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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즉시 '근무거부자'가 되었다.
배 째십시오. 영창? 가겠습니다. 빨리 보내주시죠.
하지만 나는 영창에 가지 않았다.
영창 갈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원칙대로라면 부대를 반 이상 비워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사건은 최소한 연대장에게까지 보고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코 이슈화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군대는 효율과 과학을 신봉하는 조직이다.
결코 '공식'적으로는 보고될 수도 없고, 보고되어서도 안 되는 사항이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구원은 엉뚱한 곳에서 왔다.
자대배치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등병이 대대장 면담을 신청했다.
면담내용을 간단히 재구성하면 이렇다.
- 저희 어머니가 한 번 통화하자고 하십니다.
자네 어머니가 왜?
- 어머니한테 부대 일을 말씀드렸는데... 직업이 무당이십니다.
대대장은 당장 이등병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의 요구조건은 단순했다. 백일휴가를 좀 빨리 보내줄 수 없느냐는 것. 그게 다였다.
처방은 휴가에서 복귀하는 아들 편으로 보내준다는 거였다.
모든 백일휴가가 꼭 딱 입대 100일 만에 떨어지진 않는다.
그 '즈음'인 경우도 얼마든지 많다.
당연한 말이지만, 무당 어머니도 어머니다.
군에 간 아들을 며칠이나마 일찍 보고 싶었던 것이다.
며칠 후, 이등병은 묘한 처방을 들고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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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김중사의 애인의 시신도 태워라.
두 사람의 재를 한데 섞어라. 땅에 뿌렸다면 그 지점의 흙을 퍼다가 섞어야 한다.
그렇게 섞인 재를 뿌리되, 뿌리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 양지바른 남향이어야 한다. 그러나 주변에 다른 이의 산소는 없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적당한 곳이 없다면 나무를 치든 어떻게든 해서 장소를 만들어라.
이번 일의 경우 물은 좋지 않다. 특히 흐르는 물은 나쁘다.
어느 정도 흙 속에 묻어서 자연스레 땅 속에 스며들게 해라.
둘째, 염을 외우라. 간부 사병 할 것 없이 3중대 인원 모두가 염을 외워야 한다.
염을 외울 때는 반드시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야 한다.
염은 적어준 그대로 모두가 합창하면 된다 -
모나미 붓펜으로 휘갈겨 쓴 게 분명한, 이등병이 제 엄마한테 받아온 범상치 않은 필체의 그 염 문구.
셋째, 쑥이 필요하다. 먼저 쑥을 캐서 말리는 게 좋을 것이다.
3중대 장병들이 염을 할 때 모두가 제 몫의 쑥을 태워라.
쑥 연기가 원혼을 진정시켜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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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사의 연인의 시신은 경찰이 보관, 아니 떠맡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시체안치소에 있었는데, 한마디로 '처치곤란'이었다.
이렇게 연고 없는 시신은 보통 해부학 실습용으로 소모된다.
그러나 HIV 바이러스에 감염된 시신이다.
이 바이러스는 공기중에서는 몇 초 안에 죽어버리지만, 그래도 영 께름즉했던 모양이다.
시신은 냉동밀봉된 채 방치되어 있었다고 했다.
군부대가 이 애물단지를 달라고 하자 그 뒤의 절차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냉동된 시신은 곧 재가 되었다.
문제는 김중사의 재였다.
3중대가 떠맡는 수밖에 없었다.
야밤에 중대장과 병장들이 몇이 삽을 들고 재를 버린 곳으로 몰래 갔다.
그날 밤은 하필 비가 내렸다. 재를 버린 곳, 그 일대의 흙을 모두 파야 했다.
판초우의를 뒤집어쓰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서걱서걱 삽질을 하는 어두운 표정의 사내들.
저들의 편의를 위해 한 사람의 죽음을 땅에 묻었다가
이번에는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서 다시 끄집어내려는 슬픈 군상들.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김중사를 흩뿌려놓은 땅인가.
그걸 알려주기 위해서였을까.
갑자기 빗물을 머금은 땅에서 부글부글, 흰 거품이 솟아올랐다.
시신을 태운 재였다.
그 때였다. 병장 하나가 털썩 주저앉아 흐느꼈다.
"으흐흐흑.... 김중사님 죄송합니다..."
그랬다. 김중사는 누구에게도 잘못하지 않았다.
귀신이 되어 나타났어도, 그 모습에 공포를 느꼈어도, 그는 살아서든 죽어서든 누구도 해꼬지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 그를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하나가 되어 땅에 파묻었다.
누군가는 순조로운 승진을 위해, 누군가는 무탈한 군생활을 위해...
아무도 주저앉아 있는 병장에게 무어라 말하지 못했다.
모두들 동작을 멈추고 후레시 불빛 아래 비치는 흰 거품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중대장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계속 파."
... 두 사람의 재는 한 데 섞인 채 '적절한 곳'에 뿌려졌다.
그리고, 염... 나는 그 광경을 잊지 못한다.
백 명이 넘는 사내들이 저마다 종이컵에 담긴 마른 쑥을 태우며 염을, 아니 바리톤 합창을 하는 모습을 말이다.
무럭무럭 올라오는 쑥 연기는 막사 지붕 위에서 하나로 합쳐지더니,
낮게 깔린 구름처럼, 하나의 걸쭉한 덩어리가 되어 부대 위를 짓눌렀다.
참으로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그로테스크함은 아마 살아남은 자들의 꼴에 있었을 것이다.
자신들이 외면한 진실에 대고 이제는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그 무섭도록 서글픈 광경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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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김중사는-김중사의 귀신이라 하든, 환영이라 하든, 뭐라 하든 상관 없으리라-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원체 천성이 착한 사람이라서 그 정도로 한을 풀어준 걸까.
아니면 사랑했던 그녀와 함께할 영원의 여정이 이승에 미련을 두는 것보다 더 중요했던 걸까.
어쨌든 김중사는 드디어 '사라졌다.'
다음해였을 것이다.
폭우에 수해가 나서 주변 농가가 줄줄이 침수되고 연병장에는 시냇물이 생긴 적이 있었다.
그때 야트막한 산들이 많이 무너졌고, 김중사와 그의 연인의 재를 뿌렸던 곳도 물에 휩쓸려 사라졌다.
두 사람의 재는 어디로 갔을까?
아니 두 사람의 영혼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두 사람의 영혼이 함께이길 빈다.
그리고 행복하길 빈다.
나는 김중사가 후끈한 땀냄새를 풍기며 보이던 눈가의 자잘한 주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가 그 모습 그대로 웃고 있을 거라고, 나는 무작정 믿어 본다.
VF 뒷자리에 연상의 연인을 태운 채, 새하얀 구름 위를 질주하고 있을 거라고.
첫댓글 슬퍼요 ㅠㅠ.....부디좋은곳으로 가셨길....
슬퍼요.... 두분 모두 좋은곳에서 행복하시길....
눈물 나요. 두 분 다 넉넉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다시 태어나서 다시 만나 백년해로 하시기를 빕니다ㅜㅜ
와....잘읽었어요ㅠㅠ
흐어어..소설 한편 다 읽은 느낌이에요..ㅠㅠ
너무슬프고. .안타깝네요 필력이. ㅎㄷ.ㄷ작가신지,ㅋ ㅋ저 책도 집중못하는편인데 한번에다 이해가되고 와우
한번에 올려져 있던 글이었는데 내용이 좀 길고 그래서 제가 임의로(나름 극적으로) 4편으로 나눴어요. 원작자님이 뭐라고 안하실지...혹지니님들도 읽어보시고 이상하면 댓글주세요
와 진짜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다른 글들도 있으면 보고싶네요!!
너무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한편으론 슬프고 .. 주변의 모두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슬픈 이야기네요 ㅠㅠㅠ
너무 안타깝고 슬픈얘기네요 ㅠㅠㅠ
안타까워요... 정말... 무섭다기보단 슬프네요
마지막까지 안타깝네요........ㅠㅠ 다음 생에는 풍족한 집안의 자녀들로 태어나 누구보다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잘 사셨으면 좋겠어요......ㅠ
필력이ㅠㅠㅠㅠㅠ아 너무 슬프네여ㅠㅠ
넘마음아픔 좋은사람이 잘살수있는 세상이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