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자전거 여행 10일차. 한림항에서 절부암까지.

[인제펜션 비개인후]

오늘도 나는 최선을 다해서 천천히 열심히 다녀 보도록 하자.

날이 많이 풀렸단다.
거실 큰창을 통해서 바라보는 한라산은 구름으로 가려 보이질 않는다.
옷차림도 약간 가볍게 바꾸었다.
오늘도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자전거 여행이 제법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재미있고 즐겁고 행복하다.

이 여세로 일본에 가서도 자전거로 둘러볼까?
지난번 동경 여행때도 자전거 투어를 생각했었는데 렌트를 못해서
걷거나 지하철로 다녔었다.
이젠 종착점이자 출발점이었던 서귀포가 얼마남지 않았다.
자전거 여행이 마무리가 되면 가볍게 오름 중심으로 버스를 타고
다녀 볼 생각이다.
생각이야 늘 변하기는 하지만...
본래 제주에 왔었던 일도 몇일 더 봐야하고.
(08:49,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날씨를 검색해보니 영상 오후에 영상 10도 수준이면 거의 봄이다.

숙소에서 바라 본 풍경. 한라산이 노란 건물 왼쪽 옆으로 눈에 들어 온다.
커피 한잔 마시면 이젠 출발해야지.(09:30)

때가 맞았다면 여기서 한끼 꼭 복습하고 싶었지만 억지로 먹을 수가
없다. 때가 너무 아니라서....

걸매기 녀석이 파먹고 있길래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들 들이대니
도망을 가버린다. 범인은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는 말대로
10여분 기다렸으나 다른 범행을 위해서 아예 다른 현장으로 가버린
모양이다. 마냥 기다릴 수 없으니...

여기도 갈때마다 안 맞는다.
아직까지 맛보진 않았지만 웬지 입맛을 사로잡을 듯하다.

웅포리 해안가에서 잠시 쉬며. (10:16)
오늘은 자전거가 바람을 만든다.
적어도 아침만큼은 고요할 모양이야.
파도 소리만이 인기척없는 동네에 정적을 가른다.
어디론가 향하는 뱃고동 소리가 오늘따라 정겹게 느껴진다.
지척의 비양도를 향해 나는 갈매기들의 비행도 모처럼만에
평화롭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바람이 심할때 갈매기의 날갯짓을 보니 지나 네나 서로 딱하기는
매한가지였는데 오늘은 나도 편해보이고 나도 편안하다.
줄메단 개도 목줄이 풀려서 뼈다귀 커다란거 하나 물고는 내 눈치를
보더니 이내 제 갈길로, 아지트로 쏜살같이 내빼 버린다.
미세하게 부는 바람 한점 느낌이 좋은 옹포리의 해안 풍경이 너무도 평화스럽고 행복스럽다.
이런 것을 나는 그저 행복이라 부르고 그렇게 여기자.

제주돌로만 지은 정자.
기둥, 주초, 지붕, 마루, 천정 모두가 제주의 돌이다.
사진으로 보는 정자의 가운데는 비양도이다.
정자가 너무 이채롭다.
탐난다.
언제 지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하다.(10:41)

협재해수욕장(11:19).
오늘이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찾아오는 사람들은 많아진다.
여름 휴가철이면 엄청나겠다.
저 고운 백사장에 발디딜 틈도 없을게야.
비양도와 가장 가까운 협재해변엔 식당과 카페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바다색이 이렇게 넋을 빼앗아 가도록 아름다워도 되는건가?

금능해수욕장(11:42)
정말 우윳빛 바다라는 말이 맞다.
은모래밭을 채운 바다는 우윳빛이다.
젊은이들은 차림새가 봄을 만난듯이 롱패딩 잠바는 한꺼플 벗어버렸다.
나도 안에 조끼는 거둬야겠다.
그리고 한몇일 장갑도 배낭에 넣어 둬야겠다.

점심식사(성아시식당, 흑돈김치찌게 11:55~12:39)
제주에 오면 흑돼지를 먹어봐야 한다. 꼭.
흑돼지 넣은 김치찌게.
지나가다 보고 맛있는 식당 같은데 그래서 미련없이 때도 되었으니
스르륵 식당문을 여니 남자 주인분이 무척이나 반갑게 맞아준다.
국물맛이 매우 특이하게 맛있다.
양념이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양념이 다른집과 다르단다.
가히 서귀포의 한옥집 김치찌게와 견줄만하다.
흑돈김치찌게 너무 맛있게 먹고 있다.
찌게안에 넣은 흑돈의 양도 푸짐하여 여향자이게는 너무 좋다.
지난번 월정리 근처 어느 식당과는 너무 비교가 된다.
이럴때 소주 한잔 곁들이면 딱이겠다.

월령코지(13:18).
제주올레에서 주관하는 올래길 걷는 분들과 만났다.
반갑다.
자전거 여행이 끝나면 최소 한차례정도 참여해 볼 생각이다.
전에도 참여해 보려했으나 여의치 못했다.

학꽁치란다.

월령 선인장 자생지(13:45).

신창리 풍차해안(14:54).
길이 딱 끊어졌다.
자전거를 돌리려다가 가만히 자세히 보니
다행히 물은 빠지고 자전거를 끌고 저쪽에 폭이 좁은 곳만 잘 건너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드 옆에 돌담만 잘 넘으면 길이 보인다.
건너자.
세우는 다리가 없어서 늘 누워있는 자전거 모양이 안쓰럽다.
네 팔자가 그러하니 우짜겠노.

그런데 길이 아니고 배추밭이다.
오메 환장하것네.
이리저리 우찌우찌하여 결국은 질퍽거림이 덜한 뻘을 빠져나왔다.

신창리 풍차해안은 언제 만나도 반갑다.

용당포구(15:54).

차귀도가 나를 반긴다.
저 멀리 누워있는 섬이 차귀도이다.
무인도이지만 배편이 있어서 들어가면 필히 걸어서 섬을 한바퀴
돌아 봐야한다.
정말 누구에게든 꼭 한번이라도 죽기전에 가 볼것을 강력히 권한다.
설명도 말도 필요하지 않은 꼭 가봐야 할 섬이다.
그리고 꼭 걸어서 구경을 해야 할 섬이다.
왕복 배삯내면 딱 백배, 천배 만족하고 나온다.(16:06)

절부암, 수월봉, 와도, 차귀도가 모두 한 눈에 들어온다.
길게 늘어진 반대편의 한라산도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절부암에 들어서면서 자전거가 정남으로 움직인다는 느낌이다.
실제로 지도를 보니 그렇다.
그렇다면 이젠 대략 3/4정도를 온셈이다.
남들 몇일 걸리진도 않는 길을 나는 벌써 열흘이 다된 것같다.
앞으로도 2~4일은 더 가야 서귀포에 닿을 것이다.
그렇지만 너무나 재미있고 흥미로운 여정이다.
구경꺼리들이 왜 이리도 차고 넘치는지..
내가 이러려도 제주에 왔고, 자전거를 탔는지 참 잘 한일이다.
(16:24)

절부암에서 만난 일몰.
여기서 한시간여를 머물렀다.
때마침 일몰도 준비를 하는 것 같고 당산봉으로 이어지는 해안길은
아마도 제주에서 가장 뛰어난 절경을 가진 길이라 생각한다.
작년 가을 가족 여행이 사정때문에 연기가 되었지만 올레길 일부 구간을
포함시키고 섬 하나 포함시켜 달라는 주문에 망설임없이 절부암 구간과 차귀도를 우선 순위로 안내하려 했었다.

해가지는 1시간여 동안 제주의 좋은 동무분들과 낚시로 바로 잡은
물고기로 즉석 회를 떠서 초장에 소주 한잔 걸치니 소주가 꼭 물처럼
느껴진다.
한잔 마시고 나니 해가 더 선명하게 보인다.
(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