기》《연꽃보고 온 날》 등 11권을 출간하고 <제1회 문학저널 창작문학상> <제5회 이육사 문학대상> <라이너 마리아 릴케 문학상> <제2회 금천문학대상>을 수상하였으며 구후 ‘한국아파트신문’에 2002- 2017년까지 ‘시와 문화유산답사기’를 연재를 해서 주민들에게 찬사를 받은 바 있다. 한편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 삼성산공원에 시비(詩碑)(2009. 10.10 건립)가 서 있다. 그는 일찍이 신석정 시인이 말한 바와 같이 시를 쓴다는 것은 생에 대한 불타오르는 시인의 창조적인 정신에서 결실되는 것이니 대상하는 인생을 보다 더 아름답게 영위하려는 의욕과 그것을 추구, 갈망하는 데서 창작된 그 시인의 분신임을 굳게 신봉하는 절대적인 한국의 서정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 삶의 화두(話頭)와 어눌한 꿈의 융합 박영수 시인의 첫 번째 화두는 ‘삶’에 대한 탐색에서 출발한다. 그가 지금까지 천착한 내면의 정서는 사는 이유와 시를 쓰는 이유가 바로 존재를 성찰하는 이유이며 나아가서는 영혼을 갈구(渴求)하는 이유로 나타나고 있다. 그는 ‘물 따라 그냥 / 떠내려가라 // 여기일까 저기일까 / 망설이지마라 // 그 무엇을 찾아 // 흐르는 대로 흘러가라 / 두말 말고 그냥 가게 하시라 // 낮은 곳으로 / 더 낮은 곳으로 / 그렇다, 삶이란(「삶이란」 전문)’이라는 어조와 같이 유유자적(悠悠自適)의 심저(心底)에는 삶에 대한 일차적인 긍정으로 인식하고 존재에 대한 지향점을 적시하고 있어서 그가 탐색하는 삶의 화두를 재빨리 이해하게 된다. 언제나 내 삶의 속살은 청보리 물결처럼 보들보들 하지도 설날 아침 할머니가 나누어준 강밥처럼 아삭아삭하지도 않았다 귀룽나무 꽃잎처럼 달콤하지도 않았다 언제나 내 삶의 속살은 여름한철 보리쌀처럼 푸들푸들하지도 초가집 지붕 위 박꽃처럼 쟁기 쟁기하지도 않았다 --「내 삶의 속살」 전문 박영수 시인이 추구하는 삶의 내면에는 ‘귀룽나무 꽃잎처럼 / 달콤하지도 않았다’는 결론적인 어조와 같이 평탄하지 못했던 삶의 굴곡이 현현되고 있다. 그는 겉으로는 화려한 척하지만 그 속살에는 많은 시련이 동행하고 있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인간들에게는 누구나 궤적(軌跡)으로 남아있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정념을 수용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바로 인생이라 일컫는 것이다. 다시 그는 ‘삶이 / 무엇을 / 남길 수 있겠는가 // 무엇을 / 남겨야만 하겠는가 // 그냥 / 그리워하라 / 그리고 기억하라 // 삶이 / 그대를 멀리 / 멀리 떠난다 해도 // 언제까지나 / 그리움의 그늘 속에 // 알싸하고 / 비릿한 그 향기를 / 꼭, 잊어야만 하겠는가(「삶」 전문)’라고 삶에 대한 정의를 궁극적으로 단정하고 있다. 그는 ‘무엇을 / 남길 수 있겠는가 // 무엇을 / 남겨야만 하겠는가’라는 자문(自問)형의 시법으로 상황을 설정하고 있으나 그에게 내재된 원형(原形)의 진실에는 ‘그리움’이라는 아련한 정감이 상존(常存)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일찍이 독일 최대의 문호 괴테도 삶의 기쁨은 크지만 자각(自覺) 있는 삶의 기쁨은 더욱 크다라고 한 말과 같이 우리들의 삶에는 다양하면서도 환상적인 행로가 뒤따르게 된다. 이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삶의 형태나 방법이 오욕칠정(五慾七情)을 수긍한다고 하더라도 자각이 있는 삶이 필요하다. 빗속을 걸었다 홀로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 속을 맑은 날 갑자기 번개가 치듯 타는 마음 태워 버리듯 나는 걸어 왔다 목마른 이 길을 못난 미련 달래며 한 줄기 맑은 빛을 꿈꾸며 어느 날 문득 내 마음에 천둥이 치고 한 없이 쏟아지는 아 푸른 빛 그 꿈. --「푸른빛 꿈」 전문 그는 청운(靑雲)의 꿈을 지니고 살아왔다. ‘맑은 날 갑자기 번개가 치듯 / 타는 마음 태워 버리듯 / 나는 걸어 왔다 목마른 / 이 길을 // 못난 미련 달래며 / 한 줄기 맑은 빛은 / 꿈꾸며’ 그는 온갖 풍파(風波)를 인내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러나 그 꿈이 실현되지 못하고 그냥 꿈으로만 ‘내 마음에 천둥이 치고’ 있어서 참으로 안타까움이 앞서고 있다. 이러한 자성(自省)의 언어는 ‘저만치 앞선 사람이나 뒤따르는 사람 / 모두 한 방향이기는 마찬가지 / 지울 수 없는 사람의 길 쉬엄쉬엄 살아갈 일(「사람의 길」 중에서)’이라거나 ‘한 줄기 바람으로 와서 / 부산만 떨다가 허둥거리며 / 갈 곳을 가고 마는 구나!(「한 줄기 바람으로」 중에서)’라는 인생 회억(回憶)에 젖곤 한다. 일찍이 톨스토이도 ‘삶의 의문에 대한 나의 탐구는 마치 내가 깊은 숲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경험한 것과 똑 같다’라고 그의 「참회록」에서 한 말과 같이 가시거리가 예측되지 않는 우리네 인생행로는 단정적인 결론이 아니라 스스로 혜쳐나가는 정신이 필요하게 된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도 / 내가 나에게 또 한 번 / 묻고 싶어지는 // 감히 살아간다는 뭐, / 사랑과 죽음 같은 것들조차도(「바람의 길」 중에서)’와 같이 사랑과 죽음(혹은 생사고락)을 동시에 그의 심지(心地)에서 지울 수 없다는 진실을 삶에서 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자연 친화와 교감하는 생명의 등불 박영수 시인은 그의 시적 제재에는 만유(萬有) 자연과의 공존에 착목(着目)하면서 정감을 창출하는 특성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이처럼 자연 친화의 서정성은 그의 전신에 감전된 듯 활기가 넘치고 새로운 사유와 정서를 창조하는 생의 원류로 청청해지고 있다. 그는 이러한 대자연에서도 산에 대한 유정(有情)을 많이 접목하고 있다. ‘무심히 흘러들면 / 마음은 마냥 한가로워지고 / 산길을 오르다 보면 / 누구에게나 너그러워지기도 하네(「산에서」 중에서)’라는 어조와 같이 산에서 교감하는 친자연의 정서는 바로 그의 서정적인 시법으로 창조되어 자연과 인간의 신뢰는 더욱 명징(明澄)해지고 있는 것이다. 청설모가 하늘 위를 날아다니고 산비둘기 땅위를 헤엄쳐 다니는 숲으로 가자 풀벌레 산등을 타고 앉아 삘 릴리- 삘 릴리- 풀피리 불고 개미들 가는 허리로 풍성한 음식을 저 나르는 숲으로 가자 바람도 놀란 푸른 숲길을 노랑나비 범나비 폴짝 폴짝 뛰어다니며 어서 오라 어서 오라 양팔 벌려 환영하는 그 숲으로 가자 --「숲으로 가자」 전문 여기에서 ‘숲’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는 박영수 시인의 대사물관이 자연에서 수용하는 정신적(혹은 시적)인 구조의 형태는 다양하다. 그는 ‘그 숲으로 가자’라는 명령형의 동사가 노랫말의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시행(詩行)에서 우리는 박영수 시인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평화의 안온한 세계로 동행하자는 호소의 절규(絶叫)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산비둘기’, ‘풀벌레’, ‘개미들’, ‘노랑나비 범나비’ 등등 천진난만한 순수 자연과 동화(同化)하는 신선의 경지로 안내하려는 순정적인 서정의 주제를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보편적인 구조 즉, 공간, 시간, 질료, 운동 등과 자연 영역에 있어서 단계적인 질서에 관한 철학적인 반성이 깊게 숙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박영수 시인은 시적 소재 ‘산(山)’에 대한 고집스러운 탐색으로 ‘빈산에 / 하얀 비 내리네 // 이팝꽃 모란꽃 / 머리위에 콧등위에 / 명자꽃 부끄러운 두 볼 위에 // 웃 음 한 다발 꿈 한소쿠리 / 향기 한줌 // 쥐어주고 / 담아주고 / 연지곤지 찍어주고 // 빈공원에 / 하얀 꽃비내리네 // 누구 있어 / 끓어오르는 시심에 / 하얀 촛불 하나 밝혀주나요(「하얀비 내리고」 전문)’라는 정감의 언어로 산과 절실하게 교감하고 있다. 옛 시인이 ‘청산불묵 천년화(靑山不墨 千年畵)요, 녹수무현 만고금(綠水無絃 萬古琴)이라’는 명시를 읊었다. 청산에는 먹물이 없어도 천년을 전하는 그림이요, 녹수는 거문고 현이 없어도 만대를 울리는 거문고라는 기막힌 시법으로 청산을 노래하고 있어서 박영수 시인도 그를 닮아 산을 동경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박영수 시인은 ‘막혀버린 마음은 타고 남은 / 재가 되었다 // 그 재 한 움큼 / 마음 주머니에 찔러 넣고 / 어제는 삼성산을 올랐다 // 안개 속에서 다가오는 봄비가 / 말라버린 갈잎과 / 도토리나무 밤나무 소나무 / 오리나무 위에도 / 모질게 내리더니, / 잎들은 어느새 땅위로 / 추락했다 // 무너질 듯 / 짙은 빛 안개 저 끝 / 야- 호- / 한소리 내질러 보면, // 나는 이제 / 청신淸新한 마음 한 가닥 / 품에 안고 / 하산 길로 접어드는 시간(「마음이 가는 길」 전문)’이라는 인생 말년의 우수같은 것이 산행을 통해서 감지하는 혜안(慧眼)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갈대는 생리중이다 세세한 슬픔도 누추한 말씀도 거대한 절망도 희망찬 비애도 생리중이다 약하면 약한 대로 강하면 강한 대로 되돌아온 편지처럼 발정 난 슬픔처럼 생간 씹으며 떨어져 내리는 황혼을 흔드는 갈대의 흐느낌을 그 누가 뛰는 가슴으로 들을 수 있었겠는가 심중에 남아있는 말 한마디*조차, --「갈대는 생리중이다」 전문 한편 그는 대자연 중에서 산과의 교감뿐만 아니라, 지상에 존재하는 자연은 그의 시적 대상이 되고 있다. 이 ‘갈대’도 이 초원에서 생명을 존속하는 자연물이다. 결국 ‘갈대=인간’으로 의인화해서 슬픔과 절망, 비애 등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현현하고 있다. 이 밖에도 작품 「초원에」 「구름산」 「금수강산」 「낙산 의상대」 「노루목」 등에서 시각적인 이미지의 투영으로 친자연적 시법을 적절하게 구사하고 있어서 그의 자연관과 자연주의적 지향점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4. 정적(靜的)인 자연에서 ‘꽃’들의 표정 지금까지 ‘산’에 관한 시적 의미성을 개략적으로 추적해보았으나 산속에 묻혀서 나름대로의 표정이나 담론으로 우리 인간과 정감을 직접 나누는 것은 ‘꽃’들이라고 할 수 있다. 꽃은 무언(無言)이지만 해맑거나 환한 표정에서 전해주는 메시지는 다감하면서도 다양하게 현현된다. 이러하듯이 청산이 그 푸르름으로 자신을 과시한다면 꽃은 산야에서 아름다운 침묵으로 우리들을 매료(魅了)시키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흔히들 꽃은 미인에 비유하거나 아름다운 사랑의 징표로 사용한다. 이러한 어휘들은 꽃의 특성에서 풍기는 향긋하게 내재한 관념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저 풀꽃이라 불러주세요 이 산 저 산 또는 이름 모를 어느 들녘이나 논두렁 밭두렁길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움츠리고 놀다가도 어디서 누군가 얘, 풀꽃 하고 불러주면 풀꽃 여기요 얼른 손을 들고 대답하지요 누가 보아도 보는 이 아무도 없어도 그래도 오다가다 어느 한 님 있으매 사랑 주는 이 꼭, 있으매 작은 몸짓으로 춤도 추고 웃음꽃도 피우며 기다릴 줄도 알고 있답니다 삶이 또한 그러한 것이겠지요 --「풀꽃」 전문 일찍이 이어령 교수는 그의 저서 『증언하는 캘린더』에서 ‘꽃은 인간의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꽃들은 침묵의 언어를 가지고 사랑을, 평화를, 인정을 그리고 꿈을 가르쳐준다. 아무렇게나 벼랑에 흩어져 핀 꽃들은 소박한 전원의 사랑을 말하다.’라는 꽃 예찬을 피력한 바 있다. 위의 작품 「풀꽃」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산 저 산’이나 ‘논두렁 밭두렁’에 ‘있는 듯 없는 듯 / 움츠리고’ 있어도 자연의 섭리를 ‘기다릴 줄도 / 알고 있는’는 형상(形象)이 바로 우리의 삶과 같은 것이라는 이미지가 발현되고 있다. 박영수 시인은 자연과의 교감에서도 유난히도 꽃과의 대화가 많다. 산과 초원과 이 모든 대자연에서 다종(多種)의 생물과 유기체를 형성하면서 ‘침묵의 언어’로 전원의 소박한 사랑을 제공하는 꽃이야말로 시인들의 창조세계의 천국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꽃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대체로 ‘수국’ ‘복수초’ ‘동백꽃’ ‘서리꽃’ ‘밤꽃’ ‘들국화’ ‘불두화’ ‘칡꽃’ ‘귀롱꽃’ ‘명자꽃’ ‘장미’ ‘망초꽃’ ‘채송화’ ‘하루나꽃’ ‘찔레꽃’ ‘연꽃’ ‘코스모스’ ‘설중매’ 등등 그의 시야에서 머물다가 간 화훼류는 그의 사유가 미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그는 꽃을 사랑하고 작품과 연결하는 특성을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꽃들에게는 저마다의 꽃말이 있고 꽃전설까지도 있다고 한다. 우리들은 그 꽃말의 의미를 새기면서 시와 접근하는 것도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가던 발길 멈추고 너를 바라본다. 어린 시절 보아오던 꽃이었는데 그 수줍음 찾을 수 없구나! 너는 외로움도 쓸쓸함도 이쁠 것도 없는 아름다움인 것을, 너의 볼을 타고 흐르는 분홍빛 아미蛾眉 한번쯤은 미소 지어 내게 보내주렴. --「동백꽃」 전문 박영수 시인의 서정성은 천성적으로 타고 났다. 그것은 시적 원류가 되는 정서나 사유의 흐름(의식의 흐름)이 사회적인 조류나 물질적인 갈구에 있지 않고 자연속의 안온하고 평범한 정신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계곡 물소리 따라 산새가 한가롭게 놀고 구름이 쉬어가는 숲에서도 화사하게 웃고 있는 꽃들에게서 감응하는 그의 시적 발상은 젊은 날 청춘 때의 것과는 사뭇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 그것은 그가 훌쩍 지나온 세월의 탓이리라. 이 ‘동백꽃’에서 더욱 그러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너는 / 외로움도 / 쓸쓸함도 / 이쁠 것도 없는 / 아름다움인 것을,’이라는 어조는 바로 그의 사유에는 인생연륜이 가미된 인생관이 만유의 사물(꽃)들이 ‘아름다움’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대체로 동화는 꽃에 대한 이미지는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서리꽃 : 맑고 푸른 4월의 정점에서 / 세월의 아픔을 만났네. -복수초 : 어차피 우리들의 귀한 / 계절의 속삭임 -수국 : 연등처럼 / 목화처럼 / 하얀 달밤 홀로 지켜는 -찔레꽃 : 이상도 해라, 오늘은 / 숨죽인 시심이 / 박하사탕처럼 펑 뚫리는 날인가 -망초꽃 : 부러진 추억마저 / 하얀 그리움 되어 그대 곁으로 / 하늘하늘 날아갈 수 있는 것 -불두화 : 자비로운 말씀으로 / 알 수 없는 미소 송이마다 /그윽하게 피워 올리고 -칡꽃 : 이 산속에 누가 있어 / 이렇게 달콤한 향기를 선물할까 -목련화 : 무슨 미련이 그리 많아 / 갈 길을 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것일까 -연꽃 : 부질 없는 욕망 / 버리지 못한 / 나 -코스모스 : 공원 가는 길 옆 허술한 담 밑에 / 가냘픈 소녀 하나 울고 있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이미지들을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박영수 시인이 응시하는 사물에서 투영하는 사유의 원류가 거창하고 고매(高邁)한 철학적인 경지의 것이 아니라 평범하고 보편적인 사색의 범주에서도 시적인 향기를 분사할 수 있는 점에 우리는 매혹(魅惑)되고 있는 것이다. 5. 고향 ‘청도’에서 들려오는 ‘워낭소리' 박영수 시인은 오매불망 잊을 수 없는 고향 청도에 대한 향수의 노래에 심취해 있 다. 이처럼 많은 시인들이 아련한 향수에 젖어서 그 이미지가 작품으로 승화하는 것을 많이 대할 수가 있는데 이는 애향심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고향에는 유년의 추억이 있고 조상님들의 유혼(幽魂)이 남아 있다. 그의 고향은 경상북도 청도이다. ‘청도는 / 내 마음의 길 / 선仙의 길이다 // 옛 나라 이서국과 / 원광법사의 세속오계가 살아 숨을 쉬고 / 화랑의 마음 밭을 일구는 모습 / 어제 본 듯 아련하다 // 운문산 / 가지산 / 화악산 // 산과 산 사이에 / 마을이 떠 있고 /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 정情이 냇물 되어 흐른다(「청도」 전문 )’는 정감의 언어가 흡인하고 있다. 고향집 감나무 밑에는 하얀 감꽃이 맑은 이슬로 웃는다. 우물가 찔레꽃이 정情을 흩날리는데, 장독대 옆에서 소꿉질 하던 그 소녀 어느새 아기 엄마가 되고 나도 아버지 되었다 어느 날 황량한 들판에 밤하늘의 별들이 울부짖는 바람 속에 눈물 흘릴 때, 나는 말없이 고향을 떠났다 그 길로 멀어진 고향 연륜이 쌓이고 내 욕된 삶 위에 추억의 뿌리는 외로움으로 찾아들어 바람타고 들려오는 고향 소식에 나는 밤을 설친다. --「고향」 전문 그는 ‘청도’를 ‘내 마음의 길 / 선의 길’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고향집 감나무’와 ‘우물가 찔레꽃’ 그리고 ‘장독대 옆에서 소꿉질하던 그 소녀’는 이제 ‘연륜이 쌓이고 / 내 욕된 삶 위에 / 추억의 뿌리는 외로움으로 찾아들어’ 지금은 ‘밤을 설’치는 향수에 몸부림치고 있다. 일찍이 플라톤도 ‘원류(源流)에 대한 동경.... 영원의 고향에 대한 거리감에 앓는 것, 그리고 그곳으로 귀향하려는 노력 그것이 향수다’라고 정의했듯이 ‘어느 날 황량한 들판에 / 밤하늘의 별들이 / 울부짖는 바람 속에 눈물 흘릴 때,’ 그는 홀연히 고향과의 정감이 더욱 솟구치고 있다. 박영수 시인의 향수는 ‘올해는 해거리를 해서 도통 / 아이구 머할라꼬 또... // 이거 다 인정노름 아잉기요 / 하머, 그렇고말고 // 그 정情 참으로 엄청구마 / 고마 들어가이소 // 아삭아삭 씹는 그 맛처럼 / 감칠맛 나는 시詩 한 구절 / 어디서 찾을까(「청도감」 중에서)’라거나 ‘이것이 다 무엇인교 / 홍시도 곶감도 아닌 / 이름마저 쫀득쫀득한 / 이것이 다 무어라 예 // 혀끝을 살살 감도는 / 얼은 마음도 다 녹여주는 / 그 청도 감말랭이 아잉교 // 아재요 아재요 / 쫀득쫀득한 그런 마음으로 / 누구 한번 포근하게 / 안아준 적 있십니껴 // 아 참!(「감말랭이」 전문)’이라는 고향의 일상들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상기되고 있어서 그의 시적 원류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때, 알아버렸는지 몰라 나른한 봄맛을 홀짝거리다 취한 나는 팽이처럼 돌아가는 감나무 둥치를 부여잡고 또 다른 세상 속을 헤매 돌고 있었지 응수아재가 내 귀를 잡고 집으로 돌아가 중참 술을 다 먹을 때까지 나는 취한 척 하고 있었지만 이미 알아버렸는지 몰라 맨 정신으로 한 세월 넘어가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아찔한 봄 자운영 붉은 꽃향기를 갈아엎던 우리 집 황소 워낭소리가 딸랑 딸랑 내 귀를 씻어주던 날 --「워낭소리」 전문 다시 박영수 시인의 귀를 씻어주며 울리는 것은 ‘우리집 황소 워낭소리’이다. 아, 얼마나 그리운 정경인가. ‘응수아재’와 벌린 에피소드는 지금도 그의 내면에서 깊게 요동치고 있는 추억의 명장면이다. 그러나 그는 ‘팽이처럼 돌아가는 / 감나무 둥치를 부여잡고 / 또 다른 세상 속을 헤매 돌고 있었’다는 회억이 ‘세월 넘어가기’에서 ‘감칠맛나는 시 한 구절’로 변전(變轉)되려는 연륜과 세상살이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향수의 일념(一念)은 ‘대청마루에 / 삼베보자기를 씌워놓은 / 그 메밀묵이 있어서 / 시골 잔칫집은 좋았다(「메밀묵」 중에서)’, ‘할매는 / 굽어진 허리를 펴고 / 먼 하늘을 쳐다보신다 // 사각사각 / 허무虛無를 칼질하는 / 할매는 / 무엇을 보고 계실까 (「목화밭」 중에서)’, ‘상여 집에서 / 벼락 맞은 고목이 와락 / 뒷자락을 잡아당기고 // 밭을 매던 아지매 / 하얀 손 흔들며 / 논을 갈던 아재들 / 파란 노랫가락에 취하여 // 저녁연기 몽글몽글 / 피어오르던 / 동구 밖 그 길(「동구밖 그 길」 중에서)’ 그리고 ‘기어이 / 톡, 터지고 말 /절규이더냐 // 아롱아롱 꽃가마 길 / 시집간 누나 부끄러운 / 모습이더냐 (「석류」 중에서)’는 등의 어조로 그의 향수는 절정에 이른다. 6. 나가면서 박영수 시인의 작품은 대체로 자연 시점(視點)에서 취택하는 서정의 투영이거나 일상에서 추출하는 생활정감이 그의 작품 중심에서 인본주의적 감응으로 그의 정서와 동류의 지향점으로 합일하려는 여력(餘力)을 읽을 수 있게 한다. 그는 이 시선집에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통해서 삶의 화두를 창출하려는 그의 시법을 이해하게 되는데 그의 인생 궤적에서 상기되는 회억의 줄기가 시간성을 대동하고 있다는 점에 그의 사유가 집중되고 있다. 쓸쓸한 것이 어찌 계절만이라 말 할 수 있나요 뒹구는 잎 새 의 아픔이라 말 할 수 있나요 뒤 돌아보면 그리움은 언제나 하얀 촉루로 빛날 뿐, 몸부림조차 뿌리치고 돌아서는 여름의 길목은 더욱 쓸쓸해 결코 아무 말 하지 않네요 청춘이 돌아서는 뒷모습은 언제나 허무만 잉태할 뿐 누구나 한 번씩 앓고 마는 열병처럼 여름이 떠나간 빈자리 꼬르륵꼬르륵 횟배 앓는 소리로 들려올 뿐 가을은 또 사부랑 사부랑 오고야 마는 것을 --「또 가을이 오는 소리」 전문 그렇다. 박영수 시인이 사계절과 자연의 순리를 대칭적으로 설정하는 연유도 그가 그만큼 쌓아온 인생이 바로 ‘쓸쓸한 것이 어찌 / 계절만이라 말 할 수 있나요’라는 성찰의 이미지가 탄성으로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또한 ‘몸부림조차 뿌리치고 돌아서는 / 여름의 길목은 더욱 쓸쓸해’라거나 ‘청춘이 돌아서는 뒷모습은 / 언제나 허무만 잉태할 뿐’이라는 어조는 정적의 구조물인 꽃이나 불망의 향수에서 탐색하는 자연 친화가 그의 생명성과 시간성의 융합이라는 진실을 적절하게 구현하고 있어서 그의 서정시학의 정점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다시 이러한 초원의 세계에서 무소유나 ‘내가 지은 죄 생각다 말고 / 우짜겠노, 우짜겠노 / 땅을 치며 // 하늘을 우러러 / 장탄식을 하는 것이다.(「근황」 중에서)’라거나 ‘고통으로 출렁거리는 / 바다 위를 떠돌며 / 서성이는 나에게 // 생과 사를 초월한 듯 / 허공에 바람 한 점 미소지우며 / 왜 나를 잊으셨나요, 묻고 있지요 (「가을 언저리」 중에서)’라고 심중(心中)에 침잠해 있는 우리 인간들 존재의 궁극적인 생(生)의 진실을 구명(究明)하려는 집념이 바로 박영수 시학의 근원이 될 것이다. T.S 엘리엇도 시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새로운 감정을 찾는 데 있지 않고 보통 감정을 이용하여 이것을 손질하여 시가 되게 하며 ‘전연 실지로 겪지 않은 감정’인 여러 가지 느낌을 표현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가 경험한 일이 없는 감정이 그에게 익숙한 감정과 함께 안성마춤으로 쓸모가 있게 된다는 논지는 박영수 시인의 시법과 같이 자연, 인간, 시간, 공간 그리고 인간의 지혜까지도 다양하게 보편적인 감정으로 동화하거나 분사(噴射)할 수 있다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