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쇠 제 36회

[먼산]

여전히 아파트공사현장에는 모래흙먼지를 일으키며 회오리바람이 몰아친다.
그러나 출입구 쪽에서처럼 세정제에 희석된 물에 신경 쓸 일은 없다.
대형 살수차 두 대가 연달아 현장 곳곳 도로에 물을 뿌리고 다니지만 공사장 구석구석
물을 뿌릴 수는 없어선지 흙먼지 바람을 맞다 보면 나무가 자라지 않은 아라비아
모래사막을 연상케 했다.
이젠 영구와 함께 일을 하는 사람도 없으니 모든 일들을 혼자서 판단을 하고 처리해야 했다.


벌써 점심시간이다.
1평 컨테이너 초소 안에서 영구가 아내 명례가 싸준 도시락을 혼자 먹었다.
위쪽으로 각기 목으로 침상처럼 만들어 혼자만 누울 수 있도록 비닐 장판을 씌워 놓은
위에는 전기매트가 깔려 있었다.


점심시간 한 시간은 자유롭게 쉴 수 있어서 좋다.
지나다니는 차량이나 사람도 드물다. 길에서 2미터나 되는 높이에 초소가 놓여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일부러 올라오기 전에는 볼 수도 없다.
침상에 다리를 뻗고 누우니 딱 맞다. 가로세로가 2미터가 못 되는 것 같다.
세륜장에서 일할 때와 비교하면 천국에 있는 기분이었다.


영구에게 주어진 1시간의 점심시간은 임금이 계산되지 않는 시간을 자유롭게 누리지
못하고 차량들을 세륜(洗輪) 시키고, 흙이나 모래를 싣고 들어오는 덤프트럭들에게
전표에 도장을 찍어 주는 일을 했다.
임금이 계산되지 않은 다는 것을 알면서도 울면서 매운 겨자를 삼켜야 했던 힘 약한 경비원들의
현 모습이 생각할수록 기분은 언짢았다. 홀로 점심을 먹은 영구가 잠깐 휴식을 위해 침상에 누었다.


어제까지도 같은 부서에 근무했던 이영식과 안달수 그리고 영구가 일했던 자리에
새로 온 김안근에게 괜스레 떠맡기고 올라온 것 같아 미안해진다.
오전시간 내내 뛰어다니면서 일일이 전화를 걸어 차량을 옮겨달라고 해 공사장 출입구
도로가 정리되자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고 스스로 자위를 했다.
점심식사를 하고 나오니 도로에 줄줄이 불법주차를 한 차량들이 있다. 운전석 쪽에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전화를 걸었다. 가끔 전화번호가 없는 차량도 있다.


“여보세요, 2782 차량 운전자 되십니까?”
“예.”
“공사현장 앞 도로에 차를 좀 옮겨 주십시오.”


아예, 전화를 받지 않는 차량 운전자도 있다. 대형 트럭이 용도를 알 수 없는 건축자재를
싣고 들어오고 있다. 영구가 뛰어가서 물었다.


“차에 싣고 온 것이 무엇입니까?”
뭐라고 말을 하지만 건축자재들은 처음 대하는 것이라서 뭐가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다.
“아저씨, 대형차는 공사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건너편 쪽으로 주차하셔야 합니다.”


수시로 대형화물차들이 들어오므로 공사 현장 앞에는 재래시장 안처럼 복잡했다.
가끔 전화도 안 받는 차량이 있는가 하면 아예 전화번호가 없는 차 들이 있어 골치가 아팠다.


“아저씨, 우선 건너편에 대기 좀 하십시오.”
영구가 호루라기를 불면서 뒤쪽에서 오는 차를 정지시키고 차량용 지시봉으로 후진신호를 해,
안전하게 대형화물트럭을 주차를 시켰다. 조금 전에 전화를 받지 않던 차량 운전기사에게
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몇 회 계속해서 울린다. 이제야 전화를 받는다.


“예, 지금 나가고 있습니다.”
차량 운전기사가 뛰어나오더니 머리를 굽실거린다.
“아저씨, 죄송합니다.”
“전화를 몇 번이나 했는데도 왜 안 받습니까?”
“지하주차장 2층에 있으면 전화가 안 터집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신축공사가 거의 마무리 되고 있는 2단지 아파트는 지상에는 차가 주차할 수도 없는
아파트로 설계되어 건축하고 있었다. 건너편에 조금 전 주차를 하고 있는 기사에게 호루라기를
불어 신호를 보냈다.


“아저씨, 이쪽으로 오십시오, 이 자리에 주차하십시오.”


공사장 안에는 살수차가 오지 않음으로 덤프트럭과 자재를 나르는 차량들과 공사
관련 기계를 실은 차량들의 왕래가 잦아 흙먼지가 일어났다.
수시로 긴 줄 호수로 연결해서 물을 뿌린다.
그러면서도 안전모를 쓰지 않은 근로자가 있는지 살펴야 한다. 잠시도 긴장을 풀 수 없다.
안전모를 쓰지 않고 쇠 파이프를 어깨에 메고 가는 사람이 보였다.
영구의 목에 호루라기로 휙 하고 큰 소리로 신호를 보냈다.


“아저씨 안전모를 안 썼습니다.”
“죄송합니다. 담배 한 대 피우느라고 안전모를 벗고 있다가 정 소장이 파이프 좀
갖다 달래서 깜박 잊었습니다.”
“아저씨, 공사현장에서는 여하를 막론하고 안전모를 벗으면 안 됩니다.
쉬는 시간에도 안전모를 벗고 쉬면 안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안전모를 쓰지 않고 쇠파이프를 나르던 인부는 후에 두 사람이 친해진 사이가 되었다.
기구한 운명을 타고 태어난 사람이라 영구가 누구보다 각별했던 이용택이란 사람이었다.
공사장 안에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경비원들의 말을 잘 들었다.
어쩌다 예외인 사람 몇을 빼고 나면 평소에 말 듣기하고 다르다.
이리저리 바삐 뛰어다니다 보니 현장작업 마치는 시간이 되었나 보다. 갑자기 쇠를
깎는 소리, 포클레인 엔진소리, 망치 소리가 멈추고 조용해진다.
그리고 어렸을 때 산에 풀 베러 갔다가 잘못해 불개미집이라도 건들기라도 하면 수많은
불개미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왔다 갔다 아우성인 것처럼 요란스럽기만 하던 작업현장에
일하는 소리가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