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석지기 였던 할아버지는 자체 소유의 방앗간이 있었다.
오로지 자신의 쌀 만을 위한 것이었다.
할머니의 손은 권총이다. 방앗간 일을 하시다가 4번, 5번 손가락이 잘려서 권총 모양이 되었다.
어릴 때 할머니 손을 권총이라고 많이 놀렸다.
백봉령 밑 마을 신흥에서 일본놈 순사를 두둘겨 패고, 만주로 도망가다가, 금진 어촌에 숨어 있다가 할머니를 만나서 낙풍으로 돌아왔다.
낙풍은 벌판이 늪이었는데 힘이 장사인 할아버지는 그것을 전부 논으로 만들었다.
어릴 때, 아버지와 논뚝을 걷다가 내가 벼이삭을 만지기라도 하면 나무라셨다.
지금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쌀이지만, 그 시절은 황금과 같이 귀한 존재였다.
할머니 동네 금진에서 이면수를 한 다라이 가져와서 쌀과 바꾸면 이면수 한 다라이가 쌀 작은되에 불과했다.
할아버지 곳간은 항상 먹을거리로 넘쳐났다.
금진의 생선 종류부터 산나물 쌀 보리 등 없는 것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큰아버지는 경성제국대학을 보냈고, 아버지는 서울대를 보냈다.
옥계면에서 전설 같은 존재였다.
아버지는 항상 내가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했다.
특히, 막걸리 좋아하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닮았다.
힘이 장사인 것도 같다. 사진을 보니 생김새도 닮은 것 같다.
새벽이면 항상 할아버지 머릿맡에 막걸리 한 대접을 갖다 놓아야 했다.
할아버지는 새벽부터 취해서 하루 종일 일하셨다.
일에 몰두하는 모습도 닮은 것 같다.
낙풍리의 방앗간은 할아버지의 상징과 같은 존재였다.
지금은 사라진 할아버지의 방앗간은, 나에게는 항상 할아버지의 分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