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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게시판 스크랩 느림의 미학 310 지~~똥!! 속리산 문장대(1,054m)
홍진후 추천 0 조회 194 16.06.09 21:2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16.  5.  26. 06;00

여기에 바위채송화가?

집을 나서며 화단에서 바위채송화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고도계를 아무리 봐도 25m인데, 8~9월 1,000고지에서나 볼 수 있는 바위채송화가

내 집의 화단에 피었다니 믿을 수가 없어 카메라로 찍고 폰으로 다시 찍는다.


2009년 8월 6일 가평 석룡산 정상(1,147m) 부근인 995봉에서 만났고,

양평 백운봉(940m) 정상에서 만났던 돌나물과 바위채송화를 바라보는 내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김태정 박사의 한국의 야생화 책에는 개화기가 8~9월로 되었는데 자연의 생태계가

이렇게까지 뒤죽박죽되었는가.


5월 하순이나 돼야 피던 아까시가 4월말부터 피어 다 떨어졌고, 이팝나무 회화나무꽃도

산딸나무꽃도 다 떨어졌다.


책에 기록된 개화시기가 이젠 맞지 않으니 무엇을 믿어야 할까.

바위채송화를 만나 반가운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기분이 묘하다.


10;40

4년 만에 다시 만난 속리산 정이품송의 고고한 자태는 예전 모습 그대로이다.


내가 가까이 다가서면 세조가 왔을 때처럼 가지를 들어 올릴까.

천연기념물 제103호인 정이품송(正二品松),

원추형인 노송은 수령이 약 600년이 된다며 16m의 키에 허리둘레가 4.5m나 된다.


조선 7대 왕인 세조의 어가(御駕)가 노송에 걸리자 밑가지가 저절로 올라가

무사히 통과를 하고, 세조 임금이 즉석에서 정2품의 벼슬을 하사 하였다고 하는데,

당시에 정2품이란 판서, 대제학, 지사에 해당하는 고위직급으로 지금의 장관과 동격인

벼슬이다. 


11;00

속세를 벗어나고자 속리(俗離)를 찾았건만 속리의 입구는 속세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아낙네의 호객소리를 귓등으로 흘리며 산행준비를 한다.


1983년 8월 아버지 장례를 치루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지 못해 이곳에 숨어 통곡을

했던 속리산관광 호텔의 낡은 모습은 그대로구나.


속리산이 이렇게도 좋은가?

배낭을 꾸리며 마음이 설?지.


1600년 서호유람지(西湖遊覽志)를 쓴 '전여성'은 산(山)사람이 갖춰야 할 산인오조

(山人五條)를 말한다.


첫째는 산흥(山興)이고,

         산수에만 탐닉하여 공명(功名)을 돌아보지 않고, 산에 미쳐 산에만 가면

         없던 기운이 펄펄 난다.

둘째는 산족(山足)이며,

         깡마른 골격의 가벼운 몸이지만 산을 타는 기본 체력을 갖춰 번거로운 지팡이를

         쓰지 않고도 위태로운 곳을 오르고 험지를 나는 것 같이 오르내린다.

셋째는 산복(山腹)이라,

         체질 자체가 산에 최적화되어 있어, 맑은 풍광을 목격하면 문득 취한 듯 배가 불러

         밥은 하루 한 끼면 족하고 물은 하루 열 번만 마시면 된다.

넷째는 산설(山舌)을 말 하는데,

         형상의 오묘함을 낱낱이 묘사하며 산수의 빼어난 곳을  깊이 음미하여 시(詩)로

         산의 형세를 말하고, 유람한 산수(山水)를 꼼꼼한 기록으로 남긴다.

다섯째 또한 산복(山僕)이라,

         복(僕)은 하인을 말하는데 기이한 경치를 찾아내고 숨겨진 곳을 들춰내어 

         주인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 표정만 봐도 뜻이 통하는 조력자를 말한다.


즉 산에 대한 흥취, 산을 타는 체력, 산행에 최적화된 체질, 기록으로 남기는 성실성,

훌륭한 조력자 등 이 다섯 가지가 산행에서 요구되는 산 사람의 조건인데,


이중에서도 넷째인 산설(山舌)을 중요시 한다는 '정민 교수'의 세설신요(世說新語)가

생각난다.


나는 5가지 중 어느 것에 해당될까,

산행을 자주 해도 속도를 내지 못해 느림의 미학이라는 가면(假面)을 쓰고 천천히

올라야 내 몸에 맞으니 산족(山足)은 아닐 거고,


산에 미쳐 기운이 펄펄 나는 산흥(山興)도 아니며,

산행 중 배가 고프면 수시로 먹어야 하니 또한 산복(山腹)도 아니요,

숨겨진 곳이나 기이한 경치는 내가 직접 찾아내니 조력자인 산복(山僕)도 아니다.


그래도 산행 중 틈날 때마다 메모를 하고 사진을 찍으며 기록을 남기려하니 겨우

산설(山舌)에 해당되는 걸까.

숲길을 걸으며 헐떡이는 숨을 달래고, 문득 정민 교수의 글이 생각나 서둘러 제목만

메모를 한다.


산족도 좋고 산흥도 좋고 산설도 좋지만 나는 이런 지엽적인 것보다는 산을 닮고 싶다.


때가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변하고, 온갖 동식물을 먹여 살리는 무위(無爲)의 산(山),

끊임없이 생멸변화(生滅變化)하는 무상(無常)의 산을 닮고 싶은 거다.


거대한 불상이 서있는 법주사를 지난다.

들어갈까 말까 망 서리다 하산 후 들리기로 한다.


물론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그때 가봐서" "갈까 말까 생각 중"이라는 중심을 못 잡는

말인데 오늘은 영락없이 내가 그 꼴이다.


내가 절에 들어가기 위해 산으로 드는 것이 아니고, 산으로 가기 위해 절을 지나는 것뿐인데

법주사를 스쳐 지나며 왠지 마음이 무겁다.


11;30

숲 향기가 물씬 콧속으로 들어온다.

이름 모를 풀 냄새, 아카시 꽃잎 떨어진 나무 등걸이 살짝 썩는 냄새가 봄바람에 섞여

내 살갗에 닿는 기분이 매우 상쾌하다.


꽃도 좋고 눈 쌓여도 좋은 길이지만 앞을 가리지 못할 정도의 장대비가 내릴 때, 

소낙비에 온몸을 적셔가며 이곳을 걸으면 어떨까.


몇 년 전 올랐던 포천 국망봉 같이 비를 흠뻑 맞으면 몸이 깨어나고 마음이 거뜬해질 것만

같은 오리숲을 걷는다.


숲 속에서 '광대수염'이 억센 수염을 자랑하며 흰 꽃을 피웠다.


11;40

얼마 전 화장실에서 막내 승현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지, 할미" 부르다 반응이 없으니 "애비야 에미야!" 부르다 급기야는 "여보 여보!"하며

소리친다.


아기의 다급한 목소리에 놀라 화장실로 뛰어가니 대변을 놓고 나를 불렀는데 내가

반응이 없으니 그간 어른들이 사용하던 호칭을 기억을 해 다 부른 거다.


화장실에 들어가니 "지~똥!"하며 승현이의 얼굴엔 땀이 흐른다.

한참 나를 부르다가 반응이 없으니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그렇지 "애비 에미 여보" 소리까지 외치며 불렀으니 식구들이 다 가가대소

(呵呵大笑)를 한다.


삶이라는 백지 위에 그림을 처음 그려 나가는 아기들은 순수(純粹)하기에 저도 모르게

무위(無爲), 유위(有爲), 무상(無常)을 다 가져 어른들의 말투와 행동을 배워나간다.


따라서 서로 언행(言行)에 신중과 조심하기로 약속을 한다. 

나 역시도 산에 들어오면 산이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산이 되고 싶은데, 때가 너무

묻었으니 가능할까.


긴 세월 참으로 지독한 고집을 부렸지.

초등학교 시절 세로쓰기로 발간이 되던 조선일보를 읽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이 신문을

애독한다.


몇 년이나 되었을까?

덕분에 한문 실력도 많이 늘었고, 머리속엔 보수성향이 박히기 시작해 평생 보수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왔다.


매일 신문을 읽지 않고는 배기질 못할 정도로 깨알 같은 글자를 토씨 하나 빼먹지

않고 자세히도 본다.

잠에서 깨면 제일 먼저 조간신문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게 생활의 첫 순서지.

그러고 나서 조깅이나 산책을 하고 아침식사를 하는 건 누구나 비슷한 생활의

일부지만 수십 년 세월 빼먹지 않았지.


근데 지난 4.13일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다음 날부터 신문도, TV뉴스 시청도 싫어졌다.

재수 없는 인간들이 신문의 지면을 꽉 채우는 게 보기 싫다.

그동안은 세상걱정을 하며, 미래의 청사진도 그려가며 정부를 응원했는데 이젠 싫다.


처음 며칠은 혹시나 하며 세상일이 궁금하였지만 한 달이 지나가니 이젠 궁금하지도,

걱정도 되지 않는다.

내가 걱정과 참여를 하지 않아도 세상은 무위(無爲)라는 자연의 법칙에 의해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세상일에 관심을 끊으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비로소 보이고,

서서히 비움을 실천하니 어느새 대자연이라는 환경이 내 머릿속을 지배한다.


나도 아기와 같이 순수(純粹)해지는 단계에 있는 건가.

이젠 산 같이 되고 싶다.

산처럼 묵묵히 포용을 하고 탄생과 소멸이라는 과정을 받아들이고 싶다.


물을 가득 머금어 여유로운 저수지의 물을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니 사람의 인기척이

반가운지 갈겨니 등 온갖 물고기들이 떼로 몰려든다.

관광지라서 물속의 고기마저 사람들 손에 길들어졌나 보다.


신록으로 빛나는 숲,

산길 옆으로 흐르는 계류 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이제부터는 세상 시름을 잊으며 물소리를 밟고 정상으로 오르자.


소나무 사이로 무수히 보이는 참나무 단풍나무의 새잎이 와글거리고, 햇볕을 신나게 받은

때죽나무 흰 꽃이 숲 속을 밝힌다.


아침안개 곱게 피워 퍼져 나가더니 산속의 세상을 박무(薄霧)로 채운다.

물가에 살짝 깔린 안개는 내가 지나갈 때마다 가벼운 소용돌이를 치고, 계곡물 위에 선

하얀 물안개는 소리 없이 허공을 맴돈다.


파란풀잎에 살포시 내린 이슬방울에 영롱한 빛이 스며들고,

잠시 들려 손이라도 닦고 싶은 목욕소의 맑은 물에 햇볕이 살짝 내려앉는다.


12;00

탐방지원센터에서 세심정까지 2.7km에 1시간이 걸렸구나.


문둥병에 걸린 세조의 목욕탕인 목욕소(沐浴沼)를 지나 세심정에 도착한다.

이정표엔 여기서 문장대까지 3.3km 거리로 약 2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안내를 한다.


세심정(洗心亭)에서 복장정리를 하며 마음도 정리한다.

현란한 세속을 떠나 마음을 씻고자 해도 콘크리트길 위에서 세속의 마음을 씻으려면

시간이 걸리겠지.


세심정을 지나 조용한 숲을 걷는다.

                  

            <         속리인(俗離人)


                    세상사의 갈등과 갈증이 사라진 곳.

                    속세의 소리는 사라지고

                    자연의 소리만 귓전에 맴돈다.


                    한가하고 고요하니 적정처(寂靜處)요,

                    다툼이 없는 곳이니 무쟁처(無爭處)라,

                    인간세상과 멀리 떨어진 원리처(遠離處)에서

                    나는 진정한 속리인(俗離人)이 되려고 애쓰는구나.                  석천>


여기서 인간은 자연의 한 조각이고 나는 그 속의 풍경이 된다.

세월이 내려앉은 풍경을 고작 백 년도 못사는 인간이 어떻게 평(評)을 할 것인가.


계곡물소리와 바람소리가 합쳐져 자연의 오케스트라가 된다.

자연의 교향곡은 삼라만상보다 복잡한 사람의 기분을 맞춰주고 풀어주는 재주가 있다.


내가 이 시간 듣고 싶은 음악은 모짜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피아노 협주곡이 아니다.

우울하고 눈물이 날 때 듣고 싶은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도 아니요,

또한 사랑의 감정이 녹아든 말러 교향곡 5번도 아니다.


이렇게 혼자 걷는 숲길에선 쓸쓸한 브람스도 아니고, 생기 넘치는 비발디의 사계 협주곡은

더욱 아니다.


어쩌면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와 물소리, 새소리가 협주하는 대자연의 교향곡과

함께 바흐의 합창곡을 원하는 걸까.

깊은 산속에서 대자연의 교향곡과 함께 쇼팽의 즉홍 환상곡을 떠올리며 흥얼거린다.


한 때는 클래식 음악에 빠져 봉급 30만 원을 받던 당시 장당 3만 원이나 하는 LP 원판을

수백 장 씩이나 소장 할 때가 있었지만 디지털 CD로 교체를 하고 처분을 했지.


12;14

시심마교(是甚磨橋)에 새겨진 '이멋고'다리라는 뜻은 무엇일까?

불교에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선(禪)을 참구(參究)하는데, 필요한 의제(疑題)로 

1,700가지 화두(話頭)가 있다고 한다.


그중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 시심마(是甚磨)'라는 것이 있다.


이 뜻은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 "나의 참 모습은 무엇인가."라는 의제(疑題)를

의심(疑心)하기 위하여 "이뭣고"하며 골똘히 참구(參究)하면 본래면목(本來面目),

즉 참나 (진아 眞我)를 깨달아 생사(生死)에서 해탈(解脫)하게 된다고 한다.


이 다리를 건너며 "참 나는 무엇이던고?" 하던 진제 스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뭣고다리를 지나며 거친 숨을 몰아쉬게 하는 이 언덕은 깔딱 고개인가 아님 할딱 고개인지

숨이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다.


거친 바위에 뿌리를 내린 거송(巨松)의 나뭇가지에서 종달새가 천상의 소리를 낸다.


두 사람이 다가서는데도 날라 가지 않고 맑은 소리를 내니 이곳에선 새도 불도(佛道)를

닦는지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숲에 햇살이 스며들진 않았지만 초록은 눈이 부시게 한다.

초록이 빛나는 숲엔 소나무를 비롯한 침엽수와 울창한 활엽수가 빼곡히 들어차

내가 들어갈 여백을 주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엔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험난한 산길이지만 실제로는 유순한 길이 이어진다.

절경으로 이어지는 협곡은 어디 한 군데 모난 구석이 없고, 숲 속에 안기며 나는 또다시

추억여행을 한다.


40년 전 비가 쏟아져 급히 짐을 챙기며 "내 코펠"하며 찾던 여직원을 혼내주던 총각 때의

내 모습이 숲 위로 스크린 된다.


급하게 앞만 보고 살아온 인생.

남들보다 정상에 빨리 오르려고만 했던 세속의 삶이 여기서는 소용 없다.


빨리 오르면 인생의 끝이 보이는 걸까?

산에서의 속도는 별 의미가 없다.

속세에서 급하게 살던 버릇은 여기서 허무(虛無)일 뿐이다.

 

다른 일행이 산짐승에게 쫓기기라도 하듯 빠른 걸음으로 하산을 한다.

문득 한라산에서 우생마사(牛生馬死)를 생각하며 글을 썼는데 저 사람들도 우생마사가

아닌가.

나는 그냥 내 몸에 맞는 속도로 오른다.


산을 타는 사람들 대부분은 등정주의냐 등로주의냐를 따지는데 우리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

문장대 정상을 목표로 천천히 풍경을 즐기며 오르면 된다.


이게 바로 사람 사는 모습 아닌가.

힘이 들어도 산이 그저 좋아 오르고, 푸른 산을 보면 오르고 싶어 안달이 나면 그게 산꾼의

모습이지.

 

아무 생각도 없고 나지도 않는다.

땀을 버리니 온몸이 다 젖었고 머리도 가슴도 텅 비어간다.

잡념도 미움도 집착도 사라졌다.


13;00

속리(俗離)라,

그래 나는 분명히 세속(世俗)을 벗어나 속리로 들어왔다.


내가 승려가 될 거도 아니고 임경업 장군과 같이 호연지기를 길러 유명한 장군이 될 거도

아니기에 오늘은 세속을 떠나 조용히 산행을 즐기고 싶다.


배낭끈을 다시 조이고 등산로를 오른다.


봄꽃바람이 대단했지.

세상이 봄꽃의 열병(熱病)을 앓으며 4월이 지나갔지.


5월 또한 때를 맞추지 않고 주책없이 핀 이팝나무 아카시나무 흰 꽃이 떨어지더니

산목련이 산속을 메웠다.


                 <          산목련


                      진달래 산길을 밝히고

                      개나리 사람 사는 길거리를 밝혔지.

                     

                      얼음 풀린 계곡

                      물 흘러내리는 곳에

                      뒤질 새라

                      제비꽃이 계곡을 밝혔다.


                      봄비가 몇 번 내렸다.

                      연둣빛이 산허리를 감돌고

                      산벚꽃이 피었다 지더니

                      봄비가 또 내렸다.


                      산벚꽃 이팝나무 꽃이 갔다.

                      봄바람도 몇 번 지나가더니

                      산목련이 내 코끝에 피고

                      새봄은 이렇게 왔다가 가는구나.


                      산목련 피고 지고

                      봄날이 가면 늦봄이 갔다 하는가.


                      꽃이 다 떨어져 

                      봄앓이를 치유하려 했더니

                      여름이 날름 그 자리를 차고 앉아

                      산목련으로 나를 누른다.                                석천>


줄기차게 이어지는 비탈길을 한 시간쯤 오르자 때죽나무 흰 꽃이 나를 반긴다.

숲은 온통 관목들의 진초록으로 빽빽하고 그사이로 등산로가 이리저리 뻗어있다.


허공에는 산안개가 가시지 않고 내 카메라 렌즈를 시험이라도 하듯 맑은 숲을

보여주지 않는다.

따가운 햇살 바늘이 울창한 숲 안으로 들이치지는 못하고 허공에서 맴도는가 보다. 


자연석이 곱게 깔린 길에서 층층나무 단풍나무 야광나무가 하늘을 향해 잎을 쌓아

올리고, 쪽동백 흰 꽃은 엷은 안개를 피워 올린다.


활엽수를 간신히 제친 소나무는 새순을 두 뼘이나 올렸고 노란 송홧가루를 날릴

준비를 마쳤다.


세상과 발 맞춰갈 이유가 없으니 천천히 가자.

아래 머물던 초록이 올라가는 속도로 정상으로 오른다.


늦다고 재촉하는 까마귀 눈치 보지 말고, 시간에 욕심 부리지 말고 천천히 오르자.

세상 사는 일도 다 그렇지만 산에 오를 때 욕심 부린다고 빨라지는 것도 아니고,

빠르면 보이는 거도 제대로 볼 수가 없지.


놓치고 가는 것도 있겠지만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산에서 욕심을 버리고 겸손해지면 호흡이 조절된다.

비움이라,

세상을 살며 나도 참 지독한 욕심꾸러기였지.


내가 세상을 바꿀 것도 아니고 바꿀 힘도 없지만 내가 나서지 않아도 무위(無爲)의 세상은

굴러간다.


이젠 비움이다.

내 머리는 서서히 백치가 돼간다.

순수(純粹)까지 이르지는 못해도 최소한 세상의 찌꺼기는 없어지겠지.


차라리 이곳에 와 머무를까.

하늘에 가까이, 신(神)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는 길에서 처마를 만든 거대한 바위는

그림 같은 평화로운 풍경이다.


13;20

바위 아래에서 한줄기 바람을 맞는다.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고 나는 풍경속의 나그네가 된다.

고매한 진리를 따지지 않더라도 인생의 주인공은 당연히 나고 행복의 주체도 당연히 나다.

 

머리가 더워져 모자를 바꾼다.

이 길에서 내가 짧은 수행을 하는 것도 아닌데 수행자의 마음이 되니 이상한 노릇이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며, 몸을 낮추고 마음을 낮추며 깨달음과 수행자의 고통을 생각하니

말이다.


절벽에 간신히 기대어 선 산목련 나무들이 흰 꽃으로 손을 흔들며 나를 마중하고

바람에 뒤집힌 신갈, 떡갈, 굴참나무 잎의 회백색 뒷면이 드러나 하얗게 빛난다.


숲 사이로 살짝 보이는 바위절벽이 송곳처럼 날카롭다.


혼탁한 세상을 벗어나 마음이 고요해지는 곳,

세속에선 바쁘지만 산속은 여유롭다.


여기가 고단한 삶의 피난처임을 아는지 붉은병꽃의 노란 꽃술이 바람에 일렁인다.

  

14;10

문장대를 목전에 둔 나무계단을 오른다.

산(山)만큼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게 또 무엇이 있을까.


집에서는 아기들이 주인공이지만, 산에서는 내가 자연의 한 조각이자 주인공이다.

최근 동창들의 명단을 정리하며 고인이 된 친구들의 수를 세다가 21까지 세고 숨이 탁 막힌다.

인간세상의 시간을 멈추게 할 수도 없지만 동창회 명부(名簿)가 명부(暝簿)가 된 모양이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밖에 없다.

그러나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중심은 아기가 된다.


이게 내가 바라던 나답게 사는 걸까?

내 고왔던 추억은 사라지고 산에서 행복을 꿈꾸기만 하는구나.


나에게 산은 무슨 존재일까.


인생인가?

고개를 숙이고 계단을 다 올라 정상을 바라본다.


아! 저기가 문장대 정상이구나.

문장대의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나를 내려다본다.  


정상석 앞에 서며 잡념이 없어지고 무념무상(無念無常)의 경지에 도달한다.

아! 여기가 바로 극락이로구나.

내가 밟으면서도 몰랐던 천당이 바로 여기로구나.

 

정상을 이룬 판상절리의 큰 바위는 속리산이라는 산(山) 세상의 꼭짓점이다.

속(俗)을 떠받치는 큰 돌은 바로 성(聖)이다.

이 아름다움으로 속리(俗離)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신선(神仙)을 맞이하는 곳,

아니 신선이 바둑을 두며 노는 곳이기에 나는 성(城)이 아닌 성(聖)을 올랐다.


문장대는 운중악봉(雲中岳峰)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완성했고,

나는 열 폭 동양화에 들어왔다.

우리나라 대표적 판상절리인 문장대를 바라보며 잠시 상념에 젖는다. 


바위가 하늘 높이 치솟아 흰 구름과 맞닿기에 운장대라 했는가.

안내판에는 문장대를 세 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속설을 전하는데,

이번에 세 번째 오르니 나도 극락에 갈 수 있는 모양이다.


별도로 있다는 극락이 아니고 여기가 바로 극락(極樂)이니 나는 전설속의 주인공이 된다.





끝없는 산릉이 박무 속에 꿈틀대며 물결처럼 몰려와 잘나고 거대한 문장대 암봉에 조아린다.

수평절리가 잘 발달된 문장대는 북한산 인수봉과 백운대와 더불어 우리나라 대표적인

판상절리다.


화강암에 작용한 절리 중 수직보다는 수평으로 전개된 판상절리(板狀節理 sheeting

joint)가 잘 발달된 돔 모양의 암봉 형태를 보른하르트(bornhardt)라고 하는데,

이곳의 문장대와 설악산의 달마봉, 장군봉, 천화대의 범봉, 공룡능선의 1,275m봉, 월출산의 

천황봉과 구정봉이 여기에 속한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리산의 얼굴마담인 문장대 정상에 오르는 마지막 계단에 발을 올려놓는다.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도 없지만,

젊게 살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마음이 움츠러든다.

철계단 밑과 난간 옆으로 보이는 천길만길 낭떠러지에 몸도 움츠러든다.

세월이 가면 나도 가는 게 인생의 순리지만 40년 전 올랐을 때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힘들어 하는 여직원 두 명을 수건으로 끌어당기며 올랐던 청춘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높은 산에 올라도, 한밤중에 설악산 마등령을 넘어도 무서운 줄 몰랐는데,

세월이 내려 쌓인 육체를 극복하기가 힘들다고 생각이 드니 문득 무상(無常)한 세월을

감당하지 못하는 내 신세가 서글퍼진다.


그래도 산은 나에게 건강과 영혼이라는 멋진 선물을 주었지.

육체가 힘들고 마음이 움츠러들어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혼은 새로움을 나에게 준다.


비록 육체가 쇠하여도 내 마음은 허공을 날아 더 멀리 더 높이 오르려 하니, 나도 모르게

내 몸은 철계단 난간을 잡고 서서히 허공(虛空)을 오른다. 


14;25

문장대 정상(1,054m)에 선다.

문장대의 높이는 1,028 1,033 1,054m로 지도마다 달라 어느 게 맞는지 나도 모르지만,

바람에 몸이 흔들리고 사방이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선계(仙界)다.


내가 비록 임경업 장군은 아니지만 속리산 산속에서 호연지기를 길렀으니 크게 함성을

질러본다.

함성은 메아리가 되어 내 귓전에 돌아온다.

아래세상을 내려다보니 세상만사가 우습기만 하고 또한 순식간에 흘러간 세월도 우습다.

 

자연의 변화는 그냥 받아들이고 함께 호흡을 하면 된다.

어느 신선(神仙)이 여기에 살까.


나를 내내 굽어보던 정상에 드디어 내가 섰다.

더 일찍 올랐어야 하는데 전설이 풍경이 되어 흐르는 곳.

신선과 사람이 함께 머무르고 싶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산안개가 사방을 지우려하지만 360도 파노라마로 조망이 되기에 방향을 나눠서 보고

또 본다.


문장대는 원래 운장대라 했다.

세조 임금이 이곳에서 시를 읊어 문장대로 칭하게 되었다는데 나도 시를 읊어볼까.


                <     문장대


                    산봉우리는 우뚝 솟았는데

                    꽃봉오리는 다 떨어졌구나.


                    흰 구름은 뜬 구름 되어

                    먼 곳으로 달려가고,

                    시를 읊던 세조도 세월에 스러졌으니

                    내 황혼 인생도

                    때가 되면 떨어지겠지.                     석천   >


정상 바닥 곳곳에 구멍이 패여 작은 우주(宇宙)와 하늘을 담았다.


잠시 보이던 봉우리와 능선에 순식간에 구름바다가 펼쳐지더니 섬(島)이 돼간다.

해발 1,000m가 넘어 한국에서는 고산 축에 들어가는 봉우리에 구름이 넘어간다.

신비로운 능력이 이 산에 있는 걸까.


무수한 산봉우리들이 숨기 시작하고,

산마루에 일렁이는 산안개 속으로 속리산의 역동적인 모습이 감춰진다.


자유롭다.

물과 바람과 같이, 피어오르는 안개구름과 같이 나는 자유롭다.

나를 구속하던 세상의 계율도, 짊어진 삶의 짐도 이곳에는 없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구름으로 여백을 감추는 산을 멍하게 바라보며,

그냥 멍하게 서있는 거다.


정상에 바람이 불어오고 순간 몸이 휘청인다.

어느 순간 내 가슴은 텅 비었다.


인간세상으로 돌아가기 싫다.

순리에 순응하는 것도 싫다.

그냥 이곳에 머무르며 바람 부는 대로 구름 흐르는 대로 살고 싶다. 


지금 내 귓전에 들리는 바람소리는 그 무엇보다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다.

비로소 답답했던 마음이 빈 것을 느낀다.


거칠고 힘 있게 솟아 위세가 당당한 암봉들은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다.

관음봉의 제멋대로 울퉁불퉁하게 생긴 바위들이 멋진 조화를 연출하기에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화강암과 변성퇴적암 지형으로 높은 봉우리와 계곡을 이루고 있어 광명산(光明山),

미지산(彌智山), 소금강산(小金剛山)으로도 불리는 속리산,

운무(雲霧)가 슬쩍 산의 모습을 감춰도 아름다운 자태는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백악산, 가령산, 낙영산 능선이 운무 속에 꿈틀거리고 조금 벗겨지는가 싶더니 다시 안개가

올라온다.


억겁의 세월 구름과 맛닿은 공간에는 구름 냄새가 난다.

산이 스스로의 여백을 지우지만, 이곳이야말로 하늘이 내린 보배고 천국(天國)이요

극락이지.


세속에서는 보지 못하는 장엄한 풍경,

맞닥뜨린 속리산의 풍경에 반해 말없이 바라만 본다.


바위와 어우러진 노송들이 멋진 풍광을 연출하고 구름이 잠시 숨을 고른다.

나 역시 잠시 숨을 고르고 사방을 둘러본다.


감춰졌던 봉우리가 다시 나타난다.

산이 배려를 하는 걸까, 아님 구름이 배려하는 걸까.


구름이 살아 숨 쉬고 산안개가 풍경의 여백을 지우는 곳.

바람이 나보고 문장대에 머무르라 한다.


8봉(峰), 8대(臺), 8석문(石門)으로 불리는 바위봉과 기암은 바위 꽃을 피웠고,

화양계곡을 끼고 도명산, 낙가산, 백악산이,

쌍곡계곡을 낀 칠보산, 막장봉이 작은 바위 꽃을 피웠다면,


우암 송시열 대감이 감탄하고 이름을 지었다는 화양구곡, 쌍곡구곡, 갈은구곡 등

아홉 곳의 비경을 지닌 골짜기가 속리산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운무에 가려지는 비로봉, 입석대, 신선대, 청법대, 문수봉이 신비롭다.

그동안 내가 이 지역의 구병산, 도명산, 칠보산, 속리산 천왕봉을 올랐고, 오늘은

문장대까지 올라 극락(極樂)의 맛을 제대로 보는구나.


다시 몰려온 산안개가 비로봉 천왕봉의 거친 능선의 여백을 지운다.

간절한 소망과 세월이 첩첩이 쌓인 곳에서 삶의 짐을 내려놓고 이젠 하산을 해야겠지.


때 묻은 인간들이 오래 밟으면 성(聖)스런 이곳이 비루해질까 두려워 이곳을 벗어나고자

하산을 서두른다.


4년 전 올랐던 삼파수의 발원지인 천왕봉이 이곳에서 3.4km라 신선대, 비로봉을 거쳐

종주를 할까 잠시 마음이 흔들리지만 나이와 체력을 생각하니 무리하기가 싫다.

이 또한 욕심이겠지.


제멋대로 치솟은 기암단애(奇岩斷崖)들이 멋진 병풍을 이뤘고, 그 사이로 뜬구름 한 조각을

잡으려 희뿌연 하늘에 팔을 뻗어 휘 저어본다.



좁은 공간에 바람이 세다.

오래 머물면 내 세속의 때가 이 바위에도 묻겠지?


14;37

산에서는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위험하고 다칠 우려가 있기에 무릎보호대를

착용하고 자세를 낮춰야 한다.


나무 그림자 사이로 몰려온 산안개가 또다시 풍경을 지우고, 더위를 피하게 해주는

그늘아래에서 잠시 휴식을 한다.



세월에 이길 장사가 없는지 주변 친구들이 알게 모르게 시름시름 앓아간다.

차관급 고위 공무원으로 은퇴 후에도 씩씩하던 고향친구의 어눌한 행동을 당구장에서 보며

뇌경색이 왔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뇌경색이 올 나이지.

세월에 맞설 사람은 없다.

어차피 지나간 삶이란 덧없는 거지만 한 해 한 해 더 약해지는 걸 보면서 마음이 찡해진다.


14;55

신선대와 경업대를 거쳐 세심정 방향으로 하산을 결정한다.

신선대까지는 1.1km를 걸어야 한다.


곳곳에 쇠물푸레의 흰 꽃이 산길을 밝힌다.


속리산은

산비리속 속리산(山非離俗 俗離山)이라는 멋진 글로 묘사를 한다.


'산은 속(俗)을 떠나지 않는데, 속(俗)이 산(山)을 떠나는구나.'

신선대, 경업대, 입석대, 비로봉과 천왕봉을 잇는 백두대간 길을 걸으며 속(俗)을 향해

운행을 한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탐방센터~법주사~ 세심정~복천암~보현재 휴게소~냉천골 휴계소~ 문장대~

신선대~경업대~금강 휴게소~비로산장~세심정~법주사로 이어지는 15.8km로

약 6시간 20분이 걸리는 장거리 산행이기에 수시로 물을 마시며 체력을 보충 한다.


길이 거칠어도 그냥 한 걸음 한 걸음씩 옮길 뿐 답답하거나 불안하지도 않다.

예전에 이곳을 걸었던 내 기억으로는 위험 구간이 없다.

 

평탄한 길도 없이 깔딱 고개를 오르며 숨을 헐떡였더니 이제는 내리막길이다.

내리막길을 다 내려가니 다시 옆으로 돌아가는 길이 나오고 영락없는 우리네의

인생길이다.


다시 나오는 오름길에 숨을 헐떡이며 인생길을 생각한다.

앞으로 가야할 황혼의 인생길은 나도 모르고 정답도 없는 길이지.


인생은 늘 교과서대로 되는 게 아니지.

물론 정답이 필요하지만 인생에 준비된 정답은 없다. 

힘이 들어도 용기를 내고 힘을 내어 뚜벅뚜벅 걸어갈 뿐이다.


노송과 어우러진 기암봉은 멋있다고 하기 보다는 나를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매력을 풍긴다.

암벽등반을 배웠더라면 저곳에 올랐을까?

20년 전인 1996년 코오롱 등산학교에 입교 신청을 하였지만 나이가 문제 되어 입학이

되지 않는다.


그 후 영암 월출산에서 만났던 등산학교 관계자들,

나를 기억하던 그 사람들과의 다시 만남은 우연(遇緣)일까?


필연(必緣)이 되지 않았기에 그들과 깊은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암벽 등반은커녕 이런

악산(岳山)에서 헐떡대는 내 모습을 그들이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15;55

문장대를 떠나 한 시간 만에 신선대에 도착한다.


문수봉과 청법대를 지나며 신선들이 백학(白鶴)을 데리고 놀았다는 신선대에서

시 한수 읊고 싶다.


옛날 신선들이 함께 모여 수도를 하던 곳,

멀리서 보면 신선들이 보이나 막상 신선대에 이르면 신선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곳을

우리가 점령했으니 내가 신선(神仙)이 된 거다.


16;11

입석대와 경업대가 나온다.

요즘 세상이 혼탁하고 어지럽다.


이런 난세에는 불세출의 영웅이 나타나 세상을 구하는 게 역사의 진리인데,

경업대에 서린 임경업의 혼백(魂魄)에 부탁을 해볼까?


임경업이 무예를 연마하던 경업대에 올라서니 크기를 헤아릴 수가 없다.

바위와 바위가 맛 물려 기세 좋게 산상(山上)에 멋진 예술작품을 만들었다.


바위 틈 사이로 푸른 노송들이 뿌리를 박고 용트림을 한다.

저 노송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버린 임경업의 한(恨)을 들었을까,

아니 경업이 푸른 기개를 갖고 지르던 함성을 들었겠지.


마치 사람이 잘라 세워놓은 모습의 입석대(1,016m)가 산상에 외롭게 서있다. 

속리산 관음암에서 독보대사로부터 무예를 전수 받은 임경업 장군은 자기 실력을

시험하기 위해 경업대의 바위를 둘로 갈랐다고 하며,


입석대는 임경업이 7년 수도 끝에 내공을 과시하기 위해 누워 있던 바윗덩어리를

번쩍 일으켜 세웠다는데, 황당한 과장으로 보기 보다는 전설(傳說)은 전설로만

즐기며 그냥 그의 특출했던 무공(武功)에 흥미를 느낀다.



산골짜기는 깊고 넓어 웅혼하다.

이 공간의 기(氣)와 빼어난 바위, 노송이 어우러진 경관은 가히 선경(仙境)이로다.

또한 아찔한 단애(斷涯)와 신선대, 입석대라는 산마루가 어울리니 이 또한 묘경(妙境)이라,

하산하지 않고 이곳에 머무르고 싶다.


골짜기를 타고 바람이 올라온다.

나는 은밀한 적막(寂寞)에 휘감기며 바위에 걸터앉는다.


임경업이 연못가를 거닐던 어느 날 수면 위로 떠오른 용(龍)의 아가리에서

빼냈다는 전설의 용천검(龍泉劍)은 일본인들이 약탈해가 현존하지 않으며,

임경업의 칼 중 현재는 추련검(秋蓮劍)만 임경업 기념관인 충주 충렬사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무협소설이나 역사소설에 등장하는 명검의 목록에는 용천검과 추련검이 자주 나오고

이밖에도 어밀검 복밀검 등이 있다.


추련검엔

때여! 때는 다시 오지 않나니                時呼時來不在來

한 번 나서 한 번 죽는 것이 이와 같네.    一生一死都在?

장부 한평생 나라에 바친 마음              平生丈夫報國心

석 자 추련검을 십 년 동안 갈고 갈았네.  三尺秋蓮磨十年 라고 임경업이 쓴 검명시

(劍銘詩)가 새겨져 있다고 전해진다.


시인(詩人)이 아니라서 예술성이나 작품성은 모르겠지만 사내 대장부로서 남다른 기백과

용기를 나타내는 참 멋진 시(詩)로다.


독보대사에게 무예를 전수 받은 임경업 장군이 칼로 내리쳐 쪼갰다는 금강석문(金鋼石門)의

돌계단을 내려가니 관음암이 나온다.


여기에서 수련을 마친 임경업은 25세에 무과(武科)급제를 한다.

그는 1624년에 터진 '이괄의 난'을 평정하고, 친명반청(親明反淸)의 선봉대장으로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거쳐 조선과 명나라에서 용맹한 무장으로 활약을 한다.


조선시대의 용장(勇將)은 항상 간신들의 등쌀에 시달렸다.

이순신 장군도 힘들었지만 임경업 장군 역시 간신의 대명사인 김자점(金自點) 일파의

모함으로 역모 죄를 뒤집어쓰고 고문을 받다가 원통한 최후를 맞는다.


시간이 허용된다면 이곳에서 서녘으로 기우는 붉은 해를 바라보며 그의 넋을 달랠 텐데,

아쉬움을 안고 임경업의 꿈과 하늘을 찔렀던 기개(氣槪)를 추모하며 발길을 돌리려다,

일부는 먼저 내려가고 뒤따라오는 팀을 기다리느라 경업대에서 잠시 머무른다.


산행 중 혼자 떨어져 경업대를 걸으니 비로소 속세를 떠난 분위기가 난다.

인간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분위기를 혼자 만끽하다가 철계단을 내려온다.


16;40

금강골 휴게소의 문은 굳게 잠겨 있고, 이마에선 쉴 새 없이 땀이 흘러내린다.


세속의 소리에서 벗어난 숲 속에선 새소리와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이 속에선 땀을 닦는 것도 사치일 거 같아 흐르는 대로 내버려둔다.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고 찾아온 황혼,

가슴 설레던 청춘은 추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무릎보호대를 다시 정리하며 황혼의 즐거움과 여유는 낙조의 쓸쓸함으로 바뀐다.


자연스런 노화현상은 누구든지 신체의 일부분을 옛날 같지 않게 만들기에

잠시 쉬면서도 공통되는 화제는 건강이다.


해가 지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햇볕이 스며들지 않는 숲은 서서히 어둠을 준비한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청춘,

나에게만은 은퇴란 게 없을 줄만 알았던, 기고만장했던 교만도 사치와 추억으로 사라졌지.

지금 이 나이라면 돈, 명예, 술, 사치 등의 유혹에서 버림받는 걸까, 아님 해방되는 걸까.


쾌락과 탐욕에서 버림받는 황혼이 아니라 해방되는 것이라 애써 부정을 하지만,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자연이 순환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나이가 어찌 되었던 이제는 자유와 여유를 느끼며 삶의 짐에서 슬기롭게 해방이 되자고 한다.


17;07

암반 위에 둥그런 바위가 올라앉았다.

흔들바위를 화백이 두 손으로 흔들어대니 육중한 바위가 조금씩 흔들린다.

사람의 힘에 의해 흔들리는 것도 경이롭지만 둥근 바위덩어리가 이곳에 어떻게

생겨났을까.


이 흔들바위와 같은 토르(Tor)를 돌알바위(核石 core stone) 또는 암탑(岩塔)이라고도

하는데, 화강암의 구상(球狀)풍화라는 현상이라고 학자들은 설명한다.


수직과 수평으로 직교하는 격자상의 절리에 의해 묘하게 만들어진 암괴 지형 Tor는

주상절리 지대에선 보기 어렵지만 북한산, 도봉산, 월출산, 속리산, 월악산, 계룡산 등

판상절리 지형에선 흔하게 볼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흔들바위가 설악산 울산바위 아래 비탈에도 있고, 대구 비슬산(琵瑟山)

대견사지(大見寺止)에서도 멋진 Tor를 만났지.


거대한 바위를 받치는 노거수(老巨樹)와 흔들바위는 속리산의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이름 모를 작은 폭포의 물소리가 제법 우렁차다.

이름 팻말이 없으니 내가 이름을 붙일까.

용문산 마당바위 아래 작은 폭포를 '흥만 폭포'로 지었으니, 여기는 '석천 폭포'로 이름을

붙여야겠다.


얼마 남지 않은 하산 길엔 한가함이 묻어있다.

이렇게 숲 속의 물가에 있던, 대처(大處)에 있던 마음속에서 느끼면 한가함이 아니겠는가.




18;00

6시간 20분에 걸친 문장대 코스가 끝나간다.

모처럼 긴 코스를 탔지만 피곤은커녕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마음속에 남았던

세속의 찌꺼기가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속세의 번잡함을 잊은 지 오래구나.

하산을 하고서야 세속에서 벗어나 속리(俗離)에서 아름다운 하루였음을 깨닫는다.


18;14

예정시간보다 다소 늦게 속리산의 대표사찰인 법주사에 도착한다.

서기 533년 신라 진흥왕 때 의신이 창건하였으니 1,483년이나 되었구나.


천년 고찰이 많은 우리나라지만 1,500년이나 돼가는 법주사 금강문을 들어서며 마음이

숙연해진다.


금강문을 통과하니 거대한 금동불상이 나를 압도한다.

산행을 하기 위해 늘 이곳을 지나가야만 했던 법주사의 거대한 불상이 산객을 초라하게 만든다.


900㎡의 면적에 온통 금을 발라 눈부신 금동대불은 신록을 뽐내는 숲에 비해 생뚱맞고

사치스럽게 보인다. 


몰려드는 관광객에 늘 시끄럽기만 했던 법주사의 경내는 시간이 늦은 탓인지 관광객은

몇 사람 없고 조용하다.

법주사 경내를 거닐며 한적하고 청량한 청취를 바랐던 나 혼자만의 욕심이 채워진다.

깊은 산속에 들어와서까지 내 욕심을 가지려하니 비우려면 아직도 멀었다.


금 80kg을 입힌 거창한 금동대불의 오만함은 유아독존(唯我獨尊)이다.

저 돈으로 힘든 이웃을 구휼하였더라면 부처님의 자비가 더 빛이 날 텐데 아쉽기만 하다.


내가 잠시 마음을 바꾸니 추상같이 위엄을 가졌던 금동불이 속(俗)을 부드럽게

안아주는 성(聖)의 모습으로 바뀐다.

이래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걸까.


사대천왕께 문안을 드리려 사천왕문으로 들어선다.

키가 4m가 넘는 네 명의 장수가 양쪽에서 눈을 부릅뜨고 중생을 내려다본다.

눈은 왕방울만 하고 콧구멍은 뻥 뚫리고, 눈썹과 콧수염 턱수염은 온갖 색으로 멋을

잔뜩 부렸다.


사천왕의 제각기 얼굴엔 공통점이 있다.

얼굴엔 호탕한 기운이 서리고 당당하면서도 익살스럽다.


저마다 다른 얼굴이지만 더 우스운 것은 당당한 얼굴에 투구가 아닌 예쁜 꽃으로 만든

화관(花冠)을 써 다소 엉뚱하다.



대개의 사찰엔 천왕문이 한 곳이지만 특이하게도 법주사엔 금강문에도 금강역사가 있고,

안쪽으로 천왕문이 있는데,

첫 번째 금강문의 사대천왕에게서 발견하지 못했던 특이한 모습을 본다.


갑옷을 멋지게 차려 입은 천왕들은 비파, 삼지창과 푸른 장검을 겨누기도 하고,

어떤 천왕은 용과 여의주를 잡고, 두발로 악귀(惡鬼)들을 지그시 누르고 있는데,

악귀들은 하나같이 귀엽고 천진난만한 얼굴로 장난기가 발동하였는지 자기 몸보다 큰 발에

눌렸어도 별로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여유와 위엄, 웃음이 사라진 엄숙한 사천왕문에서 불교의 해학(諧謔)을 보는 것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주택은행 인사부에 근무할 때니 1987년이구나.

연성휴가 대상 직원과 직원 가족을 인솔하고 설악산에 도착한다.


당시에는 설악산 국립공원 정문에서 입장료를 받고,

신흥사 사천왕문 앞에서 문화재 관람료라는 명목으로 또 입장료를 받아 두 번을 냈다.


짜증이 난 나는 "중놈들이 염불은 하지 않고 돈만 밝힌다."라며 불만을 말하기가 무섭게

사천왕문 안에서 날라 온 벌(蜂)이 아랫입술을 쏜다.

가뜩이나 두툼한 아랫입술이 벌에 쏘여 부어오르니 거울을 보기가 두려울 정도로

민망하다.


인솔기간 중에 부하직원이 인사부에 벌에 쏘인 과정을 지휘 보고해, 한동안 놀림감이

되기도 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국보 제55호인 팔상전 앞으로 스님이 한가로운 걸음을 옮긴다.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5층 목조탑의 벽면에는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한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는 건물이다.


덩치가 큰 스님이 팔상전에서 국보 제5호인 쌍사자석등 앞으로 걸어온다.

덩치만큼이나 큰 얼굴의 상호(相好)는 우락부락하다.


나하고 눈이 마주치자 스님은 우락부락한 얼굴과는 달리 눈에서 선한 빛을 보내며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그린다.


양아치로 느껴졌던 그의 첫인상은 지워지고 나 역시 그에게 소탈한 미소를 보낸다.

수많은 세월 고통을 이긴 수행(修行)으로 스님은 억셌던 인상을 부드럽게 만들었나 보다.


입가에 머금은 미소는 보는 나의 마음까지 맑고 시원하게 해주길래,

불교와 사자(獅子)와의 관계, 그리고 국보 제5호인 쌍사자석등에 대해 문의를 하니

"입을 벌린 수사자는 염불을 뜻하고, 입을 다문 암사자는 참선을 뜻하며,

염불과 참선으로 석등을 온 누리에 밝힌다는 뜻"이라고 간결하게 설명을 해주지만,

불교와 사자, 코끼리의 상징에 대해서는 시간의 제약을 받아 설명을 듣지 못한다.



미국 링컨 대통령의 어록이던가?

“마흔 살이 넘은 사람은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했지.

사람의 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평생을 고객(顧客)이라는 사람을 상대로 영업을 하며 첫인상을 중요시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 건네주는 명함을 보며 슬쩍 얼굴을 쳐다보는 게 나의 오래된 습관이다.

누구나 느끼는지 모르지만, 한 사람의 표정과 인상은 주변에 행복감을 주기도 하고

불안하고 불쾌한 감정을 일으키기도 한다.


격동의 시대를 거쳐 산업화와 정보화시대를 숨 가쁘게 달려온 사람들의 인상은 험악하다.

얼굴엔 무언가 모르게 초조와 불안이 겹쳤고 부드러운 미소를 찾기란 매우 힘들다.

물질의 발달과 풍요로움은 정신적 안정과 발전을 주기는 했겠지만 완전히 주지는 못한다.


스님이라는 성직자(聖職者)는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분야다.

따라서 중생과 교감하면서 위로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에 세상 사람들의 분노를 녹이고

행복감을 키워주는 미소가 저절로 나오는 모양이다.


철산지점장 시절 갑(甲)질이 심한 두 사람의 고객이 있었다.

한 사람은 당시 나이 칠십이 넘었는데 창구에만 오면 직원들에게 이유 없이 시비를 걸고

본점에 항의 전화를 해대는 악질 고객이다.

지점장실에서 면담을 할 때는 고분고분하다가 창구에만 가면 직원들에게 시비를 걸어

괴롭힌다.


그에게는 약자를 괴롭혀야 한다는 일종의 트라우마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조건으로 KB와 거래를 해지하게 하고 은행에서 쫓아낸다.


또 한사람은 창구에서 아무리 잘해줘도 온갖 불만을 토로하고, 트집으로 직원들을 괴롭혀 

직원들이 싫어하는 기피 대상 고객 1호였다.

내가 면담을 하니 사람이 고분고분하고 형님 자랑을 많이 한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 고객이 자랑스러워하는 형님이 나하고 가까운 동창이다.


넓으면서도 좁은 게 세상인가 보다.

형이랑 가까운 친구라고 하니 항상 찌들었던 표정이 온화해지고, 그 다음부터는 직원들과

관계가 원만해진다.


정년퇴임을 며칠 앞둔 날 차 한 잔을 마시며 이야기한다.

그는 이상하게도 화가 나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은행에 오게 되고, 그 때마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대화가 진행돼 화를 많이 냈는데 이제는 괜찮다고 한다.


살짝 웃는 모습에서 그의 진실한 모습이 보였는데 지금도 사업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형이 전한다.


때로는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매끄러운 언변이 아니더라도 마음을 열고 웃으며

한 마디를 하면 서로간의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스님의 미소에서 배운다.


18;24

스님들이 범종과 법고를 치기 전에 몸을 풀고 있다.

아침 예불 때는 33번, 저녁 예불 때는 28번을 타종(打鐘)을 한다.


18;30분 범종에 28번 타종을 하고, 이어 마음 심(心)자 형태로 법고를 두드리며

마음을 가라앉히게 하는데, 

장엄하고 숙연한 풍경을 보지 못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18;40

몸을 씻고 창가로 다가선다.


고운 저녁햇살  창가에 스며들고, 콧구멍에는 진한 커피 향이 스며든다.

진한 커피 향에는 그리움까지 녹아들었나 보다.


믹스 커피 향이 내 후각을 자극하고 창밖의 신록이 또 나오라고 유혹을 한다.

평화로운 창밖의 풍경을 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여유를 가지니 나야말로 행복한 사람이다.


몇 시간의 산행에 긴장했던 근육과 마음이 부드럽게 풀어진다.

커피 향 덕분인가 아님 시간의 고마움일까.

산행을 하며 치열하게 심장에 고통을 주었던 시간이 지나갔으니 차 한 잔의 여유로 마음을

다스린다.


2016.  5. 27. 08;40

전날 속리산 문장대의 킨코스에 지친 근육을 풀고자 괴산 산막이 옛길을 찾는다.

작년 7월 23일 이곳에 왔고 오늘 두 번째 이곳에 입구에서 꿀풀이 나를 맞는다.


작년엔 흰여로, 둥근이질풀, 원추리, 패랭이, 외대으아리, 기린초, 참나리를 만났는데

오늘은 어떤 꽃을 만날까.


고개를 넘자 '눈개승마'가 활짝 피었다.




이런!

책에서만 보았던 '백선'?

한방에서 낙태, 두통, 황달, 중풍, 이뇨 등에 쓰인다는데 오늘 처음 만난다. 





꽃들이 나무 밑에 매달려 핀다.

삼파장 전구와 흡사하게 핀 모습의 꽃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무슨 꽃인지 모르겠다.


집에 와 사진 작업을 하며 아내에게 물으니 '박쥐나무꽃'이라고 쉽게 답을 준다.

꽃과 이름이 특이해 자료를 찾아보니 꽃이 박쥐를 닮은 게 아니라 잎이 박쥐와 닮아서

박쥐나무라고 한다.



09;40

바위아래 핀 '바위취'와 '매발톱'을 찍으며 산행과 여행을 마무리 한다.


 

여행과 산행의 여유로움 속에,

속리산의 소나무를 보며 푸름을, 문장대의 단단한 바위를 보며 굳셈을, 산막이 옛길의

수를 보며 부드러움을 배웠다. 


항상 정해진 일상에 길들여진 몸,

그러나 속리산이라는 걸출한 산에서 나는 자유로운 영혼을 찾았다.

                                                

                                 2016.  5.  26~27. 속리산 문장대와 괴산 산막이 옛길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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