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생 고향 동네다.
딴에는 푸르고 황금 같은 젊은 시기를
보낸 울 앵경빵 집 동네 구석구석을
옛 생각에 젖어 (풍)남문에서 출발해서
전주 향교 방향으로 성심여고,
경기 전, 남문시장(남부시장)을 아조 느긋하게
싸드락거리며 지난 세월 속을 걸어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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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더니만, 산다는 게,,,
'훅 불고 지나는 바람결 같더이다!'
풍남문 뒤 남부시장에서
향교 방향으로 하여
한옥마을로 들어섰다.
하꼬방(실례) 집들이 있었고
비포장의 좁은 골목이였는디 말여,,,,
지금 한국 태권도를 쥐락펴락 하는
'최*신' 동기의 누추한 집이
여그 외약쪽에 있었지 아마~
집들을 관광객 민숙용으로
단장, 깔끔히서 옛 정서가
송올송올 풍긴다.
그때 그 시절 집안 마당에
흔했던 감나무.
고향의 옛 정서가 모락모락!
외약 쪽으로 실며시 발길 돌리니 ,
성심여고. 그때는 소생국민학교와
함께 경기전 안에 있었는디,,
카톨릭 미션 스쿨이라 경기전 건너
전동성당 옆으로 옮겼구나!
성심여고를 다닌 소생 친구 부인이 높고
시원한 음량으로 '사랑의 미로'를 부른
가수 최진희와 같이 공부했다고
분명히 들은 기억인디,,,,이글 쓰려
인터넷에서 프로필을 보니
(졸업은 안 했을찌 모르되) 이 성심여고는
이름도 안 나오고 또 미디어 자료마다
졸업 학교가 각각이다. 참 골패이는 세상이다.
도시 우리가 지끔 껏 경험 또는 배워 알고
있는 것까지도 의심이 갈 지경이니,,,
유튜브 비롯 디지털 정보의
범람, 혼탁으로 대중이 진위의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된 무서운 세상으로 진입했다.
대부분 눈에 번쩍 띄는 기사는 백퍼 페이크다.
심지어다, 과학적 기사도 표현의 자유란 미명하에
'지구가 여전히 평평하고, 천동설이 맞다'고
그럴듯하게 논거를 대는 게 없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가 틀렸다'고를
하지 않나 전주가 삼한시대 '馬韓' 땅임에도
기마민족의 기상을 많이 가졌다는 논거로
'고구려가 마한'이라며 영상으로
그럴듯하게 떠들어 댄다.
피런허고 댓글, 조회 수도 엄청난디다,
참된 사학자라고 올려 세우질 않나,
세상이 五天萬爭鳴이 아니라 지구 총인구
지멋대로 들의爭鳴의 시대다.
참으로 두렵고 무섭다.
고등학교 때다.
검은 세일러복 입고 성심여고에 다니던
구둣방 가게 딸에게 백퍼 일방적
사춘기 염이 있었지 뭐냐!
...
왼쪽에 소나무 뒤로 보이는 교사
구 건물 외벽 물통을 타고
그녀가 차이콥스키 백조의 호수
무용수로 나오는 학예회를 보려
5층 인가, 4층에 있는 강당으로 기야말로
필사적으로 올라갔지.
(왜냐고? 남녀구별이 엄정한 그 때자녀 .
학부모 외엔, 특히 까까머리 남자는
안 들여 주닝게)
성심학교 골목을 나와 경기전 앞에서
오른쪽으로 턴 했더니만,
옮겨진 모교 중앙국민학교가 보인다.
그때는 여기가 전주경찰서 자리였지.
아마~.
다시 뒤돌아서
경기전 정문으로,
아~!
그때야 무신 돌담을 쳤으며,
입장료는 또 웬 말!
모교 중앙국민학교 담을 넘거나,
기양 들어가서 토끼 먹일 크로바
풀도 많이 뜯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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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고 지기'가 나와 나가라고
호통을 쳤지. 울 꼬맹이들은 그 어른을
머리가 벗어져 空山明月이라 불렀지롱,
정겨운 그 이름. 공산명월!
또 있다.
경기전이 퇴각하는 북한군의 집결지였다.
어린 소생 눈에는 대부분 16세 근방근방의
어린 병사들로 다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 좀 나은 병사들이 놀러 나온 소생 비롯
동네 꼬맹이들 모아놓고 설라므네
가끔 ' 자~앙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능선,,,'을
가르치며 같이 논 기억도 있다.
경기 전 바로 앞 전동 성당 거쳐
풍남문으로 돌아왔다.
세월 좋아졌구나!
그때 남문은 달랑 본루 하나 그것도
단층으로 남루하기 그지없었고,
아래로는 지겟꾼들이 있었는디,,
쪼까 남문통으로 내려오면
중고등 동기 김*주네 호남노트 사다.
돈깨나 있어 문기둥에다 꼬부랑 글씨로다,
'KIM's family'.
남부시장으로.
여그 남부시장 안에
'현대옥' 콩나물국밥집에 들러
양이 키는 대로 모주 곁들여
요기를 했다..
IMF로 실직한 고교 선배가
여그서 무보수로 1년인지, 2년쯤
요리 노하우의 내공을 쌓아
'전주콩나물 국밥 전국 체인'으로
만든 '현대옥'의 원조식당이다.(남부식)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주콩나물국밥의
진짜베기 원조는 시내 도지사 관사에서
전주천변으로 가는 곳의 삼백집이다.(끓이는 식)
대학 때부터 동기 고 이*열 시인을 중심으로
여럿 동무들과 자주 들렸던 곳이고 사진은 현재의 모습이다.
1945년 개업한 삼백집은 테이블 4개밖에
안 되는 5평 남짓한 작은 곳이었단다.
간판도 없이 시작 하루 삼백 그릇 이상
팔지 않아 자연스레 삼백집으로 불리었다.
창업자 대표 이봉순 씨(작고)는
'욕쟁이 할머니 원조
(배우 김수미가 맛갈스레 욕 재연함)'로도
알려졌는데, 진한 전주 사투리로
손님들에게 내뱉는 구수하고 걸쭉한
욕을 듣고 싶어 새벽 4시 문 열기 전에
찾아와 문을 차고 소동을 피우는
손님도 있었다고. 새벽에 욕을
먹으면 재수가 좋다는 통념 때문이었다.
가장 유명한 일화가 박정희
전 대통령 이야기일 것이다.
1970년 초(?)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호원 없이
콩나물 국밥을 먹기 위해 삼백집을 방문했다.
그때 박 대통령을 보고 이봉순 할머니가
‘누가 보면 영락없이 대통령인 줄 알겠다, 이놈아.
옛다 달걀 하나 더 처먹어라.’고
욕을 했다. (이상 전북신문 기사)
박대통령의 일화는 여러 버전으로 각색되어
SNS, 유튜브 등에 실려있는디 위 디지털
시대의 정보범람의 폐해가 여기서도 드러난다.
'젊은 남녀의 인사가, 한 사람 건너면
손잡았다로, 서너 사람 건너면 임신했다'로
와 같이 페이크가 사실로 고착된다.
(따라서 역사 기록도 페이크일 확률이
높을 것이란 ,,,)
소생, 동기들과 함께 대략 아래와 같은
할머님의 욕을 들었다.
'야들 봐라! 요 노무 새끼들 쪼깨 봐!
인제봉게 느그들 전고 뒷구멍 파고
들어간 놈들이여!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깽이들이 수시로
술 처먹으로 기어 오냐!
술값 낼 돈은 어디서 쌔볐냐(훔쳤냐)?'
투박하고 걸쭉한 사투리의 할머님의 욕은
언제나 뭔가 카타르시스가 되고 편안하고
깊은 정을 담고 있었다.
아마 그 시대를 겪지 않은 젊은 기자가
썼으리라 믿어지는 박대통령 관련
위 전북신문 기사는 사실과 다르다
요즈음 티브이, SNS에 떠도는 것들도.
그때 우리들 사이에 회자된 건 대략 다음과 같다.
(이것도 사실에 완전 부합하지 않겠지만,,)
순시 차 전라북도에 온 박정희 대통령은
막걸리를 디게 좋아해서 이환희(?) 지사
에게 전주에서 갈 만 한 곳에 미복으로 같이
가보자고 했던 모양.
지사는 자주 들르던 삼백집으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할머님이 냅다,
'야 또 왔냐? 도백이란 녀석이 아침부터
술 처먹으러 와?!
옉기 이놈아 전라북도민이 불쌍하다.
데불고 온 사람은 또 누구냐? '
눈길 돌려 박정희 대통령을 짯짯이 보더니
'이 낯짝 어디서 많이 본 면상이시,,??
아이 갸나! 꼴에 대통령 닮아갖고 있네.'
더프 하지만 낮은 소리로 박대통령:
'세상에 닮은 사람들이 하나 둘이겠소!
잘 부탁 헙니다.''
-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은 시리즈 끝 편입니다
첨부는 소생 재일시 즐겼던 72년 대
인기가수 대만계 歐陽菲菲(오이앙피피)
첫댓글 一雲님: " 전주이야기5 콩나물국밥" 자미 있게 읽었습니다. 님의 어릴 때 추억이 서려있는, 그러나 몰라보게 변모한 전주시가를 함께 돌면서 구수한 추억담을 듣는 즐거움은 각별한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백조의 호수의 백조에 짝사랑한 장면과 콩나물국밥집 욕쟁이할머니와 박정희 대통령과의 일화는 일품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전자통신의 발전에 기생하는 fake news 의 페해는 인류의 장래를 암울하게 할것 같아 걱정입니다. 이제는 AI 라는 괘물까지 나왔으니 수습불가능이 되지 않을 런지? 좀 외람된 이야기지만 옛날.. 광석검파기에서 시작해서 전자공학...그때는 이런 단어도 없었지만...으로 밥을 먹어 온 한 사람으로서 이미 인간이 제어불가능한 괴물로 성장하고 있는 자식을 보는 것 같아 불안합니다. 인간의 지혜는 이제 감히 신의 영역까지 넘겨다 보는 것 같아 염려됩니다.
이번호로 전주 기행문이 끝이라니 섭섭합니다. 또 새로운 이바구가 기대됩니다.
안녕하십니까? 逸泉 어르신.
성실하신 첫댓글을 달아 공감을 전해주시니,
낙상 후 큰 일은 없어 보여 안심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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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생도 외람되히 전공에 관한 말씀 사뢰겠습니다.
안경광학은 '빛, 렌즈, 눈'을 기반 지식으로 하고 있는데
그 중심은 우주 에너지의 핵인 '빛'으로,
인간 사물 인식 사고의 90퍼 이상이 눈으로 '보고'
얻어 축적되는 것으로, '본다 것이 존재를 정한다.'는
양자역학의 기본 아이디어는 적확하다고 느낍니다.
하온데 안광학적으로 살피면 눈으로 보는 주변의 물체의
모습들은 실재의 실상(real)이 아닌 가상(virtual)이어서
우리들 인식 자체가 '실재적 존재에 기반하지 않는다'는 .
사실입니다. 컴 이나 폰의 디지털의 세계도 가상세계이지요.
심하게 말씀드리자면 우리는 상상으로 맹근 사상,언어의
개념세계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igence)은 학습능력이
있어 말씀하신대로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개연성입니다.
이를 희석시키고 인간적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 게 공감, 감동
정성을 축으로 하는 인문학(Art), 즉 예술이고, 문학이고 어르신들의
하이쿠라 믿습니다. -妄言多謝
一雲 님: ' 경주기행 끝버젼 - 전주이야기 5 <콩나물 국밥>'
젊은 시절을 보낸 동네의 구석 구석을 옛 생각 더듬으며 돌아 본
거리 들 ... 흘러 간 세월 속에 많이도 변한 모습, 모교, 중앙국민
학교의 옮겨진 자리를 비롯해서 6.25 시절, 인민군의 퇴각 집결지
이기도 했던 경기전 과, 그 곳에서 인민군이 북한 노래를 가르치던 일,
고교시절, 마음 끌린 여학생에 얽힌 이야기 등을 회상하면서, 경기전
바로 앞의 을정동 성당을 거쳐, 풍남문으로 돌아와,.옛 모습과는 완연히
다른 남부시장의 콩나물국밥집, '현대옥'에서 요기를 채운 일이며,
고교 선베의 전주 콩나물국밥 체인을 이룬 일, 또한 '전주 콩나물
국밥' 의 진짜 원조인 '삼백집' 과 그 집의 창업자로서 욕쟁이 할머니의
원조인 이봉순 씨가 박정희 대통령 방문 때에 한 욕, '누가 보면 영락
없이 대통령인줄 알겠다, 이 놈아 하며서 옛다 달걀 하나 더쳐먹어라,
헸던 에피소드에 이르기까지의 회상의 여행담, 관련 영상들과 함께
감상 잘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第善 어르신 안녕하세요?
건강하시지요.
빠짐없이 꼬박꼬박 읽으신
성실한 댓글 항상 고맙습니다.
소생 개인 신상 이력이 반 이상
공개된 마당이고 또 외람되오나
지난 일을 반추할 것 이외 특별한
아이디어도 없는 낫살이옵기 현실감이 떨어져 좀 뭣 하긴 하옵니다만 어르신 믿고 이대로
이어 가겠습니다.
이 번 올림에 소생의 순수 짝사랑
말씀대로 인민군으로부터 김일성 장군의 노래 등 천진난만 할 때의
기억으로 소생 신상을 한 풀 더 벗겨
부끄럽기도 하네요.
댓글 거듭 고맙습니다.
내내 강녕하십시요 .
일운 님
좀 늦었지만 댓글 남기겠다는 취지로 몇 자 적습니다. 선생의 고향 동네 이야기는 나 자신의 고향이 오버랩 되어 아득히 먼 추억을
되새기게 하지만 ‘훅 불고 지나는 바람결 같더이다!’라는 명언으로 끝나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유튜브를 비롯한 모든 매체에서 양산되고 있는 온갖 유언비어는 현 시대의 병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참으로 두렵고 무섭습니다.
경기전이라고 해서 무슨 전(廛)인가 했더니 慶基殿을 가리키며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하고 있는 전각이더군요.
콩나물 국밥이라 하면 내 선입감으로는 콩나물, 명태, 미역 등의 식재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한국 고유의 음식이라고 인식되어 일본사람들이 약간 내려 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콩나물 국밥도 그런 인식이 작용하여 잘 먹지 않던 음식인데, 삼백점 앞에서 줄직고 있는 광경을 보니 군침이 돌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욕쟁이 할머니와 박통의 이야기도 재미있는데 그런 황당한 욕 소리도 흐뭇해 들리는게 서민의 감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좀 길어졌는데 이쯤으로 끊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어르신!
안녕하십니까?
이리 댓글을 주시며 소통을 이어주시니 소생 늘그막 보람이며
기쁨입니다.
어르신께서도 마찬가지라 사료됩니다만 기력이 쇠해져 가는
이 즈음은 지난 세월을
반추하는 이외 특별하게 할 일이 없어 보입니다. 주위 많은 이들이 옛일 조차 기억하기 힘든 이들 보면 소생
부끄러우나 추억담을 쓸 수 있고 이리
소통하는 장을 누리는데 고맙기만 합니다.
외람되오나 선친이 자주 하시던 말.
'닥치는 대로 살아라!'
는 말씀이 자주 떠오르는 요즈막입니다.
거듭 댓글 감사합니다.
내내 강녕하십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