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떨림과 울림 > 문하 정영인
“나, 떨고 있니?”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주인공이 사형을 당하기 전에 친구에게 묻는 말이다.
우주의 모든 만물은 모두 떨고 있는 존재다. 물질의 세 가지 상태인 고체, 액체, 기체도 공간에 따라 얼마나 떠느냐에 따라 구분된다. 가장 많이 떨리는 것이 기체다. 공간이 많고 분자의 활동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 떨림은 너무 빠르게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대표적인 떨림이 바람이다. 그 떨림의 정도에 따라 물질의 상태가 변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물 성분이 가장 많이 떠는 기체인 수증이고, 중간 정도이면 액체인 물, 가장 덜 떨리면 고체인 얼음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물체는 떨면 마음도 떨린다. 그 때 떠는 것이 다름 사람도 떨게 하면 공명이다. 눈에 보이지 않게 공기가 떨리면 바람이고, 바다가 떨리면 파도이다. 빛이 떨리면 광파, 소리가 떨리면 음파이다. 우리는 떨리지 않으면 볼 수도 없고 들릴 수 도 없다. 바람의 떨림에 따라 나무가 떨고, 나뭇잎이 떨어진다. 우리가 앉으나 서나 쥐고 사는 스마트 폰도 진동으로 메시지나 전화가 온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사람의 몸도 소리로 귀청이 떨고, 목청이 떨어야 말을 하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떨림과 울림 속에서 살게 마련이다. 자명종이 울려야 일어나듯이….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트로트도 떨림과 울림의 연속이다. 가수가 듣는 사람에게 어떻게 떨고 울리냐에 따라 가수의 운명이 결정된다.
이번에 우리나라를 험난하게 훑고 지나간 태풍 힌남도도 거대한 수증기의 떨림이 거대한 에너지의 떨림으로 우리의 자연과 일상을 할퀴고 지나갔다. 결국 거대한 태풍은 거대한 파도처럼 수평으로 환원되어 평상을 회복하게 된다. 이번 튀르키예서 일어난 거대한 지진은 지각판의 거대한 떨림이라 할 수 있다.
고 이어령은 죽음은 거대한 파도와 바람과 같다고 하였다. 결국 죽음은 태어난 그곳으로 돌아가고 수평상태로 눕는 마지막 거처이기도 하고 수평의 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의 문학이나 음악이니 예술도 좋아하면 떨게 하고 울리게 하기 때문이다. 공감(共感)과 공명(共鳴)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과 미움의 마음도 다 마음이 떨림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의 미움이 아닌, 떨림과 울림이 없는 무관심이라고 한다. 우리가 웃고 우는 것도 다 미음의 떨림과 울림이다.
세상에 떨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세상에 떨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송홧가루 떨리는 날, 우리는 바람의 존재를 느낀다. 사람이 태어날 때 제일 먼저 열리는 것이 귀이고, 죽을 때 가장 늦게 닫히는 것이 귀라고 한다. 다 떨림을 감지하기 위해서이다. 또 태어날 때 고고지성(呱呱之聲)을 지르는 것이 나는 떨림과 울림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세상에 떨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바람도 떨고, 파도도 떨고, 햇빛도 떨고, 나도 떨고 너도 떤다. 사시나무 떨 듯 떤다.
추운 겨울철이다. 몸이 많이 떨리는 계절이다. 겨울은 특히 산천초목이 다 떤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본다. 진저리 쳐진다. 그것도 떨림이다.
로키산맥의 나무가 자랄 수 있는 수목 한계선 이상에 있는 나무는 누워서 자란다고 한다. 자기 환경에 적응하며 모진 고난을 이겨내면서 자란다. 이렇게 자란 나무는 현악기의 울림통을 만드는 좋은 나무가 된다고 한다. 잘 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기야 사람의 마음을 잘 떨게 하는 예술가, 가수, 화가, 음악가 등이 유명한 사람이 된다. 아무리 잘 된 노래라도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떨지 못하게 하면 그리 좋은 노래가 못 되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만물은 떨게 마련이다. 작게 크게 다 떨고 있다. |