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됨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말끔한 얼굴을 하고 돌아서면 남을 헐뜯고 욕질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김새는 험상궂은데 착하고 진실한 사람을 보기도 한다. 타고난 인품도 있지만 살아가면서 교양을 쌓아 주변의 존경을 받는 사람도 있다. 요즘같이 어지럽고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자니 뜻밖의 속임을 당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교묘한 말솜씨로 남의 혼을 빼어 자기 배를 불리는 재주꾼도 많다. 한평생을 아침저녁으로 만나 어울리는 친구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다가다 한두 번 만난 자리에서도 착하고 진실한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겉모양과 속마음이 같은 사람을 만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문인 예술가 중에서도 그런 사람을 더러 본다. 이들은 모두 세속의 욕심을 버리고 곱고 착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문인을 예로 들어 보더라도 글과 사람이 전혀 다른 것을 발견하고 실망하는 경우를 가끔 본다.
중학 3학년 때의 국사 선생님은 박식하기도 하지만, 수업 시간 중에 딴전을 보는 학생들을 위해 구수한 옛이야기를 잘 하시는 분이었다. 이미 앞에서 착하고 진실함을 말했으나, 50여 년 전 국사 시간에 들은 이야기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 여기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옛날 시골 어느 마을에 대지주가 살고 있었는데, 소작인을 구하기 위해 광고를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지망자가 하루아침에 대여섯 명이나 지주 집으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한 사람만 필요한 지주는 난감했다. 요즘 같으면 학과 고사나 체능 시험으로 적임자를 선발하면 될 일이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모두 아침 일찍들 왔는데, 당장 결정할 수 없으니 아침밥이나 먹고 돌아가시오. 곧 통지하리다.”
지주 양반은 아침상을 준비하라고 말한 뒤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의 응답에 따라 속으로 채점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밥상이 들어와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던 중 우연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정미소가 없는 시골의 쌀 속에는 벼 껍질이 벗겨지지 않은 니가 드문드문 밥 속에 섞여 있었다. 바른 사람들은 니를 입안에서 오물오물 골라 밥상 위에 뱉어 내는데 그 중 한 사람은 그 니를 골라 입안에서 껍질을 벗겨 조심스레 손바닥에 뱉어 내는 것을 보고 있던 지주는 속 마음으로 결정을 내렸다. 몸은 왜소하고 용모도 별로 볼 것 없었지만, 그 사소한 행위에서 그 사람의 성실함과 진실성을 발견하여 소작인으로 결정했다는 이야기였다.
나도 어깨가 처지도록 오랜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에 숱한 사기를 당해 현기증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늘과 바다는 예나 지금이나 푸르기만 한데, 사람의 마음은 많이 변했다. 아파트 베란다에 앉혀 놓은 보잘것없는 화분에서는 모진 겨울을 겪으면서 철이 되면 고운 봄을 피운다. 나는 말 없는 꽃들에게서 삶의 아름다움과 진실을 배운다. 그리하여 나도 그들을 닮아 보려고 애를 써보지만, 발걸음이 더기만 하다.
국사 시간에 들은 그 소작인은 오래전에 세상을 떴을 것이다. 그리하여 한적한 어느 시골 산기슭에서 들꽃처럼 묻혀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옛날이야기가 새삼스럽게 다시 생각나는 요즘이다.
(정호경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