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북아 : '동북아시아'를 줄인 말. 그러나 이 말 대신 '동아시아'라는 이름을 써야 한다(옮긴이 잉걸. 아래 ‘옮긴이’).
(이 글의 단락인 ‘위’와 ‘아래’는 각각 원문에 실린 사진들의 위치를 일컫는 말이다. 다시 말해, 이 글은 지도를 찍은 사진들을 실은 글이나, 여기서는 그 사진들은 생략한다 – 옮긴이)
▶ 위 :
(서기 – 옮긴이) 13 ~ 14세기, 왜구(倭寇)는 무차별 침구와 약탈을 감행, 고려(후기 고리[高麗] – 옮긴이)를 혼란의 상태로 몰아넣었다. 이 시기 고려는 또 하나의 외적인 홍건적의 난을 두 차례나 겪으면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왜구는 주요 약탈 대상 지역을 3회 이상 집중 침구하며 경주, 광주, 전주 등 남해안 지역과 한양, 개경, 안주, 용강 등 서해안을 거쳐 한강과 대동강을 타고 내륙 깊숙이 침구하였다.
▶ 아래 :
(서기 – 옮긴이) 14 ~ 15세기 동북아시아(‘동아시아’라는 말을 써야 한다 – 옮긴이)는 고려/조선(근세조선 – 옮긴이), 원(몽골제국의 원나라 – 옮긴이)/명(明. 주원장이 세운 명 왕조 – 옮긴이), 일본(왜국 – 옮긴이)의 ‘삼국 관계’에 의해 왜구 발호가 크게 영향받고 있다.
왜구는 일본 내부의 안정성 여부에 따라(그러니까, 해적을 억제하거나 없앨 일본 중앙정부가 제 구실을 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서, 그리고 일본이 호황이냐 불경기냐에 따라서 – 옮긴이) 극성을 부리거나 소강상태로 접어들곤 했지만, 역사적으로 침구가 완전히 종식된 적은 없다(이 부분은 글쓴이인 전경일 소장의 오해다. ‘다른 나라 해적’인 ‘왜구’는 중세 말기에야 나타났고, 에도 막부가 들어선 뒤에는 사라졌으며, 또 다른 왜구인 근대 왜국은 메이지 유신 이후에야 나타났기 때문이다. 전 소장은 고대에 나타나는 ‘왜[倭]’를 오늘날의 왜국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런 오해를 한 것으로 보인다 – 옮긴이).
-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서기 2011년 현재)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